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킴 존스의 조용한 우주, 꾸뛰르적 미래

2024.02.19

킴 존스의 조용한 우주, 꾸뛰르적 미래

모든 것이 눈 뜨는 봄의 시작, 우리 모두의 결정적 순간.

쇼가 시작되기 전 펜디 쇼장에는 늘 은은하고 부드러운 피치빛이 감돈다. 때로는 좁고 긴 의자에 붙어 앉아 쇼를 기다리는 이들의 열기와 설렘으로 그 빛이 점점 짙어지는 것 같다. 복숭앗빛 아지랑이 사이로 짙은 버건디 컬러 드레스를 입은 젠데이아가 도착하자 곧 2024 S/S 시즌 펜디 꾸뛰르 쇼가 시작됐다. 오프닝 룩은 요즘 유행하는 조용한 럭셔리를 떠올렸다. 극도로 미니멀한 동시에 대담한 블랙 칼럼 드레스는 킴 존스가 이번 시즌 새롭게 선보인 ‘스카톨라(Scatola)’, 즉 상자라는 이름의 드레스로 기하학적인 반듯한 실루엣이 특징이다. 스카톨라 드레스는 클로징 룩으로 다시 한번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실버 뷰글(Bugle) 비즈로 표면을 촘촘히 장식해 미래주의적인 분위기를 강조했다. 총 39벌 중 단 두 벌이었지만 스카톨라 드레스는 이번 꾸뛰르 컬렉션의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컬렉션에서는 로맨틱하기보다 파격적인 분위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킴 존스의 설명이다. “라거펠트 시절을 떠올려보면 늘 ‘미래주의’ 요소가 있었죠. 그의 스타일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이어가려 합니다.” 미래주의라고 하면 흔히 우주복이나 꾸레주 스타일을 떠올리기 쉽지만, 존스는 추상적이고 영화적인 방식을 택했다. 드레스 표면을 촘촘하게 장식한 은빛 비즈와 크리스털은 빛나는 행성으로 가득한 은하계처럼 보였다.

PARIS, FRANCE – JANUARY 25: (EDITORIAL USE ONLY – For Non-Editorial use please seek approval from Fashion House) A model, bag detail, walks the runway during the Fendi Haute Couture Spring/Summer 2024 show as part of Paris Fashion Week on January 25, 2024 in Paris, France. (Photo by Peter White/Getty Images)
PARIS, FRANCE – JANUARY 25: A model walks the runway during the Fendi Haute Couture Spring/Summer 2024 fashion show as part of Paris Fashion Week on January 25, 2024 in Paris, France. (Photo by Victor Virgile/Gamma-Rapho via Getty Images)

그러데이션 시폰에 크리스털이 박힌 드레스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연상케 했고, 절제된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공존하는 힘 있는 의상은 SF 영화의 외계 왕족에게 어울릴 법했다. 곧 공개될 <듄: 파트 2>의 주인공 젠데이아가 쇼에 참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다소 우주적이라고 할 수 있죠.” 쇼를 시작하기 전 디자이너는 스타워즈의 팬임을 고백하며 덧붙였다. “집에 취미방이 있는데 포장을 뜯지 않은 채 보관 중인 스타워즈 장난감이 아직도 한가득이랍니다.” 아이웨어는 미래주의 테마를 좀 더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액세서리였다.

하우스의 주얼리 아티스틱 디렉터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가 디자인한 파인 아이웨어 ‘싱귤러 비전(Singular Vision)’은 각 모델의 얼굴을 스캔해 맞춤 제작한 것이다. 고글처럼 유선형을 그리며 얼굴을 감싸는 프레임이 페이스 주얼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화이트 골드 프레임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예상 판매가가 3만 유로대에 이른다. 실용성의 범주를 뛰어넘어 오브제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는 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페일 컬러 시폰이 드라마틱하게 휘날리는 ‘플래그(Flag)’ 드레스에 매치한 미니 바게트 백은 액세서리 및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새롭게 선보인 ‘펜디 젬 바게트(Fendi Gems Baguette)’ 백.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한 버클 장식이 보석처럼 화려하게 반짝인다. 의상 중에서는 값비싼 악어가죽을 유연하게 가공해 제작한 재킷과 코트가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악어가죽은 진짜지만, 모피처럼 보이는 의상은 트롱프뢰유 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실제 모피나 인조 모피를 사용하지 않고도 특유의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그 대안으로 자수를 시도했죠.” 아주 가느다란 실로 수를 놓고 물결 형태로 겹쳐 바느질한 결과, 모피나 깃털과 또 다른 오묘하고 독특한 텍스처가 탄생했다. 비즈를 가득 단 드레스와 스커트는 걸을 때마다 불규칙한 반짝임까지 더해져 신화 속 생명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 자수 기법은 텍스처가 입체적이고 풍성한 데 비해 무게가 매우 가벼워서 드레스나 펜슬 스커트에도 적용되었고 컬렉션에 혁신적인 인상을 더했다. 최근 레드 카펫 의상 제작 의뢰를 받은 킴 존스는 친구들과 배우,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컬렉션에 구현하기도 했다. 모두가 주목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레드 카펫을 밟는 순간의 두려운 감정을 고려한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도록 ‘셰이프 온 셰이프’ 드레스를 고안했다. 드레스 앞면에 실제 체형보다 날씬한 보디라인을 뷰글 비즈로 표현해 눈속임을 하는 것이 이 드레스의 목적이다. “일종의 착시 현상이죠. 레드 카펫에 서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려는 겁니다.”

북슬북슬한 실 다발, 반짝이는 비즈, 악어가죽 특유의 패턴 등 각 의상의 텍스처는 다채롭고 풍성하기 그지없었지만 재단 자체는 매우 간결하고 정제되어 있었다. 하우스 장인의 탁월한 기술력을 더 끌어올리고 조명하는 것 그리고 옷의 실용성을 지키는 것 모두 인간성에 대한 것이다. “야단스럽기만 한 꾸뛰르가 너무 많아요. 저는 실용적이고 조용한 꾸뛰르가 좋습니다. 펜디에서 사랑받는 의상도 바로 그런 룩이죠.”

사진
COURTESY OF FENDI, GETTYIMAGESKOREA
송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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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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