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자 시계 대신 남자 시계를 찾는 이유
젠더 플루이드 룩부터 ‘남자 친구’ 트렌드까지, 여자들의 가느다란 손목에서 묵직한 남자 시계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자 시계의 매력은 무엇일까?
<소피아 코폴라 아카이브: 1999-2023(Sofia Coppola Archive: 1999-2023)>은 스타일에 집착하는 이들이 열광할 만한 것으로 가득하다. 버블검 핑크 컬러 스크랩북에는 영화 <블링 링>의 화려한 셀럽 패션 스냅샷부터 <마리 앙투아네트>의 파스텔 톤 시대 의상에 영감을 준 미국 <보그> 페이지까지, 아기자기한 이미지가 ‘다꾸’ 스타일로 이어진다. 시계에 관심이 많다면 코폴라의 시계 컬렉션을 보여주는 페이지에 눈이 갈 것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촬영하는 그녀의 손목에 감긴, 언제나 옳은 블랙 더블 스트랩의 에르메스 케이프 코드나 <매혹당한 사람들> 촬영장에서 착용한 직사각 케이스의 스틸 소재 까르띠에 탱크 솔로 같은 것들 말이다. 어쩌면 나처럼 눈을 잔뜩 찌푸린 채 1998년 토론토의 <처녀 자살 소동> 촬영장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코폴라의 손목시계가 아버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게 선물 받은 남성용 빈티지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츄얼 데이트인지 확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전통적인 남자 시계를 착용하고 카메라 앞에 등장한 스타일리시한 영화적 순간도 빼놓을 수 없다. 1964년 영화 <007 골드핑거>에서 본드걸 푸시 갤로어를 연기한 영국 배우 오너 블랙먼(Honor Blackman)은 롤렉스 GMT-마스터를 착용했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는 1966년 영화 <욕망>에서 옷을 입든 벗든 늘 손목에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차고 있었다(이 워치는 2023년 본햄스(Bonhams) 경매에 나왔다). 그리고 1998년 영화 <스피어>에서 쇼트커트의 생화학자로 분한 샤론 스톤의 유일한 액세서리도 롤렉스 서브마리너였다. 젠더 플루이드 룩에 대한 선호와 속속 등장하는 매력적인 오버사이즈 룩 덕분(피비 파일로와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의 기여가 크다)에 여자들은 계속 큰 사이즈의 옷을 입고, 남자 시계를 찾는다. 일반적인 여성용 워치 사이즈인 26~36mm가 아니라 38~46mm의 큼지막한 사이즈다. 빅토리아 베컴은 예전부터 이 스타일을 고수해온 대표적인 인물로, 최근에는 브라이틀링과 협업해 1,500피스 한정판으로 크로노맷 오토매틱 36 모델을 디자인했다. 빅토리아 베컴 2024 S/S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은 세 가지 컬러 다이얼에 옐로 골드와 스틸 소재로 출시된 이 제품은 누구나 탐낼 만한 그녀의 남자 시계 컬렉션에 대한 힌트를 준다. “특유의 묵직함과 단단한 금속의 느낌을 좋아하죠.” 베컴은 이렇게 말하며 이번 협업이 섬세하거나 화려하게 세팅된 여성용 제품에 대한 ‘느긋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워치’ 대부분이 ‘유행을 타지 않으며’, 남편인 데이비드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즈 골드 소재의 롤렉스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 1970년대 빈티지 그린 에나멜 다이얼의 롤렉스 데이트저스트와 다양한 버전의 파텍 필립 노틸러스를 착용한 그녀의 사진을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남자 시계가 훨씬 더 매력적이고, 유행을 타지 않는 우아하고 심플한 디자인이에요. 여자들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현란한 시계와 대비되죠.” 26세의 워치 컬렉터이자 필립스 경매 컨설턴트 재클린 리(Jaclyn Li)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워치 컬렉션 기록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피드에 셀피 대신 까르띠에와 오데마 피게, 핀란드 출신 독립 시계 제작자 카리 보우틸라이넨(Kari Voutilainen)의 우아한 워치 사진으로 가득한 탓에 팔로워들은 그녀를 남자로 착각하곤 한다. 그녀의 다음 위시 리스트는 빈티지 파텍 필립 퍼페츄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로, 1941년에 처음 등장한 이 시계는 워치 마켓에서 기술적으로 앞선 모델 중 하나다.
옷장에서 가장 열심히 일할 아이템(중성적인 슬랙스, 업무용으로 적합한 베스트와 가죽 봄버 재킷을 떠올려보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2024 S/S 컬렉션과 함께, 다이빙과 비행을 위해 처음 탄생한 남자 시계가 사랑받는 건 당연해 보인다. 빈티지 전문가이자 중고 럭셔리 컨설팅 기업 디스 올드 싱 런던(This Old Thing London)의 설립자 샬럿 로저스(Charlotte Rogers)는 여자들 사이에서 가죽 스트랩 빈티지 오메가 워치나 롤렉스 데이토나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롤렉스 데이토나는 카 레이싱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워치로 메리 케이트 올슨이 즐겨 차는 시계 중 하나다. 그녀가 쌍둥이 자매 애슐리와 함께 운영하는 브랜드 더 로우의 최고급 원단과 지극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룩과도 일맥상통하는 취향이다. 로저스는 여자들이 더 전통적인 ‘남자’ 워치에 관심을 보이는 사이, 남자들은 정반대를 향하고 있다는 점을 흥미로운 포인트로 꼽았다. “남자들 사이에서 34mm 사이즈에 대한 수요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1960~1970년대에 인기 있었던 크기로, 점잖은 걸 선호하는 남자들에게 어울리고 주얼리와 함께 레이어드하기도 좋죠.”
“너무 얌전한 건 싫어요.” <보그>의 글로벌 캐스팅 디렉터 로지 보겔 에데스(Rosie Vogel-Eades)는 남편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빈티지 롤렉스 에어-킹을 착용한다. 그녀가 태어날 무렵 제작된 이 시계의 믹스 메탈 브레이슬릿 스트랩은 매일 착용하는 주얼리와도 잘 어울린다. 그중에는 플래티넘으로 된 약혼반지와 남편이 프러포즈할 때 선물한 골드 시그넷 링도 있다. “무게나 크기 면에서 남자 시계가 더 잘 어울리는 편이죠.” 보겔 에데스가 덧붙였다. “내 체구에 비해 크다고 여기진 않아요. 묵직하지만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 있죠.”
사고 싶은 남자 시계 위시 리스트를 공유하자면? 1954년에 탄생한 다이빙 시계인 튜더의 두툼한 블랙 베이. 에디 슬리먼이 디올 옴므를 위해 2004년에 론칭하고 최근 20주년을 맞아 8개의 새로운 모델로 돌아온 디올의 쉬프르 루즈. 스와치와 오메가가 협업해 태양계 행성에서 영감을 얻은 컬러풀한 다이얼로 선보인 바이오 세라믹 소재의 문 스와치. 블랙 레더 스트랩과 화이트 또는 베이지 골드 케이스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매력을 뽐내는 샤넬의 무슈 드 샤넬.
매일 조금씩 소피아 코폴라의 시계 컬렉션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친구가 스마트폰 갤러리에서 당신의 사진을 확대하고 있는 걸 보게 되면 즉시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당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하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VK)
- 사진
- COURTESY PHOTO, GETTY IMAGES KOREA, SHUTTERSTOCK, ALAMY, HAL SEAR
- 글
- LAURA HAW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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