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못했지만, 몰디브에 다녀왔다
온 세상 바다의 맛, 하늘의 맛이 농축된 아난타라 몰디브는 넘치는 아름다움으로 여행 미뢰를 마비시킨다.
제목 그대로다. 결혼은 못했지만 몰디브에 다녀왔다. 미래 허니문 위시 리스트에 넣어두기만 하고 어디 붙어 있는지 체크하지 못한 그 몰디브다. 정확히는 인도와 스리랑카 남서쪽 인도양에 1,192개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쪽빛 바다와 백사장, 오가는 파도 소리만 그득한 몰디브 해변에 누워, 신혼여행의 성지라는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고백한다. 1,000여 개 섬 가운데 나만을 위한 리조트 하나 없을까 생각지 못한 오판이 지금까지 이 아름다운 나라를 놓치고 살았던 후회로 점철돼 마땅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난타라 디구 몰디브 리조트(Anantara Dhigu Maldives Resort)에서 “그 어떤 여행지도, 리조트도, 신혼여행객만을 위한 장소일 순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침을 먹기 위해 푸쉬 카페(Fushi Café)에 모인 사람들이 그 말을 증명했다. 신혼여행객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단박에 깨졌다. 아이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부터 3대는 돼 보이는 대가족, 친구 모임까지 인종도 여행의 모습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동안 휴양지 리스트에서 몰디브를 제외했을까. 버짓의 한계는 존재한다. 비행시간의 압박도 있다. 서울에서 카타르까지 11시간 비행 후(돌아갈 때는 8시간 걸렸다), 몰디브의 수도 말레까지 5시간여의 비행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100% 확신한다. 리조트에 도착한 순간 여정의 고단함은 극강의 낙(樂)을 위해 계획된 일종의 장치처럼 느껴진다는 걸.
말레 국제공항에서 스피드보트로 30분을 달리자 아난타라 벨리 몰디브 리조트(Anantara Veli Maldives Resort)가 모습을 드러냈다. 몰디브에 있는 3개의 아난타라 리조트는 몰디브 사우스 말레 아톨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리조트 밖으로 나가는 일이 수월찮은 몰디브에서 수시로 운항하는 보트를 5분만 타면 각 리조트의 시설을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구조다. 아늑한 리조트의 앞바다로 입성하자 우리 일행을 환대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파가 이어지던 서울 날씨 탓에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어정쩡한 웃음을 띠고 있는 내게, 버기를 타고 객실로 가는 길에 맞은 인도양의 후텁지근한 바람이 외투는 물론이고 복잡한 머릿속 모든 것까지 내려놓으라 말했다. 태국 문화가 짙게 밴 아난타라 리조트 특유의 아늑한 나무 인테리어 객실도 ‘쉼’을 종용했다. 서울의 일은 잊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연신 울리는 기분이었다. 예약만 하면 투숙객 누구나 가능하다는 백사장에서의 로맨틱한 만찬으로 배가 불러지자 하늘과 바람과 별 다음 수순이 왜 ‘시’여야 했는지 납득이 가는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엔 햇빛과 파도 소리에 잠을 깼다. 부드러운 은빛 모래사장으로 나가는 길엔 가오리가 발밑을 지나갔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주위를 둘러보니 바다 위에 세운 숙소가 눈에 들어온다. 백사장에 자리한 비치 풀 빌라와 프라이빗한 오션 풀 빌라를 제외하면 67개 동 대부분을 라군 위에 세운 오버워터형 빌라로 숙소 발코니에서 바로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9개월간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난 2022년 12월 재개장한 벨리의 매력은 스파와 웰니스 시설에서도 발견된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야외에서 하는 싱잉볼 명상은 가슴에 뜨겁게 뭉쳐 있던 나쁜 기운이 파동을 통해 손끝과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했다. 이 외에도 튀르키예식 목욕탕과 피부 관리실, 최신식 기구가 가득한 24시간 헬스장은 스스로를 돌보는 기쁨을 준다.
리조트의 장점은 누리는 것에만 있지 않다. 몰디브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가 전 세계인의 뇌리에 박혔을 만큼 환경에 영향을 받는 리조트에는 해양생물학자 오리아나 밀리아치오(Oriana Migliaccio)가 상주하며 산호초 복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물고기 서식지이자 바다의 허파인 산호 군락을 살리기 위해 리조트 앞바다에서 채취한 산호를 밧줄에 묶어 바다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투숙객과 함께 한다. 군락지까지는 수영으로 5분이면 도달하는데, 물고기를 쫓는 가오리 떼와 소문 없이 움직이는 상어 무리를 만날 수 있다. 섬뜩한 느낌에 소리를 지르자 오리아나는 내 친구들은 비건이라 인간을 만나면 몸을 돌려 자취를 감춰버린다고 이빨 빠진 상어를 가리키며 웃었다. 한창 물장구를 친 뒤 몰려든 허기는 태국 음식점 반 후라(Baan Huraa)에서 달랬다. 주변 아난타라 리조트에서 온 투숙객으로 매일 밤 예약이 꽉 차는 반 후라는 일행이 지금까지 먹어본 태국 음식 중 최고라고 손꼽을 정도로, 몸 뜨끈하게 데워줄 똠얌꿍과 태국 남부의 코코넛 카레 요리, 익숙한 맛의 얌운센과 팟타이 등 어떤 메뉴를 골라도 만족할 만하다.
벨리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다음 날은 아난타라 디구로 숙소를 옮겼다. 다양한 숙소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겐 새로운 리조트가 지근거리에 있다는 건 큰 메리트다. 게다가 나처럼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도 캐리어만 싸두면 버틀러가 새로운 숙소까지 짐을 옮겨주니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이기 좋다. 어린이 입장이 안 되는 벨리와 달리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디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주는 활기와 가족 단위 여행객 특유의 편안함이 공존했다. 110개 스위트와 빌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특하게도 일출과 일몰 전망 중 객실을 선택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백사장 위에 세운 비치 빌라를 선라이즈나 선셋 전망 중 고르는 것이다. 물론 라군 위에 세운 오버워터 스위트도 취향에 따라 선라이즈와 선셋 전망 가운데 고를 수 있다. 먼바다에 나가서도 물이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아 어떤 방을 선택하든 물이 무서운 이들도 입문하기 좋은 바다 수영장이다. 스노클링에 익숙해졌다면 좀 더 먼 바다로 나가 상어 수영을 할 수 있다. 오리아나의 비건 친구들이 서식하는 지역까지 약 30분, 참치 피딩으로 모여든 물고기 떼 사이로 상어가 은근히 합류하자 일행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30년간 일했다는 스쿠버다이버 뒤편으로 쪼르르 모여 상어를 지켜보는데, 걸리적거리는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려버리는 상어가 웃기면서도, 나의 첫 스노클링이 인도양 한가운데서 상어와 함께한 수영이었다니 잊을 수 없을 듯하다. 돌아와서는 해 질 무렵 패들보드에 올라 주황빛으로 물드는 고요한 풍경까지 바다 위에서 즐겼다. 달빛으로 사위가 밝아지는 한밤의 바다부터 해가 뜨는 새벽녘 해변에 앉아 보았던 윤슬까지 모든 바다가 근사하고 감동적이었다.
한국행 비행기에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몰디브에 다시 오고 싶어졌다. 이렇게 좋은 풍경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자연적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니까. 가족일지 연인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다시 가고 싶은 최고의 휴양지를 꼽으라면 확실히 마음속 랭킹 1위는 몰디브가 되어버렸다. 왜 그토록 신혼여행지 1위로 꼽히는지도 깨달아버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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