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작은 존재들, 코헤이 나와 전시 ‘Cosmic Sensibility’
‘코헤이 나와’ 하면 뿔 달린 사슴 전체의 표면을 영롱한 크리스털 구로 빼곡히 장식한 작품 ‘PixCell-Double Deer’를 연상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몇 년 동안 리움미술관 로비에 전시되어 있었던 데다, 특유의 화려함이 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죠. 그러나 이 작품을 비롯한 ‘픽셀(PixCell)’ 연작이 내내 회자되는 이유는 단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픽셀(PixCell)’은 디지털의 최소 단위 픽셀(Pixel)과 생물학적 세포를 의미하는 셀(Cell)을 조합한 작가의 주요 개념입니다. 픽셀과 세포의 성향을 차용한 이 작업은 어디로든 확장하고,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게 됩니다. ‘PixCell-Double Deer’는 본래 박제된 사슴이지만, 크고 작은 크리스털이 표면 아래의 형태, 색, 질감 등을 가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숱한 정보와 이미지, 그리고 진실이 유통되고 전파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변이되고 왜곡되는지 떠올려보면 한결 직관적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거지요.
페이스 갤러리에서 내년 1월 6일까지 열리는 코헤이 나와의 개인전 <Kohei Nawa: Cosmic Sensibility>에서는 보다 진화한 ‘픽셀’ 연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포 같은 작은 부분들이 어떻게 하나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구조를 만들어내는지, 이를 통해 개인과 전체의 관계를 고찰하고 있죠. 그 대상이 동물일 때 수많은 크리스털은 끝없이 증식하는 세포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물뿐 아니라 사물을 크리스털로 감싼 작품, 즉 자연성과 인공성, 물리적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를 가시화하는 작업도 선보입니다. 특히 크리스털로 뒤덮인 흔들의자, TV, 라디오 같은 일상적 사물은 시간의 경계를 오가는 기분을 선사하죠. 코헤이 나와의 픽셀은 변형과 왜곡, 개별과 전체의 개념을 예술적으로 은유하는 장치입니다. 가끔은 신비로운 초현실주의적 뉘앙스가 현재를 더 명확히 볼 수 있는 돋보기 역할을 하니까요.
코헤이 나와는 자신의 전시를 밀도감 있게 구성하는 솜씨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2층에 배치된 ‘픽셀’ 연작은 3층의 ‘스파크(Spark)’ 연작과 비교해서 보면 더욱 흥미로울 겁니다. 역동적인 세포의 운동, 그 과정에서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에너지를 구현한 작업은 벨벳과 탄소섬유 막대로 이뤄져 있습니다. 빛을 흡수하는 재료의 성질 덕분에 이 공간 여기저기서 실제 검은색 스파크가 날카롭게 터지는 듯 기묘한 착시 현상을 일으킵니다. 자못 즉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데이터에 기반해 매우 정교하게 만든 작품이라 하더군요. 어쨌든 빛을 반사하는 투명한 픽셀과 빛을 흡수하는 스파크는 공통적으로 세포의 존재와 움직임을 다루지만, 이를 정반대의 시각적 효과로, 현상학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대구를 이룹니다.
어쩌다 보니 1층 전시장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권할 만한 전시 관람 동선입니다. ‘픽셀’ 연작과 ‘스파크’ 연작은 만물에 현미경을 갖다 댄 듯 미시적 시각으로 출발하지만, 이를 온전히 인식하고 감각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우주적 감성에 가닿습니다. 이런 감각은 1층 전시장 바닥에 놓인 설치작 ‘Biomatrix(W)'(2023)를 통해 더 구체화되죠. 실리콘 오일이 생겨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이 작품은 전시에 공감각적 요소를 부여합니다. 특유의 점성은 추상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양을 만들어내고, 이를 무념무상으로 보고 있으면 어떤 소리도 희미하게 들립니다. 전시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을 이 움직임이 가장 작은 우주인 나를 구성하는 세포, 그리고 각각의 소우주가 모여 이룬 세상처럼 읽히는군요. “거대한 우주의 구성에 개인의 삶이 얽혀 있는 방식을 고찰”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가장 작고 평범한 것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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