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 사탕, 이 ‘검은 맛’을 되살리겠다고 선언한 남자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짭짤한 맛으로 논란을 일으킨 감초 사탕이 전 세계인에게 충격적인 뒷맛을 남긴 후 긴 시간이 지났다. 이 ‘검은 맛’을 되살리겠다고 선언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보그 라이프>가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짙은 밤색의 감초 덩어리를 가득 실은 채 느릿느릿 돌아가는 거대한 통을 내려다보니 부글부글 끓는 타르 용광로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이른바 ‘슬로 크래프티드(Slow Crafted)’라고 불리는 이 공장의 제조 방식이 4~5시간에 걸쳐 끈끈한 감초 덩어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감초 맛 사탕으로 유명한 라크리츠 바이 뷜로(Lakrids by Bülow, ‘라크리츠’)의 창업자 요한 뷜로(Johan Bülow)의 설명을 통해 이해한 광경이다. 코펜하겐 외곽에 있는 라크리츠 생산 공장은 조리기에서 뿜어 나오는 감초의 단내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카만 감초 덩어리가 줄줄 뽑혀 나오고 있었다.
“한번 드셔보세요.” 뷜로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차곡차곡 쌓인 뜨거운 감초 덩어리를 조금 떼서 내게 건넸다. 슈퍼에서 사 먹은 것보다 훨씬 강한 단맛이 느껴졌고, 예감한 대로 강렬한 짠맛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실내의 열기 때문인지 맛 때문인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이 까만 혼합물을 즐겨 먹던 스칸디나비아인들과 달리 사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초의 매력에 공감하지 못한다. 덴마크 사람이라면 결코 질리지 않는 장난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외국인에게 감초 사탕을 맛보게 한 뒤 그들이 질겁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일이다. 그러나 어느덧 마흔에 다다른 뷜로에겐 그 장난은 별로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감초 사탕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겠다는 포부로 15년 전부터 한결같이 감초를 진지하게 다뤄왔다. “사람들이 감초 사탕을 맛보고 곧바로 뱉어버리는 모습을 본 날에는 밤에 잠이 안 왔어요.(웃음)”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뷜로는 끝내 해냈다. 라크리츠의 성공은 창업자 뷜로를 덴마크 감초 사탕의 왕이자 억만장자에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 서아시아 일대에서 특히 널리 자라는 감초는 현대에 개발된 식재료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약초로 쓰인 감초는 이미 5,000년 전 중국에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집트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우리가 감초 사탕에서 느끼는 특유의 짠맛은 사실 가공 과정에서 첨가되는 염화암모늄 때문이고, 자연 상태의 감초에서도 느껴지는 단맛은 글리시리직 애시드(Glycyrrhizic Acid)라고 하는 감초산에서 비롯된다(독특한 맛의 이 산은 고혈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섭취해야 한다). 어쨌거나 감초는 아주 복합적인 맛을 지닌 식재료다. “감초에는 무려 328가지 냄새와 맛 화합물이 들어 있어요.” 화학자이자 ‘절대 미각’을 자랑하는 리스베트 안케르센(Lisbeth Ankersen)의 증언이다. 안케르센은 음식 관련 강의를 하며 페레로 같은 대기업의 자문에 응하기도 하고, 맛과 미각 분야 전문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감초는 장뇌(녹나무), 민트, 바닐라, 캐러멜, 장미, 제비꽃, 잔디, 라즈베리, 레몬 등의 다양한 노트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입안을 따뜻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어요. 셰프들이 감초를 줄곧 베리나 시트러스 계열의 맛과 즐겨 조합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거예요.” 안케르센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문득 스칸디나비아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라는 식물인 감초가 어떻게 북유럽에서 특히 사랑받게 됐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스웨덴과 핀란드 사람들은 감초 사탕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아이슬란드에서도 오래전부터 감초에 초콜릿을 입혀 즐겨 먹지 않았나. 안케르센이 맞장구쳤다. “스칸디나비아 음식 문화는 보통 현지에서 자라는 식재료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어요. 그러나 감초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온 재료죠. 그뿐 아니에요.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초콜릿과 커피 소비량도 세계 ‘톱’ 수준인데 이것 역시 이 대륙의 식재료가 아니거든요. 디저트는 예외인 모양이에요.”
물론 스칸디나비아에서도 1900년대 전까지는 감초를 오직 약초로만 활용했다. 주로 약국에서 기침이나 인후통 치료제로 판매하다가 20세기 초 독일과 영국에서 감초 추출액에 설탕, 시럽, 녹말을 섞어 만든 검은 사탕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2006년, 스물두 살의 뷜로는 자기만의 소박한 공간에서 감초 사탕의 세계화라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덴마크의 작은 섬, 보른홀름에 있는 어머니 집 부엌에서였다. 당시 코펜하겐에서 레스토랑 매니저로 근무하던 뷜로는 자신만의 사업을 꿈꿨고,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던 차에 보른홀름에서 사탕을 제조하던 삼촌과 감초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운명을 바꾼 것이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뷜로는 다니던 직장을 관두는 결단력을 발휘했고 그간 모은 얼마 되지 않는 돈과 부모님께 빌린 1만 유로를 들고 여자 친구와 함께 보른홀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직접 고급 감초 사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넌 못할 거야’라고 한 말에서 자극을 받았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아니, 할 수 있는데’라고 받아들이는 성격이거든요.”
