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보그’가 추천하는 헤어 웰니스 전략
아름다움과 건강의 척도인 모발과 제2의 피부로 일컫는 두피. 전통 방식을 계승해 향유를 묻혀 머리카락에 윤기를 부여하고, 깨끗이 정화하고, 빗질하고… 혁신 기술을 적용한 신문물로 관리하는 이 모든 행위는 단순히 미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뜨거운 태양에 손상된 모발은 물론 지친 심신도 치유가 필요한 여름. 부드럽고 향기로운 모발과 내면의 안정까지 누릴 수 있는, 〈보그〉만의 헤어 웰니스를 위한 다섯 가지 핵심 전략을 소개한다.
Bio Brushing
두피 순환 촉진, 머릿결 개선, 정서적 안정감까지, 지금 당장 빗질을 시작해야 할 이유.
어린 시절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단잠에 빠지던 기억이 선명하다.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를 만큼 업무가 쌓였을 때 모니터 앞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엉킨 모발에 손을 집어넣고 쓸어내리는 것은 오랜 습관이며, 마감 작업이 한창인 고요한 사무실, 늘 깔끔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옆자리 선배가 두피 깊숙이 아베다 ‘우든 패들 브러시’로 틈틈이 머리를 빗는 소리에선 ‘ASMR’을 듣고 있는 것 같은 평온함을 느낀다. 헤드 스파에서 테라피스트가 손끝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두피를 긁듯 마사지해줄 때는 그야말로 극락. 누군가는 자신의 모발을 건드리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지만 나는 타인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행위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런 빗질이 감정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데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지난 연말 <뉴욕 타임스>는 모발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으면 모낭 세포가 화학적 신호를 뇌로 전달한다는 주제의 기사를 다뤘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보고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발의 움직임을 토대로 모낭 세포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히스타민을 방출한다. 일명 ‘행복 호르몬’으로 일컫는 세로토닌은 기분, 수면과 소화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히스타민은 우리 몸의 최우선 신경전달물질로 혈액과 혈청의 순환을 늘려 새로운 세포에 물과 영양분을 가져다준다. 연구를 주최한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의 생명공학 교수 클레어 히긴스(Claire Higgins)는 모발 이식 클리닉을 방문해 갓 채취한 모낭을 매우 얇은 막대로 찔러 촉감을 시뮬레이션했다. 모낭은 몸에서 제거되자마자 부패하기에 실험체의 일부이긴 하나, 모낭 세포와 감각 뉴런 사이의 반응이 명확히 확인되었다. “머리를 빗을 때면 이 감각 뉴런이 직접적인 자극을 받기 때문에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히긴스 박사는 말한다. “촉각 세포로 이뤄진 감각기인 ‘메르켈 소체’나 감각 신경 말단 등의 수용기는 모낭 가까이 분포해 모발의 기계적 움직임을 뇌로 전달할 수 있어요.” 모제림성형외과 여성센터 조민규 원장의 의견은 연구 결과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머리를 만지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진 건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학습된 기전일 뿐 아니라 적당한 자극을 받은 모낭이 뇌로 보내는 신호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세로토닌과 히스타민은 세포에 신호를 전달하는 ‘메신저’일 뿐, 실제로 어떤 세포를 표적으로 삼는지에 대한 경로는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기에 우리가 빗질로 인해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구별하고 짚어내는 것은 아직까지 시기상조다. 