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자’ 촬영 현장에서 만난 불굴의 마에스트로, 박찬욱
박찬욱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그와 하는 작업을 예술가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경험으로 회고한다. 원하는 장면은 어떻게든 창조해내는 불굴의 마에스트로. 〈올드보이〉와 〈아가씨〉로 전 세계에 파동을 일으킨 박찬욱 감독이 이번에는 〈동조자〉로 미국 TV 드라마계에 침투한다.
지난해 봄, 나는 방콕에서 동쪽으로 약 80km 떨어진 비포장도로 위를 위태롭게 내달리는 하얀 밴에 몸을 싣고 있었다. 먼지 낀 차양을 단 채 길 따라 죽 늘어선 휴대폰과 신발 가게를 지나 한참을 달리던 중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도로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군복을 갖춰 입은 군인들이 그 앞을 버티고 서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그 군인들이 실은 배우이고 바리케이드는 촬영 소품이라는 걸 깨달았다.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비엣 타인 응우옌(Viet Thanh Nguyen)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맡은 7부작 HBO 드라마 <동조자>의 촬영장에 도착한 것이다. 프로듀서 한 명이 달려와 나에게 밴에서 내리라고 하더니 베트남 마을 사람 역할을 위해 햇볕에 바랜 바지와 얇은 면 드레스 등을 입은 엑스트라 배우들 사이를 지나 촬영장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배우들은 짐 가방으로 보이는 더미 위에 앉아 있었는데, 설정상 피란길에 챙겨 나온 가장 소중한 물건들을 담은 가방이었다. 당시 내 앞에서 촬영 중이던 장면의 시간적 배경은 1975년 4월, 남베트남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이공 함락을 목전에 둔 시기로 기온이 32도에 육박하고 습도에 숨이 막히던 시기였다. 지직거리는 무전기를 통해 촬영 지시가 떨어지자 배우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연한 빛깔의 양산을 하나둘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박찬욱 감독은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성한 비디오 빌리지(촬영장에서 제작팀이 모니터 주위에 모여 테이크를 검토하는 장소)의 그늘막 아래 앉아 있었다. 올해 60세로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눈에 띄는 그에게서 어딘가 모르게 위엄 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국산 가죽 샌들에 통풍이 잘되는 아웃도어 룩을 입은 그는 그대로 곧장 낚시를 간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차림이었다. 촬영장의 모든 이들이 존칭의 의미로 직함을 부르는 한국식 관행을 따라 그를 ‘박 감독님’이라 불렀다. 타이어, 베트남어, 한국어, 영어가 모두 혼재된 촬영장에서 연기 디렉션은 주로 영어로 주어졌다. 박찬욱은 영어를 읽고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의사소통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통역까지 전담하는 영화감독 정재훈을 통해 배우와 제작진에게 영어로 의견을 전하고 있었다.
이날 촬영한 장면은 비교적 간단한 신이었다. 공산당 이중간첩으로 극 중에서 ‘대위’라고 불리는 혼혈인 주인공이 시트로엥 차를 몰고 피란민 사이를 헤치고 나가는 장면이었다. 박찬욱 옆에는 그의 최근작 <헤어질 결심>(2022)에서 스크립터를 맡았던 이자혜가 공동 제작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짭짤한 템페 스낵 한 봉지를 나눠 먹으며 의자에 앉아 있다가 촬영이 시작될 때마다 서로 짠 듯 동시에 허리를 곧추세우며 촬영에 집중했다.
박찬욱 감독은 꼼꼼한 준비를 바탕으로 우아한 영상미를 연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의 콘티를 완벽하게 준비한다는 그는 위대한 시계 명장처럼 작품 속 모든 디테일을 철두철미하게 관장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김기영, 알프레드 히치콕, 로버트 알드리치 등 흑백영화 거장들의 위대한 작품부터 대중의 이목을 끄는 데 실패한 B급 영화와 컨템퍼러리 장르를 전부 아우르는 영화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지닌 그는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상 미학을 구축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카메라는 빠르게 치닫고, 활강하며,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일쑤다. <헤어질 결심>을 숨죽여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가 대체 어떻게 죽은 자의 눈을 통해 산을 담아낼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박찬욱은 ‘컷’을 외친 뒤 프레임 속 군인 한 명을 살짝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했다. 이윽고 촬영이 재개되는가 싶더니 그의 입에서 또 한 번 ‘컷’ 소리가 나왔다. 그 수많은 엑스트라 배우 중 한 명이 좀 더 일찍 도로를 쳐다봤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촬영이 중단됐다. “구름이 지나가면 찍을게요.” 덩치 좋은 한 제작진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졌다. 시트로엥이 다시 한번 바리케이드를 밀고 들어왔다. 에피소드 넘버 101, 신 넘버 47의 네 번째 테이크였다.
