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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 프랑스 도빌로 향한 이유

2024.03.20

샤넬이 프랑스 도빌로 향한 이유

프랑스 도빌을 배경으로 한 버지니 비아르의 낭만적이고도 영화적인 서사.

파리 패션 위크의 마지막 날, 샤넬 2024 가을/겨울 패션쇼를 앞둔 그랑 팔레 에페메르는 예상과 달리 다소 밋밋했다. 곡선 형태의 커다란 LED 구조물만이 무대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채 깜깜한 공간을 밝히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쇼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달콤하게 전환됐다.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 클로드 를르슈(Claude Lelouch) 감독의 1966년 작 <남과 여>를 오마주한 약 1분짜리 단편영화가 관람객을 반겼기 때문이다. 포토그래퍼 이네즈와 비누드(Inez & Vinoodh)가 디렉팅한 영상의 주연은? 심지어 브래드 피트와 페넬로페 크루즈! 두 배우는 원작의 감정선을 증폭시킨 상징적인 장면을 재연하며 로맨틱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샤넬의 11.22 백이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자리하고 있었다(이번 쇼의 키 아이템으로 등장할 것이 분명했다).

“도빌에서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셨나요?”라는 대사와 함께 스크린은 노랑, 분홍, 푸른빛이 섞인 저물녘 하늘로 가득 찼고, 영화에서 신 스틸러로 활약했던 슈퍼모델 리앤 반 롬페이가 관람객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등장했다. 챙을 바짝 올린 커다란 핑크색 밀짚모자, 검은색 롱 트위드 드레스와 무톤 부츠를 신고 살구색 플랩 백을 앞뒤로 흔들며 첫 번째 워킹을 시작했다. 쇼장을 가득 채운 음악은 밴드 에어(Air)의 ‘섹시 보이’. 신나는 1990년대 리듬과 나무 바닥 런웨이를 걷는 모델의 발소리가 어우러지니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가브리엘 샤넬의 운명을 바꾼 도빌에 경의를 표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는 이번 컬렉션을 위해 하우스의 1920년대를 회고했다. 1912년 도빌에 모자 가게를 열어 최초의 샤넬 부티크를 탄생시킨 가브리엘 샤넬을 상상하며 말이다. ‘모자’라는 키워드는 거대한 파스텔 톤 밀짚모자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코르셋과 드레스로 움직임에 제한이 있었던 당대 여성을 위해 편안한 의상을 디자인한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을 본받아 남성미를 추가했다. 넓은 어깨의 코트와 드레스 가운 스타일의 기다란 벨티드 코트부터 크롭트 팬츠로 구성된 트위드 수트, 점프수트, 파자마 등이 그 결과물이다. 비아르는 휴양도시 도빌의 풍경 또한 놓치지 않았다. 세일러 스웨터와 니트 드레스에 갈매기 그림과 하늘에서 영감을 받은 색감을 활용했다. 그리고 1970년대 칼 라거펠트가 선보였던 자유로움을 참고한 룩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1970년대 초 유행한 빈티지 스타일과 글램 록이 흥행하던 시절의 데이비드 보위 실루엣이 연상되는 오버사이즈 아우터, 스웨이드 플랫폼 부츠와 맥시스커트도 추가했다. 쇼 후반부에 등장한 35mm 필름과 영화 티켓 모양 프린트는 샤넬이 후원하는 도빌 아메리칸 영화제(Deauville American Film Festival)와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영화를 다시 한번 기념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도빌 아메리칸 영화제가 올해 50주년을 맞아 더없이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우스를 대표하는 퀼팅 핸드백을 무려 73개나 선보이며 우리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샤넬 클래식 백의 귀환!

피날레 인사를 하러 런웨이로 걸어 나온 버지니 비아르는 프런트 로에 앉아 있던 페넬로페 크루즈와 포옹했다(아쉽게도 브래드 피트는 쇼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샤넬 쇼의 시작과 끝이 모두 그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지니 비아르는 재주꾼입니다. 그녀가 만든 모든 작품과 컬렉션을 모아보면, 그 안에 정말 많은 역사가 담겨 있죠.” 페넬로페 역시 버지니의 샤넬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실제 가브리엘 샤넬은 영화 <남과 여> 원작의 주인공 아누크 에메(Anouk Aimée)와 친구였다. 그 우정이 2024년 버지니와 페넬로페로 이어진 것이다. 샤넬 하우스에 기록될 새로운 연결 고리의 탄생이다. (VK)

    에디터
    허보연
    포토그래퍼
    Acielle(@StyleDu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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