다만 부드러운 접촉은 피부 신경에서 따뜻한 기운을 유발하며, 긍정적인 감정을 유도한다는 기존 신경과학 연구로 미뤄보아 의미 있는 결과임은 분명하다. 유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빗질해주는 것이 아이의 신체적·심리적 발달을 돕고, 엄마와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은가.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발 주변으로 수많은 신경섬유가 분포한 것은 포유동물에게서 발견되는 유전적 특징으로, 반려동물의 털을 빗는 것이 정신적인 평안함을 주는 사실 또한 이런 메커니즘으로부터 비롯된다. 취재차 만난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허창훈 교수는 “모발이 받는 외부 자극이 뇌로 전달된다는 이론은 과거에 황당하게 여겨졌죠. 모발 학계에 새로운 탐구 영역을 찾아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라며 짚는다. 모낭의 신체적·정서적 역할이 추가로 밝혀짐에 따라 두피 건강과 탈모 개선은 물론 우울증과 신경 치료의 또 다른 지평을 열 거라는 전망이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모발 빗질과 정서적 안정감 사이의 분명한 인과 요인을 꼽자면 바로 두피 혈액순환 촉진. 하루 2회 이상 머리를 빗는 것만으로 두피에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고, 근육이 없는 정수리와 귀 위쪽 전면부의 순환이 개선되며, 뇌의 신경 세포를 깨울 수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목덜미가 유난히 경직되면서 방해받는 후두부의 순환 해결을 통해 긴장성 두통 및 편두통까지 완화된다. 일명 ‘빗질 요법’은 중국 전통 의학 바탕의 치료법 중 하나. 우리의 기(氣)가 모이는 ‘경혈’의 핵심은 머리에 있으며, 그 표면을 자극하는 것으로 다양한 기관을 타고 흐르는 에너지의 균형을 되찾고 신체의 자가 치유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순환이 개선되는 건 결국 염증 반응을 낮추고, 모낭으로 향하는 영양 성분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는 뜻이죠. 모낭 세포의 소형화나 소멸로 가는 원인이 줄어드니 탈모 증세를 한시라도 늦출 수 있고, 성장된 모발을 바깥으로 유인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조민규 원장은 결국 여러 가지 두피와 모발 문제가 해결되면서 심리적으로 느끼는 편안함도 무시할 수 없다며 덧붙인다.
그렇다면 안정감을 얻기 위해 빗질을 자주 해도 괜찮을까? 전문가들이 권고하기론 빗질 횟수 제한은 특별히 없다. 원하는 만큼 해도 좋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강한 빗질이나 끝이 날카로운 빗살은 견인성 탈모를 유발하고 두피와 모발 보호층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브러시 모 끝이 둥근 천연 소재를 선택해 모질과 두피 타입에 알맞은 빗질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인 방법은 머리숱에 따라 2~4개 섹션으로 모발을 나눈 다음 중간부터 끝까지 빗으면서 엉킴을 풀어주는데, 특히 자고 일어난 아침이나 취침 직전에 일자 형태의 빗을 사용하면 좋다. 두피와 모발 사이의 쿠션이 약한 직모의 경우 부드러운 패들 브러시를 선택한다. 곱슬머리나 웨이브가 많은 타입은 직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빗질하는 것이 좋은데, 빗살이 굵고 간격이 넓은 브러시를 사용하는 것이 모발의 윤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손상모는 잦은 빗질이 오히려 모발의 큐티클을 거칠게 만들 수 있으니 머리칼 사이로 쉽게 미끄러지는, 실리콘 같은 합성 강모가 적당하다.
특히 여름은 빗질이 샴푸만큼 두피 관리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계절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활동하는 피부과 전문의 프란체스카 푸스코(Francesca Fusco)는 “두피는 말단 신경과 피지 분비샘이 많이 모여 있는 신체 부위입니다. 더운 날씨엔 모낭염을 일으키는 곰팡이 균인 ‘피티로스포룸’과 유분이 쉽게 축적되면서 비듬과 불쾌한 냄새를 유발하죠”라고 지적한다. 피지는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브러싱을 통해 모발을 따라 피지가 분산되고, 죽은 각질과 노폐물이 제거돼 두피의 pH 밸런스가 최적화된다. 샴푸 직전 머리를 가볍게 빗어주는 것은 이 불순물을 한 번 더 걸러내는 과정이니 참고하자.
