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성수동에 등장한 조명 예술의 신

2023.12.16

성수동에 등장한 조명 예술의 신

선으로 만든 조명을 선보인 지오파토 & 쿰스 듀오.

이배 화백의 작품 ‘Brushstroke’와 조응하는 예술적 조명을 지난달 한국에서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이스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지오파토 & 쿰스(Giopato & Coombes)의 ‘DAL 달-Drawing a Line’이다.

성수동 ‘디파인 서울 2023’에 펼쳐진 지오파토 & 쿰스의 개인전.

추상예술의 거장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이렇게 말했다. “선(Line)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시성(Temporality)을 구현하며, 그 구조와 방향성이 우리의 마음을 경이롭게 하고, 각각의 추상 기하학적 기호가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시간을 느끼게 한다.” 예술가의 감정과 감성, 개인의 우주관으로 대표되는 무의식 요소가 캔버스 위에 붓이나 연필로 그려지는 선은 미묘하고도 경이로운 춤과 같이 완성될 때가 있다. 지오파토 & 쿰스 듀오는 이런 예술에서 ‘선’의 속성을 디자인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그리고 이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이배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구상해오던 새로운 조명 작품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고 했다. 무의식의 제스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붓질의 힘을 탐구하며 회화적인 반복과 자유로운 실험 사이에서 자아를 내려놓는 이배 작가의 작품 자체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에 이들은 깊은 감흥을 받은 것이다. “수 세기에 걸쳐 수련해온 한국의 서예가들은 단순히 선으로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붓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인격과 정신을 표현해왔으며, 서예의 세계에서 이런 선은 심장박동이고 이의 동기는 영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과 의도 속에서 소재가 무언가를 하도록 강요하기보다는 소재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스러운 제스처를 취하거나 한 발짝 물러서서 소재가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일종의 창의적인 연결 고리가 있었던 거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예술적 조명 ‘DAL 달-Drawing a Line’은 직접 개발한 미세 금속 선으로 이뤄진 얇은 튜브로 ‘언제 놓아야 할지 알면서, 이끌어가는’ 선을 지니고 있다. 공중에 떠다니는 스트로크처럼 엄선된 베네치아 유리의 텍스처인 검은색 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들은 지난 10월 중순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Paris+ par Art Basel) 기간에 파리 예술의 중심지인 생제르맹데프레에 위치한 자신들의 갤러리에서 리미티드 에디션 시리즈 ‘DAL 달–Drawing a Line’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1일부터 5일까지 펼쳐진 디자인 & 아트 페어 <디파인 서울>에서 한국에 첫선을 보였는데 디자인과 예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예술적 조명에 컬렉터와 관람객의 큰 호응을 받았다.

지오파토 & 쿰스 듀오.

작품 제목에 담긴 ‘달’은 한국어에서 따온 것이 맞다. “Draw a Line의 약어인 DAL이 한국에서 ‘달’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연이었지만 달의 궤도처럼 많은 선을 그린다고 가정하면 비슷한 점이 있어서 한국어를 그대로 작품명에 쓰기로 했습니다. 달은 같은 궤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조금씩 움직입니다. 우리의 작품 안에는 달의 미학이 담겨 있다고 봐요. 한국에서 중요시하는 달 문화는 무척 신비로워요.” 달은 우주적 캔버스 안에서 지나는 경로로서의 선을 암시하며, 지오파토 & 쿰스가 선보이는 조명 작품의 부유하는 특성과 밤을 비추는 빛의 색상을 상기시킨다.

지오파토 & 쿰스는 이탈리아와 영국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부부인 크리스티아나 지오파토와 크리스토퍼 쿰스가 이탈리아에서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디자인적 접근 방식과 아트 리서치를 작업에 접목하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빛을 물질과 비물질을 결합하는 매개체로 사용하며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이를 추억과 다양한 감각의 축제로 승화시킴으로써 상호작용의 공간을 재정의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지오파토와 쿰스는 이를 ‘초자연적인 백일몽(Supernatural Daydream)’이라고 부른다. 일상에서 시작해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 이들에게 창의적인 프로세스는 모든 사람에게 고유한 경험을 불러일으키고 한 번에 하나의 빛 창작물을 통해 공유되는 듯했다.

    강보라(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Giopato & Coom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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