그날은 <동조자> 촬영을 시작한 지 80일째 되는 날이었다. 전체 촬영 일수는 120일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찬욱과 제작진이 시트로엥 신을 제대로 찍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동안 말레이시아 국경에서 멀지 않은 또 다른 곳에서는 200명에 달하는 세트 건설팀이 실물과 거의 완전히 똑같은 공산당 재교육 수용소 세트장을 짓고 있었다. 전후 이곳에 수감된 ‘대위’는 망망대해를 건너 새로운 세계로 향하고, 나중에는 베트남을 떠나 무뚝뚝한 상관이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망명한다.
<동조자>는 흥행을 보증하는 위대한 두 회사, A24와 HBO의 합작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제작이 확정된 것은 3년 전으로, 이른바 미국 TV 쇼 황금기의 끝물에 케이블 방송국과 스트리밍 서비스업체들이 도전을 감행할 준비가 된 거물급 배우들에게 거액의 개런티를 제시하며 새로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에 눈에 띄었다. 이번에 내가 세트장을 방문했을 땐 당시 실세 HBO가 업계 불황을 직격으로 맞은 상태였다. <동조자>를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1년 후, 리얼리티 쇼로 유명한 디스커버리 방송사가 HBO의 모기업을 인수했다. 디스커버리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Zaslav)는 인수를 성사시키기 위해 500억 달러 이상의 부채를 지게 됐는데 세금 감면을 위해 기획 중이던 영화 제작을 야금야금 보류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업계 전반에 걸쳐 스트리밍 서비스업체 경영진 사이에서 위험을 기피하는 추세가 확산됨에 따라 제작비 지원이 꽉 막혀버렸다. 작품 성공에 따른 이윤이 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작가들의 파업 선언으로 산업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호화로운 배경을 뒤로한 백인 부자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작품 <동조자>는 위험한 도박으로 보였다. 산드라 오, 존 조, 데이비드 듀코브니 같은 익숙한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긴 하지만 대부분 조연에 머문다는 점도 불안한 신호였다. <동조자>의 스타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 CIA 요원, 보수 성향의 국회의원, 동양인에 대한 페티시를 가진 교수, 언뜻 보면 <지옥의 묵시록>이 떠오르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1인 4역을 맡았고, 회당 200만 달러, 약 27억5,000만원의 개런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펼쳐지는 사건은 명백히 베트남인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드라마는 베트남에서 베트남전쟁은 ‘미국 전쟁(American War)’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 어느 미국인 대학생이 호아 쉬안데(Hoa Xuande)가 연기한 ‘대위’에게 미국인이 반전 시위를 벌인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있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베트남 사람들 편이었다”며 말이다. 이에 ‘대위’는 이렇게 묻는다. “어느 베트남 사람들 말인가요? 북베트남인, 아니면 남베트남인?” 학생은 당황하며 “양쪽 다겠죠, 아마”라고 뭉뚱그려 답한다.
박찬욱은 커다란 카키색 등산모를 쓰고 있었다. 정재훈 감독은 시트로엥이 다리 위로 더 빠르게 달려가야 한다는 박 감독의 지시를 전달했다. 박찬욱은 시각 효과 담당자에게 차 번호판에 별이 그려지게 하고, 배경으로 보이는 건물 중 하나를 디지털로 지워달라고 지시했다. 이 시퀀스의 마지막은 ‘대위’가 막 이륙하기 시작한 비행기에 올라타기 위해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과 엉겨 붙은 사람들 사이에서 미친 듯이 비행기로 달려가는 장면이다. 원작자 응우옌의 묘사에 따르면 그 순간 하늘에는 “로켓과 포탄이 운석우처럼 쏟아졌다. 짐도 내팽개친 채 콘크리트 분리대를 향해 돌진하다 이리저리 넘어지고 나뒹구는 피란민의 모습과 남은 두 개의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프로펠러 후류가 아이들의 작은 발을 깡그리 날려버리는 모습을 비추는 종말론적인 라이트 쇼가 펼쳐졌다.” 이 신을 촬영하기 위해 제작진은 비행기 뒤쪽 절반을 트럭에 매달고, 빛을 내뿜는 폭발을 묘사하기 위해 크레인에 조명을 설치했으며, 초대형 강풍기를 설치해 휘몰아치는 프로펠러 바람을 연출했다.
태국 촬영을 담당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렉 해몬드(Alec Hammond)는 “세트 퀄리티가 거의 예술 작품 수준이에요”라고 증언했다. “탈출 장면에서 사람이나 사람 모형을 짊어진 배우들이 실제 같은 절박한 감정을 느끼며 비행기에 올라타는 연기를 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당 24km로 움직이면서도 안전하고, 재촬영을 위해 복구할 수 있는 세트장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식의 고민을 거듭했죠.” 치열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사실 박찬욱 감독의 촬영장 분위기는 지극히 차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근을 지양하고, 촬영은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한다. 해몬드는 박찬욱은 분명한 의도와 확신을 갖고 임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촬영을 마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감독님은 원하는 장면이 나오면 바로 알아요. 그 필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찍을 필요가 없는 거죠.”