이쯤에서 여러분이 간과하기 쉬운 노하우를 하나 전한다. 바로 브러시의 청결 관리. 피지와 먼지, 죽은 각질과 브러시 모의 보푸라기가 달라붙은 더러운 상태라면 결국 정화된 환경을 다시 오염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명 헤어 스타일리스트 트레이스 헤닝센(Trace Henningsen)에 따르면 머리를 빗으면서 탈락돼 브러시 솔 사이에 낀 모발은 틈틈이 제거하고, 여름에 최소 주 1회 브러시 청소를 권한다. 실리콘·플라스틱 소재 브러시는 따뜻한 물에 샴푸를 소량 푼 뒤 10~15분 정도 담근 다음 헹궈내기를 추천한다. 다만 천연 강모나 나무, 코르크 재질의 손잡이나 천연섬유 브러시는 물에 담그는 행위는 금지. 이때는 샴푸 섞은 물을 브러시 위에 가볍게 한 번 뿌려주고, 깨끗한 칫솔을 사용해 잔여물을 제거한 뒤 미온수로 씻어낸다. 샴푸 대신 균과 냄새를 중화하는 효과를 지닌 식초를 사용하는 방법도 좋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헤어브러시가 종류별로 곳곳에 놓여 있다. 원고를 작성하는 손가락의 속도가 느려질 때마다 헤어라인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모발 사이로 빗이 움직인다.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에서는 불면증 치료를 위해 3시간 내내 머리를 쓱쓱 빗는 소리만 담은 유튜브 콘텐츠가 재생되고 있다. 그리하여 나의 미간에 바짝 들어간 힘이 풀리고, 머릿속은 한결 맑아지며, 거친 모발은 조금 더 부드럽고 청결해졌다. 모두가 키보드를 바삐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편집부 한가운데서 외치고 싶다. “빗질 하실래요?”
Spray Sensual
오후 4시, 감각이 곤두서는 모발의 ‘기묘’한 향. 헤어 아티스트와 톱 모델이 여름 향기 필수품을 논한다.
AMOS PROFESSIONAL ‘Repair Cica Ampoule Treatment’ 산뜻한 제형의 아모스프로페셔널 ‘리페어 시카 앰플 트리트먼트’는 젖은 모발에 분사하면 머릿결이 즉각적으로 부드러워지는 것은 물론 감미로운 꽃 향을 풍긴다. 손상모에 여러 번 에센스를 레이어드하지 않아도 되는 점에서 강추. 은은한 향에 스타일링을 마친 셀럽들이 제품명을 여러 차례 문의할 정도다. 윤서하 키츠 헤어 & 메이크업 원장
DIPTYQUE ‘Ilio Hair Mist’ 평소 모자를 자주 쓰는 편이라 어떤 상황에도 꺼내 향을 입힐 수 있는 헤어 미스트를 파우치에 추가했다. 청량한 과일 향이 느껴지는 딥티크 ‘일리오 헤어 미스트’는 한마디로 싱그러운 초여름 그 자체. 모발 끝에서 에너지 넘치는 계절을 만끽한다. 오송화 모델
BYREDO ‘Bal D’Afrique Hair Perfume’ 바이레도 ‘발다프리크 헤어 퍼퓸’의 달콤한 머스크 노트에선 이국적인 휴양지가 떠오른다. 착 달라붙는 슬릭 헤어를 즐기는 편인데, 모발 전체에 분사한 뒤 가르마를 따라 빗어주면 한 올 한 올에 촉촉한 윤기가 채워진다. 낮부터 밤까지 오랜 시간 존재감을 발산하는 향. 요요 모델
OUAI ‘Dry Shampoo Foam’ 해외 출장길에 캐리어 가득 채워 오는 웨이 ‘드라이 샴푸 폼’. 소량만으로도 두피와 모발에 밀착돼 유분을 깨끗이 흡수하니 땀에 젖은 축축한 모발도 재빠르게 손질할 수 있다. 다소 진한 향이 불쾌한 냄새를 가려준다. 최은영 헤어 스타일리스트
JO MALONE LONDON ‘Wood Sage and Sea Salt Hair Mist’ 지하 스튜디오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먼지와 온갖 퀴퀴한 냄새가 달라붙는다. 촬영 직후 중요한 미팅이나 약속이 있을 때 사용하는 조 말론 런던 ‘우드 세이지 앤 씨 솔트 헤어 미스트’. 신선하고도 깊은 잔향이 매력적이다. 백흥권 헤어 스타일리스트
DAVINES ‘OI Oil’ 모발에 빠르게 흡수되는 가벼운 텍스처의 다비네스 ‘오아이 오일’. 식물성 오일 베이스로 향수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기분 좋은 향이 사방으로 퍼진다. 자외선 차단 기능까지 겸비해 야외 촬영 시 자주 손이 가는 제품. 가베 헤어 스타일리스트
