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만난 ‘우리’의 한식

2023.12.25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만난 ‘우리’의 한식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이 쪽빛으로 물든 이유. 그리운 손맛으로 가슴을 애태우는 조희숙, 조은희, 박성배, 강민구, 이은지 셰프가 한자리에 모였다. 루이 비통의 네 번째 팝업 레스토랑 ‘우리 루이 비통’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환대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루이 비통의 네 번째 팝업 레스토랑 ‘우리 루이 비통’을 이끄는 다섯 명의 헤드 셰프. (왼쪽부터)조은희, 강민구, 조희숙, 박성배 그리고 이은지. 장인 정신의 힘을 믿는 루이 비통과 함께 최고의 시너지를 내겠다는 포부를 담아 순우리말 ‘우리’를 이름으로 내걸었다.

“한식의 지평을 넓힌 국내 최정상 셰프들과 함께하는 루이 비통의 네 번째 팝업 레스토랑 ‘우리 루이 비통(Woori Louis Vuitton)’에 초대합니다.” ‘우리 루이 비통’ 레스토랑이 손님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 담백한 글귀가 담긴 초대장이 도착했다(11월 17일 정식 오픈한 우리 루이 비통은 루이 비통 메종 서울 4층에서 만날 수 있다). 메인 셰프는 ‘한식공간’의 조희숙, ‘온지음’의 조은희와 박성배, ‘밍글스’의 강민구, ‘리제’의 이은지. 한식의 예술화를 이끈 셰프들과 장인 정신의 힘을 믿는 루이 비통이 최고의 시너지를 내겠다는 포부를 담아 협업을 뜻하는 순우리말 ‘우리’라는 이름이 낙점됐다.

우리 루이 비통은 피에르 상 보이에, 알랭 파사르, 이코이의 제레미 찬에 이어 루이 비통에서 네 번째로 선보인 팝업 레스토랑이다. 그간 선보인 메뉴에서 한국적 터치가 어슴푸레 엿보이긴 했지만 한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처음 있는 일. 심지어 무려 다섯 명의 셰프가 손을 맞잡았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느꼈죠.” 오픈 하루 전, 막바지 준비로 여념 없는 다섯 셰프를 마주했을 때 이번 만남의 대들보 역할을 맡은 조희숙 셰프가 입을 열었다. “평소 루이 비통 같은 거대한 글로벌 브랜드가 주로 외국 셰프들과 협업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할 수 있는데’라고 헤아리던 차였거든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셰프에겐 더할 나위 없이 바쁜 시즌이지만 ‘이름만 내걸고 시스템적으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며 부지런히 움직였어요.” 다른 셰프들은 그런 조희숙 셰프 덕분에 협업이 가능했다고 입을 모았다. 1983년 세종호텔 주방에서 시작해 궁중, 사찰, 반가, 향토 등에서 겨우 전승되는 한식의 명맥을 잇는 한식공간에 이르기까지, 조희숙은 40년 넘게 한식 파인다이닝을 이끈 큰어머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강민구 셰프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들뜬 어투로 이야기했다. “셰프님이 처음 요리를 시작하신 해에 제가 태어났어요. 제가 살아온 만큼 한식을 다뤄온 분이시죠.” 조은희 셰프와 함께 온지음을 이끄는 박성배 셰프가 거들었다. 말투와 눈빛에서 침착한 성정이 묻어났다. “신라호텔에서 일할 때 저 역시 교수님 밑에서 요리를 했으니 저에게도 어머니 같은 분이세요.”

그런 조희숙 셰프는 ‘뉴 키드’ 이은지 셰프를 우리 루이 비통의 히든카드로 소개했다. 2022년 뉴욕에 자신의 페이스트리 부티크 리제를 선보인 이은지는 ‘우엉 아이스크림’ ‘볶음 메밀 캐러멜’ ‘옥수수 케이크’ 등으로 뉴욕에 한국 디저트 신드롬을 일으킨 주인공. 그의 시그니처 메뉴 ‘유자 약과’는 우리 루이 비통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해외에서 잘 성장한 한국인 셰프가 함께하게 된 것도 참 특별하죠. 이은지표 디저트를 전면적으로 만날 수 있는 이번 기회가 한국 사람에게도 무척 소중하게 느껴질 겁니다.”(조희숙)

