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의 강점, 수호의 감정
배우로서 보낸 시간과 엑소 활동으로 2023년을 빼곡히 채운 수호를 런던에서 만났다. 음악이든 연기든, 치열한 자기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수호의 중심은 여전히 자신 안에 있었다.
일요일 오전 인터뷰인데, 평소 스케줄이 없는 주말에는 뭘 하나요?
지금은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고, 머지않아 솔로 앨범도 나올 예정이라서 사실 아무 일도 없는 주말에도 대본을 보거나 곡 작업을 해요. 항상 노래를 모니터링하고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죠. 2024년 6월 정도까지는 이런 상황일 듯싶어요.
쉴 때도 계속 엔진이 돌아가는 셈이군요. <보그> 촬영을 위해 방문한 런던에서는 어땠나요? 낯선 도시에서 어떤 여행자인지 궁금해요.
마지막으로 쉬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런던 촬영 후 이틀 정도 붙여서 휴가를 보냈어요. 런던과 파리, 로스앤젤레스, 뉴욕 같은 대도시를 워낙 좋아해요. 저에게는 로스앤젤레스가 제일 친숙한 도시지만 최근에는 런던에 갈 일도 꽤 많았어요. 원래 여행을 가면 주요 관광지나 맛집에 어떻게든 찾아가며 좀 빠듯하게 즐기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자주 가서 편안해진 도시에서는 아침에 운동도 오래 하고, 느지막이 나와서 밥을 먹고 슈퍼마켓에서 괜히 생필품을 사서 들어가는, 조금 더 일상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그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예전 인터뷰에서 트렁크에 레고를 챙긴다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여행 갈 때 꼭 챙기는 것이 있나요? 이번엔 어떤 물건을 가져갔나요?
자동차나 비행기로 이동할 때나 호텔 방에서 무언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닌텐도 게임부터 시작해서 대본 리딩과 캐릭터 분석, 가사 작업까지, 그런 틈새 시간에 오히려 집중이 잘되더라고요. 이번에는 레고 대신 책을 챙겼죠.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 감독님이 명상 관련 책을 권해주셨거든요. 숨 쉴 때 주의를 기울이고 내 호흡이 어떻게 순환되는지 느끼면 연기할 때도 편안하고 살아 있는 호흡을 하게 된다는 취지에서 선물해주신 것 같아요. 연기를 떠나서 내면을 보는 작업을 하는 것이 삶에도 도움이 될 테고요.
명상을 해본 적 있나요?
예전에 몇 번 시도해본 적 있는데 사실 저는 좀 졸리더라고요(웃음). 가이드라인이 있는 오디오를 들으면서 하면 괜찮은데, 오디오 없이 명상에 어울리는 음악만 틀어놓고 숨을 고르다 보면 꼭 잠이 와요. 요즘에는 밤에도 잠을 잘 자요. 군 복무 전에는 약간 불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푹 자는 편이에요.
불안감이나 긴장감이 적은, 비교적 편안한 상태인가 봐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고민하고 생각할 것이 많을 때도 잠이 많은 것을 회복해주더라고요. 지금 지방에서 촬영 중인데 밤 촬영이 있는 날엔 가끔 자고 오기도 하거든요. 서울에서 불과 2시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도시하고는 주는 영감이 달라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별도 많이 보이고, 공기도 아주 좋아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어요.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는 어떤 작품인가요?
<세자가 사라졌다>라는 사극이에요. <보쌈-운명을 훔치다>를 썼던 두 작가님이 이번에도 ‘보쌈’을 모티브로 쓴 작품이죠.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군요. 세자 역할을 맡았는데요. 세자가 보쌈을 당하면서 벌어지는 일, 얽히고설킨 인연에 김진만 감독님의 위트와 꺾어주는 맛이 있는 연출이 더해져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사극만의 억양이나 톤이 굉장히 높은 벽처럼 느껴졌고 부담 돼서 회피하고 싶기도 했는데, 감독님이 정말 좋으셨고 글도 재미있어서 욕심이 났어요. 이 작품을 하기로 한 후에는 영어 공부를 할 때처럼 여러 사극을 보면서 ‘섀도잉’을 했어요. 대사 한 줄 한 줄을 똑같이 따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제 말투에 맞는 사극 톤이 자리 잡히더라고요.
2023년 방영한 드라마 <힙하게>를 재미있게 봤어요. <나의 해방일지>라는 히트작을 낸 김석윤 감독님이 <힙하게>의 김선우 역할에 수호를 캐스팅할 때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지만 정색할 때 나오는 냉소적인 느낌이나 신비함 등이 선우 역과 잘 어울렸다”는 이야기를 했죠. 저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배우로서 수호가 지닌 양면적인 느낌을 처음으로 본 것 같아요. 단정함과 서늘함, 실제의 수호 안에서는 어느 쪽 지분이 더 많나요?
