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뷰티의 색채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미묘함’. 브랜드의 시그니처 컬러인 활기찬 주홍빛, 핑크와 베이지 톤이 섬세하게 어우러진 장밋빛과 블루 톤을 머금은 강렬한 레드. 넓은 범위의 컬러는 그 텍스처에 따라 입술 위에 완전히 다른 빛깔로 표현된다. 2020년 출시된 ‘루즈 에르메스’는 부드러운 가죽 표면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10가지의 매트, 그리고 매끈한 광채를 연출하는 14가지의 새틴 텍스처로 분류되는 24가지 색을 보유한다. 하우스의 첫 부티크,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에 대한 헌사의 의미. 해외에 비해 한국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는 컬러는 핑크로, 특히 ’루즈 에르메스 새틴 #40 로즈 립스틱’과 ‘#19 로즈 브뤼에르’는 부동의 인기 컬러다. 에르메스의 정체성과도 같은 ‘루즈 에르메스 매트 #33 오랑쥬 브와뜨’는 동양인 피부 톤과 동떨어지는 노란 기가 많은 오렌지색. 국내 립스틱 시장에서는 실상 단종 위기의 비인기 색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가장 높은 ‘가성비’로 에르메스를 소유할 수 있는 제품이기에 패키지 디자인만으로 높은 수요를 자랑한다.
각진 블랙 케이스로 아티스트와 ‘코덕’들의 필수품이었던 ‘어데이셔스 립스틱’의 명성을 잇는 나스 ‘파워매트 립스틱’. 보드라운 표면을 가진 색색의 케이스는 슬림한 디자인으로 한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이 뛰어나다. 21가지 셰이드 가운데 톤 다운된 장밋빛의 ‘#112 아메리칸 우먼’ ‘#100 스윗 디스포지션’처럼 안색과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MLBB’ 계열 컬러의 선호도가 압도적이다. “피부 톤을 타지 않는 중간 채도나 누드 계열은 늘 인기가 많지만, 흥미로운 점은 최근 퍼스널 컬러를 진단받은 뒤 직접 입술 색을 테스트하러 오는 고객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우연히 자신과 어울리는 립 컬러를 발견하는 경우의 수가 늘었죠.” 나스 프로덕트 매니저 이서현 차장은 말한다. 그 결과 의외로 레드 브라운 계열의 ‘#105 노 새티스팩션’처럼 깊이 있는 어두운 색상을 찾는 마니아층 역시 꽤 두껍다는 사실.
‘갈색병’ ‘더블웨어 파운데이션’이라는 희대의 히트작으로 스킨케어와 베이스계의 왕으로 군림하는 에스티 로더의 또 다른 강자는 바로 ‘퓨어 컬러 립스틱’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그대로 쨍하고 강렬한 발색, 입술에 미끄러지는 질감의 출중함은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벨벳 텍스처의 매트와 부드럽게 발리는 크림, 촉촉한 광택이 돋보이는 러스터와 은은한 펄을 함유한 크리스탈까지 네 가지 텍스처의 본래 컬러 구성은 68가지. 이 가운데 붉은 기 없는 보랏빛의 모브 계열과 캐러멜, 브론즈, 브라운 컬러 등을 과감히 제외하고 국내에서는 30가지 색만 선보였다. “파격적인 시도를 하기보단 어떤 피부 톤과도 어우러지는 무난하고 웨어러블한 메이크업을 선호하는 대다수 고객층을 고려해 선별한 컬러입니다. 한국에선 몇 년째 말린 장미색이 유행인 점도 반영되었죠”라는 것이 에스티 로더 마케팅팀 이경재 과장의 설명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색상은? 차분한 핑크빛으로 에스티 로더의 우아하고 강인한 여성상을 대표하는 '#420 레벨리어스 로즈'.
한층 모던하고 매끄러운 골드 케이스를 입고 40개 컬러 스펙트럼으로 탄생한 입생로랑 뷰티 ‘루쥬 쀠르 꾸뛰르’. 국내에서 공개한 색상은 총 30가지다. 카카오 브라운, 트렌치 코트의 베이지색이나 어두운 플럼 등 한국인의 피부 톤과 만났을 때 창백하거나 칙칙한 안색을 만드는 10가지 색은 걸렀다. 클래식한 레드, 누드 계열의 인기 비중이 높은 해외에 비해 한반도에서 각광받는 컬러는 체리 핑크색의 ‘#P3 핑크 턱시도’와 살몬 코랄색 ‘#O7 트랜스그레시브 코랄’. 쿨하고 담대한 무드의 립스틱은 밝고 쨍한 색감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를 제대로 겨냥했다. 입생로랑 뷰티 내셔널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윤이는 “그간 채도가 낮고 따뜻한 계열의 컬러가 인기였다면 요즘 들어서는 쿨톤 립스틱을 찾는 고객이 많아졌어요. 퍼스널 컬러의 유행으로 ‘노란 기가 많은 동양인 피부는 웜톤이 어울린다’는 일종의 편견이 깨진 거죠”라고 덧붙인다.
