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가가의 스타일리스트, 니콜라 포미체티가 말하는 디지털 패션의 미래
레이디 가가에게 생소고기로 만든 드레스를 입힌 스타일리스트 니콜라 포미체티. 그가 디지털 패션 플랫폼 사이키(Syky)에 아티스틱 디렉터로 합류했다.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가장 아방가르드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불리던 그의 1차 목표는 많은 업계 동료를 스카우트하는 것이다.
포미체티는 사이키가 럭셔리 하우스와 함께 파트너십을 맺도록 돕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며 오프라인 행사 역시 관장하고 있다. 패션이 신기술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일종의 앰배서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많은 이들이 메타버스에 의구심을 갖는 요즘 같은 때, 포미체티처럼 얼굴이 잘 알려진 이가 나서는 데는 큰 의미가 있다.
“사이키는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처럼 돌아가죠. 그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자그마한 디테일에 집착하면서도, 반드시 테크적이어야 한다는 의무는 없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패션 하우스가 메타버스에 진출한 것 같아요.” 도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포미체티가 <보그 비즈니스>에 말했다.
포미체티는 항상 관습을 깨는 사람이었다. 커리어 초기에는 대중문화와 패션, 미디어 전반에 걸쳐 활동하며 자신만의 실험적인 태도를 관철했다. <데이즈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그는 2009년 레이디 가가의 크리에이티브 팀 ‘하우스 오브 가가’의 일원이 되었다. 그 후 레이디 가가는 패션 아이콘이 됐고, 포미체티는 유니클로, 디젤, 뮈글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맡고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니코판다(Nicopanda)를 론칭했다.
버버리와 랄프 로렌 CDO 출신인 사이키의 설립자, 앨리스 델라헌트(Alice Delahunt)는 포미체티를 ‘모셔오기’ 위해 아티스틱 디렉터 자리를 비워뒀다고 말했다. “급하게 아티스틱 디렉터를 선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니콜라를 만난 뒤 모든 것이 명료해졌죠.” 델라헌트는 자신처럼 패션의 디지털화에 열정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말한다. 그녀는 패션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혁신적인 크리에이티브, 포미체티가 사이키를 ‘다음 단계’로 데려다줄 적임자라고 확신한다.
다양한 투자자로부터 140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은 사이키는 2022년 론칭과 함께 ‘키스톤’이라는 이름의 멤버십 NFT를 출시했다. 이후 사이키는 디지털 패션 브랜드 10개를 선정해, 그들에게 멘토링을 제공하고 금전적 지원 역시 아끼지 않고 있다. 포미체티는 각각의 브랜드에 엄청난 잠재력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그는 아직 ‘전통적인’ 패션계에 머물고 있는 친구들을 스카우트해 디지털 패션 커뮤니티의 크기를 확장해나갈 생각이다.
팬데믹 이래 디지털 패션, 메타버스 그리고 웹3를 향한 시선은 계속 바뀌어왔다. 이들의 전성기는 2021년이었다. 페이스북이 이름을 메타로 바꿨고, 비플(Beeple)의 NFT 아트워크는 크리스티에서 800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고 이더리움은 연일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으니까. 당시 4,800달러였던 이더리움은 지금 반값이 되었고, 패션 브랜드가 NFT를 발행하는 일도 훨씬 드물어졌다. <보그 비즈니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패션 관련 신기술 중 가장 높은 주목도를 보인 것은 AI였고, 웹3와 NFT는 최하위권이었다.
드라우프(Draup)의 창립자이자 디지털 패션 인플루언서 다니엘라 로프터스(Daniella Loftus)는 신기술을 바라보는 패션계의 시선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녀는 2023년 이후 디지털 패션이라는 ‘트렌드’는 죽어버렸으며, 대신 이를 천천히 사업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델라헌트 또한 메타버스가 더 이상 트렌디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메타버스를 둘러싼 모든 ‘잡음’이 사라진 지금이 사이키를 키워나갈 적기라고 말한다. 빨리 확장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면서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 회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은 항상 변한다고 말하는 포미체티 역시 장기적으로는 사이키가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출시를 앞둔 ‘애플 비전 프로’를 예로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움직임을 거부하고 배척하죠. 패션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그런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결국 주류가 되는 움직임을 종종 봐왔습니다. 메타버스와 웹3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는 첫 번째 과제로 사용자 풀을 늘리는 것을 꼽았다. 많은 사람이 실체가 없고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하는 옷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한때는 포미체티 역시 그랬다. “관련 기술이 처음 등장할 때는 정말 흥분했죠. 물론 흥미를 잃은 시기도 있었습니다. 메타버스에서 예쁜 옷을 찾기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는 사이키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의미의 디지털 패션을 선보일 것이다. 디지털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고 현실에도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이 섞인 그런 패션 말이다.
포미체티는 오로지 ‘아름다움’에만 초점을 맞추며 사이키를 둘러싼 모든 회의적인 시선을 기대 어린 시선으로 바꾸고자 한다. 공상과학을 덜어내고 낭만주의를 더하면서. “요즘 제 주된 관심사는 미학입니다. 패션 피플이라면 결국 미학에 집착할 수밖에 없죠.” 포미체티는 최근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고 말한다. 디지털 패션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자존심 지키기에 급급하는 대신, 모두 함께 일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델라헌트는 패션의 미래가 꼭 어둡고 디스토피아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능력 있는 크리에이티브에게 올바른 도구를 쥐여준다면, 아름다우면서도 정말 의미 있는 미래가 탄생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델라헌트는 그 믿음을 현실화하기 위해 포미체티와 함께 첫걸음을 막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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