SEEEMS ‘Performance Body Refresher Muir Wood’ 머리부터 발끝까지 활용 가능한 보디 미스트를 선호한다. 운동 전후, 캠핑이나 야외 활동 시 샤워가 어려울 때를 위해 고안된 씸스 ‘퍼포먼스 바디 리프레셔 뮤어우드’는 여름에 늘 상비하는 아이템. 스파이시한 우드 계열의 향으로 더위에 지친 심신까지 달래준다. 장혜연 헤어 스타일리스트
ORIBE ‘Serene Scalp Oil Control Treatment Mist’ 해변 촬영이 유독 많은 계절. 뜨거운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돼 붉어진 모델의 두피 보호를 위해 오리베 ‘세린 스칼프 오일 컨트롤 트리트먼트 미스트’를 사용한다. 스타일링 전 단계에 물로 적신 두피와 모발 전체에 뿌려주면 땀과 피지 분비로 인한 번들거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조미연 헤어 스타일리스트
LA COLLECTION PRIVÉE CHRISTIAN DIOR ‘Gris Dior Hair Mist’ 최근 여러 번 탈색해 모발 컨디션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모발에 윤기를 더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라 콜렉시옹 프리베 크리스챤 디올 ‘그리 디올 헤어 미스트’는 중성적이고 시원한 플로럴 향이 마음에 든다. 머리끝에서 풍기는 우드 향은 우아한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김희원 모델
BALMAIN HAIR ‘Dry Shampoo’ 덥고 습한 지역으로 출장을 떠날 때마다 챙기는 발망 헤어 ‘드라이 샴푸’. 습기와 번들거림을 잡아주면서 매트한 텍스처를 더해 자유자재로 스타일링 가능하다. 파우더 타입이지만 하얗게 남지 않고, 헤어스프레이를 모근 가까이 한 번 더 뿌리면 오리엔탈 우디 노트가 오랫동안 머문다. 홍현승 헤어 스타일리스트
MAISON FRANCIS KURKDJIAN ‘Baccarat Rouge 540 Scented Hair Mist’ 쇼트커트를 지속한 뒤로 오히려 얼굴에 닿는 모발의 향에 관심이 커졌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 ‘바카라 루쥬 540 센티드 헤어 미스트’는 향수보다 좀 더 가벼운 느낌이라 외출 전 꼭 사용하는 아이템. 잔머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데도 효과적이다. 엘리스 모델
& OTHER STORIES ‘Perle de Coco Hair Fragrance’ 촬영이 끝나고 나면 스타일링 제품으로 뒤덮인 모델의 머리를 물로 가볍게 샴푸해준 다음, 불가리안 로즈 향이 돋보이는 딥티크 ‘롬브르 단 로’ 향수와 코코넛을 품은 향기의 앤아더스토리즈 ‘펄 드 코코 헤어 향수’를 섞어 뿌려주곤 한다. 니치 향수 못지않은 특별하고 중독적인 향이 완성된다. 이현우 헤어 스타일리스트
MISE EN SCÈNE ‘Perfect Serum Mist’ 해외 활동이 많다 보니 단 하나로 해결되는 효율적인 기능의 제품을 여러 개 두고 사용하게 된다. 윤기 있는 흑발을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가 추천해준 미쟝센 ‘퍼펙트 세럼 미스트’는 친숙하고도 달콤한 향. 한국에 올 때마다 여러 개 구매해 사계절 내내 애용 중이다. 클로이 모델
L’ORÉAL PROFESSIONNEL PARIS ‘Metal DX Professional Concentrated Oil’ 상큼한 과일 향의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 ‘메탈 DX 프로페셔널 컨센트레이티드 오일’. 오일 제형이라 모발에 향이 단단히 고정된다. 푸석한 탈색모에도 매끄러운 윤기를 입혀 밝은 머리 색이 한층 쨍해 보인다. 박내주 빗앤붓 원장
Blow High
최적의 온도와 신속한 건조, 독보적인 내구성까지. 뛰어난 기술력의 산물, 프리미엄 헤어드라이어라는 신세계.
