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해외에서 가장 주목하는 한국인 셰프들
이들의 요리는 접시에 펼친 철학이다. 리마, 파리, 런던, 샌프란시스코, 뉴욕, 싱가포르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셰프들.
Lima, Sang Jeong
정상 셰프는 2023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1위에 선정된 페루의 센트럴(Central)과 자매 레스토랑인 밀(Mil)을 총괄 셰프(Corporate Chef)로서 이끌고 있다. 페루가 흔한 선택지는 아니다. 미국을 거쳐 호주 시드니의 파인다이닝 키(Quay)에서 일하던 그는 새로운 요리를 배우고 싶어 덴마크의 노마(Noma)와 페루의 센트럴에 인턴 지원 메일을 보냈다. 노마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1위였고, 센트럴은 남미에서 가장 주목받는 레스토랑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먼저 센트럴의 연락을 받아 페루 리마에 머무는 동안 노마에서도 연락이 왔다. “리마에 머물면 더 많이 경험하고, 최소 3년은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일할 거 같았죠.” 그 3년이 10년이 됐다. 인턴에서 정직원을 거쳐 수셰프 그리고 총괄 셰프가 됐다. 센트럴에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4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세계 1위로 꼽혔다. 자신도 공헌했다는 자부심이 크다. “남미 레스토랑이 세계 최고로 꼽힌 건 업계에 굉장한 영감을 주죠. 오랜 시간 미식 강국 프랑스가 알게 모르게 기준을 세워왔어요. 이제 여러 나라의 문화와 특색을 활용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각광받는 시대죠.” 리마는 다양한 식문화가 공존한다.
중국 요리와 섞인 치파(Chifa), 일식 영향을 받은 니케이(Nikkei) 등의 요리도 현지인은 온전한 페루 음식으로 받아들인다. 자연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아마존 정글과 안데스 고산지대, 사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태계에서 독특한 식재료를 만날 수 있다. “생소하면서도 원초적인 감각을 깨우는 곳이죠.”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놀란 점은 업계 커뮤니티가 공고하다는 것. “리마를 미식 도시로 만들기 위해 셰프들이 목공예가, 도예가, 비주얼 아티스트, 농부, 어부와 긴밀히 협업해요. 지금은 파인다이닝에서 마땅한 것으로 여기지만, 제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드물어서 많이 놀랐죠.” 앞으로도 정상 셰프는 창의적이고 독특한 요리 생태계를 선보일 것이다.
Paris, Narae Kim
김나래 파티시에는 내면에 응축된 에너지를 접시 위에 섬세하게 세공하는 능력이 있다. 그녀는 프랑스 레스토랑 가이드북 <고 에 미요(Gault & Millau)>가 선정한 ‘2024년 올해의 파티시에’기도 하다. “요리를 사랑해도 외롭고 힘든 순간이 없진 않아요. 올해의 파티시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난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어요. 상을 받기 위해 일하는 셰프는 없지만, 인정과 격려가 분명 힘이 되죠.” 열다섯 살 때 고향에 처음 생긴 제과·제빵 학원에 등록하고 싶어 부모님을 조른 것이 시작이다. 이내 관련 자격증을 땄고 빵을 구워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누는 기쁨에 계속 이 길을 걸었다. “제게 요리는 ‘나눔’이에요. 그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요.”
2011년 하얏트 리젠시 괌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서울로 돌아와 4년간 일하고 다시 베트남 호찌민으로 넘어가 수셰프가 됐다. 늘 프랑스에서 일하길 꿈꾼 만큼 파리의 슈발 블랑 호텔을 거쳐 2021년부터는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Park Hyatt Paris-Vendôme)에서 제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파리 풍경은 역사적인 만큼 쉽게 변하지 않죠. 하지만 늘 새로운 패션과 예술이 탄생하고 전 세계의 트렌드를 이끌어요. 매해, 매 시즌 새롭게 발표되는 무형의 디자인과 오랜 헤리티지가 공존하는 독특함에 반했죠. 제과하는 사람에게 프랑스는 독보적인 도시기도 하고요. 근데 놀랍게도 프랑스에서 요리사만큼은 장시간 근무를 당연하게 여겨요.(웃음)” 김나래 파티시에는 온종일 주방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절의 흐름에 맞춰 시즌 메뉴를 개발하는데,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무수한 테스트를 거친다. 또 팀을 관리하며 크고 작은 이슈를 처리하는 것도 그녀의 업무 중 하나다. 이 모든 노력은 하나의 목표, ‘좋은 제과를 균일하게 만드는 것’으로 향한다.