비엣 타인 응우옌은 10년 동안 집요한 취재를 바탕으로 <동조자>를 집필하면서 수많은 작품을 참고했는데 그중에는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 <올드보이>(2003)도 있었다. 미국에서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작품으로, 알 수 없는 이유로 15년간 호텔 방에 갇혀 지내다 어느 날 느닷없이 풀려난 후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응우옌은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당시 망치를 든 오대수가 살기 넘치는 불량배들을 하나씩 쓰러뜨리는 장면을 보며 자신의 처녀작이 될 소설이 그 장면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을지 가늠했다. 원 테이크로 촬영한 3분 남짓의 그 장면은 중세 시대의 신성한 태피스트리 같은 고정된 프레임에 담겨 있었고, 불량배들이 각목과 파이프를 휘두르는 모습은 기사들이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응우옌은 자신의 소설이 그처럼 “압도적인 언어로 이야기를 전하길 바랐다”면서, 자신의 취향이 박찬욱 감독의 “화려하고 독특한 스타일과 확실히 닮은 면이 있다”고 밝혔다. <올드보이>에서 또 하나의 유명한 장면은 오대수가 입에 쩍쩍 달라붙는 산낙지를 이빨로 끊어 먹는 신이다(오대수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이 신을 촬영하며 총 네 마리의 산낙지를 먹었는데, 불교 신자인 그는 촬영 중간중간 미안한 마음을 담은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이 복수 영화는 종국에는 아주 철저하고도 소름 끼치게, 복수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하기를 시도한다. 오대수는 그간 자신을 감금한 사람을 찾아내는데, 그는 다름 아닌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이우진이었고, 이우진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품어온 앙심으로 오대수를 감금했을 뿐 아니라 풀어준 후에는 오대수가 자신도 모르게 친딸과 성관계를 맺게 만들기까지 한다. 오대수는 그 사실을 딸에게 알리지 말라고 애원하며 개처럼 짖기도 하고 이우진의 신발을 핥기도 하다가, 끝내 스스로 자신의 혀를 자른다. (영화 개봉 직후 박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평화를 얻고 싶다면 복수를 할 게 아니라 목욕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올드보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응우옌 역시 영화의 마지막을 보고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난 뒤에는 자신 또한 언어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응우옌은 <동조자>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일반적인 스파이 소설, 이민자 이야기, 정치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를 전복시키기 위해 분투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보여주는 부조리한 블랙 유머를 <동조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니체의 말을 인용한 서두의 격문에서 그런 요소에 관한 작가의 신념이 엿보인다. “‘고통’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우울해지지 않도록 하자.”
<동조자>는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5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고, 할리우드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주인공만큼 이야기를 파악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작품이었기에 각색에 긴 시간이 걸렸다. 초기에 한 프로듀서는 응우옌에게 이 작품이 첫 시즌에만 2,500만 달러, 약 344억원이 들어갔다고 알려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나르코스>에 준하는 예산으로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 프로듀서는 “그 정도 예산이면 주연으로 키아누 리브스급 배우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굉장히 인종차별적 발언이죠. 그 프로듀서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가 들었다는 그런 말이요. 페드로 파스칼(Pedro Pascal)은 지금은 대스타지만, 처음 <나르코스>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 쇼에 A급 스타는 없었어요.” 응우옌의 말이다.
