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양봉가가 청각의 도움 없이 벌과 소통하는 법
진공 속에 군림하는 벌들의 여왕. 사진가 랜던 스피어스가 자연주의 양봉가 카트 케이와 함께 벌판에서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 청각의 도움 없이 신비로운 생명체인 벌과 소통하는지 직접 알아보았다.
카트 케이(Kaat Kaye)의 사진을 찍기 위해 팰컨우드(Falconwood) 농장의 양봉장에 도착했을 때, 케이는 벌통을 들여다보느라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벌들에게 계속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고, 그녀 옆에서 우왕좌왕하며 공기를 열심히 가로지르고 있는 벌 떼는 그녀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혹은 그녀와 뭔가 긴밀한 협상을 시도하거나. 카트 케이는 이곳의 관리인이자 여왕벌이다. 벌들과 가장 가까운 인간 동료로 벌집 상태를 지켜보거나 잉여 벌꿀을 채취하며 벌집을 안전하게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날은 내가 루트플럭스 비 컴퍼니(Rootflux Bee Co.) 대표이자 29세 양봉가인 그녀를 벌써 여섯 번째 마주하는 날이기도 했다.
사실 케이는 중증 청각 장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각 신호에 의존해서 일할 수 없다. 보청기를 사용하면 소리를 듣는 범위가 좀 더 넓어지긴 하지만 일할 때는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케이가 이야기했다. “저에게 소리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에요. 저만의 세계에서 누리는 고요함과 평안이 좋아요. 게다가 벌들과 함께 있으면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죠. 산만하지 않아야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거든요.”
케이는 양봉 모자와 도구, 연무기만 가지고 안정적으로 절도 있게 움직였다. 그에 비해 나는 과할 정도로 양봉에 사용되는 모든 보호 장구를 악착같이 착용하고 있었다. 케이가 장갑을 빼라고 하더니 내가 버티고 서 있어도 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안전지대를 지정해주었다. 서둘지 않고 세심하게 행동하는 케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수많은 벌들 사이에서도 마음이 놓였다. 그녀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나는 케이가 벌을 돌보는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게 됐다. 그뿐 아니라 청각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벌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그녀를 우러러보게 됐다.
케이는 열두 살 때 우연히 방문한 지역 박람회에서 벌통과 벌 떼를 처음 본 일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그때부터 벌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그녀는 그 후 수년에 걸쳐 뉴멕시코를 시작으로 자메이카까지 여행하며 다양한 양봉가와 함께 일했다. 2018년에 설립한 양봉 회사 루트플럭스 비 컴퍼니는 현재 뉴욕 허드슨밸리 지역의 농장, 사택, 기업 등 10곳의 벌통으로부터 75개를 위탁 관리하는 규모를 갖췄다.
케이는 화학물질 사용을 최소화하는 자연 양봉 기법을 강조하며 양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청각 외의 감각을 통해 수집하고 있었다. 사실 소리는 벌들의 수많은 의사소통법 중 하나일 뿐이다. 예를 들어 벌집을 옮겨야 할 시기가 되면 정찰병 일을 하는 꿀벌들이 일차적으로 파견되는데, 집으로 돌아온 정찰병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새로운 장소를 설명하기 위해 숫자 ‘8’ 모양을 그리며 춤을 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춤을 본 다른 벌들은 최종 투표를 거쳐 이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벌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냄새를 활용하는 것이다. 벌들은 경고신호를 보낼 때 바나나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페로몬을 분비하며, 레몬그라스 냄새와 비슷한 페로몬은 벌들을 벌집으로 유인하는 기능을 한다. 물론 이런 벌들의 미묘한 특성에 집중하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케이가 벌집의 회복력은 신경 쓰지 않고 꿀 생산량만으로 효율성과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사업가였다면 그런 인내심을 발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뛰어난 양봉가가 되려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수많은 변수에 대처하는 적응력과 순발력도 필요하다.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너무 적게 오는 건 아닌지, 꽃은 언제 필 것인지 꽃에서 꿀이 충분히 나올지… 케이는 상황에 맞게 대응하면서도 벌들의 리듬과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움직였다. 그녀는 상황의 불확실성을 기꺼이 수용한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양봉가였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그렇듯 모든 변수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느 해에는 꿀을 많이 얻기도 하지만 어느 해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한 나머지 갖고 있는 벌집의 절반을 한꺼번에 잃기도 해요. 현존하는 초유기체인 벌들과 야외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속상한 일이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쁜 일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에요!” 그녀의 주변에서 벌들이 여전히 느릿느릿 춤을 추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VL)
- 글·사진
- Landon Sp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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