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디자이너, 가에타노 페셰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인계 이단아 가에타노 페셰와 나눈 기묘하고 예술적인 대화. 선구적인 건축가이자 예술가, 산업 디자이너인 그는 큰 꿈을 갖고 시간에 골몰하던 소년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한다.
뉴욕 시간으로 목요일 오후, 멜버른 시간으로는 금요일 이른 새벽, 위대한 디자이너 가에타노 페셰(Gaetano Pesce)와 잡아둔 줌 미팅이 서머타임 때문에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 뉴욕 시간이 ‘앞으로 당겨져버린’ 바람에 시간이 ‘접힌’ 현상이 생겼지만 페셰의 스튜디오 직원들은 이를 즉시 빳빳하게 다림질해 굉장히 이른 시간에 “가에타노와 지금 미팅 진행해주시면 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평범성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후 60년 넘게 온갖 경계를 허무는 창의적인 작업을 선보여온 84세의 이탈리아 예술가이자 건축가, 산업 디자이너에게 어울릴 법한 갑작스러운 미팅이었다. 화면이 연결되기 전,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영구 소장된 시간의 가변성을 형상화한 페셰의 작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창조하는 모든 작업의 은유적이고 실재적인 모티브인 시간, 그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침내 젤리처럼 말랑말랑해 보이는 새빨간 책장을 뒤로한 채 모니터를 응시한 페셰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브루클린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내게 멜버른이 지금 몇 시인지 묻더니 시간이란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신과 같은 존재라는 말을 꺼내며 대화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시간은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 때, 반복할 때와 반복하지 않을 때, 모순에 처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결정합니다. 시간은 아주 절대적인 요소예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간이 제게 명령하는 것을 웬만하면 그대로 따라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죠.” 이른 아침 시간에 머물고 있는 나에게 카페인 함량이 많은 커피를 한 잔 마시라고 권한 그가 말을 이었다. “매 순간 시간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시간이 우리에게 무엇을 표현하라고 하는지 알 수 있어요.”
당시에도 시간은 80대의 디자인 거장에게 너무 많은 일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아트 위크에서 열린 개인전에 대한 리뷰, 6월에 브라질 오스카 니마이어 박물관(Oscar Niemeyer Museum)에서 열린 회고전과 멜버른 디자인 위크 기간에 열리는 전시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잠시 짬을 내 대화를 허락해준 것이 못내 감동적이었다. 물론 거침없이 몰아치는 시간의 흐름을 부드럽게 탈 줄 아는 법을 체득한 이 거장은 물처럼 유연하게 반응하며 시간의 일시성을 수용하고 있었다. “항상 새롭게, 결코 반복에 갇히지 않으면서.” 그가 평소 자주 강조해온 말이었다. “반복은 시간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페셰가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반복은 시간의 적이죠.”
“재앙과도 같은 반복”이 모더니즘을 지배하는 미의식이라고, 그것은 “기계의 효율성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페셰는 모든 ‘주의(ism)’가 “건축을 완성하는 가장 형편없는 방법”이라 통렬하게 비판해왔다. 전체주의적 통제를 빼닮은 흐름. 모든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규칙에 얽매인 천편일률적인 향연으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움이 배제된 장식이라고 말이다. 이전에 페셰는 라파엘 비뇰리(Rafael Viñoly)가 설계한, 손가락처럼 얇아서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는 말이 정설처럼 나돌 정도인 96층짜리 파크 애비뉴 타워를 “도시의 빛나는 다양성과 태양 빛의 경로를 무시한 모더니즘식 불통의 무덤”이라 폄하하기도 했다. 그 건물은 슈먼 아파트와 같은 거리에 자리하지만 철학적이고 감각적인 측면에서는 서로 몇 광년쯤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슈먼 아파트는 페셰가 루스 랜드 슈먼(Ruth Lande Shuman)의 집을 미시안(Miesian,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모더니즘 건축을 지향하는 건축가들을 일컫는다)식의 정중함을 알록달록한 사탕 같은 밝음으로 과감히 뒤덮은 결과였다.