고개를 숙이면 검고 울창한 숲이 시야를 덮고, 그때부터 두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뿌리부터 뜨거운 바람으로 물기를 제거한다. 곧이어 피가 몰리면서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방금 마친 샤워가 무색하게 불쾌한 더위가 올라온다. 전쟁 같은 이야기는 여름철 나의 머리를 말리는 모습이다. 누군가는 복에 겨운 소리라 핀잔할 수 있겠지만 숱 많은 장발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격하게 공감할 법한 고민일 것이다.
30여 년의 고통 끝에 처음 맞이한 프리미엄 헤어드라이어는 다이슨의 ‘슈퍼소닉’. 손에 감기는 그립감, 노즐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스타일링과 바람 강도 등 6년이 흐른 지금까지 잔고장이 없는 점 역시 특출한 제품력을 방증하니 60만원의 가격 장벽을 허물 만큼 경험은 만족스러웠다. 슈퍼소닉이 국내 첫 출시된 것이 2016년, 그간 프리미엄 헤어 케어 시장은 고속 성장하며 몇십만원을 호가하는 헤어 툴 역시 우리 여자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전 세계에서 매일 머리를 감는 인구가 평균적으로 38%인 데 비해, 한국인은 65% 이상이 매일 머리를 감으며 헤어드라이어 등 열 손상에 빈번히 노출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예견된 성공일지도 모른다.
30만원에서 120만원대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는 요소는 바로 남다른 기술력. 최근 이들이 주목하는 공통분모는 바로 ‘두피 온도’다. 두피 온도가 60도를 넘어서면 탄력 저하와 탈모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로부터 온도 감지 기능이 헤어드라이어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다이슨의 신작 ‘슈퍼소닉 뉴럴 헤어드라이어’는 두피에 적외선 빔을 투사해 기기와 모발의 거리를 측정하는 센서로 두피에 닿는 바람의 온도를 일정하게 55도로 유지한다. 지난해 8월 출시돼 사전 예약부터 ‘완판’을 기록한 필립스 프레스티지 라인의 헤어드라이어 역시 주변 기류의 온도를 감지하는 센서를 기기 앞뒤로 배치하고, 모발 표면의 온도를 지속적으로 측정하며 온도를 조절한다. 지난해 국내에 상륙한 미국 브랜드 샤크 뷰티 또한 열 제어 시스템을, 일본 뷰티 브랜드 바이오프로그래밍은 두피의 수분이 지나치게 마르지 않도록 양자 레벨 기술을 탑재했다. “프리미엄 디바이스의 유입이 늘면서 이제 소비자의 초점은 가격과 단순 기능이 아니라 순수 기술력으로 옮겨졌습니다. 새로운 혁신만으로 겨루는 헤어 시장으로 성장한 것이죠.” 바이오프로그래밍 권성호 매니저가 최근 추세를 분석한다.
이쯤 되면 과연 얼마나 ‘값어치’를 하는 기술력일지 궁금할 것이다. 여러 디바이스를 사용해본 결과 무엇보다 크게 와닿은 것은 바로 뛰어난 효율성. 타고난 모발로 인해 가장 뜨거운 바람을 사용하는 편임에도 두피가 손상되는 불상사가 없으며, 곱슬거림, 잔머리, 약한 뿌리 볼륨 등 다채로운 모발 고민에 따라 알맞은 기능의 동작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설정돼 있다. 매일 사용하는 기기인 만큼 효율성이 쌓이며 드높아지는 삶의 질이 하루가 다르게 체감된다. 우리 모두의 시간은 금이니까.
