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쉬 앤 칩스! 극한의 자본주의와 기후변화와의 조우
덴마크 출신 3인조 작가 그룹인 수퍼플렉스가 드디어 ‘완전체’로 서울 관람객을 만납니다. 수퍼플렉스는 야콥 펭거,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그리고 라스무스 닐슨이 1993년에 결성한 그룹이죠. 혈기 왕성한 미술학도였던 이들은 가장 먼저 예술가의 정체성을 조금은 다르게 정의함으로써 예술 활동을 시작하고자 했고, 그래서 소위 아바타 같은 혹은 제3의 인물 격인 수퍼플렉스를 창조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우리 작품을 둘러싼 일종의 ‘상부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면서 최대한 유연해지고자 한 수퍼플렉스는 여전히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과학자, 사업가, 사회운동가, 활동가이기를 자처합니다. 그렇게 지난 30년 동안 이들은 한 이름을 공유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 여전히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미술 작품을 통해 다루어왔습니다.
세 사람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활동하는 존재 방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수퍼플렉스에게는 집단적인 ‘우리’가 중요합니다. ‘우리’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을 해체하는 것이 이들의 화두인 거죠. 이를테면 현재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이고 있는 포스터 작업 ‘Foreigners, Please Don’t Leave Us Alone With The Danes!’(2002), 이 포스터를 전 세계 사람들이 활용하는 방식을 담은 영상, 그리고 지금도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 설치되어 있는 3인용 모듈식 그네 작품인 ‘하나 둘 셋 스윙!’ 등이 집단성과 협업의 의미를 담은 좋은 예입니다. 특히 이 그네 작품은 2017년 테이트 모던 터빈 홀에서 선보인 적 있고, 2023년에는 통일부에 영구 기증된 이들의 대표작이기도 하죠. 셋이 함께 발을 구를 때 비로소 그네가 앞으로 나아가듯, 미약해 보이는 힘이 모이고 또 모여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순수한 열망을 담았습니다.
수퍼플렉스는 세계의 사회, 경제, 정치 등을 두루 다루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을 단지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현상들을 통해 현 세계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이나 근본적 구조 혹은 원리를 통찰하고자 합니다. 국제갤러리에서 7월 28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피쉬 앤 칩스>에서는 그중에서도 기후학적 시스템과 경제학적 시스템의 관계를 상징하는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신용카드의 칩 부분을 단색조의 회화로 변환한 작업, 은행 건물 모양을 본뜬 화병에 환각을 일으키는 식물 중 하나인 협죽도를 꽂은 조각, ‘Make a Killing(한몫 잡다, 큰돈을 벌다)’이라는 LED 텍스트 설치 작품 등을 두루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들의 비판 정신과 상상력이 직조한 이 세상은 분명 현실적이지만, 그 분위기와 뉘앙스는 묘하게 디스토피아적입니다.
전시에 맞춰 변신하는 국제갤러리 K3 공간은 수퍼플렉스가 제안하는 세상의 풍경을 펼쳐 보입니다. 해수면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다면 우리 세상이 수중 세계가 되지 않을까 상정하는 거죠. 대리석과 화강암을 재료로 한 미니멀리즘적인 조각들은 물고기가 서식하기에 좋은 재질과 구조로 제작되었습니다. 맞은편에는 심해 생명체인 사이포노포어의 모습이 담긴 영상 작품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영상 앞에서 5분에서 10분 정도만 가만히 서 있어보길 권합니다. 해파리처럼 생긴 이 미지의 생명체가 교감하듯 가까이 다가오고, 몸집이 점점 커져서는 어느 순간 당신을 삼켜버릴 테니까요. 그리고 당신의 시선과 사이포노포어의 시선이 일치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죠. 사이포노포어가 실제 단일 개체가 아니라 2개 이상의 개체가 합쳐진 기이한 생명체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수퍼플렉스라는 존재가 그렇듯 말이죠.
전시 제목인 ‘피쉬(물고기) 앤 칩스(신용카드의 칩)’는 기후와 경제라는, 달라 보이지만 결코 다르지 않고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모티브를 유머러스하게 조합한 은유적 단서입니다. 극한의 자본주의와 기후변화가 초래한 재앙적 상황을 향해 치닫고 있는 우리의 미래가, 혹은 미래에 대한 담론이 수퍼플렉스만의 진중한 유머 감각으로 구현됩니다. 그러니 이들의 생생한 문제의식이 그려낸 풍경을 이성뿐 아니라 감각까지 동원해 경험해보세요. 더 나아가, 예술로 그려낸 비평적 지형을 통해 우리가 현재 어디에 와 있는지, 그리고 인간으로서 다른 모든 종, 대상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 등을 두루 사유해보는 겁니다. 나와 타자를 분리하지 않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을 제대로 경험하도록 해주는 가장 깨어 있는 태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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