“뭔가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어요.” 페셰가 전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의미 없는 건축에 대해 한 말이다. “도쿄에 세운 건축물을 호주나 프랑스, 브라질에도 똑같이 짓는다면 모든 도시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외치는 공산주의나 다름없어요. 그건 정말 너무나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인간만 해도 하나하나 다 다른 존재잖아요.” 페셰는 계속 국제적으로 통일된 스타일을 “문화에 대적하는 괴물”이라 칭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건축가들이 “세상 모든 곳에 그 공간만의 가치와 역사, 기억, 정체성을 대변하는 특별한 건축물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가 대체 왜 개성과 장소 특수성이 소멸해버린, 가혹한 모더니즘의 정점과도 같은 도시인 뉴욕에서 40년이나 살았느냐는 질문에 페셰는 뉴욕과 사랑에 빠졌던 1980년의 기억을 꺼내 들려줬다. 브루클린의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든 의미와 시간, 현실의 본질을 담고 있는 슈퍼컴퓨터에 접속한 듯한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뉴욕은 저에게 가치 있는 뭔가를 깨닫게 해줬어요. 바로 인류의 다양성이죠. 뉴욕에선 수많은 소수자가 한데 모여 살고, 그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끝없이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그 에너지, 정전기가 바로 이 도시를 움직이는 힘이에요.”
하지만 페셰가 뉴욕에 정착한 지 4년 정도 지났을 무렵, 레이건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시장 규제가 완화되었고, 사회복지 예산이 축소되자 도시의 스파크가 급격히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뉴욕의 분위기를 ‘Sunset in New York’(1984)이라는 작품으로 표현했다. 영광스러운 나날의 끝을 저무는 해 모양의 쿠션으로 은유한 만화처럼 귀여운 소파였다. “그 소파를 만든 까시나는 제가 처음에 붙인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부정적인 이름을 단 가구를 어떻게 팝니까’ 하면서요. 그래서 이름을 ‘선셋 인 뉴욕’으로 바꾼 거죠.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형상화한 그 소파는 제가 처음으로 구상적인 표현을 시도한 첫 작품이었어요. 그 소파는 요즘도 제작되고 있어요. 굉장히 행복하고, 긍정적이고, 혁신적이고, 자극적인 작품으로 저도 아주 좋아하는 디자인입니다.”
페셰가 꿈꾸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 하나는 모든 층을 다른 건축가가 설계한 주거용 타워다. 이를 통해 그는 도시의 전율하는 다양성을 표현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협력을 위해서는 돈 많은 개발자, 진보적인 지방법, 의지를 지닌 관료와 목소리 큰 사람을 한데 어우러지게 만들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그의 청사진은 몇 년 전 로열 아카데미에서 페셰가 한 발언으로 이어진다.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그들(영국인)이 좌약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그것은 ‘더 거킨(The Gherkin)’이라고도 불리는, 노먼 포스터 경(Lord Norman Foster)이 디자인한 탄환 모양의 스위스 리(Swiss Re) 본사를 두고 그가 한 말이었다. “그 건물은 꼭 좌약을 추상화한 것처럼 생겼거든요. 그래서 그 모양이 영국인의 정체성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서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더라고요.”
“변비가 있단 걸 인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내 말에 페셰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불편한 잔재와 골치 아픈 수업 시스템에 대해서도 얼마간 말을 이었다. 농담은 잠시 접어두고, 대체 페셰는 왜 그토록 직선과 반복을 뼛속 깊이 싫어하게 된 걸까? “그 얘기를 좀 더 해도 될까요?” 내가 물었다.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지요.” 페셰가 모렐라토(Morellato)를 위해 디자인한 한정판 마이타임(Mytime) 아트 시계를 언급하며 말했다. 마이타임 아트 시계는 디지털 바늘 한 개가 한 바퀴 회전하는 데 최대 90년이 걸리도록 설계됐다. 12시간 단위로 돌아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는 기존 체계에 반하는 죽음으로 향하는 카운트다운이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만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시계가 매일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고 여기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죠. 시간은 매 순간 달라지니까요. 그 작품은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지칭하는 의미가 중요한 작업이었어요.” 페셰가 친절한 말투로 설명했다.