Glossy Ritual
두피와 모발 안팎, 그 깊숙한 내면의 심신까지 치유하는 헤어 오일링.
탐스러울 정도로 굵고 매끄러운 아시아 여성의 흑발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그 기원이 궁금해지곤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헤어 살롱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트리트먼트를 경험했지만 늘어난 건 발바닥의 굳은살과 아무리 노력해도 모질의 한계는 극복할 수 없다는 깨달음뿐이었으니까. 타고난 유전적 차이는 현존하는 헤어 케어 제품으로는 불가능할까? 아시아 여성의 모발 관리 비법이 궁금해지는 시점에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헤어 오일링(#HairOiling)’이라는 익숙한 듯 낯선 해시태그였다. 본래 헤어 오일이란 윤기를 위해 스타일링 마무리 단계에 사용하는 제품 아닌가. 뒤에 ‘~ing’라는 현재형 규칙동사가 붙는 데는 거창한 행위가 숨어 있는 듯했다.
모발이 뻣뻣하고 긴 여성들 사이에서 특히 유행 중인 헤어 오일링의 정체는 이렇다. 두피에 헤어 오일을 여러 방울 떨어뜨린 다음 괄사와 같은 마사저를 활용해 흡수시킨다. 모발 끝까지 여러 번 빗어주거나 따뜻한 스팀 타월로 감싸 오일이 스며들도록 둔 뒤 샴푸로 헹궈내면 끝. 이 과정을 주기적으로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모발이 촉촉한 수분을 머금은 것처럼 건강해질 뿐 아니라 빠르게 자라고, 굵어지며, 심지어 탈모까지 완화된다며 극찬하는 영상이 틱톡에서 200만 개 이상 업로드되며 SNS를 뜨겁게 달궜다. 여름철 자외선에 푸석해진 모발, 자극받고 건조해진 두피에 이만한 가성비의 트리트먼트가 없다는 것이다. 탈모 증세나 비듬, 두피 가려움증이 고민이라면 혈액순환을 강화해 모낭에 대한 혈액 공급을 개선하는 로즈메리 오일, 뚝뚝 끊어지는 손상 모발은 ‘리페어’ ‘본딩’ 기능을 강화한 단백질 성분, 모발 성장을 촉진하는 아르간 오일과 모발 한 올 한 올에 향기를 입히는 향 위주의 오일까지. 고민에 따라 알맞은 성분의 헤어 오일을 선택하는 방법도 다채롭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 단순히 틱톡에서 생겨난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우리 여자들의 오랜 역사 속에 근간을 둔 뷰티 루틴이라는 점이다.
예로부터 아시아에서는 오일로 두피와 모발을 마사지하는 것을 일상으로 여겨왔다. 칠흑 같은 아름다운 머릿결을 위해 동양권에서 동백이나 산수유, 살구씨에서 추출한 기름을 발라가며 머리를 빗어 엉킴을 정돈했고, 남아시아에서는 전통적인 아유르베다 관습으로 천연 허브 오일을 활용하는 헤어 오일링이라는 의식을 어머니에서부터 딸로 여러 세대를 거쳐 물려줬다. 코코넛 오일, 피마자 오일, 향기로운 꽃 성분을 함유한 오일로 매주 두피를 마사지하며 기름에 듬뿍 젖은 머리카락을 씻어내던 에피소드를 회상하는 남아시아계 지인은 최근 헤어 오일링이 이토록 붐을 일으킨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이쯤 되니 그들의 3,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설의 헤어 오일링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런던 킹스 로드에 위치한 아유르베다 방식을 고수하는 헤어 스파, 티아라 오가닉(Tiara Organic)의 ‘핫 오일링 헤어 트리트먼트’ 프로그램을 예약했다. 튼튼하고 빛나는 모발은 물론 정신적 웰니스를 추구하는 이곳의 헤어 오일링은 전통 의식 그대로 특별한 수제 오일 혼합물을 따뜻하게 데워 사용한다. 입구에 놓인 힌두교 신인 가네샤, 비슈누, 시바 조각상을 지나자 스파의 창립자이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헤어 스타일리스트 딤프스 샹하니(Dimps Sanghani)가 나를 맞이했다.
