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죽음의 바다’, 당신의 이순신은 누구입니까?
*이 글에는 <노량: 죽음의 바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거 호러 영화 아니야?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이순신의 꿈을 보는 순간, 잠깐 생각했다. 영화 속 이순신은 꿈에서 왜군의 칼에 쓰러지는 아들 이면을 본다. 그런데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갑자기 나타난 좀비처럼 생긴 왜군들이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그를 붙잡기 때문이다. 호러 영화 또는 좀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부분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과 비교할 때도 가장 이질적인 장면이다. <명량>에도 이순신이 꿈을 꾸는 장면은 나온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이순신의 감정은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전우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이순신의 꿈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악몽이다. 죽은 아들에 대한 슬픔, 그런 아들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던 아픔. 그 모든 감정이 더해진 두려움. 이런 감정은 영화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이순신을 갖고 있을 것이다.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동상의 이순신,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통해 만난 이순신. 그런가 하면 누군가에게 이순신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일 것이고, 나이가 꽤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선왕조 오백년-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배우 故 김무생일 것이다. ‘이순신 3부작’을 기획하고 연출한 김한민 감독에게 이순신은 누구였을까? 그는 3부작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각각의 해전이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곧 ‘각각의 해전에서 이순신이 보여주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뜻일 것이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을 하나의 앵글로만 담을 수 없는 인물로 생각한 듯 보인다. <명량>의 이순신은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되는 방법을 찾아내는 집념을 보여준다. <한산: 용의 출현>은 그가 지닌 전략가로서의 모습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노량: 죽음의 바다>가 보여주는 이순신은 누구일까? 표면적으로 볼 때 영화 속 이순신은 모두가 끝났다고 말하는 전쟁에서 끝까지 싸우는 결기의 인물이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여기에 더해 이순신의 감정을 상상하려고 애쓴다. 모두가 끝났다고 하는 전쟁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단지 우국충정(憂國衷情) 때문이었을까? 한국인에게 깊이 박힌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그랬을 것이다. 이순신은 ‘사사로운 감정’을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사사로운 감정을 상상해보는 건, <노량: 죽음의 바다>에 또 다른 영화적 미션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영화는 아들 이면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드러낸다.
정재영이 연기하는 진린은 이순신에게 “전쟁을 계속하려는 이유가 왜군에게 죽은 아들에 대한 복수 때문이냐”고 묻는다. 이 말을 들은 이순신의 리액션을 연기하는 김윤석은 ‘끝까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보여준다. 이 장면의 이순신은 확신을 가진 군인이 아니라,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아버지로 보인다. 진린은 이순신이 처음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됐을 때의 상황을 회상하고, 심지어 이순신의 아들을 죽인 왜군을 잡아 그에게 데려가기까지 하는데, 여기서도 김한민 감독과 김윤석은 ‘감정’의 여지를 남겨놓는 연출을 선택한 듯 보인다. 영화 속 이순신은 포로의 얼굴을 보며 꿈속에서 보았던 왜군의 얼굴을 떠올린다. 영화적으로는 두 사람이 같은 얼굴인 것으로 연출되어 있지만, 꿈이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부모로서 가진 감각과 감정을 그렇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결국 이순신은 진린이 잡아온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이순신의 선택을 그들이 이면을 죽였다는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들에 대한 복수를 끝내는 것으로 이 전쟁을 끝낼 수는 없기 때문인 것처럼 연출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출이 영화 속 이순신의 캐릭터를 더 다층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앵글로 담을 수 없는 인물’이란 맥락이 또 한 번 확장된 셈이다. 그렇게 영화는 이미 신격화될 대로 된 민족의 성웅에게 조금 더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물론 한국 관객은 영화가 그렇게 보여준다고 해도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전쟁에 임했을 거라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또 오히려 이 영화는 이순신의 감정을 더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려 좀비를 등장시킬 정도로 말이다. 덕분에 <노량: 죽음의 바다>의 이순신은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칼의 노래>의 이순신, 김명민의 이순신과 함께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당신의 이순신은 이제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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