많은 분들이 이야기해주시는 것처럼 단정함의 지분이 많긴 해요. 하지만 모든 사람은 의외성이 있잖아요. 제가 가진 서늘함에 대해서는 저 역시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 부분을 극대화해서 캐릭터를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호가 정색하고 서늘해지는 순간은 이를테면 언제일까요?
음, 배고플 때? (웃음) 사실 저녁에는 탄수화물을 안 먹고 하루 중 몇 시간은 단식 시간을 가지는 식단을 루틴처럼 지키고 있어서, 밥시간을 놓쳐서 밤늦게 무언가를 먹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예민해져요. 어렵게 잡은 생활의 규칙이 흐트러지는 거니까요.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냉정하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는 편이라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연기를 하거나 무대 위에 있을 때는 그런 자기 인식을 벗어나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 자기 객관화가 배우나 뮤지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사실 저는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든 뮤지션이든,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필요한 부분을 꺼내 쓸 수 있지 않을까요? 활동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고 자유롭게 풀어놓았을 때 의도하지 않은 모습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것에만 기대는 것은 제가 가진 가치관에 조금 어긋나는 거죠. 저는 예술이 한편으로는 기술이라고 여기거든요.
성실하게 쌓아 올리고 정교하게 빚어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에 정말 동의해요. 그 과정에 자기 인식이 도움이 되겠군요. 그렇다면 지극히 객관적으로 파악한 수호는 어떤 사람인가요? 당신이 가진 강점과 취약점은?
우선 제가 가진 강점은 인정을 잘한다는 것이에요. 타인의 말에 기꺼이 설득당하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음악 작업을 하며 제가 앨범 컨셉을 잡았는데, 회의에서 더 좋은 의견이 나올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 제 생각을 고집하기보다는 “정말 좋은데요” 하고 빠르게 납득하면서 바로 뒤엎고 유연하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취약점은 스스로 자꾸만 채찍질하는 습관이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을 잘 즐기지 못한다는 것. 어디까지 하고 어디에서부터 만족해야 하는지 기준선이 불분명하다 보니 팬들이 아니라면 성취감을 느끼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가끔은 너무 지칠 것도 같은데, 에너지가 떨어질 때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오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그래서 여행을 가는 것 같아요. 여행 그 자체보다는 여행 가서 휴대폰을 잘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한동안 SNS나 뉴스를 접하지 않으며 자극을 줄이다 보면 회복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리고 제 MBTI가 ENFJ여서인지(웃음), 만남과 대화도 중요해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어요. 그래서 여행을 혼자 가기보다는 친구들이랑 같이 가는 편이에요. 대학교 때 친구들도 벌써 10년 차가 되었으니, 이제는 오래된 친구들이 많아요.
제대 후에는 배우로서 작품도 많이 하고 있는데, 앞으로 음악과 연기,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작업을 해나갈 건가요? 음악과 연기에서 얻는 고양감은 각각 어떻게 다른가요?
2023년 엑소 앨범이 나왔고, 2024년에는 솔로 앨범과 단독 공연 계획도 있고, 배우로서 작품도 연이어 하고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음악과 연기의 밸런스를 잘 잡아가고 있어요. 50 대 50 정도로 균등하게 가져가고 싶어요. 두 가지 활동에서 오는 행복감이 너무 달라서요. 일단 가수로서는 무대에서 바로 받는 피드백과 팬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반면에 배우는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살아보는 즐거움이 있죠.
2022년에 나온 솔로 앨범 <그레이 수트>의 테마는 ‘시간’이었어요. 당시 군 복무 시절에 경험한 시간의 흐름과 <모모>라는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죠. 2024년에 나올 세 번째 솔로 앨범의 테마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이번 앨범의 테마는 ‘우주 속의 나’라고 할 수 있어요. 엑소 멤버 경수가 출연한 영화 <더 문>의 서사에 영향을 받았어요. 우주 속의 나는 물론 먼지 같은 존재지만, 살아가야 할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삶의 의미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살아가는 이유라고 할 수도 있겠죠. 저는 해보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게 아직 너무 많으니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2024년에, 그리고 조금 더 멀리 내다본 미래에 수호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 말로 옮기면 엄청난 건 아니에요. 2024년에는 드라마 작품 속에서 연기를 잘해내고 싶고, 단독 콘서트를 통해 팬들을 만나고 싶은 것.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려보자면 계속 보여줄 것이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가식이 적고 숨기는 게 없는 사람인데, 아티스트로서는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의외성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2023년은 수호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 것 같나요?
여느 때와 같은 해. 힘든 일도 있었지만 늘 하던 대로 열심히 연기하고 노래해서 팬들을 만난 해. 특별한 게 없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사실 제게는 매해가 특별하거든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특별하게 기억할 해죠. 김지선 프리랜스 에디터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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