“인도에서는 지역과 가정마다 특별한 헤어 오일 제조법이 존재합니다. 할머니, 어머니를 통해 전수된 방식이에요.” 딤프스의 말을 듣자 할머니가 내게 라구 소스 레시피를 가르쳐준 경험이 문득 떠올랐다. 신비로운 묘약처럼 구리 소재 그릇에 담긴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노란빛 오일은 그야말로 향긋했다. 암라, 한련초, 가자나무, 민감초 오일 외에도 커리나무 잎사귀, 히비스커스꽃, 인도의 인삼으로 알려진 아슈와간다 등 35가지 이상의 약초 성분과 꽃을 혼합해 전부 손으로 빚어낸 이 오일은 준비하는 데 이틀 정도가 소요된다.
모발을 여러 섹션으로 나눈 뒤 탈지면에 따끈하게 데운 이 오일을 두피와 모발 전체에 도포한 다음에는 약 20분 만에 난생처음 느껴보는 경험이 펼쳐졌다. 손끝으로 힘차게 원을 그리며 시작된 두피 마사지는 때로는 손바닥으로, 때로는 나무 소재 마사저로 정수리와 두피 곳곳에 강한 압력을 가하며 머리가 긁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제야 헤어 오일링 과정이 어린 시절엔 고통스럽고 귀찮았다는 지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 다음 모발을 말 그대로 힘껏 잡아당기고(그래도 참을 만한 정도이니 지나친 걱정은 접어두도록), 마사지한 뒤 오일 흡수를 강화하는 스팀 헬멧을 15분간 착용한다. 그동안에는 손과 팔, 등 위쪽에 지압 마사지가 계속된다. 비건 라인의 샴푸로 모발을 깨끗이 헹구고 말리는 동안 머리카락이 얼마나 부드럽고 풍성해졌는지, 피부에 스치는 몇 가닥만으로도 체감된다. 트리트먼트와 샴푸, 스타일링까지 1시간 반 정도의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 한 친구는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모발에 감탄하면서 곧바로 티아라 오가닉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나 역시 다음 트리트먼트를 학수고대하며 머릿속으로 집에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모발이 건강해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심리적 만족감이 지속됐다. 오일에 함유된 천연 성분과 모근의 미세 순환과 산소 공급을 촉진하는 두피 마사지의 시너지 효과 덕분일 것이다. 긴 요가나 명상을 끝낸 다음 날,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정신이 한결 맑아진 기분이었다. 우드 마사저와 고민과 기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헤어 오일을 구매해 집에서 직접 시도해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다만 수 세기에 걸쳐 효과가 입증되어온 관리법이라 해도 여전히 주의할 점은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피마자 오일, 아르간 오일처럼 두피에 이로운 성분도 있지만 코코넛 오일은 농도가 진해 제대로 헹구지 않으면 두피 모공을 막고 모발 자체를 무겁게 만든다. “젖은 머리칼에 오일을 바르기 시작하면 양 조절이 어렵습니다. 머리카락이 무겁고 번들거리는 것은 물론 모발이 얇을 경우 오일 코팅으로 무게감이 더해지며 오히려 모근의 힘을 약화하는 부작용이 있죠.” 스톡홀름에 위치한 헤어 살롱 ‘누아르(Noir)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스 닐손(Hans Nilsson)은 소량의 오일을 사용하다 필요에 따라 점차 늘려가는 방법을 추천하며 충분한 후속 클렌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뉴욕 소재 페니 제임스 모발학 센터(Penny James Trichology Center)의 페니 제임스(Penny James)는 쉽게 엉키고 손상된 모발의 경우 피마자 오일과 코코넛 오일을 1 대 3 비율로 충분히 섞이도록 20분간 방치한 다음 머리카락에 마사지하라고 권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오일은 순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주로 냉압착을 거친 결과물이기에 스파에서처럼 뜨거운 열을 가할 때 불순물만 생기니 체온 정도로만 오일을 데워야 한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자.
