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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월드’의 원더풀한 출발

2024.03.08

‘원더풀 월드’의 원더풀한 출발

배우 김남주의 신작 <원더풀 월드>(MBC)는 화끈하게 시작했다. 세계적 문학상을 받고 매니저까지 둔 잘나가는 소설가 은수현(김남주)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충격에 빠진다. 소설가에게 매니저라니, 매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풀 세팅하고 다니는 소설가라니, 살짝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촬영, 조명, 음악 등이 모두 과장되고 극적이라 연출 전반의 일관성은 있다. 리얼리즘보다는 스타일에 치중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선명하다. 주인공 수현은 네 번 유산한 끝에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미열만 있어도 출장을 취소하고 돌아올 만큼 애지중지한다. 그런 아들이 열린 대문을 통해 밖에 나갔다가 사망했다. 법정에서 상대측 변호사는 ‘당신이 문단속을 안 해서 사고를 초래한 게 아니냐’라고 수현을 추궁한다. 엄마로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이고, 2차 가해다. 석연찮은 이유로 가해자가 집행유예를 받자 수현은 아들 영정을 들고 그를 찾아가 사과를 요구한다. 가해자는 사과는커녕 ‘합의금 줄 테니 그만하라’고 조롱을 퍼붓는다. 그야말로 심신이 미약하던 수현은 가해자를 차로 치어 죽여버린다.

MBC ‘원더풀 월드’
MBC ‘원더풀 월드’

이후 드라마는 감옥에서 출소한 은수현이 비슷한 상처가 있는 선율(차은우)을 만나 교감하는 것을 한 축으로, 아들 사망과 관련된 미스터리에 접근하는 것을 또 다른 축으로 전개될 듯하다. 제작진은 선율과 수현의 투샷을 1회 오프닝에 배치함으로써 로맨틱한 상상을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심어놓는다. 남녀노소 시청자가 모두 알 법한 A급 여배우들의 나이대가 높아지면서 일종의 ‘키링남’을 투입하는 건 K-드라마의 공식이 되었다. 형기를 마친 수현이 아들 무덤 앞에서 비를 맞을 때 선율이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은 저 유명한 <늑대의 유혹> 강동원 등장 신을 연상시킨다. 대놓고 차은우를 아이캔디로 활용하겠다는 제작진의 속내가 엿보인다. 저 우산 신에서는 ‘원더풀 월드’를 미지근하게 커버한 주제곡이 울려 퍼지고, 밝은 태양 아래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고, 카메라는 인물들의 표정을 오래 비춘다. 미스터리보다는 멜로 드라마의 운명적 만남 같은 장면이다. 여기에 K-복수극 기본 세팅인 부패 정치인, 기업가, 법조계 유착이 아들 재판과 관련 있음이 드러나고, 수현의 남편 수호(김강우)가 사건 발단을 제공했다는 ‘떡밥’도 제시되면서 다양한 상상이 가능해졌다. 기획 의도에 담긴 장르는 일단은 미스터리 휴먼 드라마다.

MBC ‘원더풀 월드’
MBC ‘원더풀 월드’

극의 향후 전개와 무관하게 <원더풀 월드> 1~2화는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여럿 제시한다. 자식 잃은 엄마에게 ‘돈 때문에 그러냐. 돈 줄 테니 덮자’라는 가해자는 최근 10년간 우리가 목격한 사회문제를 상기시킨다. 대형 사고로 자식을 잃은 유족들에게 같은 말을 하는 기득권, 사이버 불링, 뇌가 정치 놀음에 절어 공감 능력을 상실한 시민들이 있었다. <원더풀 월드>는 김남주의 애끓는 모성 연기를 보여준 후 사고 유족을 향한 간접 폭력을 가해자가 피해자 면전에서 직접 쏟아내는 상황을 그린다. 그 순간 가해자를 ‘쳐 죽여도 마땅한 자’라며 미워하고, 현실의 피해자가 할 수 없는 응징을 수현이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눈발이 장엄하게 흩날리는 수현의 복수 장면은 결국 시청자들에게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분명 그 복수에 공감할 대중이 있을 테니, 현실이라면 이 살해는 수현의 커리어에 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명분 있는 살인과 징역을 경험한 소설가라면 오히려 궁금해할 독자가 많다. 어쨌든 그는 감옥에서 사랑하는 남편의 면회도 거부한 채 죗값을 치르려 고행한다. 그곳에서 수현은 또 다른 매력적인 캐릭터 형자(강애심)를 만난다. 형자는 바람난 남편을 응징하려고 방화를 저질렀다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 감옥에 왔다. 수현보다 오래 죄와 벌을 숙고한 형자는 연민으로 수현을 보듬는다. 배우 강애심의 애틋함과 차분함이 이 대목에서 극에 깊이를 더한다.

MBC ‘원더풀 월드’

수현과 형자를 통해 우리는 상처받은 피해자에게 적합한 조치는 무엇인가, 사적 단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악을 악으로 되갚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무거운 화두들이 대중성을 위해 배치한 장르적 요소와 얼마나 잘 어우러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화두 자체는 곱씹을 만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들이고, 소위 ‘국민의 법 감정’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밤에 피는 꽃> 후속으로 3월 첫 주 방송을 시작한 <원더풀 월드>는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며 시청률 6%대를 기록했다. 과연 제목처럼 원더풀한 성취를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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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원더풀 월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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