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트리니티, 100년간의 러브 스토리
까르띠에의 가장 상징적인 디자인, 트리니티. 리드미컬하게 얽힌 링 3개에는 나와 당신을 위한 100년간의 러브 스토리가 숨어 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 장 콕토는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2개 끼고 다녔다. 부스스한 헤어스타일에 커다란 더플 코트를 툭 걸치던, 말쑥한 수트를 입던 장 콕토의 새끼손가락에는 늘 반지가 있었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얽혀 있는 플래티넘, 옐로·핑크 골드 밴드. 바로 까르띠에에서 가장 상징적인, 트리니티(Trinity) 반지다. 룩의 한 끗 차이를 결정짓는 건 결국 디테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 콕토는 주얼리가 얼마나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아이템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일상에서도 꽤 자주 볼 수 있을 만큼 유명한 디자인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4년, 트리니티가 처음 세상에 등장할 때는 그 자체만으로도 혁신이었다. 당시는 ‘주얼리’라고 하면 전통 방식의 스톤 작업을 가장 먼저 떠올리던 때였다. 화려한 스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새로운 주얼리를 디자인한다는 건 규범 밖의 일, 도전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루이 까르띠에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스톤 대신 두 가지 컬러의 골드와 (1924년 당시에는) 플래티넘만 사용해, 3개의 밴드가 하나의 트리오로 작동하는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인 것이다.
심플한 구성이지만 절묘한 균형감이 돋보이는 더없이 모던한 주얼리. 간결한 라인과 적절한 비율, 정밀한 형태를 갖춘 트리니티는 조각을 연상케 했다. 컬러 조합은 색다르면서도 잘 어우러졌고 밴드는 유연하게 움직였다. 트리니티가 탄생한 시기엔 정확한 명칭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뭔가 다른 이 주얼리에 반응했다. 1925년, 그러니까 트리니티가 등장한 지 1년 후 다른 소재와 컬러로 또 다른 버전이 연이어 출시되면서 미국 <보그>가 링 3개로 이루어진 반지와 팔찌를 ‘트리니티’라고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의 머릿속에 ‘트리니티’라는 단어가 각인됐고 지금까지 메종의 첫 번째 디자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100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트리니티를 봐왔다. 그건 100년 동안 트리니티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해석해왔다는 뜻이다. 트리니티의 역사를 살펴보면 변화란 트리니티에 일종의 본능 같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67년에는 밴드 개수가 7개까지 늘어난 팔찌를 만들었고, 1973년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Les Must de Cartier)’ 라인을 선보이며 링 3개로 장식한 라이터, 펜, 오브제 등으로 주얼리에서 라이프스타일 영역까지 확장 역시 시도했다. 밴드 굵기를 달리하고 화이트 골드나 블랙 세라믹으로 소재에 변화를 주거나 다이아몬드를 더한 반지와 팔찌 등 지금 세상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트리니티가 존재한다.
그러니 트리니티의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맥시멀한 XL 사이즈의 팔찌와 반지를 다시 선보이면서 두 가지 새로운 디자인을 공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강박적인 일은 아니었다. 까르띠에의 주얼리 & 워치메이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 로르 세레드(Marie-Laure Cérède)는 트리니티를 다시 디자인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말하면서도 더 유연한 도전 정신이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이 영감을 준다면 적극적으로 포용하겠지만,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합의한 거죠.”
오리지널의 본질을 포기하지 않되 더욱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 궁극의 목표였다. 그렇게 탄생한 첫 번째 결과물은 지난 1월 선보인 사각형의 쿠션 버전이다. 화이트 골드와 옐로 골드, 핑크 골드, 세 가지 핵심 소재와 간결한 라인, 움직이는 형태 역시 오리지널 트리니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사각 형태는 사실 정교한 실험과 끝없는 반복의 결과다. 마리 로르 세레드는 꾸뛰르처럼 각별한 접근법이 필요했다고 털어놓았다. “(보통의 주얼리와 달리) 손으로 그린 스케치 대신 직접 손으로 볼륨감을 만들면서 시작했어요. 재료를 주무르고 누르다 보니 놀랍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쿠션 형태였다. 형태를 정한 후에는 극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이상적인 비율을 찾아내야 했으니까요. 스톤 조각가의 섬세함을 발휘해 한 번에 0.1mm씩 한 겹 한 겹 벗겨냈습니다.”
