이상한 외모의 모델들
브라질 출신의 아마존 여신, 러시아에서 온 겨울 요정 같은 모델이 지배하던 패션계는 이제 없다. 조금은 삐뚤어지고, 어딘가 모자라고, 살짝 이상한 외모의 모델들이 주목받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현대적인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
도미니카 출신의 모델, 리나시 몬테로(Lineisy Montero)의 얼굴을 보고, ‘슈퍼모델’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수세미를 떠올리게 하는 곱슬머리와 아몬드 모양 두상, 브라운색 눈동자를 소유한 스무 살 리나시는 순박한 마스크가 매력이다. 여기에 눈밑에 자리한 주근깨와 카푸치노 컬러 피부까지. 분명 아름답긴 하지만 린다, 나오미, 크리스티로 통하는 슈퍼모델 ‘이모’들(리나시는 슈퍼모델들이 한창 활동하던 94년생)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그런 그녀가 지난 2월 프라다 런웨이에 서고(나오미 이후 첫 번째 흑인 모델), 이어 로에베, 발렌시아가, 셀린, 지방시, 스텔라 맥카트니, 루이 비통까지 중요한 쇼에 차례대로 등장했을 때, 패션계 창공 위로 새로운 별이 반짝 떠오르는 듯했다.
“패션계라는 독특한 온실 속 공기를 들이켜지 않는 많은 일반인들은 최근 런웨이를 걷고, 잡지와 광고에 등장하는 톱 모델들의 독특한 외모에 놀랐을 것이다. 큰 코, 넓은 이마, 망아지를 닮은 다리, 혹은 으깨진 입 모양 등.” 최근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를 탐색한 <뉴욕타임스>의 <T매거진> 편집장 데보라 니들만은 편집장의 글에서 패션의 새로운 얼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시절의 미녀 여장부 스타일 슈퍼모델(크리스티, 린다, 나오미)과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지젤 번천, 케이트 업튼)은 이해하기도 쉽고, 그들의 아름다움 역시 명백했다(특히 평범한 이성애자 남성에게는). 그들이 여신에 가까운 완벽한 인간이었다면, 새로운 모델들은 틀에 박히지 않은 외모에 개성이 넘친다.” 니들만의 말대로 정형화되지 않은 외모의 톱 모델들이 패션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얼굴만은 뇌리에 남는 모델들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이 사실을 쉽게 확인하기 위해선 패션지를 펼쳐보면 된다. 다리아 워보이가 표지에 등장한 파리 <보그> 6, 7월 합본호를 살펴보자. 디올 광고의 리한나, 샤넬 광고의 카라가 등장하긴 하지만, 낯선 얼굴들도 등장한다. 다리아의 완벽한 외모와는 거리가 멀지만, 좀더 개성 넘치고 친숙하면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얼굴들. 프라다 광고 속 나탈리와 줄리아, 미우 미우 광고 속 에스텔라, 생로랑 광고 속 헬레나까지. 또 ‘Nouvelle Vague’ 라는 제목의 프리폴 화보에는 리나시를 비롯해 리안, 올라, 프레데리케, 아드리엔, 알렉산드라 등의 개성 넘치는 신인 모델들이 무리 지어 등장한다. 이 화보의 전문은 “어린 모델 부대가 느슨해진 실루엣의 2015년 프리폴 컬렉션을 선보인다”다.
별안간 나타난 이 새로운 세대의 모델들을 이끈 이는 누구일까? 모델들의 세계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변화를 주도한 주인공으로 단 한 명을 꼽을 것이다. 바로 캐스팅 디렉터, 애슐리 브로카우(Ashley Brokaw). 프라다, 루이 비통, 로에베, 프로엔자 스쿨러, 미우미우, 파코 라반, J.W.앤더슨, 랙앤본, 코치 등 가장 중요한 브랜드의 얼굴을 골라내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모델계의 큰손이다(프라다 런웨이와 광고에 등장한 낯선 얼굴,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꼽는 뉴페이스, 조나단 앤더슨이 밀고 있는 모델 뒤에는 브로카우가 있는 셈). 최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기억에 남는 얼굴’이 요즘 가장 중요한 모델 조건이라 말했다. 브라질의 아마존 여신, 러시아의 요정 대신 조금 이상하고, 비대칭적이고, 급진적인 마스크가 중요해졌다는 뜻. 그런 얼굴이야말로 ‘강력하다(Strong)’ 말할 수 있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그렇다면 요즘 그녀가 꽂힌 모델 종족은? “정확히 어떤 인종이라 꼬집어낼 수 없는 혼혈 모델들에 관심이 갑니다. 어떤 면에선 아시아인 같고, 조금은 유럽인 같고, 또 조금은 미국 인디언 같은 모델 말이죠.”
