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인간을 뒤흔드는 유인원의 서사
“No~!” 13년 전에 개봉한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이 보여준 충격의 한마디는 “안 돼!”였다. 사육사에게 괴롭힘당하던 유인원 시저가 외치는 대사다. 이 장면은 인간의 지배를 받아온 유인원이 인간에게 인간의 언어로 자유의지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동시에 1963년 세상에 나온 피에르 불의 소설 <혹성탈출>과 1968년에 나온 동명의 영화를 본 이들이 궁금해했던 부분에 대한 답의 서론이기도 했다. 유인원은 어떻게 지구를 지배했을까?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는 이에 대해 인간의 지배를 거부한 유인원이 세상에 나타났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고 보면 인류의 진화 또한 남들이 하지 말라는 짓을 기어이 하면서 경계를 뚫고 나온 존재에 의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처럼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는 유인원의 진화를 보면서 인류의 진화를 상상하게 하는 영화였고, 흥행과 비평 면에서 성공적인 기록을 써왔다. 덕분에 리부트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까지 나왔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서 인간은 심지어 유인원에게 사냥당한다.
1968년 <혹성탈출>은 인간의 시선에서 유인원이 지배하는 지구를 바라보는 당혹스러운 감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리부트 시리즈는 인간이 아닌 유인원 입장에서 세계관을 펼친다. 유인원은 어떻게 지성과 언어를 갖추게 되었는지, 인류는 왜 멸망했는지. 3편까지 이야기를 이끄는 캐릭터는 유인원의 지도자 시저(앤디 서키스)다. 시저는 유인원을 해방시키고 보호하는 동시에 인류와의 공존을 모색했다. 하지만 시저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는 유인원이 있었고, 유인원과 동등한 존재가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인간이 있었다. 온갖 갈등 끝에 부족을 지켜낸 시저는 3편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 눈을 감았다. 유인원 입장에서 그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아이언맨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4편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시저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이제 유인원 대 인간의 갈등을 그리지 않는다.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인원이다. 그들에게 생겨난 ‘새로운’ 질문은 ‘이제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다. 한쪽의 유인원이 평화로운 삶을 꿈꿀 때, 다른 한쪽은 하루빨리 인간보다 위대한 존재가 되려고 애쓴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보여주는 상상력은 공포스러운 동시에 짜릿하다. 유인원이 지구를 지배했다면, 인간은 어떻게 된 것인가. 영화 속 인간들은 얼룩말 떼와 함께 물을 찾아다닌다. 그들은 그저 먹고 마시고 싶은 본능에 따라 행동할 뿐이고, 언어를 쓰지도 못한다. 그들을 사냥하는 유인원 부족은 “인간은 믿을 게 못 되기 때문에 말살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태초의 인류가 지구를 지배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근력과 털로 무장한 동물에 비해 한없이 약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것이 과연 당연하기만 한 일이었을까?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상상력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멸망한 인류가 남겨놓은 지식과 기술을 유인원이 습득한다면, 인간보다 더 빠른 진화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란 상상이다. 영화 속 빌런인 프록시무스는 과거의 인간들이 “산을 없애고 하늘을 날고, 바다를 뛰어넘어 대화를 주고받던 존재들”이라며 경외한다. 동시에 지성과 언어를 갖춘 유인원도 분명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968년의 <혹성탈출>을 본 관객이라면, 이 상상력이 꽤 그럴듯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 영화 속 유인원은 자기들의 법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의학 기술과 무기까지 발전시킨 존재였으니 말이다. “유인원은 어떻게 지구를 지배했을까”란 질문에 대해 이 영화가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 셈이다. 이렇게 볼 때, 앞선 3부작의 리부트가 위대한 유인원의 탄생을 그렸다면, 4부부터 시작될 새로운 이야기는 원작자 피에르 불의 상상력이 말이 되게끔 만드는 서사를 구축할 듯 보인다. 그 이야기에서도 관객은 역지사지의 상상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마저 유인원 입장에서 인류의 멸망을 고대하게 만드는 이야기라니, 유인원이 주인공인 작품 중 이만큼 인간을 뒤흔든 서사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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