London, Woongchul Park & Bomee Ki
영국과 미국, 부산과 제주를 누비며 자기만의 색을 만들어온 박웅철·기보미 셰프 부부는 2020년 여름 런던에 솔잎(Sollip)을 열었다. 그들이 런던에 레스토랑을 연 이유는 일종의 도전 욕구 때문이다. “런던은 한국에 관심이 높지만, 생각보다 우리 문화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죠.”(기보미) 기보미 셰프는 페이스트리 셰프로 일하며 레스토랑 브랜딩과 디자인을 관리하고, 인스타그램과 웹 페이지 등의 채널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박웅철 헤드 셰프는 전체 메뉴를 구상하고 주방 팀을 이끌며, 레스토랑 운영에 필요한 회계와 직원 관리를 담당한다. “아이를 키우듯 우리의 공간을 성장시키고 있죠.”(박웅철)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지난해 11월 버킹엄궁전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초대받았을 때다. 영국 왕실 인사와 각국 대통령, 재계 총수, 팝 스타 등 각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들과 함께 참석한 것. “힘들게 헤쳐온 요리라는 길에 한 번 더 결의를 다졌어요. 또 잊지 못할 순간은 팬데믹을 견뎌내고 솔잎을 다시 오픈한 날, 처음 미쉐린 별을 받았다고 연락받은 날이에요.”(박웅철)
이들에게 꿈은 성공이 아니다. “직업인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관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소중한 인생이니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저 웃으며 편안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게 행복이란, 건강하고 정직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며, 인생을 발전시키는 감각을 잃지 않는 거죠.”(박웅철) “아이들과 가정을 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온 날들에 감사해요. 초심과 비교해도 여전히 지치지 않았어요.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하나씩 이뤄가는 즐거움을 느끼길 바랍니다.”(기보미)
San Francisco, Jeongin Hwang
황정인 셰프는 샌프란시스코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베누(Benu)의 총괄 셰프이자 2021년 오픈한 K-BBQ 레스토랑 산호원(San Ho Won)의 공동 대표 겸 셰프다. 베누에서는 스타 한인 셰프 코리 리(Corey Lee)와 8년째 함께하는 중이다. 그가 이 길에 들어선 이유는 미식가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와 함께 음식을 먹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 요리를 만들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죠.”
황정인 셰프는 영국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팻 덕(Fat Duck)의 주방 보조로 일을 시작했고, 런던의 고든 램지와 서울과 프랑스 생트로페즈던의 피에르 가니에르 등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렀다. 샌프란시스코는 광활한 평원, 바다, 그리고 어느 곳보다 태양이 가득한 덕분에 식재료가 풍요롭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능성의 도시기 때문이다. 그가 여러 도시를 거친 이유는 폭넓은 세상에 대한 기쁨을 느끼고 싶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해야 했다.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데 한몫하고 싶어요. 그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세계적인 파인다이닝에서 일을 배워왔지만, 더 대중적이고 친근한 방법으로 한식을 알리고 싶어요.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산호원이죠. 이것 말고도 수백 가지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에요.”
New York, Eunji Lee
까다로운 뉴요커도 오픈 시간부터 긴 줄을 서는 디저트 숍 리제(Lysée)의 이은지 오너 셰프. 프랑스의 글로벌 미식 가이드 ‘라 리스트(La Liste)’의 ‘2024 올해의 페이스트리 셰프’로 선정됐다. 그녀에게 디저트는 ‘먹을 수 있는 예술 작품’이자 ‘행복과 여유를 주는 선물’이다. 그 출발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든 송편과 유과, 강정이다. “맛있게 먹기도 했지만, 할머니께서 만드시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본 기억이 나요. 나중에 저도 취미로 과자와 타르트를 구워 주변에 선물하곤 했죠. 만들고 포장하고, 그걸 받는 사람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정말 좋았어요. 달콤한 디저트가 삶에 기쁨을 준다는 생각으로 이 일에 몰두하죠.”
이은지 셰프는 파리와 뉴욕에서 15년 넘게 활동했다. “지금 머무는 뉴욕은 포용력이 매력이에요. 인종과 식재료, 음식, 커뮤니티, 생각과 관점이 다양해 어떤 시도도 이상하지 않죠. 그런 점이 메뉴 창작에도 도움이 돼요.” 이곳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2022년 6월 28일 자신의 가게 리제를 열었을 때다. “인테리어를 하는 동안 다른 주방을 빌려 더 이상 못 먹겠다 싶을 만큼 레시피를 테스트했어요. 맛보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며 1년 반을 보냈죠. 그렇게 준비해 오픈 하루 전, 가게를 한 번 둘러본 뒤 집에 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설레고, 긴장되고, 사람들이 좋아해줄까 궁금했죠. 오픈한 날,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어요. 놀랍고, 두렵고, 행복했죠.” 리제는 낮 12시에 문을 열지만, 이은지 셰프는 아침 일찍 팀원들과 준비를 시작한다. 예약과 스페셜 오더를 챙기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누군가의 정말 중요한 기념일일 테니까요.” 그녀의 꿈은 리제를 통해 행복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조금씩 성장해야겠죠. 하지만 서둘지 않을 거예요, 저답게 차근차근 나아가야죠.”