2024년의 또 다른 트리니티, 3월에 출시된 모듈 버전은 형태보다는 사용이라는 측면 에서 모던함을 불어넣었다. 까르띠에는 과거와 현재를 융합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데, 이 모듈 버전이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상황에 따라 하나의 커다란 밴드 혹은 3개의 밴드로 착용할 수 있으며, 때로는 다이아몬드를 드러내거나 숨길 수 있는 이 반지는 아름다운 비밀과 가능성을 감춘 퍼즐과도 같다. 이건 쿠션 버전의 작업 과정과는 시작부터 조금 달랐다. 마리 로르 세레드는 쿠션 버전이 직관에서 출발했다면 모듈 버전은 구축과 해체를 토대로 했다고 말했다. “나무로 만든 장난감 퍼즐처럼 우리는 하나의 구조로 맞물린 트리니티 반지를 떠올렸고 반대로 그것을 3개로 해체하며 디자인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의 반지를 다양하게 착용할 수 있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탄생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트리니티 링에 모던함과 보편성을 부여합니다. 낮에는 데이타임에 어울리는 차분한 스타일로 한꺼번에 합쳐 사용하다가 밤에는 다이아몬드를 드러내며 밴드를 분리할 수 있습니다.”
트리니티의 키워드 중 창의성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보편성과 다양성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렇다. 트리니티 3개의 링은 중 무엇 하나 더 도드라지는 법이 없다. 어느 것이든 가장 위에 자리할 수 있으며, 링 하나를 잡고 바닥에 놓으면 자연스럽게 방향과 모양이 잡힌다. 성별의 경계가 없다는 점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이제껏 트리니티 링을 사랑 했던 사람들의 목록만 들여다봐도 성별과 취향, 시대를 초월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장 콕토를 비롯해 미국의 배우 게리 쿠퍼, 알랭 들롱, 로미 슈나이더, 그레이스 켈리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트리니티를 즐겨 착용했다. 아니, 주변만 돌아봐도 성별과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트리니티를 반지와 팔찌, 때로는 펜던트로 착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트리니티에 담긴 의미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트리니티의 서로 얽힌 링은 서로를 연결해주는 많은 것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믿음과 헌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감정이 그 속에 깃들어 있다. 또 다른 의미를 짚고 넘어가자면, 아마 숫자 3일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3’은 트리니티에 무척 상징적인 숫자다. 단순하게는 3개의 밴드가 얽혀 하나의 트리니티를 완성하고, 까르띠에 3형제인 루이, 피에르, 자크를 뜻하며, 뉴욕의 5번가 맨션, 런던의 뉴 본드 스트리트(New Bond Street) 그리고 파리의 뤼 드 라 페(Rue de la Paix) 13번지까지, 까르띠에의 가장 역사적인 부티크의 개수와도 맞물린다. 2024년, 트리니티가 100주년을 맞아 뉴욕과 런던, 파리 세 도시에서 이벤트를 이어간 것도 그 때문이다.
뉴욕과 런던에서 열린 이벤트의 피날레를 장식한 건 역시 까르띠에가 시작된 곳, 파리였다. 파리 8구에 위치한 미술관 프티 팔레(Petit Palais)에서 열린 파티에는 새로운 캠페인의 주인공인 글로벌 앰배서더 블랙핑크의 지수와 폴 메스칼, 잭슨 왕, 야라 샤히디, 라브린스를 비롯해 배우 노윤서, 제이크 질렌할 등이 참석해 트리니티의 100주년을 축하했다. 까르띠에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영상에서 인터뷰어는 몇몇 셀럽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트리니티는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에 지수는 “하나만 꼽자면 영원한 사랑으로 정의하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잭슨 왕은 “그 안의 숨겨진 의미에 공감하게 됩니다. 사실 삶의 목적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트리니티는 모두에게 다르게 다가온다는 거다. 세상 모든 형태의 사랑을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적인,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주얼리. 트리니티가 100년 동안 찬란하게 진화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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