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턴 스타일을 재정의하다, 루이 비통 2024 F/W 남성복 컬렉션
패션 월드의 위대한 쇼맨, 퍼렐 윌리엄스. 지난 6월에는 퐁네프를, 11월에는 홍콩을 상징하는 빅토리아 항구를 찾았던 그가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루이 비통의 2024 F/W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일 장소로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을 선택했죠. 여행에 뿌리를 둔 하우스를 맡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본능이었을까요? 비록 몸은 파리에 있었지만, 퍼렐의 마음은 고향을 향했습니다.
사카이의 2024 S/S 컬렉션에 캐나디안 턱시도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퍼렐을 봤을 때 알아채야 했습니다. 그가 웨스턴 스타일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런웨이에 오른 모델들은 플레어 데님에 부츠를 신고, 스터드가 박힌 샴브레이 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허리춤에는 올가미를 연상시키는 키 체인이 달려 있었고요.
스타일링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퍼렐이 컬렉션을 위해 카우보이의 복장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말을 타고 돌아다니던 그들은 늘 톱을 팬츠 안에, 팬츠 밑단을 부츠에 집어넣었는데요.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피하고,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증을 따르려는 듯 대부분의 모델 역시 셔츠와 슬림 진 밑단을 팬츠와 부츠에 욱여넣은 채 런웨이를 걸었죠.
쇼 직후 퍼렐은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들이 자신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흑인과 북미 원주민 카우보이 역시 여럿 존재했다고 말했죠. 지금도 편협한 시선으로 백인 카우보이만 그려내는 미디어에 던지는 메시지였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듯 퍼렐은 웨스턴 스타일이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버질 아블로 이후 루이 비통 하우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스트리트 웨어였죠. 흑인 문화에 뿌리를 둔 바로 그것입니다.
스케이터들이 즐겨 입는 더블 니 팬츠가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이 가장 확실한 근거입니다. 대부분의 더블 니 팬츠는 금속 리벳을 활용해 허벅지부터 종아리 부분까지 천을 덧댄 것이 특징인데요. 퍼렐은 금속 리벳 대신 웨스턴 스타일의 주얼리에 자주 활용되는 터키석을 선택했습니다. 레이스 셔츠와 자수가 놓인 데님 재킷을 매치한 스타일링에서는 영락없는 웨스턴 무드가 느껴졌고요.
칼하트가 떠오르는 초어 재킷을 선보일 때도 리벳은 터키석이었습니다. 워크 웨어와 웨스턴 스타일이 절묘하게 결합되는 순간이었죠.
쇼가 있기 며칠 전부터 루이 비통과 동부 힙합을 상징하는 팀버랜드의 협업 소식이 인스타그램을 뜨겁게 달궜죠. 컬렉션에서 주목할 스트리트 아이템은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중반부에는 후디나 트랙 수트를 입은 모델이 등장하기도 했죠. 이런 아이템을 ‘웨스턴풍으로’ 풀어낸 퍼렐만의 비법은 액세서리였습니다. 서부 시대의 무법자와 어울릴 법한 볼로 타이와 스틸 토 부츠를 매치하며 컬렉션의 테마에 집중했죠.
하지만 컬렉션에서 가장 탐난 것은 아메리칸 스타일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빅 버클 벨트입니다. 와이드 데님부터 정갈한 화이트 수트 팬츠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팬츠에 벨트를 매치했죠. 웨스턴 룩은 물론 코트나 블레이저 위에 두르며 재미를 주기에도 좋아 보였습니다. 퍼렐의 주도 아래 웨스턴 스타일의 전성기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요? 어떻게 바뀌어나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사진
- Getty Images,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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