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라따뚜이의 부활
파리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라 투르 다르장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남들보다 예민한 후각과 미각을 가진 쥐 ‘레미’와 요리에 재능이 없는 ‘링귀니’, 그 둘이 함께 일하던 붉은색 커튼에 카펫이 깔린 고급 레스토랑 ‘구스토’를 기억하는지? 영화 <라따뚜이>에 나오는 ‘구스토’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 ‘라 투르 다르장(La Tour d’Argent)’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1582년에 문을 열어 4세기가 넘도록 파리 미식가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온 장소가 15개월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영화 속 붉은 커튼과 고풍스러운 패턴의 카펫 대신 신진 아티스트의 프레스코화와 반짝이는 천장 장식이 등장했다고 실망하진 말자. 대형 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센강과 노트르담 대성당, 생루이섬의 전경은 여전히 감동이니까.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 포크를 처음으로 사용한 곳, 프랑스 왕 앙리 4세, 존 F. 케네디, 찰리 채플린, 윈스턴 처칠 등이 다녀갔으며, 1933년부터 1996년까지 무려 63년 동안 3스타 미슐랭을 유지한 곳. (이후 2006년 1스타로 떨어진 이유는 너무 오래 같은 메뉴만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 와인 저장고에는 30만 병 이상의 와인이 보관되어 있고, 400페이지에 달하는 무려 8kg의 와인 리스트를 제공하는 곳. 이렇듯 라 투르 다르장을 설명하는 말은 매우 많다. 미식가들에게는 최고의 요리를 맛볼 수 있기에 특별한 장소겠지만 박물관 못지않은 역사를 지닌 덕에 시민들에게도 이곳의 리노베이션은 화젯거리였다.
1912년 테라유(Terrail) 가문이 레스토랑을 구입한 후 지금까지 라 투르 다르장은 가족 운영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재 운영을 맡고 있는 앙드레 테라유(André Terrail)는 가족이 이룬 유산의 일부를 잘 유지한 채 새롭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리뉴얼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파리의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 프랑클린 아지(Franklin Azzi)의 지휘 아래 건물 1층에는 아침 식사가 가능한 라운지와 식전주를 즐길 수 있는 리셉션 형태의 바 ‘바 데 마예 다르장(Bar des Mallets d’Argent)’을 만들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레스토랑에 도착하면 미래적인 느낌의 반짝이는 천장 아래 신진 아티스트 앙투안 카르본(Antoine Carbonne)이 상상한 파리의 모습을 담은 프레스코화,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개방형 주방을 갖춘 새로운 구성의 공간이 손님을 맞이한다.
손님들은 셰프 야닉 프랑크(Yannick Franques)와 그의 팀이 분주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오픈 키친을 통해 볼 수 있어 이런 변화를 매우 반기는 눈치다. 달라진 공간은 이뿐만이 아니다. 7층의 루프톱 바 ‘투아 드 라 투르(Toit de la Tour)’에서 오후 6시 30분부터 자정까지 샴페인이나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를 멋진 조경을 갖춰 개방했으며, 5층에는 놀랍게도 150㎡에 달하는 아파트를 특별한 고객을 위해 마련했다. 식당 입구가 아닌 전용 출입구로 입장이 가능한 VVIP용 숙박 시설은 파리다운 헤링본 쪽모이 세공 마룻바닥과 천장 몰딩을 갖췄지만 미니멀한 북유럽식 가구를 배치하고 사우나를 설치하는 등 핀란드 출신인 레스토랑 오너의 어머니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과 함께 프라이빗 주방에서 셰프 야닉 프랑크의 음식을 보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아파트 숙박 서비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 최고의 미식과 환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창조한 것이다.
라 투르 다르장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메뉴 ‘블러드 덕’은 사용되는 오리마다 번호를 매겼는데, 그 번호를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1만2,151번째, 믹 재거는 53만1,147번째 오리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2마리가 제공되는데 현재 제공받는 오리의 번호는 일곱 자릿수라고 한다. 셰프 야닉 프랑크는 미슐랭 별을 되찾기 위해 오래된 메뉴 외에도 모던한 요리를 추가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중이다. 유자와 훈제 우유를 곁들인 왕실 랑구스틴, 메밀을 곁들인 캐비아와 바삭한 튤 같은 새로운 메뉴는 현대적인 취향을 가진 안목 있는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중이다.
과거의 역사를 강조하기보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준비를 마친 라 투르 다르장의 리뉴얼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제작진으로부터 촬영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는 소문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라는 타이틀과 전 세계 미식가들에게 인정받는 실력으로만 승부하겠다는 믿음이 가는 처사다. 이렇게 우리에겐 파리 여행 중 라 투르 다르장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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