New York, Junghyun Park
뉴욕에 서울살롱(Seoul Salon)과 나로(Naro), 아토믹스(Atomix), 아토보이(Atoboy)를 운영 중인 오너 셰프 박정현. 네 곳 모두 한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캐주얼 비스트로부터 파인다이닝까지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서울살롱은 라면과 삼겹살구이, 송편 칵테일 등 서울의 캐주얼한 술집에서 영감을 받았고, 아토보이는 밥과 국, 반찬이라는 한식 반상의 개념을 가볍게 풀어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아토믹스는 한국의 다양한 조리법을 중심으로 코스 요리를 선보이고, 나로는 장어 솥밥과 한국식 치킨, 참치회 비빔밥 등 한국 일품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각 레스토랑을 다른 스타일로 구성했어요. 뉴욕에 한국의 다채로운 식문화를 소개하는 제안서처럼요. 모든 레스토랑이 셰프의 삶을 반영하고, 고객이 단순한 식사를 넘어 오감을 열고 경험하길 바라죠.”
박정현 셰프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의 유명 요리 학교인 CIA에서 유학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영국 레드버리(The Ledbury)에서 반년 정도 일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현장에서 뛰어난 셰프와 동료들에게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데 굳이 돈을 쓰며 학교에 들어갈 필요를 못 느꼈어요. 그래서 졸업 후 호주의 레스토랑으로 떠났죠. 그곳에서 파인다이닝이 아닌 캐주얼한 요리로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는 가장 뜨거운 한국인 셰프 중 한 명이다. 한국 음식을 독창적이면서도 위트 있게 해석해 선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찾고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면서 살아 있음을 느껴요. 뉴욕뿐 아니라 한국의 레스토랑 커뮤니티에도 좋은 영향을 주며 함께 가고 싶어요.” 그는 현재 균형을 고민하고 있다. “음식은 모두의 일상에 존재하지만, 특정 가격과 경험을 하게 하는 음식이 삶에 필수는 아니죠. 셰프는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 그리고 생존과 일상, 이렇게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어요. 이런 독특함을 이해하면서 좋은 음식을 연구해요. 물론 즐거운 과정입니다.”
Singapore, Dasol Kim
싱가포르 최고의 프렌치 파인다이닝으로 꼽히는 레자미(Les Amis)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김다솔 헤드 셰프. 세바스티앙 레피누아(Sebastien Lepinoy) 총괄 셰프와 함께 신메뉴 개발에 주력한다. 레자미는 1994년 문을 연 파인다이닝이다. 명망 있는 레스토랑인 만큼 이곳에서 신메뉴를 개발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쌓아온 완벽에 가까운 레시피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줘야 하니까. “8년이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지난 시간은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죠. 2016년 싱가포르에 미쉐린 가이드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2스타를 받았어요. 팀원 모두 기뻐했지만 더 높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죠.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다 당연한 거죠. 그렇게 3년 뒤, 모든 셰프가 꿈꾸는 미쉐린 3스타를 받았어요. 주방에서 매일 일하다 보면 때론 지쳐요.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도 변화와 진전은 일어나죠. 레스토랑도, 삶도 비슷해요.”
김다솔 셰프에게 싱가포르의 매력은 1년 내내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가 뜨거운 열기로 뒤섞인다는 것. 음식 문화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국가의 먹거리가 있는 호커 센터(음식을 만들어 파는 노점과 상점을 모은 야외 복합 시설)부터 파인다이닝까지 골고루 존재하는 이곳엔 한계도 편견도 없다. 이 도시가 그녀에게 준 최고의 가르침은 세계 최고의 식재료가 가장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것. “셰프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세계 최상의 식재료를 찾아내는 거죠. 우리 레스토랑의 철학이기도 해요. 재료 생산자나 공급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요리의 일부죠. 수입산보다 국산이 무조건 좋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세계 각국에서 이어지는 고도의 물류 시스템 덕분에 수입 식재료가 현지 식재료 이상으로 신선하고 훌륭하기도 하죠. 재미있는 점은 늘 여름인 것 같은 이곳도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거예요. 시즌에 따라 달라지는 제철 재료를 활용해 요리에 계절감을 더하죠.” 그녀는 셰프로서 언제까지나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싶다. “여성으로서 후배들에게 굳건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좋은 기회가 온다면 오롯이 나의 색깔을 담은 요리를 선보이는 팀도 꾸리고 싶고요.” (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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