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 Love You’, 한국 남자 배우만 할 수 있는 멜로 연기
지난 2022년 2월, 일본 배우 스다 마사키가 한 발언이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는) 30대 중반의 배우들이 전력을 다해 러브 스토리에 임하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부끄러울 정도의 모습도 (그들은) 나르시시스트처럼 한다. 그렇게 (연기를) 하려면 다른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다.” 그의 발언을 두고 한국 언론은 “국내에서는 ‘한국 배우들이 나이가 들었는데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멜로 연기를 펼친다’는 식으로 조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스다 마사키는 정말 ‘조롱’하려고 했을까? 먼저 그가 말한 한국 드라마의 멜로 연기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단순히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걸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끄러울 정도의 모습”이라면, 사랑하는 여자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하는 행동을 그렇게 보았을 것 같다. 연인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한다든가,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린다든가, 먼저 다가가 키스한다든가… 최근 한국 배우 채종협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일본 드라마 <Eye Love You>를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에서 채종협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보면 스다 마사키는 기겁할 것이다.
지난 1월 23일 일본 TBS를 통해 방영된 <Eye Love You>는 “일본 민영방송사가 프라임 시간대의 연속극에 한국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사상 최초의 사례”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한국인 남성을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내세울 뿐 아니라 한국어와 한국의 식생활, 연애 방식까지 담고 있다. 물론 한국인 시청자의 입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주인공 윤태오다.
윤태오는 당연히 한국의 평범한 남성과 다르다. 지금까지 한국 멜로드라마에 나온 주인공들과도 다르다.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만들어낸 남자 주인공들의 매력 중에서 일본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할 법한 매력을 선택한 후 그것을 몇 단계 더 강화해 만들어놓은 캐릭터랄까. 극 중의 태오는 고객에게 음식을 배달하면서 더 맛있는 식당의 위치를 메모로 남겨주는 사람이다. (배달 기사에게 그런 여유가 있다니!) 또 그 고객이 너무 배가 고픈 상황일 때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순두부찌개를 가져다줄 정도로 과하게 자상하다. 그런가 하면 눈치가 없어 보일 정도로 천진난만하기도 하다. <Eye Love You>의 설정은 우연히 알게 된 이웃의 남성이 알고 보니 자신의 회사에 입사한 새로운 인턴이라는 것이다. 태오는 회사에서도 유리에 대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그런 그의 행동은 유리를 난처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런 민폐도 로맨틱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연출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무해하다. 여주인공의 입장에서 자기 집 거실에 하룻밤 정도 재워도 될 만큼 말이다.
말하자면 <<Eye Love You>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인기에 대한 일본 드라마 업계의 직접적인 리액션이다. 일본 시청자들이 일본의 멜로드라마보다 한국 멜로를 더 좋아한다면, 한국적인 멜로를 보여주겠다는 기획이 아니었을까. 이때 그들은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스다 마사키의 말처럼 한국 멜로에서 배우들이 전력을 다해 보여주는 연기는 일본 배우들에게 “부끄러울 정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스다 마사키뿐 아니라 일본의 남성 배우 대부분이 같은 입장일지 모른다.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연기의 영역과 그들이 일본에서 나고 자라면서 보았을 작품 안에서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스다 마사키의 발언에 ‘조롱’의 의도보다는 ‘낯설음’의 의미가 더 많다고 본다.
그만큼 낯설기 때문에 <Eye Love You>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같은 매력을 지닌 일본인 남성을 설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직접 나서는 배우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먼저 일본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낯설었을 듯. 그러니 한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같은 캐릭터는 어쩔 수 없이 한국 배우가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Eye Love You>의 3·4화를 보면 더더욱 그런 추정이 가능하다. 한국인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 한국인 남성 캐릭터의 강점을 대놓고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5분마다 한 번씩 메시지를 보내는 남자. 회식 자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고 제안하는 남자. 발렌타인데이에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을 수많은 애정 표현으로 드러내는 남자. 2월 14일 일본 야후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4화 방영 당시 SNS상에서는 “태오의 풀스윙에 부끄러워졌다”거나 “설렘이 너무 과다 공급되어서 패닉 상태”라는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윤태오는 일본의 시청자들도 버거워할 정도의 과한 로맨티시스트인 것이다. 사실 한국 시청자가 보기에도 윤태오는 좀 과하게 달콤하다. 다만 부끄러울 정도는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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