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향수, 그 존재의 이유
향수만큼 ‘초고가’라는 장벽이 낮은 장르도 없다. 후각을 넘어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하이엔드 향의 다원적 세계.
향수는 비쌀수록 잘 팔린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반도의 향수 시장은 2025년 1조원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예견된다. 40만~50만원을 호가하는 니치 향수는 기본, 100만원에 육박하는 하이엔드 향수의 존재도 이제 더는 낯설지 않다. 더 새롭고, 더 남다른 향수를 좇는 우리의 심리를 다루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회자된다. 이쯤에서 <보그>는 하이엔드 향수가 추구하는, 향에 대한 ‘남다른’ 접근 방식을 따져볼 시점이라 여겼다.
향수가 탄생하는 시작점은 저마다 모두 다르다. 크리에이터의 상상 속 아름다운 청사진 한 장, 특정 원료를 향한 조향사의 찬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 또는 풍부한 유산을 지닌 브랜드에 대한 헌정의 의미 등등… 그 추상적인 첫 아이디어를 향기로 본격적으로 펼치는 단계에서부터 차별화는 시작된다. 컨셉을 확장하고 명확히 전개해나가는 데 기울이는 인력과 노력, 그 컨셉을 후각적으로 재해석하는 창의성, 진귀한 향료를 선정하고 조달하며 하나의 건축물처럼 섬세하게 쌓아나가는 조향사의 기술. 과정마다 값어치를 매길 수 없지만 향수 한 병을 예술품처럼 여기는 세심함은 향의 품위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리고 니치 향수 시장의 성장으로 향에 대한 의식 수준과 코의 품격이 더없이 높아진 소비자는 그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
디올 하우스의 향수에 대한 철학을 고스란히 담은 하이엔드 향수 라인 ‘라 콜렉시옹 프리베 크리스챤 디올’. 2024년 1월, 세련되고 절제된 미학이 엿보이는 보틀에 담긴 새로운 향을 공개한다. 이름하여 ‘뉴 룩 오 드 퍼퓸’. 메종을 대표하는 고유명사의 이름을 딴 것에서 느껴지듯 이번 향의 모티브가 된 것은 바로 디올의 유산 그 자체다.
세계대전으로부터 겨우 2년이 지나 암울한 그림자가 짙었던 1947년, 크리스챤 디올이 창조한 좁은 허리 라인에 골반을 강조한 유연하면서도 구조적인 실루엣은 패션계에 커다란 혁명을 일으켰다. 건축적 특성, 여성의 몸에 꼭 맞는 유려한 곡선을 강조한 패션은 암흑기에 던지는 ‘해방’과 동일한 신호탄이었다. 실험적 시도, 자유, 아름다움의 동의어와도 같은 ‘뉴 룩’이라는 혁신적 키워드는 단순히 한 실루엣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지금까지도 디올을 지탱하는 본질이다. 여기에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생산한 울의 독특한 무늬 하운즈투스 체크를 사용한 전에 없는 시도에 당시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다. ‘투알 드 주이’ ‘피오니 레드’ ‘까나쥬 패턴’과 플라워 등 디올이 사랑하는 다양한 디자인 코드 가운데서도 하운즈투스 체크는 그야말로 혁신의 아이콘이다.
첫 꾸뛰르 컬렉션을 선보인 해, 무슈 디올의 창의적 열망에 힘입어 디올의 첫 향수 역시 탄생하며 패션과 향수 사이의 긴밀한 상관관계가 구축됐다. 그리고 1월 공개될 새로운 향은 이 풍부한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동시에 도전 정신을 반영한 창작물이다. 그 의미 깊은 스토리텔링에 향긋한 재해석을 더해 현대적인 향수를 창조한 것은 바로 디올의 퍼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란시스 커정이다.
“디올 꾸뛰르는 아방가르드함, 활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곡선과 관능미를 강조하면서도 몸을 자유롭게 하는 커팅과 아름다운 패브릭의 조화를 선보였죠. 산뜻하고, 풍성하고, 감각적인 원료를 결합해 새로운 관능미를 표현하는 향을 완성했습니다.” 프란시스 커정의 말처럼 ‘뉴 룩 오 드 퍼퓸’은 한마디로 ‘대담함’ ‘과감함’으로 대변되는 향이다. 핵심 노트는 바로 앰버. 농후하며, 따뜻하고, 편안한 향취가 특징인 이 원료는 조향사의 코끝에서 전혀 색다른 향기로 변신해 예측 불허의 반전을 안겨준다. “처음 맡아보는 향인데?” 향기를 처음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뉴 룩만의 아방가르드한 실루엣. 프란시스 커정은 그 영감을 눈에 보이지 않는 후각으로 재현하기 위해 섬세하게 원료를 레이어드했다. 향기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톱 노트의 알데히드와 베이스 노트에 배치한 앰버 어코드의 대조다. 산뜻하고 시원한 첫 향은 미들 노트의 프랑킨센스 에센셜 오일과 만나 강렬한 조화로 우리를 놀라게 하며, 이내 깊고 나른한 잔향으로 이어진다. 개성 넘치는 향의 변주는 매우 유연하다. 특별하지만 요란하거나 과시적이지 않고, 옷감이나 피부에 부드럽게 입힐 수 있는 향기로 우아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많은 사람이 작은 패키지에 담은 향수를 발견하는 데 얼마나 큰 관심과 고민이 필요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1957년 무슈 디올은 새로운 향수를 탐색하는 과정이 매우 높은 몰입도를 요구하는 작업임을 이야기했다. 향과 패션에 대한 그의 열정, 시대를 아우르고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는 시간을 초월해 마침내 오늘날 우리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 시절과 달리 향에 대한 이해가 깊은 현세대는 분사하는 순간의 향기뿐 아니라 한 병이 품고 있는 서사까지 모두 수용할 줄 안다. ‘하이엔드’라는 의미가 진정 빛나는 순간은 바로 그렇게 공감하는 지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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