입술과 혼연일체 되듯 편안하게 발리는 랑콤 ‘압솔뤼 루즈 크림’과 블러 필터를 씌운 듯 보송보송한 마무리감이 일품인 매트 텍스처의 ‘압솔뤼 루즈 인티마뜨’. 총 18가지 셰이드의 ‘압솔뤼 루즈’ 시리즈를 국내에서 인기 립스틱의 반열에 올린 것은 코랄 컬러였다. 한국 단독으로 코랄 계열의 립스틱 색상을 추가로 출시할 만큼 안색을 화사하게 밝히는 특유의 색감은 ‘동양인의 피부 톤과 가장 잘 어우러지는 컬러는 코랄’이라는 공식의 유행과 함께 상승기류를 탔다. 뷰티 트렌드의 변화와 함께 최근 몇 년간 인기를 끌고 있는 컬러는 ‘#299 프렌치 캐시미어’ ‘#274 코랄 브라운’처럼 코랄과 벽돌색에 우유를 한 방울 탄 듯 부드러우면서도 오묘한 빛의 뉴트럴 계열. 일명 ‘라테 메이크업’으로 일컫는 차분하고 그윽한 분위기는 랑콤이 추구해온 아름다움과도 일맥상통한다.
2024년 한층 우아한 패키지와 진화한 포뮬러로 새로운 옷을 입은 크리스챤 디올 뷰티 ‘루즈 디올’. 69가지 컬러 팔레트 가운데 국내에선 립밤처럼 사용하는 ‘루즈 디올 밤’을 포함해 총 45가지 색상을 공개했다. 디올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레드인 ‘#999’ 컬러를 비롯해 ‘#100 누드 룩’ ‘#720 이콘’과 ‘#777 파렌하이트’ 네 가지의 대표 색상을 새틴과 벨벳, 두 가지 질감으로 선보인 것이 특징. 해외에 비해 한국에서 유독 선전하는 컬러는 ‘#028 액트리스’다. 선명한 핑크 코랄 컬러의 두드러진 인기는 한국 여성들에게 여전히 산홋빛 입술 색이 건재함을 증명한다. 슬림한 케이스와 꾸뛰르 주얼리가 연상되는 CD 로고 밴드, 클래식 실버 까나쥬 모티브로 디자인한 고급스러운 패키지로 투명한 제형을 지닌 ‘루즈 디올 밤’의 인기도 심상치 않다.
젠더리스, 천편일률적 아름다움과 규칙을 깨는 대담함, 피부 톤을 초월한 광범위한 컬러 구성과 초현실적 패키지 디자인. ‘립스틱’은 그야말로 ‘바이레도식’ 메이크업을 보여주는 대표 아이템이다. 레드와 코랄, 핑크 등 입술 색에 대한 기존 접근 방식을 뒤집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독특한 컬러를 수집한 것이 특징. 신세계인터내셔날 글로벌 코스메틱 3팀 강은주 과장은 “입술 색에 집중하기보다 바이레도만의 스토리텔링, 독보적 외관에 매료돼 립스틱을 찾는 소비자가 많죠. 레드, 오렌지, 핑크가 선택지의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세분화된 컬러는 단순한 메이크업이 아니라 일종의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라고 말한다. 누드와 레드, 코랄색은 물론 브라운과 짙은 플럼이 가미된 독창적인 15가지 색상의 팔레트는 국내외 동일하게 구성됐다. ‘#커뮤터’ ‘#리유니언’ ‘#디볼스’ 등 채도 낮은 적갈색 또는 장밋빛이 대중적으로 선호도가 높지만 자유로운 메이크업을 즐기는 바이레도의 골수팬들이 많은 만큼 ‘#차이나 플럼’ ‘#댄스홀 퀸’처럼 개성 있는 퍼플 컬러의 인기 또한 뜨겁다.
우아한 발색, 입술 곡선을 따라 미끄러지도록 섬세하게 고안된 물방울 디자인, 공기처럼 가벼운 데다 극강의 보송보송한 질감을 자랑하는 아르마니 뷰티 ‘립 파워 마뜨’. 전 세계적으로 17가지 컬러를 보유한 가운데 국내에서는 12가지 라인업을 공개했다. “브라운에 가까운 누드, 진한 버건디의 다섯 가지 색상은 제외됐습니다. 한국 여성들은 주로 안색을 화사하게 밝히거나 자신의 입술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색을 선호하니까요.” 아르마니 뷰티 커뮤니케이션 김햇님 매니저의 말이다. 살굿빛 코랄의 ‘#307 엑스타틱’, 체리 핑크색 ‘#308 포스풀’, 부드러운 푸크시아 핑크빛의 ‘#508 에센트릭’ 등 쨍한 색조가 대표적인 인기 컬러. 매트한 질감, 브랜드가 지닌 꾸뛰르 감성은 주로 대담한 립 메이크업을 즐기는 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 에디터
- 송가혜
- 포토그래퍼
- 정우영
- 프롭
- 전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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