시간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대화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는 페셰가 태어난 1939년 11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리구리아해 연안, 제노바와 피사 중간쯤에 자리한 라스페치아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이었으나 파시스트들은 무솔리니의 독재 아래 전투적으로 세력을 뻗쳐나갔고, 동시에 순수한 선과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주세페 테라니(Giuseppe Terragni) 스타일의 건축물을 끊임없이 세우며 이탈리아 도시를 새로운 합리주의적 질서 아래 개편해나가고 있었다. 이는 1940년 “무솔리니가 독일이라는 괴물과 손잡은 최악의 실수를 저지름에 따라” 페셰에게 상실과 수치, 억압적 통제와 비인간화를 상징하는 미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릴 때 전장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때 전 고작 생후 8개월이었죠. 하지만 여성들의 손에 자란 게 저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가 다분히 여성적인 가치관과 감수성 속에서 성장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했다. “덕분에 전 일찍이 남성이 본능적으로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올곧은 직선처럼,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거죠. 하지만 여성은 매 순간이 다른 존재예요. 어떤 때는 어머니였다가, 애인이었다가, 아내였다가, 노동자가 되기도 하죠. 여성은 고정적이지 않은 정체성을 타고났어요. 이것이 현시대의 정체성이죠.”
여성에 대한 그의 존경심은 ‘업(Up)’ 시리즈에 생생하게 구현되어 있다. 공처럼 생긴 풍만한 의자로 이루어진 6개의 업 시리즈는 1969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의 B&B 이탈리아 부스에서 첫선을 보였다. 페셰는 샤워할 때 꾹 눌렸다가 금세 원형으로 복원되는 스펀지를 유심히 보다가 이런 디자인을 떠올렸다. 진공 포장한 폴리우레탄 폼으로 만든(덕분에 선적 부피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의 실험적 작품은 여성에 대한 구속과 이탈리아의 두 번째 페미니즘의 흐름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겨냥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육체미 넘치는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던 디자인 지성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부정이기도 했다.
페셰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베니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 경험한 불만족스러운 교육에 대항해 자신만의 긍정의 길을 개척했다. 그가 훗날 유럽 전역에서 강의한 내용과 오사카 빌딩처럼 논란을 불러일으킨 건축을 통해 추구한 것은 기하학적 보수주의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페셰가 지은 오사카 빌딩은 식물 80종으로 뒤덮인 벽돌색 건축물로, 몇 년 전 여기저기서 보이던 녹색 건축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대를 앞선 지식이 디자인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완전히 자리 잡기 전까지, 선구자 역할을 떠안은 페셰는 그가 속한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을 찾아 직접 소통해야 했다. “그래서 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처음으로 찾아간 인물은 핀란드에 있는 알바 알토였다. 알토는 자신의 사무실 밖 길가에 서 있는 페셰를 발견하고 마멀레이드 샌드위치를 건네며 다른 디자이너에게도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용기를 함께 쥐여주었다. 이어 페셰는 프랑스 세브르 거리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페셰는 ‘코르브(Corb)’가 친히 사무실 문을 열어준 다음, 신인 디자이너였던 자신을 불러들여 열의 넘치는 대화를 나눈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후 그는 뮌헨으로 건너가 양자역학의 선구자인 이론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를 만났고, 뒤이어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도 영접했다. “그렇게 많은 만남이 이어졌죠.” 이 용감무쌍한 모험을 통해 얻은 뜻깊은 교훈은 다음처럼 요약된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맞아줄 것(알바 알토), 언제든 호기심을 잃지 말 것(르 코르뷔지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 것(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정체성은 역사적 맥락과 자신을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연결 고리라는 것을 이해할 것(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 작업실에서 탄생하는 에너지 넘치고 망막에 불을 지르는 듯한 총천연색을 자랑하는 작품에서 벗어나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아파트에서 엿볼 수 있는 페셰와 역사적 맥락의 관계는 다분히 차분하고 사색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곳을 채우는 빛바랜 디자인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이스트강과 그곳에 우뚝 선 독특한 구조의 다리 아래 미처 말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묻어둔 듯 보였다. 문득 작업실 한쪽에 놓인 자그마한 수집품과 사진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와 성모상이에요.” 그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의 프레스코화 복제품과 그 옆에 놓인 젊은 여인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아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한 유일한 성모 마리아 작품이에요.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죠.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에 못 박힐 아들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은 위대한 여성이에요.”
