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 헤르만 ‘레티파크’
북적이는 지하철.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집 <레티파크>(2023, 마라카스)를 읽기에 그리 적절한 장소는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조급한 마음에 책을 펼쳤다. 내 안에서 ‘쓰고자 하는 마음’이 일던 때다. 그 불꽃을 지속해줄 작가의 말과 글이 필요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온 서문 격의 짧은 글이 유디트 헤르만의 세계로 향하는 불이다.
“당신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가 글에 자취를 남기고, 그 자취는 나중에야,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눈에 띈다, 늘 그렇다. … 이 이야기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있었는데, 이제 마침내 종이 위로 그리고 종이에서 세상으로 갈 수 있었다.”(8쪽)
이미 도착했지만, 미처 보이지 않던 것, 알아채지 못한 것이 비로소 그 형체를 세상에 드러낸다. 그것은 언젠가는 자연히 일어날 일, 그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일.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갸륵하고 애틋하고 놀랍다.
아직 본격적으로 소설에 진입하기도 전인데, 저 몇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몸 안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을 타고 올라오더니 눈가에 맺힌다. 다행히 흐르지 않고 그저 차오른다. 어떻게든 이야기와 장소가 세상에 나와 이곳에 당도했다. 어디 그뿐일까.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장소와 공간을 통해 누군가의 자취와 흔적이 드러날 것이다. 돌이켜보면, 늘 그러했다고 한다. 그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며. 뒤늦게 깨달은 것들이 여기 있다.
1970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작가 유디트 헤르만은 1998년 <여름 별장, 그 후>로 데뷔해 독일 문학계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소설집 <단지 유령일 뿐>(2002), <알리스>(2009), 장편 <모든 사랑의 시작>(2014), <우리 집>(2021)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자전적 에세이 혹은 픽션이라 평가받는 <우리는 서로 모든 걸 말했을 텐데>(2023)를 출간했다. <레티파크>는 201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집이다.
그의 글에서 선연함은 낯선 단어 같다. 뚜렷한 기승전결, 명쾌한 스펙터클, 또렷한 캐릭터 같은 것 말이다. 대신 투명한데 모호하다. 단조로운데 복합적이다. 알 듯 모를 듯 알쏭달쏭하다. 대관절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는 채로, 어떤 감정인지 미처 짐작할 수 없는데 이미 마지막 문장까지 와버렸다. 장황하거나 구구절절하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 불가능하다는 듯이, 불가해한 무엇이 있다는 듯이. 어렴풋하고 모호한 이 상태가 작가의 세계, 세계를 이해하는 작가인 것 같다. <레티파크>의 단편 하나하나 역시 그렇다. 상실과 아픔, 이별과 죽음, 낯선 재회 속에서 미약하게 감지되거나 한참 뒤에나 가시화될 생의 마법 같은 신비, 감정의 덩어리가 배어 있다.
“나에게 내 인물들은 다름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내 상상력이 빚어낸 여자와 남자와 아이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거의 투명하며 아무리 해도 실제로 잡을 수 없는 공기의 정령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전적으로 실화였고, 사실이라는 바닥에 단단히 정박해 있었다. 이 이야기들은 내가 알던, 실제로 있던 공간과 장소들에서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들에서 일어난 일은 나에게 마법의 이미지, 삶에 고유한 형이상학적 마술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있었다. 이건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바로, 섭리라고. 때로 어떤 예감들이 우리를 엄습한다. 우리 등 뒤에 누가 서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몸을 돌리면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에 꾼 어떤 꿈들은 하루 종일 당신을 따라다닌다. 낮의 빛은 그 꿈들을 쫓아낼 수 없다. 짐작건대 나의 이야기들을 여기에서 설명하고 독자에게 소개하는 일을 나는 제대로 할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해 보련다.”(8~9쪽)
“내 꿈속에서 사람들은 당신의 얼굴을 하고 있어. 페이지 샤쿠스키는 이 문장을 로제에게 썼다.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파괴할 수 없는 것, 무언가 밝은 것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돌연 로제는 그가 어디에 당도했건 간에 잘 지내기를 열렬히 소망한다. 다른 누군가의 꿈속에 나타나는 얼굴이었던 걸로 족할 수 있다. 그것은 정말로 축복 같은 일일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엘레나가 그 점에 관해 그래도 아직 아는 게 있기를, 레티파크가 아직 중요하기를 바란다. 그 겨울 사진들, 많은 걸 약속하는 그림자들, 불확실 속으로 가는 길들이.” – 단편 ‘레티파크’ 中(71~72쪽)
최신작을 발표하면서 헤르만은 <레티파크>의 단편들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나는 나에 대해 쓴다. 나는 스스로의 삶을 따라서 쓰고, 다른 글쓰기는 모른다.”(245쪽)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 고스란히 이야기로 전환된다거나 직접적인 경험 아닌 이야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런 짐작에 힘을 실어주는 작가의 말은 또 있다. “나는 나의 이야기들을 마치 사람처럼 소개하고 싶다. 비록, 상상의 존재이지만. 나는 모드, 셀마, 필리프, 닉이, 그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상상의 존재들도 마찬가지고. 변신하는 존재들. 한국이라는 세계, 나의 세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세계의 사람들.”(9쪽)
아마도 헤르만은 자기 안에서 샘솟는 것에서 출발하고 변화한 자신으로부터 글을 쓸 것이다. 헤르만의 인물들은 헤르만의 세계에서 태어났지만, 상상의 존재들이고 정령들이다. 그들은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떤 세계냐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헤르만은 글을 쓰는 장소가, 책상 앞에서 내다보이는 거리의 풍경이, 건너편 집 안의 모습이, “평범한 동시에 낯선 삶의 광경”(7쪽)이 <레티파크>에 영향을 줬다고 말하기도 한다. 작가처럼 소설 속 인물들도 어느새 나이를 먹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좀 더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이를테면 이별하고 죽는 일에 더 가까이 서 있다. 헤르만은 그 속에 우연과 섭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직접적으로 목소리 내기보다는 자연히 드러나길 바라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레티파크>를 두고 “삶에 대한 커다란 오마주”(슈피겔 온라인)라고 말하는 건 더없이 적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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