인터넷에서 그럴듯한 감초 사탕 레시피를 찾아 구현해봤으나 계속 실패하자 그는 구체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 덴마크의 대형 제과 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제과업계는 맛의 비밀을 쉬쉬하기에 바쁜 거대한 조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을 뿐이었다. 웬만한 IT 기업보다도 훨씬 철저한 보안과 비밀 협약으로 이루어진 철옹성 같은 세계였다. “다들 절 비웃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저도 이해합니다. 널리 알려진 제과 제품의 레시피가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죠.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온 그런 제품의 레시피는 사실 극비거든요.”
다행히도 뷜로는 그 후 감초 사탕 레시피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제공하겠다는 호주의 제과 전문가들을 찾아냈다. 감동적이게도 감초 사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오래된 오븐까지 들고 호주에서 날아온 이들은 뷜로와 함께 2주간 밤낮으로 실습에 몰두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덴마크 제과 명인 타게 쿠스크(Tage Kusk)와 뷜로의 훌륭한 동료가 된 볼프 발트너(Wolf Waldner)를 만나자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35년간 감초 사탕을 만들어온 발트너는 뷜로에 따르면 냄새만으로 그 솥에 담긴 감초를 정확히 얼마나 조리했는지 맞힐 정도로 뛰어난 후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뷜로는 이들과 함께 세 달 동안 맹훈련에 돌입했고, 결국 자신만의 첫 오리지널 레시피를 만들어냈다.
“그때 저는 정말 뭐든 다 할 기세였어요.” 뷜로가 회상했다. 갖고 있던 돈은 모두 바닥났고, 1년 반 동안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상태였다. 마침내 여름에만 문을 여는 보른홀름의 어느 작은 가게에서 어렵게 만든 감초 사탕을 판매하게 됐을 때 그의 감정이 어땠는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놀랍게도 뷜로의 첫 감초 사탕은 2시간 만에 ‘완판’됐다. 그의 사탕은 그 후 몇 년 동안 무서운 속도로 팔려 나갔다. 그렇게 뷜로와 그의 브랜드는 제과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뷜로의 제품이 현재 판매되는 다른 브랜드의 감초 디저트와 확연히 구별되는 점은 감초 사탕에 초콜릿을 입혀 ‘당분 막’을 씌운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사실 아이슬란드에서는 몇십 년 동안 이어져온 아주 전통적인 것이지만 덴마크인들에게는 낯선 방법이었다. 그리고 뷜로의 레시피는 이후 유명 셰프들이 감초의 숨은 매력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의 믿음직한 후배이자 레스토랑 노마의 R&D 수석 셰프 토르스텐 빌고르(Torsten Vildgaard)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감초가 식재료로 굉장한 매력을 지녔다고 여긴다. “감초는 단맛과 짠맛은 물론 확실한 감칠맛까지 있어요. 요리에 감초를 약간 가미하면 맛에 깊이와 무게감이 더해지는 것을 곧바로 느낄 수 있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소금을 약간 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거예요. 적당량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포인트죠.” 빌고르가 루바브를 곁들인 요거트 무스에 생감초를 약간 가미하고, 머랭을 올린 레몬 타르트 위에 생감초를 갈아 뿌리는 레시피를 예로 들며 이야기했다.
물론 위대한 성공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사업이 점차 번창하기 시작한 2012년, 뷜로는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하고 있었다.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각종 미팅에 참석하면서도 변함없이 조리실에서 직접 감초 사탕을 만들고 청소까지 전담하는 나날이 계속 이어졌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가 그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샤워하기 전 온수를 데우는 동안 셔츠를 다리며 이를 닦기도 했어요. 시간을 아끼려고요. 지금 돌아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러던 어느 날 뷜로는 의식을 잃었다. “얼굴에 감각이 없더라고요.” 이후 서너 달 정도 그는 일을 내려놓고 회복에 집중했다. 아찔한 경험이었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휴식 시간이었다. “과로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일에 완전히 복귀하기 전 그는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설정했다. 그 후 뷜로는 일주일에 최대 40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쓰겠다는 원칙을 갖게 됐다.
2016년 뷜로는 회사 지분 대부분을 스웨덴 투자 펀드사 발레도(Valedo)에 매각했다. 그리고 그 일로 그는 하룻밤 사이 엄청난 부자가 됐다. 물론 경제적 자유를 획득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미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크리츠를 뱅앤올룹슨처럼 덴마크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그의 마지막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아직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해요. 새로운 뭔가를 개발하고 사업을 벌이는 것도 제 성향과 잘 맞아떨어지고요. 그리고 새로운 맛을 경험한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 가득한 표정을 볼 때 정말 행복합니다.” (VL)
- 사진
- NICOLAJ DIDRIKSEN
- 글
- LARS ROEST-MAD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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