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나날, 2015 F/W 꾸뛰르
2015 F/W 꾸뛰르 기간처럼 이런저런 행사가 다채롭게 열린 적이 또 있었나? 꾸뛰르 주간이 맞춤 드레스 공개 현장에서 탈피, 금쪽같은 패션 홍보 주간으로서의 임무를 멋지게 성사시켰다.
<보그> 같은 패션지들이 아무리 교육하고 계몽한들 패션 초보자들에게 ‘오뜨 꾸뛰르’라는 프랑스 단어는 영 거리감이 느껴질 것이다. 지상 어딘가에 기거하는 상류 0.1%들이나 누리는 패션 양식으로 여겨질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꾸뛰르 주간에 무대에 오르는 옷은 유럽 왕실이나 중동 석유 재벌, 요새는 러시아와 아시아 부유층 여인들이나 맞춰 입을 수 있으니 말이다. 패션 전문가들에게도 1년에 두 번씩 파리에서 열리는 꾸뛰르 주간은 프레타 포르테, 다시 말해 기성복 패션 위크에 비해 일정도 ‘널널’한 데다, 동시대 분위기와 거리가 멀어 어딘지 모르게 박제된 드레스 판타지로 여겨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 오뜨 꾸뛰르 기간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이번 꾸뛰르 주간의 생동감 넘치는 시작은 파리 메종의 몫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미우미우였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1년 전부터 세컨드 브랜드의 크루즈 컬렉션을 7월 꾸뛰르 위크에 맞춰 공개하고 있다(2009년 7월 초 뉴욕 57번가에 매장을 오픈하며 현지에서 리조트 미니 쇼를 선보였다). 7월 꾸뛰르 기간에 전 세계 기자와 바이어들이 패션 수도로 몰리는 데 맞춰 리조트 쇼를 열기로 한 것. 그렇다면 이번 꾸뛰르 주간에 미우미우의 존재가 더 의미심장했던 이유? 미우미우 첫 향수 론칭 쇼를 겸한 데다, 컬렉션 주제와 쇼장을 ‘미우미우 클럽’으로 연출해 화끈한 재미를 줬기 때문. 심지어 패션 귀빈 중의 귀빈 케이트 모스는 물론 전 세계 패션 유명인사들이 죄다 ‘미우미우 클럽’에 입장할 정도(파리에서 제일가는 클럽광들까지!). 이들이 클럽풍으로 연출된 스탠딩 쇼도 구경하고 새 향수 냄새도 진동했으니 늘 고상하기만하던 꾸뛰르 주간의 시작이 오죽 뻑적지근했을까.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이태리 모피하우스 역사상 최초의 꾸뛰르 쇼로 이어졌다(펜디 하우스는 전 세계 기자들을 비롯한 패션 피플들에게 이번 꾸뛰르 주간에 거창한 쇼가 열릴 거라고 귀띔했다). 세계 최고의 모피상 펜디가 칼 라거펠트와 이어온 50년간의 협업을 자축하고자 파리 샹젤리제 극장(패션쇼를 위해 공간을 내준 건 처음)에서 초호화판 모피 꾸뛰르 패션쇼를 열었다. 펜디 오뜨 꾸뛰르 쇼가 아닌, 이름하여 ‘오뜨 푸뤼르(Haute Fourrure)’ 쇼! 수지 멘키스의 ‘보그닷컴’ 리포트에 따르면 이 중차대한 쇼 풍경은 이렇다. “기자들이 1층 객석에 앉는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많은 고객들은 2층 드레스 서클로 안내됐다. 또 모피 반대 시위를 고려해 극장 주변은 경호원들이 에워쌌다.” 극도로 예술적인 하이엔드 모피 쇼를 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이번 꾸뛰르 주간 중에 열린 셈(다음 시즌은? 1년에 한 번 장소를 바꿔가며 오뜨 푸뤼르 쇼를 열 수도 있다고 펜디 측은 귀띔했다).
