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필립 파레노 국내 최초 개인전 ‘보이스’, 주목해야 할 작품 5

2024.02.29

필립 파레노 국내 최초 개인전 ‘보이스’, 주목해야 할 작품 5

시간과 기억, 인식과 경험, 관객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는 아티스트 필립 파레노의 국내 최초 개인전 <보이스(VOICES)>가 2월 28일부터 7월 7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개최됩니다. 사진, 그래픽 포스터,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와 데이터 연동, 인공지능 같은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그의 전시는 마치 하나의 무대처럼 꾸며 단순한 관람을 넘어 ‘체험’을 선사하는데요. 1990년대 초기작부터 처음으로 소개하는 대형 신작까지, 필립 파레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개인전인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 다섯 가지를 소개합니다.

‘세상 밖 어디든’

필립 파레노 ‘보이스(VOICES)’ 전시 모습 ⓒ필립 파레노 제공: 리움미술관, 촬영: 이현준

전시 제목 ‘보이스(VOICES)’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를 의미합니다. 이는 작가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요소로,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배우 배두나와 협업해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인공지능을 통해 재탄생한 그녀의 목소리로 만든 신작 ‘∂A(델타에이)’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웅얼거림으로 시작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공언어 창조자가 만든 새로운 언어 ‘∂A’를 습득하며, 발화의 주체로 성장합니다. 관람객은 전시장 곳곳에서 소리를 통해 ‘∂A’를 만날 수 있지만, 특히 ‘세상 밖 어디든’을 통해 시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해당 작품은 이름도 역할도 없는 일본 망가 캐릭터 ‘안리’에 목소리를 부여해, 대상을 여러 형태의 목소리로 가시화하며 존립의 가능성과 예술의 저작권에 대해 예리하게 통찰합니다.

‘막(膜)’

막(膜), 2024, 콘크리트, 금속, 플렉시글라스, LED, 센서, 모터, 마이크, 스피커, 1360×112.7×112.7cm,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사진: 홍철기

미술관 야외 덱에 설치된 기계탑처럼 보이는 신작 ‘막(膜)’은 색다른 인지력을 갖춘 인공두뇌로, 센서 기능을 통해 ‘∂A’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전시의 모든 요소를 조율합니다. ‘막(膜)’이 기온,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 미세한 진동까지 지상의 모든 환경 요소를 수집해 미술관 내부로 보낸 데이터는 다채로운 사운드로 전환되고 새로운 목소리 ‘∂A’를 활성화합니다.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2022, 헬륨, 마일라 풍선, 가변 크기, 작가 및 글래드스톤 갤러리 제공 ©필립 파레노 사진 제공: 리움미술관, 사진: 홍철기

다양한 물고기가 전시장을 유영하는 작품 ‘내 방은 또 다른 어항’은 우연에 맡겨진 사물과 환경을 구성하는 조건이 인간의 행동과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식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합니다. 영어로 어항을 뜻하는 ‘Fish Bowl’은 관찰 대상을 지칭하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한데, 제한된 공간에 갇혀 인간에게 끊임없이 관찰당하는 어항 속 물고기들의 관점을 드러냅니다. 이곳을 부유하는 물고기들은 전시장 안에 들어선 관람객의 관점을 전복함으로써, 인간을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관조의 대상으로 만듭니다.

‘차양’ 연작

차양 연작, 2016~2023, 플렉시글라스, 전구, 네온 튜브, DMX 제어기, 가변 크기,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사진: 홍철기

‘차양’은 극장 입구의 화려한 불빛 차양에 영감받아 제작한 연작입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황금기를 누린 20세기 초·중반 미국에서 특히 유행한 이 차양은 극장 안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제목과 출연 배우들의 이름을 알리는 광고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극장 간판의 원래 모습에서 영화 관련 주요 정보를 제거하고, 할로겐의 빛과 차양의 껍데기만 남긴 파레노의 ‘차양’은 영화 대신 불빛 너머의 공간과 시간에 주목하게 만들며 현실을 공감각적으로 직시하게 하는 한편, 아직 오지 않은 현실 너머의 시공간을 암시하는 듯한 빛의 신호를 퍼뜨립니다.

‘삶의 의지를 넘어서 생동적 본능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의지를 넘어서 생동적 본능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2018, LED 패널, 맥미니, 스피커, 앰프, 분말 코팅 강철, 각 350×200×100cm, 작가 및 필라 코리아스 런던 제공 ©필립 파레노 사진 제공: 리움미술관, 사진: 홍철기

파레노가 직접 그린 총 238점의 반딧불이 드로잉을 교차해 보여주는 ‘삶의 의지를 넘어서 생동적 본능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은 1990년도 초반 작가가 빌라 아르송(Villa Arson)에서 처음 선보인 반딧불이를 소재로 출발한 작품입니다. 파레노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거대한 반딧불이가 발광하는 투명 LED 설치 영상을 선보이기도 했죠. 반딧불이를 소멸하는 대상이자 사람들의 믿음에 기반한 환상으로 바라보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더는 동일한 것을 믿지 않을 때 군집했던 대상이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처럼, 반딧불이의 소멸을 이념과 연결 짓습니다.

사진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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