구찌 쇼 캐스팅을 새로 맡게 된 캐스팅 디렉터, 바바라 니콜리(Barbara Nicoli)와 라일라 아나나(Leila Ananna) 역시 빼어난 미인을 찾지 않는다. “사회와 문화는 패션과 모델 업계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당연히 모델에도 트렌드가 있게 마련입니다.” 아나나가 말했다. “예를 들어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몸매가 좋거나 유명한 모델을 특별히 원하지 않았어요. 그가 원하는 모델은 자신의 옷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델이었죠. 어리고 신선한 소녀와 소년들. 패션 업계 안팎으로 사람들은 순수하고 심플한 무언가를 원하고 있어요.” 마크 제이콥스, 알렉산더 왕, <러브> 매거진 등의 캐스팅을 맡고 있는 아니타 비튼(Anita Bitton) 역시 이 점에 동의했다. “세계의 얼굴은 변하고 있어요. 디자이너들과 광고주들도 개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어요.”
누구보다 모델들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건 후드 바이 에어의 디자이너 셰인 올리버. 그의 무대 위에는 트랜스젠더와 드래그 퀸, 보깅 댄서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능청스럽게 관객과 시선을 마주치고, 다리를 들어 어깨 위로 올리기도 하고, 목줄에 매인 동물처럼 무대 위를 거닐기도 한다. 그의 모델들에게 키, 몸무게, 피부색, 혹은 성 정체성은 문제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후드 바이 에어의 옷과 어울리는가. 바로 이 명제를 해결하기 위해 캐스팅을 맡고 있는 케빈 아마토(Kevin Amato)는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서만 찾을 수 있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칸예 웨스트의 아디다스 컬렉션, 릭 오웬스의 ‘스테핑 그룹’ 컬렉션 등을 캐스팅한 노아 셸리(Noah Shelley) 역시 모델 에이전시가 아닌, 스마트폰 화면에서 새로운 얼굴을 발굴한다. “만약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아름답고 스타일리시하며 매력적인 한 명을 찾으면, 그들과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게 되죠. 그럼 그들 속에서 진주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물론 후드 바이 에어와 칸예 웨스트 쇼에 등장한 모델들은 극단적인 예다. 그러니 당장 패션계가 원하는 모델의 큰 그림이 바뀔 일은 없다. 모델은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에디터, 사진가, 광고주의 이상향을 담아낸다. 사진 한 장만으로 우리를 꿈꾸게 하고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하는 피사체가 바로 모델. 그러기 위해 제아무리 개성 넘치는 모델이라 하더라도 사흘은 굶은 듯이 깡말라야만 하고(어떤 옷이든 소화하기 위해), 얼굴은 손바닥보다 작고(이상적인 비율을 표현하기 위해), 이목구비는 입체적이어야만 한다(어떤 조명과 앵글에서도 도드라져 보이기 위해). 다만 지금 긍정적인 것은 바로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는 요즘 모델들이 보다 폭넓은 아름다움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 둥그런 만두처럼 생겼지만 칼 라거펠트의 신임을 얻은 몰리, 키도 작고 평범한 외모를 지녔지만 핫핑크색 헤어만으로 루이 비통 쇼에 선 페르난다처럼 말이다.
사실 리나시와 몰리, 리안과 페르난다가 뉴욕과 파리를 누빌 수 있게 된 건, 누구와도 다르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들의 바람 때문이다. 생로랑 에디 슬리먼은 자신에게 꼭 맞는 ‘로커 소녀’를 고집하고,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프리다 지아니니가 선호하던 여신들을 쇼에서 빼버렸다.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자신의 쇼에 등장하는 모델이 다른 쇼에 서지 못하도록 ‘익스클루시브’를 고집하고, 셀린의 피비 파일로는 모델이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쇼에서 빼버린다. 다행인 것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모델 지망생 덕분에 디자이너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지방시 캐스팅을 맡고 있는 다니엘 페들은 이렇게 말했다. “단 한 명의 잇 걸을 위해 디자이너들은 더 이상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모델들이 있기 때문에 캐스팅을 통해 브랜드가 찾는 독특한 개성에 접근할 수 있죠. 진짜 중요한 디자이너들은 같은 모델을 공유하기보다 자신만의 모델을 고집하죠. 개성이야말로 지금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케이트 모스는 컴퓨터 미인들이 지배하던 슈퍼모델 시대의 막을 끌어내렸고, 지젤 번천은 헤로인 시크 대신 건강한 아름다움이 주목받는 시대를 열었다. 또 젬마 워드는 베이비 페이스 모델의 유행을 이끌었고, 카라 델레빈은 소셜 스타 모델의 등장을 알렸다. 그렇다면 지금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이 개성 넘치는 모델들은 과연 어떤 시대를 열게 될까? 아직 해답은 알 수 없지만, 이 새로운 모델들이 지금 패션계가 필요로 하는 신선한 자극을 던져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서 조금 더 바란다면, 개성 넘치는 그들이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의해주는 것. 완벽하지 않지만 실은 완벽한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 말이다.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JAMES COCHRAINE,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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