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영화를 칸영화제에 올린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를 만나다
생 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제77회 칸영화제에서 매우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더 슈라우즈(The Shrouds)>,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파르테노페(Parthenope)>, 조 샐다나와 셀레나 고메즈가 출연한 자크 오디아드(Jacques Audiard)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Emilia Perez)>까지 생 로랑 프로덕션이 제작한 영화 세 편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생 로랑 프로덕션은 거장들의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생 로랑이 설립한 영화 제작사로, 첫 번째 작품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지난해 선보인 <스트레인지 웨이 오브 라이프>였다.
칸영화제 전날 우리는 안토니 바카렐로를 만났다.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영화광이라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 너머에 유서 깊은 패션 브랜드가 창의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프랑스의 위대한 문화적 집착인 ‘패션’과 ‘영화’를 결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독들이 정말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임을 예리하게 깨달았다는 점이다.
생 로랑은 세 편의 영화에 필요한 모든 옷을 제공했지만, 룩을 의도적으로 노출하거나 영화를 바탕으로 한 캡슐 컬렉션을 진행하는 등의 상업적인 플레이는 일절 하지 않았다. 명민한 디자이너 바카렐로는 창의성과 상업성이 종종 손잡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열정적인 프로젝트만큼은 멀리할 때 서로 존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생 로랑 프로덕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질문하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이 사랑했던 영화와 감독에 대한 맨 처음 기억은 무엇이었나요? 그 이유도 궁금해요.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나라였으면 좋겠지만, 벨기에에서 태어났습니다.(웃음) 영화는 현실과 다른 것을 보여줬고, 잠시지만 일탈하고 꿈을 꾸기에 좋은 분야였죠. 브뤼셀의 유명한 패션 학교 라 캉브르에 입학하기 전 다녔던 보자르 예술 학교에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같은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그들의 작품을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만든 모든 영화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 이상한 작풍은 확실히 제 취향이었죠.
파솔리니와 파스빈더를 좋아한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지만,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죠. 아니, 아름답다기보다는 인상적이라고 할까요?
일종의 아름다움, ‘더럽게’ 아름다운 작품이죠.
정확하군요. 그중 특히 좋아한 영화가 있나요?
파솔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부터 <테오레마>까지… <살로 소돔의 120일>은 충격적이었죠.
아직 보지 않았어요. 도저히 용기가 안 나더군요. 확실히 보기 편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강렬하죠. 오늘날 일어나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 봐요. 파스빈더의 모든 작품이 그렇고요. <쿼렐리>에서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까지…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은 정말 대단해요. 주인공이 패션 디자이너죠?
네, 저는 마음에 들어요.
디자이너가 영화에서 영감을 받을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게으른 추측이라고 간주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디자이너로서 영화가 당신의 디자인 철학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싶어요. “아, 이번 컬렉션을 진행할 때 이런저런 영화 의상에서 영감을 받았어”라는 식이 아니라 예를 들면 일탈의 감각이나 어떤 캐릭터의 개념이랄까요? 저는 컬렉션을 볼 때 시각적인 영감보다 인물의 캐릭터를 발견하거나 느끼거든요.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 외적인 면이나 구체적인 의상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아요. <세브린느>를 예로 들어보죠. 매력적인 건 언제나 스토리에 녹아든 캐릭터죠. 영화를 보고 난 뒤 기억에 남는 것도요. 답변이 됐나요?
어느 정도는.(웃음) 당신이 생 로랑 프로덕션을 설립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묻고 싶었습니다만…
사실 생 로랑은 늘 그런 시네마틱 하우스였죠. 다만 저는 단순히 의상을 제작하는 것보다 영화 제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면 더 흥미로울 거라고 여겼어요.
생 로랑은 직접 <세브린느> 의상을 만들었죠.
그는 <세브린느>, 카트린 드뇌브가 주연한 <라 샤마드(La Chamade)>를 비롯해 연극 의상도 제작했지만, 제 분야는 아니에요. 그 또한 영화를 제작하진 않았죠.
카트린 드뇌브와는 좋은 친구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계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나요?