시작을 미우미우가 향긋하게 열고 펜디가 모피 휘날리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이번 꾸뛰르 주간을 각별하게 만든 건 또 있다. 붉은 드레스를 휘날리던 발렌티노가 ‘꾸뛰르 호’에 관객들을 태워 로마로 날아간 것. 새 매장 오픈도 기념할 겸,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엘파올로 피촐리 디자인 듀오는 관객들을 로마로 초대해 해 질 녘 스페인 계단 근처 미냐넬리 광장에서 꾸뛰르 쇼를 발표했다(아울러 로마 시내 10군데의 보석 같은 장소에서 의상을 전시했다). 현지에서 이를 관람한 패션 에디터들은 이렇게 자문자답했다.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치고 몇몇은 눈물을 훔칠 정도로 감동적인 이유? 쿠키 커터로 찍어내듯 비슷비슷한 패션계에서 모든 게 최저가를 향하는 지금, 발렌티노는 꾸뛰르가 자랑스럽게 자리할 저 높은 곳까지 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번 꾸뛰르 위크엔 몇몇 기념비적인 순간이 포함돼 소중한 기억을 패션 역사에 남겼다. 물론 장 폴 고티에와 빅터앤롤프 같은 선후배 앙팡테리블이 기성복을 접고 꾸뛰르에 집중했기에 이번 시즌이 더 견고하게 보인 것도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이어 밀라노에서 파리 꾸뛰르의 심장부로 건너온 알베르타 페레티가 있기에 보다 다채로웠다. 밀라노의 아줌마 브랜드로 전락할까 말까 아슬아슬했던 페레티는 ‘알베르타 페레티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꾸뛰르 프레젠테이션을 처음 공개했다. “제 고객들은 아주 소중하고 개성 있는 이브닝 의상을 원하는 동시에 기성복처럼 소박하고 일상적인 옷도 원해요.” 얼마 전 그녀는 자신의 파리 매장이 있는 생토노레의 19세기 저택 1층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이곳을 복원하던 중 아름다운 실내에서 영감을 얻어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지칭한 데미 꾸뛰르 컬렉션을 완성한 것.
그런가 하면 스키아파렐리는 마르코 자니니를 떠나보내고 베르트랑 기용과 인연을 맺은뒤 데뷔탕트를 마쳤다. 그리고 기용은 이번 꾸뛰르 주간의 젊은 피로서 제 역할을 해냈다. 또 2010년 봄 시즌 이후 꾸뛰르 런웨이 쇼를 중단했던 지방시는 꾸뛰르 위크 직전에 열린 파리 남성복 위크 때 11벌의 꾸뛰르 의상을 남성복 사이에 끼워 넣어 쇼를 발표했다. 그런 뒤 이번에 소수 정예의 꾸뛰르 프레젠테이션을 마련해 꾸뛰르 하우스로서 체면을 지켰다. 한편 7월 꾸뛰르 주간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다가올 크루즈 컬렉션을 내놓는 시기. 셀린은 이번에도 꾸뛰르 주간에 기자와 바이어들을 불러 폐쇄적인 방식의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다(다른 브랜드들이 즉시즉시 최신 컬렉션 사진을 온라인에 터뜨리는 것과 달리, 셀린은 본사 지침이 있을 때까지 철저히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빛의 도시 파리가 다소 들떠 있다. 그건 패션의 가치를 높이려는 꾸뛰리에들의 창작 열기 덕분이지만, 7월 4일부터 9일까지 채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펼쳐진 이런저런 패션 판타지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때론 현실과 거리가 멀고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는 데다 새로운 경향을 발굴할 일도 드물던 꾸뛰르 위크가 보시다시피 금쪽같은 홍보 주간으로 바뀌고 있다. 흥미롭고 특별한 행사가 줄줄이 예약된 ‘꾸뛰르 스케줄’이 된 것. 아주 영리한 패션 전략이 만들어낸 빛나는 패션의 나날 아닌가.
- 에디터
- 신광호
- 포토 크레딧
- GETTY IMAGES/ MULTIB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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