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는 아닙니다만’ 히어로가 한국에서 태어나면 생기는 일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재미있는 것, 팔리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흡수한 뒤 새로운 비율로 혼합해서 로컬라이징해버리는 K-콘텐츠 연금술의 수확이다. 제목처럼 정식 히어로물은 아니지만 히어로가 등장하긴 하는,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다. 초반은 코미디 요소도 강했다.
남주인공 복귀주(장기용) 가족의 내력은 초능력이다. 어머니 복만흠(고두심)은 예지몽을 꾼다. 꿈에서 본 주식 차트나 복권 번호를 이용해 500억짜리 빌딩을 올렸다. 만흠이 불면증에 걸리는 바람에 복씨 집안은 가세가 기우는 중이다. 맏딸 복동희(수현)는 날 수 있다. 하지만 고도 비만으로 비행 능력을 잃었다. 한때 잘나가는 모델이었지만 살이 찐 후에는 매번 ‘을’의 연애를 하느라 가산을 탕진 중이다. 아들 복귀주는 과거 행복을 느낀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리는 바람에 시간 여행을 못하게 되었다. 귀주의 딸 복이나(박소이)는 맨눈으로 상대의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중독으로 고도 근시가 왔고, 대인 관계 기피 성향도 있어서 안경을 벗을 생각이 없다. 이런 설정만 보면 맥락 없는 ‘병맛 코미디’다. 그런데 각종 현대 질병으로 초능력을 잃은 복씨 가족에게 사기꾼 도다해(천우희)가 접근하면서 스릴과 로맨스가 펼쳐진다.
도다해의 무시무시한 대모 백일홍(김금순)은 다해를 귀주와 결혼시켜 500억 빌딩을 가로채는 게 목표다. 다해의 목표는 이 작전을 성공시키고 대모와 안전 이별하는 것이다. 그런데 웬걸, 도다해의 존재가 복씨 가족의 초능력 부스터가 되어버리면서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타임 슬립 능력을 개량해 과거의 큰 사고를 막고 진정한 히어로가 되고 싶은 복귀주, 가족을 잃고 정 붙일 곳이 없던 도다해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최근 K-드라마의 화두인 ‘구원’ 서사까지 가동된다.
액션의 주재료로 쓰이던 초능력을 빌려와 판타지 드라마의 얼개를 구성하려는 시도는 일단 성공으로 보인다. 원래 타임 슬립을 해도 과거 사람과 접촉할 수 없었고, 한동안 타임 슬립 능력 자체도 잃은 줄 알았던 복귀주는 갑자기 도다해가 있는 장면으로 돌아가 그녀를 만질 수 있게 된다. 그들 사이 사건의 시간 배열이 꼬이면서 생기는 미스터리, 그것이 해명되어 아귀가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은 드라마 초반의 주요 재미다. 복만흠의 예언, 복이나의 독심술은 적재적소에서 긴장을 유발하거나 효과적인 복선이 되어준다. 복씨 집안 사람들은 단지 매력적일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능력을 발휘하게 될지가 궁금한 인물들이다. 시청자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좋은 도입부다.
복씨들의 초능력을 확인한 도다해는 잠시 겁에 질린다. 하지만 이내 귀주의 타임 슬립 능력을 역이용해 그에게 사기를 친다. 영리한 각본이다. 로맨스에도 SF든 판타지든 미스터리든 장르적 요소를 더하는 게 요즘의 흐름이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그중에서도 조밀하고 완성도 높은 구성으로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천우희의 능청, 장기용의 카리스마뿐 아니라 김금순, 수현, 박소이, 류아벨의 존재감이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풀어갈 내용 중에는 주인공들의 연애, 복씨 집안 사람들의 정신 건강, 도다해의 트라우마, 복귀주의 과거, 다해와 백일홍의 관계 등 심각한 것이 많다. 초반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깊어지는 멜로 속에서 제대로 수확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럼에도 복만흠의 예지력이 탐날 정도로 매번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드라마임은 확실하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JTBC에서 토·일요일 오후 10시 30분 방송된다. 스트리밍은 티빙,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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