오늘부터 나의 욕실 속 풍경은 이렇다. 선반 위에 종류별로 놓인 여러 헤어 오일 가운데 에센셜 오일 성분의 제품을 두피부터 모발 끝까지 바른 다음 괄사로 정수리부터 목과 어깨까지 마사지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어준다. 샴푸와 컨디셔너 후 타월 드라이만 마친 젖은 모발 끝에 가장 좋아하는 향의 헤어 오일로 마무리하며 아름다워진 모발과 온갖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정신으로 잠든다. Elisabetta Gardini
Shampoo-gasm
절정의 청량감, 극도의 개운함에 도달할 수 있는 샴푸 이야기.
도파민에 중독된 뇌에 휴식을 주고 싶은 마음과 끊임없이 쇼츠를 내리는 손가락의 부조화를 하루에도 수십 번 겪는 요즘, ‘대리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콘텐츠를 발견했다. 해시태그는 ‘#세이크리드워시데이(CécredWashDay)’. 비욘세가 지난 2월 자신의 헤어 브랜드 세이크리드(Cécred)를 론칭하며 공개한 샴푸 영상이다. 그 길고 풍성한 곱슬머리에 거품을 입히고 헹구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미묘한 만족감이 든다. 두피와 모발을 빨래하듯 벅벅 문지르고, 샤워기 헤드가 뿜어내는 물소리는 백색소음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흐름을 타고 사람들은 하나둘 자신의 샴푸 일상을 공개했고, 세이크리드의 SNS 피드는 윤기 넘치는 헤어 모델의 멋진 영상보다는 사실적인 후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샴푸 콘텐츠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진정한 웰니스가 결국 꾸준한 자기 관리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죠. 그를 실천하는 모습을 서로 공유하며 위안을 얻고요. 브랜드에선 그 점을 공략하는 콘텐츠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보그 비즈니스>는 Z세대 사이에서 자신의 샤워 루틴을 SNS에 공개하는 트렌드를 다루며 그 배경을 분석했다. “두피의 ‘피부화’가 다양한 볼거리를 생성하죠. 모발이 자라는 두피 환경을 책임지는, 계절과 두피 타입에 따른 기초 클렌징의 중요성을 점점 많은 사람이 인식하는 겁니다.” 최근 스킨케어 과학을 그대로 적용한 헤어 케어 라인을 선보인 아우구스티누스 바더의 현예림 선임은 덧붙인다.
물론 보고 듣는 간접경험보다 제대로 된 샴푸만큼 커다란 쾌감을 주는 것은 없다. 여름철 탈모와 트러블의 원인이 되는 두피 열을 내리는 동시에 딥 클렌징 효과를 높이는 방법으로 추천하는 것은 바로 샴푸 전 단계의 ‘프리-샴푸 트리트먼트’. “모낭 세포의 회전율을 높이며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피지를 조절할 수 있도록 두피 각질을 제거하거나, 스타일링 제품이 축적된 두피를 깨끗이 세정하거나, 두피와 모발에 수분을 공급하는 등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LA에서 활동하며 셀럽을 담당하는 유명 헤어 스타일리스트 매디슨 클리포드(Madison Clifford)는 최소 주 2회 이 샴푸 전 단계의 트리트먼트를 권한다. 덥고 습한 여름철 욕실의 필수품으로 추천하는 것은 두피에 시원한 기운을 가져다줄 페퍼민트 성분의 스크럽. 피부처럼 카테고리가 세분화된 두피에 알맞은 샴푸 선택 역시 관건이다. 숱이 많거나 머리가 길다면 모발 사이사이 노폐물을 제거하는 샴푸 브러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두피 디톡스를 돕는 트리트먼트부터 샴푸 툴, 유분을 잡아주는 샴푸까지 <보그>가 제안하는 제품을 참고해 더없이 개운한 샴푸 과정을 누려보길!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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