얘기했죠. 그녀는 “용감하네. 영화계에는 좋은 일이야”라고 말하더군요. 일부 프랑스인 프로듀서는 패션 브랜드가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다소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새로운 프로듀서들이 업계에 들어오는 건 좋다고 봅니다. 규칙을 바꾸는 건 멋진 일이죠.
생 로랑 프로덕션 설립 과정에 대해서도 듣고 싶군요.
생 로랑에 입사했을 때, 생 로랑의 컬렉션을 헬무트 뉴튼이 촬영한 것처럼 거장이 촬영한 제 컬렉션을 보고 싶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왕가위 감독, 브렛 이스턴 엘리스(Bret Easton Ellis)와 함께 컬렉션 필름을 촬영했지만, 생 로랑의 이름에 걸맞은 최고의 필름 메이커를 늘 찾아 헤맸죠. 그래서 4~5분 분량의 짧은 영화 클립을 제작하는 식으로 천천히 시작했고요.
그러다 가스파 노에(Gaspar Noé)를 만나 가깝게 지냈습니다. 작은 영화 클립으로 시작해 첫 단편영화(베아트리스 달과 샬롯 갱스부르가 주연한 <룩스 에테르나(Lux Aeterna)>, <Self 04>)로 2019년 칸영화제에 갔죠. 생 로랑에서의 커리어를 되돌아봤을 때 최고의 기억 중 하나예요. 밤 10시에 상영했죠. 어린 시절엔 칸이 시작되면 늘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러 다녔는데, 항상 제가 관심이 있는 영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크래쉬(Crash)>처럼 논란이 많은 영화를 밤 10시나 자정 무렵 상영했거든요.
가스파, 베아트리스와 함께 그곳에 있었던 건 잊을 수 없는 무척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릴 적 존경하던 감독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제게는 대부나 다름없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됐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좋아, 꿈을 이뤄보자’고 다짐했어요.
어떤 감독과 일할지 결정한 과정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설립 초기부터 목적은 필름 메이커의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영화계는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예산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자가 비전을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늘고 있죠. 생 로랑 프로덕션에서 제 역할은 영화감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함께 작업할 때 감독이 하고 싶은 일과 각본을 공유하면, 우리는 캐스팅에 대해 토론하죠.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저는 감독이 하는 일을 존중하고 그들을 존경하기 때문에 제가 “당신은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감독은 각 분야의 대가들이니까요.
생 로랑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루트를 얻는 겁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생 로랑의 이름은 영원히 남게 되죠. 광고판에 생 로랑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한 달 후 그걸 기억할 수 있을까요? 영화라면 20년이 지나도 제작에 생 로랑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왜곡되지도 않을 테고, 그 이름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생 로랑은 어떤 의미에서 패션계의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그의 정체성과 비전이 디자인에서 분명히 나타나죠. 우리가 자크 오디아드나 크로넨버그, 짐 자무쉬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요. 패션과 영화 모두 창의적이면서도 상업적인 측면이 있고, 디자이너나 감독에 따라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는지 달라진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당신이 지난 컬렉션에서 모든 것에서 상업성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요.
때로는 돈이나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이나 아름다움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오랜 팬이라고 했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선셋 마르퀴스 호텔에서 만났어요. 많이 긴장했죠. 저는 이탈리아 사람인데, 스페인 사람이 이탈리아 사람처럼 매우 온화할 거라 여기기 쉽지만 그렇지 않거든요.(웃음) 그의 영화는 히스테릭하고 컬러풀하죠. 그는 영화와 정반대인 사람이지만, 우리가 ‘페드로 알모도바르’에게 기대하는 인품을 갖췄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페드로 알모도바르라는 사람도 좋아할 거예요.
당신이 제작 중인 영화의 감독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기도 하나요?
관계에 따라 다르죠. 페드로나 짐과는 연락하고 있습니다.