조은희, 박성배, 강민구는 든든한 가교 같은 존재다. 조은희와 박성배가 함께 이끄는 온지음은 레스토랑을 넘어 한국 전통문화의 의식주를 연구하는 세 개의 공방을 아우르는 한식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 조은희 셰프가 인자한 눈웃음을 지으며 대화에 합류했다. “박성배 셰프는 요즘 술도 많이 빚고요. 저는 김치가 너무 좋아서 김치를 더 깊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대부터 궁중 음식을 만들어왔는데 어느 순간 전통문화를 지킬 수 있는 분들이 너무 빠르게 사라지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우리 루이 비통 같은 기회가 정말 소중하게 다가왔죠.” 콜라보레이션 전문가인 강민구 셰프는 이번 만남을 기름칠한 듯 매끄럽게 조율했다. 코펜하겐 108, 파리의 아스트랑스, 스페인 이니그마, 런던의 이코이 등 다양한 국적과 개성을 지닌 레스토랑과 활발히 협업하며 쌓은 내공이었다. “그런데 한식 셰프님과의 협업은 딱 두 번뿐이었어요. 조희숙 셰프님과 온지음이었죠. 협업을 결정할 땐 딱 두 가지를 고민합니다. 식문화에 대한 상대의 철학에 공감하는지, 어떤 새로운 배움이 있는지를 보죠. 그런 다음엔 열정적으로 시너지를 주고받고요.”(강민구)

최정예 멤버가 결성되자 열렬한 의사소통이 시작됐다. 한국, 뉴욕, 홍콩, 파리…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와중에도 전화와 카카오톡, 줌 콜이 시시각각 이어지며 한 달 반 동안 치열한 논의가 오갔다. 한식공간의 감태 다식, 온지음의 곶감 치즈, 밍글스의 송로버섯 닭꼬치 등으로 조화롭게 구성한 ‘우리 한 입 거리’로 시작해 미니어처 같은 밤다식, 만두과, 고추장 마카롱, 유자 약과로 이루어진 ‘우리 다과’로 마무리되는 런치와 디너 코스는 그렇게 탄생한 것. “나눠 먹는 건 한식 문화잖아요. 프랑스의 파인다이닝 문화는 전부 개별 플레이트로 구성되죠. 우리 루이 비통에서 이 문화만큼은 꼭 사수해달라고 우리가 본사에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했습니다.”(강민구)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혼자 먹으면 왠지 맛이 없잖아요. 다 같이 먹고, 다 같이 행복한 것. 그런 ‘여민동락’을 꿈꿨습니다.”(박성배)

한지의 질감을 표현한 천장 장식이 춤추듯 일렁이는 가운데 조선 시대 어선 경연에 임한 임금의 마음으로 차분하게 음식을 맛봤다. 의자 시트와 바닥이 온통 쪽빛으로 물들었기 때문인지 선상에서 만찬을 즐기는 기분이었다. 바다의 향기를 품은 잣죽과 전병, 제철 생선을 넣어 정성스럽게 빚은 어만두와 떡갈비찜이 주르르 이어 나왔다. 더덕, 도라지, 무 등 하얗고 부드러운 흰 뿌리 채소로 만든 담백한 백화반 한 상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좋은 음식을 찾다 보면 결국 건강한 음식에 이르게 돼요. 한식이 맛있다는 건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요. 그다음 우리가 홍보해야 할 것은 한식이 죽을 때까지 누려도 좋은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점이죠.”(조은희) 박성배 셰프 역시 같은 생각이다. “해외에서 불닭볶음면이 유행이라지만 결국 계속 생각나고 먹고 싶은 것은 곰탕이거든요. 아름다움과 맛의 기준이 다 다를 것 같지만 종국에는 비슷해요. 자연적인 아름다움, 자연을 닮은 맛을 으뜸으로 치죠.”(박성배) ‘대미필담’. 박성배 셰프는 한식의 정체성을 이 네 자로 압축했다. “정말 좋은 맛이란 담백한 맛이다. 첫맛에 맛있는 맛은 결국은 싫증 나기 쉽다는 뜻입니다. 한식은 그런 맛이에요. 더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약간은 흘려서, 더 자연스럽게, 손맛을 살려 일구는 그 수수한 아름다움을 더 널리 알리고 전승하고 싶어요.”(박성배)

구석구석 정성 어린 손길로 가득하다. 루이 비통의 트렁크를 쌓아 형상화한 다보탑 구조물과 정갈한 도자 식기, 꽃살문 문양과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 플라워 패턴이 어우러진 메뉴판과 냅킨 홀더에서 한식이 더 오래, 더 널리 사랑받길 바라는 다섯 셰프의 다짐과 결의가 묻어난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 충만한 연말연시를 맞이한 이은지 셰프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프랑스에서 자라며 오히려 애국심이 강해졌어요. 요리를 시작한 후엔 지금 여기 모인 셰프님들이 저의 자부심이었죠. ‘우리’라는 말에는 코리안 헤리티지가 깃들어 있어요. 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되고, 함께 행복하고 싶은 마음 말이에요.” 막내의 말에 박성배 셰프가 든든한 호응을 더한다. “그게 우리 루이 비통의 핵심인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모였다는 것.”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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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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