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탈주’가 선을 넘는 방식
올여름에는 ’올라가려는 영화’와 ‘내려오려는 영화’가 같은 시기에 극장에 걸렸다. 올라가려는 영화는 하정우, 여진구 주연의 <하이재킹>이고, 내려오려는 영화는 이제훈과 구교환이 주연을 맡은 <탈주>다. 물론 두 영화가 모두 ‘군사분계선’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하이재킹>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을 지킨 실제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탈주>는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선택의 가능성을 찾아 안간힘을 쓰는 청춘에 대한 영화다. 그럼에도 두 영화에서 선을 넘으려는 인물들이 현실에 대해 갖는 문제의식이 비슷하다는 건 흥미롭다. 그들은 모두 ‘출신’에 엮여 있다. <하이재킹>의 용대(여진구)는 월북한 형 때문에, <탈주>의 규남(이제훈)은 출신 성분 때문에 미래를 꿈꿀 수도 없고, 더 나은 삶을 만들 수도 없다. 넘어갈 수 없는 지리적인 선이 있지만, 그 전에 이들 앞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셈이다. 특히 <탈주>는 이 ‘선’의 의미를 비무장지대에 국한하지 않고 더 복합적인 형태로 확장한다. <탈주>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MZ세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탈주>의 주인공 규남(이제훈)은 10년간의 의무 군 생활을 거의 끝낸 ‘말년’ 북한 군인이다. 그런데도 남한으로의 탈주를 계획한다. 군을 제대해도 선택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볼 수도 없고, 당에서 지시하는 대로 살아봤자 농사를 짓거나,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게 그의 앞에 놓인 미래다. 그래서 그는 제대하기 전에 탈주를 하려고 한다. 지금 그가 있는 비무장지대가 북한에서는 남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서 그렇다. <탈주>는 규남이 처한 입장을 남한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연결해 보여준다. 규남이 근무 도중 간신히 주파수를 맞춰 찾아낸 방송은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극 중 배철수 DJ는 한 청취자의 사연을 읽는다.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탄, 그리고 위로를 구하는 어느 남한 청년의 이야기다. 이어 신청곡의 형태로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흘러나온다. 영화는 규남이 이 사연과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끔 연출한다. 남한과 북한 양쪽의 MZ세대가 모두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넘을 수 없다는 괴로움에 공감하는 순간이다.
<탈주>는 설정상 북한이 배경이고, 북한 군인의 탈북을 그리는 영화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 영화의 주제는 지리적 설정에서 벗어나 한반도 전체 또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의 입장으로 확장된다. 규남의 입장에서 볼 때, 적어도 남한의 청년은 노력이라는 걸 할 수도 있고, 발버둥을 쳐볼 수도 있는데 자신은 그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탈주>는 빠르게 달려간다. 인물도 달리고, 영화의 전개도 달린다. 이때 ‘비무장지대’라는 설정은 영화적으로 상당히 큰 효과를 갖는다. 어디에 매설되었는지 알 수 없는 지뢰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군인들, 그렇게 선을 넘으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방해물들. 목숨을 걸고 그것들을 뚫어내는 사람의 열망. ‘비무장지대’는 구체적인 역사의 공간이지만, <탈주>에서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데려다 놓을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 규남이 군사분계선을 향해 달리는 모습을 길고 자세히 보여주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귀순을 희망하는 북한 군인 이전에 새로운 삶이 간절한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탈주에서 ‘열망’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남한 vs 북한’의 구도를 지운 덕분이기도 하다. 규남은 남한의 라디오방송을 듣는 북한 군인이지만, 남한에만 가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는 남한 청년의 비루한 현실에 공감하면서도 달콤한 말로 가득한 남쪽의 대북 방송은 일상적인 소음처럼 대한다. 그의 탈주를 막으려는 이현상(구교환)이 “남한이 지상낙원인 줄 아냐?”고 다그칠 때도 규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실패하러 갑니다. 마음껏 실패를 해보고 싶어서 가는 겁니다.” 이때의 열망은 <하이재킹>의 용대가 선을 넘으려는 이유와 뚜렷이 구별된다. 용대는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간 테러범이 영웅 대접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범죄를 계획한 모방범이지만, 규남은 그 자체로 끓어오른 인물이니 말이다. 똑같이 선을 넘으려 했어도 한쪽은 테러리스트인 반면, 다른 한쪽은 미래를 개척하는 청년인 이유다.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