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여행을 떠났다
고요함을 찾아 여행하라. 세상은 침묵하고 자연만 속삭일 때, 진짜 회복이 가능하다.
수평선 위로 첫 빨간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호흡이 느려졌다. 그간 몸에 쌓인 긴장이 천천히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요르단 남부 약 2억2,000평에 달하는 땅에 펼쳐진 화성 같은 붉은 사막, 와디 럼(Wadi Rum)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을 직감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그곳에서 시간이 사막의 리듬에 맞춰 늘어나는 그런 특별한 경험 말이다.
와디 럼은 아주 특별한 장소다. 주기적으로 요르단을 여행한 지난 6년간 나는 이 사막을 10번 넘게 방문했다. 노란색, 흰색, 붉은색 모래 위로 석회석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맥이 장엄하게 솟아오른 광활한 풍경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곳 사막을 집이라 부르는 베두인족 몇몇과도 친구가 됐다. 인터넷이 잘 안 터진다는 핑계로 이메일과 소셜 미디어를 끊임없이 체크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은 덤이었다.
하지만 내가 와디 럼을 계속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의 특별한 고요함 때문이다. 사막의 고요함이란 소리의 부재로 인한 것이 아니다. 소음의 부재로 완성되는 것이다.
소음은 우리 생활의 배경음악처럼 자리 잡았고,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간다. 야외에 있을 때도 예외는 아니다. 국립공원 관리청은 자연환경을 침해하는 고속도로와 도시 공간이 계속 건축됨에 따라 청각 소음 공해가 3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에서 절반이 넘는 자연보호 구역의 소음 수준이 정상 수준의 두 배라는 조사 결과도 내놓았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리 마즈(Leigh Marz)와 저스틴 존(Justin Zorn)이 2022년 출간한 <골든: 소음 가득한 세상에서 느끼는 침묵의 힘(Golden: The Power of Silence in a World of Noise)>에 따르면, 소음은 “달갑지 않은 소리이자 자극으로, 내외부를 모두 들쑤시는 시끄러움이다. 한마디로 원치 않는 방해 요소다”. 이 책은 소음을 세 가지 수준으로 분류한다. 청각적 소음(잔디깎이 소음이나 상업용 트럭, 비행기 소음 등), 우리의 제한된 집중력을 갉아먹으며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알람 등 정보의 소음, 그리고 그칠 줄 모르고 퍼부어 스트레스와 불안이 가중되는 우리 내부의 독백이 바로 그것이다.
마즈와 존은 “사회적 수준에서 소음은 가장 널리 알려진 중독”이라고 언급하면서, 소음으로 방해받지 않으면서 스스로와 교감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회복력이 있는 공간, 즉 고요함으로 회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기도 하지 않은가? 단순히 소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넘어, 마음을 회복하는 조용한 곳이 머금은 고요함에는 존재감이 있다. 종교적 혹은 정신적 경외감을 느끼는 순간이나, 기타를 치거나 조깅을 하며 어떤 흐름을 느끼는 순간,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순간, 삶을 변화시키는 여행에서 중요한 경험을 하는 순간에서 그런 존재감을 느껴봤을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부유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 광활하게 펼쳐진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와디 럼을 여행하며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가 고요하다고 느끼는 공간은 아무 소리가 없는 공간이 아니다. 저물녘 사구에 앉아 있으면 모래를 쓸어가는 잔잔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이 되어 묵었던 텐트를 떠날 때도 근방을 떠돌다 돌아오는 낙타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막의 밤, 모닥불을 앞에 두고 이어가던 느긋한 대화가 멈추는 순간에도 불꽃의 타닥임이 긴 침묵을 메운다. 이 고요한 존재감이야말로 진정한 나에게 닿을 수 있게 해준다. 마즈도 이런 관점에 동의한다. “우리 둘 다 뉴멕시코의 상그레데크리스토(Sangre de Cristo)산의 아무도 밟은 적 없는 눈밭 한가운데나 알래스카의 깊은 야생 한가운데처럼 청각적으로 조용한 환경에서 고요함을 찾는 것을 좋아하지만, 기나긴 생각의 꼬리를 놓아버리고 몰입하게 만드는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또 다른 종류의 고요함을 발견한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고요함을 경험하면 실질적인 이득이 많다고 말한다. 고요함이 스트레스와 불안 지수를 낮추고, 숙면에 도움을 주며, 집중력과 창의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또한 잘 살아가기 위해 고요함이 필요한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증가하는 소음 공해가 애벌레부터 벌새, 돌고래, 고래에 이르는 셀 수 없이 많은 야생동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생활 패턴을 방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딜 가든 고요함을 찾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 사람들의 여행에 영향을 준 핵심 트렌드 역시 고요함이었다. 여행 예약 사이트 부킹닷컴이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여행자의 40%가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응답했다.
귀중한 청각적 아름다움과 순수한 자연의 고요함을 전해주는 자연 그대로의 광활한 장소처럼 지구에 남아 있는 조용한 장소를 보호하자는 ‘콰이어트 파크스(Quiet Parks)’ 운동은 2019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비영리단체는 조용한 야생의 자연을 파악하는 것 외에도 전 세계 9개 도시를 ‘조용한’ 장소로 선정했으며(레이캬비크의 헤이드뫼르크(Heiðmörk) 국립공원이나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테이버(Tabor)산 공원 등), 여덟 곳 이상을 평가하고 있다.
이미 많은 여행자가 여행지를 정할 때 고요함과 평온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 런던에 거주하는 프로젝트 매니저 크리스티나 바라바(Kristina Baraba)는 2022년 여름 시칠리아에 있는 에올리에 제도에 여행을 다녀왔다. 인터넷이 안 터지는 곳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방랑하는 사진가 카산드라 잭슨-베이커(Cassandra Jackson-Baker)는 소음과 방해 요소를 피해 지난 10년 동안 마데이라 북서쪽 해안가에 자리한 상비센트(São Vicente)의 외딴곳에 작은 집을 빌려 살고 있다. “고요하고 잔잔한 세상에서 창의력이 가장 잘 발휘되더라고요.” 그의 말이다. 여행 블로거이자 작가 라 카르미나(La Carmina)는 일본 고야산의 절에 머물면서 일본에서 가장 큰 묘지인 오쿠노인(Okunoin)의 고요한 숲길을 거닌 뒤로는 여행 일정에 평화로운 장소를 꼭 포함시킨다고 한다.
마즈와 존은 이렇게 힘주어 주장한다. “침묵은 사치품이 아니며, 일부 부유한 자만 누릴 수 있어선 안 된다. 고요함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생존 메커니즘이자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이들은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 외에도 일상에서 고요함을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자연의 파편을 찾아 ‘급속 충전’ 하는 것이다.
나는 와디 럼을 떠나 그 모든 의무며 알람, 스트레스가 서서히 나를 옥죄는 책상머리로 돌아갈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내 안에도 그 고요함에 닿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사막에서 내가 느낀 모든 감각이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어서 빨리 돌아오라며 손짓하고 있으니 말이다. (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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