페셰는 그 작품을 예견된 시간에 대한 수용과 인내의 감동적인 증표로 여기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의미의 경계를 초월하는 탁월한 창작자로 추켜세웠다. “대형 수조에 물고기 한 마리를 넣고 작품이라 부르는 가짜 예술가와는 차원이 다르죠.” 데미안 허스트를 두고 말한 것이었다. “그건 예술을 무의미한 행위로 축소시켜버린 것이나 다름없어요. 르네상스는 우리가 그저 화가나 풍경화가, 건축가, 조각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위대한 교훈을 전해주었습니다.”
천재적인 선동가, 뻔뻔한 가짜와 관련해 나는 페셰에게 디자인이 과연 예술로 간주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쌀쌀한 어느 겨울밤, 베니스에 있는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 겸 자택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받은 일화를 들려주며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파티장에 도착하니 어떤 남자가 문을 열어주면서 코트를 받아주겠다고 하더군요. 굉장히 묵직한 코트였는데 그 남자가 코트를 받아 들더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상에 턱 거는 게 아니겠어요. 내 코트가 자코메티의 위대한 작품을 망가뜨리겠구나 싶어 아찔하던 찰나, 놀랍게도 그 동상이 무게를 버텨내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자코메티의 작품은 낮에는 조각품이지만 밤에는 코트 걸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이어 페셰는 레진을 일일이 몰드에 주입해 점점 밀도를 높여가며 제작한 9점의 실험적인 작품 ‘프랫(Pratt)’ 의자 시리즈가 담은 양면성을 설명했다. “첫 번째 버전은 레진을 아주 부드러운 상태로 주입했어요. 그랬더니 몰드에서 꺼내자마자 의자가 무너져버리더라고요. 뼈대가 없는 몸처럼요. 모든 형태가 바닥에 무너져내린 모습이 조각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거의 완성형에 가까웠어요. 아주 편안했죠. 그러다 아홉 번째로 탄생한 마지막 의자는 완벽하게 편안했습니다. 즉 이 시리즈는 의자에 대한 패러다임을 과정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실험은 보테가 베네타의 2023 여름 컬렉션 패션쇼장에서 ‘코메 스타이?(Come Stai?)’로 재현되었다. 레진에 담근 캔버스로 제작한 이 400여 점의 의자 시리즈는 그 의자에 앉은 게스트의 개성처럼 각기 다른 색깔과 형태로 만들었다. “그때 그 의자는 예술품으로 판매되고 있어요.” 페셰가 이번 작품의 디자인을 함께 한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를 칭송했다. “블라지는 이 작품이 단순한 의자를 넘어 다양성에 대한 정치적 표현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가오는 멜버른 디자인 위크에 대한 기대와 함께 파리에서 살 때 종종 현지 극장을 방문해 호주 영화를 보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흥미로운 영화가 대부분이었어요.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 무리가 우르르 나온 영화였는데 지금도 한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남자들이 맥주 캔 뚜껑을 따서 체인을 만드는 장면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거든요.”
대화는 예상보다 긴 시간 이어졌다. 맥가이버 같은 손재주 좋은 사람들과 3만4,000km에 달하는 호주의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늘어선 해변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가, 페셰가 이탈리아어로 물고기라는 뜻이며, 그가 이제껏 베니스의 수로, 런던의 템스강, 파리의 센강, 뉴욕의 이스트강에 이르기까지 항상 물가에 집을 구했다는 사실로 이어졌다. 페셰는 아마도 물 밖으로 나온 신비로운 물고기가 아닐까? “아뇨, 전 항상 물 밖에 있지도, 물속에 있지도 않아요. 그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유유히 떠다니는 것뿐이에요. 그게 제가 존재하는 방식이죠.” (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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