알모도바르 영화의 의상 디자인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과정은 어땠나요?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서부영화를 흑백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만, 알모도바르가 영감을 받은 고전 서부영화 <건 힐의 결투(Last Train from Gun Hill)>의 컬러 스틸을 발견했을 때 그 색채는 실로 강렬했죠. 페드로 파스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알모도바르가 그린 재킷을 입히길 원했어요. 조금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알모도바르답다고, 괜찮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모든 시각적 디테일을 매우 까다롭고 구체적으로 다뤘습니다. 현대적인 요소 없이 벼룩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옷만으로 진정한 서부극처럼 보이길 원했죠. 제가 생 로랑에 입사해 하우스 아카이브를 돌아보며 했던 작업과 비슷해서, 제가 했던 첫 번째 아카이브를 가지고 놀았죠.
다른 영화 제작자와도 그렇게 작업했어요. 아카이브를 살펴보는 거죠. 저는 생 로랑에서만 8년간 근무했고, 영화의 모든 의상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옷이 아주 많아요. 하지만 의상 대부분은 영화와 캐릭터에 맞게 제작되었죠.
지난해 알모도바르와 함께 칸에 갔고, 올해 세 편의 영화가 상영됐죠. 오디아드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더 슈라우즈>, 파올로 소렌티노의 <파르테노페>. 세 편 모두 매우 다른 영화인 데다, 세 감독 모두 독보적인 경력이 있죠. 함께 작업하는 영화 제작자가 이미 잘 알려진 감독이라는 것이 중요했나요?
처음부터 장기적인 제작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했고, 솔직히 말해서 예산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비전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젊은 감독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어요.
아마존이나 애플이 큰 제작사라니 흥미로운 시대입니다. 당신도 보았죠. 멧 갈라 같은 행사에서 의상 연구소 같은 중요한 문화 기관에 경의를 갖게 하고 기금을 모으는 힘을 대중문화가 갖고 있다는 걸요.
바로 그것입니다. 생 로랑 프로덕션에 대해 영화 제작자들이 처음엔 약간 긴장했지만,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 우리 가방을 넣거나 브랜드에 대해 극 중에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습니다. 저는 생 로랑의 이름이 그런 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패션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거나 영화를 브랜드를 빛내는 기회로 삼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제작한 영화를 바탕으로 제품이나 컬렉션을 출시한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확실히, 영화에 생 로랑 티셔츠는 나오지 않죠.
당신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소름 끼치는 느낌이 <더 슈라우즈>에도 있는 것 같던데요?
네, 이상하죠. 굉장히 그렇죠… 그의 영화에는 항상 이상한 기술과 인체가 융합되는 지점이 있어요. 저는 그가 꽂힌 기묘한 집착을 좋아해요. 늘 같은 것에 집착하지만, 영화마다 달리 다루는 것도 좋고요. 절대 같은 것을 보는 일은 없겠지만, 언제나 같은 주제로 돌아가죠.
파올로 소렌티노와 자크 오디아드 감독에게 끌린 이유도 궁금하군요.
자크 오디아드는 프랑스 최고의 독립 영화 감독으로 꼽힙니다. 저는 <예언자>와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을 좋아합니다. 그의 영화는 아주 현대적이고 개인적이죠. <에밀리아 페레즈>의 접근 방식은 새롭고 그가 과거에 해온 것과 많이 다릅니다만, 그의 색깔이 드러나죠. 그가 만든 영화는 결코 진부하지 않아요.
파올로 소렌티노도 마찬가집니다. 제게는 새 시대의 펠리니와 작업하는 것 같은 체험이었죠. 각본의 시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데, 읽으면 가볍고 쉬워 보이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대사의 행간에 더 깊은 무언가가 있었죠. 지금까지 그의 작품 중 가장 감성적인 작품이며, 가장 감동적입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다른 감독이 있나요?
단연 마틴 스콜세지 감독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뒤풀이에서 만났는데, 정말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그는 거장 중의 거장이고, 누구보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람이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도요.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영화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본 소감이 어땠나요?
칸에서 페드로 옆에 앉아 제 이름을 봤을 때 감정이 북받쳤어요. 새빨갛고 굵은 서체로 그의 이름과 제 이름이 보였을 때 ‘젠장, 와…’라는 생각이 들었죠. 브뤼셀에서 온 어린아이가 칸의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 이름을 확인하면 그저 감격스럽죠. 찔끔 눈물이 날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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