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아트 & 컬처의 글로벌 총괄 ‘야냐 필’은 어떤 집에 살까?
샤넬 아트 & 컬처 글로벌 총괄 야나 필은 거대한 공업용 건물을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의 아트 컬렉션을 위한 집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전문 디자인 팀을 꾸렸다. 탁월한 안목으로 메마른 땅에서도 영감을 피워내는 그녀는 예술계의 진정한 마에스트로다.
뉴욕의 수많은 고급 레지던스를 설계하고 디자인한 성공적인 건축가 장 가브리엘 노이콤(Jean-Gabriel Neukomm)에게도 야나 필(Yana Peel)은 까다로운 고객이었다. “최종 건축 도면이 완성되기 직전에 작업 방향이 완전히 뒤바뀐 일은 끔찍했어요. 100장짜리 문서를 3주 만에 다시 정리했죠. 그런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시간과 예산에 맞춰 모든 걸 마무리했다는 것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노이콤의 증언이다. 그리고 결국 로어 맨해튼에 자리한 이 건물은 완공되자마자 뉴욕의 새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모든 계획의 키를 쥐고 있던 이 집의 주인 야나 필은 온갖 복잡한 문제를 언제나 침착하게 처리했고, 자신이 직접 모은 전문가 집단에게 전적인 신뢰와 응원을 건넸다. 이 드림 팀엔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AD>가 선정한 위대한 디자이너 100인 중 한 명인 프란시스 술타나(Francis Sultana)도 포함되어 있었다. 필은 끊임없이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급박한 상황에도 친구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며 타고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샤넬의 아트 & 컬처 글로벌 총괄로서 지역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을 확장하며 쌓아온 내공이었다. 그보다 훨씬 전에 필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관장을 지냈고, 예술을 후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선사업을 주창하는 아웃셋 컨템퍼러리 아트 펀드(Outset Contemporary Art Fund)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다. 런던 테이트 갤러리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국제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샤넬 바깥에서도 예술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필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몬트리올의 맥길(McGill) 대학교와 런던 정치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을 졸업한 진정한 글로벌 피플이다. 오랫동안 영국에 살다가 홍콩으로 넘어가 7년을 거주했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지금껏 살고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 미국에 장기간 머무는 일이 잦아지면서 뉴욕에도 가족과 함께 집처럼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그녀는 새 프로젝트에 대한 설렘을 안고 안식처를 구상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 후 3년에 걸친 리모델링 작업이 이어졌고, 마침내 2년 전 그녀의 본격적인 뉴욕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필은 처음부터 휘트니 미술관과 뉴 뮤지엄까지 걸어서 자주 오갈 수 있는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집을 원했다. 단골 카페와 좋아하는 스포츠 브랜드 아웃렛의 위치까지 모두 고려한 선택이었다. 마침 그녀를 포함한 네 가족 모두 웨스트사이드 고속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러닝을 즐기곤 했고, 다 함께 첼시의 크고 작은 미술관도 즐겨 찾았다. 필은 도시적이고, 섹시하고, 예술적이고, 디자인적인 미감이 뛰어나면서도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집을 원했고, 그녀는 목표한 것은 반드시 이뤄내는 여성이었다.
건물 정면은 원래 있던 건물의 파사드가 그대로 보존된 모습이지만 내부는 완전히 걷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구성한 것이다. 그 결과 아늑한 루프톱과 테라스, 데크와 널찍한 지하 공간을 모두 아우르는 지금의 구조가 탄생했다. “이 건물은 원래 베이커리였어요.” 필이 설명했다. “그래서 너비가 24m나 되는 거예요! 이 건물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죠.”
1층에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린 채광과 층고는 압도적이었다. 현관을 지나 실내 깊숙이 입성하려는 순간 마주한 3.5m 높이의 장엄한 황동 문이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티스트 미셸 오카 도너(Michele Oka Doner)의 작품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공학적으로 엄청난 기술력이 들어간 작품입니다!” 술타나가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강렬한 인상의 문을 지나면 필의 놀라운 아트 컬렉션이 주르르 진열된 갤러리 같은 공간으로 곧장 이어진다. 테라스의 바닥을 겸하는 유리 천장이 실내에 부드러운 빛을 고루 전달하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공간을 저의 예술품에 할애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새하얀 벽에 작품을 정갈하게 진열하는 식의 뻔한 배치는 사양했죠.”
이전에 필의 런던 집도 디자인한 술타나는 필의 수많은 애장품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도 안락한 분위기의 공간을 탄생시키기 위해 골몰했다. “야나는 제가 홀로서기를 시도한 후 처음 제대로 마주한 고객이었어요. 우리는 서로의 예술혼을 알아보았죠. 제대로 자극했고요. 우리의 가장 큰 공통점은 뭔가를 디자인하는 여정 자체를 매우 즐긴다는 것이에요. 다양한 예술가와 교류하며 서로의 욕구가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선입견을 깨부수고, 새롭게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죠.” 술타나가 이야기했다.
자연 채광을 충분히 흡수하도록 세심하게 설계된 나선형 계단 통로로 연결된 이 4층짜리 건물에는 함부로 건드리기 조심스러운 예술 작품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2층에 마련한 아이를 위한 알록달록한 학습 공간은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가 벽면부터 책상, 의자까지 모두 맞춤 제작한 하나의 설치미술과 다름없었다. “파르도가 아주 신이 나서 의자까지 만들어줘 깜짝 놀랐어요.” 필이 웃었다.
끝없는 창작열과 폭발적인 시너지는 예술가와 긴밀히 호흡하며 작업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술타나는 말했다. “의뢰하고 싶다는 강한 확신을 가진 후원자는 예술가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예요. 그냥 작품이 좋아서 구입하는 고객과는 엄연히 다르죠. 뭔가를 의뢰한다는 것은 그 예술가를 후원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직감과 열망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만 가능하거든요. 야나는 그런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어요.”
노이콤은 의뢰인이 다름 아닌 야나 필이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필은 차분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쳐요. 그리고 흔들림 없는 취향과 비전을 지닌 사람이죠. 창작과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고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재주까지 탁월해요. 정말 대단하죠.” (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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