텔아비브에서 태어나 토론토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프로듀서 니브 피치만(Niv Fichman)이 응우옌을 <눈먼 자들의 도시>를 성공적으로 각색한 돈 맥켈러(Don McKellar)와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맥켈러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Donald Westlake)의 소설 <액스>를 각색하면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대본을 집필한 적 있었기에, <동조자>의 총괄 책임자로 와달라고 박찬욱을 설득해주기까지 했다. 당시 박찬욱은 맥켈러와 공동 작업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앞서 박 감독은 BBC에서 존 르 카레(John le Carré)의 소설 <리틀 드러머 걸>을 각색한 드라마를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 촬영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데다 장기 해외 촬영으로 고국에 대한 향수병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TV 쇼 제작은 영화보다 제작해야 할 분량도 훨씬 많고,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이 개입하기에 관료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도 피곤한 요소였다. 결국 <동조자>에서 박찬욱이 처음 세 편의 에피소드만 연출하고 나머지 에피소드에 대한 연출 권한은 다른 감독에게 넘기기로 결정한 이유다. 맥켈러 역시 그가 “TV 쇼는 작업량도 엄청날뿐더러 수많은 협상과 의견 조율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 작품을 영리하고 노련하게 각색할 줄 안다는 점 역시 박찬욱의 강점이다. <올드보이>는 일본 만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며 <아가씨>(2016) 또한 사라 워터스(Sarah Waters)의 장편 스릴러 <핑거스미스>를 각색했다. 물론 그는 영화를 만들며 원작의 이야기 구조를 변형했다. <핑거스미스>의 경우에는 이야기의 배경을 디킨스 소설에 나올 법한 시대의 런던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으로 바꾸었고, <올드보이>에는 소포클레스적 반전을 추가했다. (후자의 경우 박 감독은 대체 왜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랫동안 감금했는가 하는 것보다도 왜 갑자기 풀어줬는지에 더 관심이 갔다고 밝혔다.) <동조자>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1인 4역을 맡게 한 것 역시 박찬욱의 아이디어였다. 서구 세계가 품은 모든 진부한 혐오는 한 사람을 상징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응우옌은 박찬욱과의 첫 미팅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감독으로서 그가 염두에 둬야 하는 플롯, 인물 설정, 디테일에 대해 꼼꼼하게 질문을 던지더군요. 게다가 플롯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제안을 했죠. ‘와, 소설이 나오기 전에 이분이 내 초고를 읽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전 모든 종류의 소설을 다 좋아해요. 딱히 장르물과 비장르물을 구분하지도 않고요.” 박찬욱은 말한다. <박쥐>(2009)는 그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기반으로 완성한 영화다. “남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책을 좋아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에게서 철학적 취향을 지닌 교수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그는 해외 문학 중에서도 “낯설고 이상하고 독특한 작품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러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상당히 모순적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결국 모든 인간이 꽤 비슷하다는 결론에 자주 이르거든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기묘하고 이상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이 공감하면서요.”
그는 도덕에 관한 기이한 탐구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박찬욱의 영화에는 종종 특정 목표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끝내 그 목표가 철저히 무너지는 장면이 나온다. “말도 안 되는 결의를 갖고 행동하는 인물에 마음이 가요. 그러나 그 인물이 정신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이 원래 의도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이르렀다는 사실이죠. 결국 우리 인생이 그래요.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가 그걸 항상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거죠.”
<동조자>는 박찬욱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첫 영화다. 대주제를 품은 영화를 만드는 동안 그는 다음 세 가지를 경계했다. “주제가 되는 사건에만 집중하는 것, 역사적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 교훈을 끌어내려는 것.” 다행히도 응우옌의 소설은 다층적이었기에 박찬욱은 이런 미션을 수월하게 수행했다. 역사적 사실만큼 소설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는 배신, 분열하는 충성심, 이데올로기적 열정만 바라보는 근시안적 사고 등은 충분히 보편적인 이야기였기에, 박찬욱은 큰 고민 없이 아이러니와 해학, 역설의 감각으로 엮인 응우옌의 글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스스로 공산주의자라 굳게 믿지만 자기도 모르게 미국에 마음이 이끌리죠. 그래서 자기 안의 딜레마를 인정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거예요.” 박찬욱이 설명했다. 그는 뒤이어 ‘대위’의 양 진영에 대한 충성심을 와해한 여러 사건을 짚어나가며 그가 받아온 왜곡된 정치 교육을 낱낱이 분석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데운 칼로 차가운 버터를 군더더기 없는 사각형으로 조각내듯이.
박찬욱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그와의 작업을 예술가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즐거운 경험으로 묘사하곤 한다. 박찬욱의 첫 영어 작품인 <스토커>(2013)에 출연한 니콜 키드먼 역시 “자신이 그의 여러 물감 중 하나였다”고 증언했다. 플로렌스 퓨도 6부작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2018) 촬영을 마친 후 비슷한 비유를 던졌다. “우리는 움직이는 그림의 한 요소였어요. 화가를 전적으로 믿어야 했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코스튬과 메이크업을 포함한 <동조자>의 전 제작부에서 박찬욱의 영향력을 실감하며 촬영에 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박찬욱이 그가 연기해야 했던 네 명의 인물을 “말 그대로 손수 빚었다”고 묘사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내이자 <동조자>의 영화 제작자로 참여한 수잔은 박찬욱과 남편이 메이크업 스튜디오에서 “찰흙을 가지고 놀곤 했다”고 추억했다.) 박찬욱이 발굴한 스타 호아 쉬안데는 “감독님이 시각적인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도록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 그의 프레임 안에 내가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방콕과 인접한 삼판타웡에서 촬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점심 식사를 마친 박찬욱은 감독 의자에 앉아 ‘대위’와 그의 부하 둘, 여성 스파이가 나오는 격투 장면을 디렉팅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박찬욱은 AFKN(주한미군방송)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자랐다. 대부분 자막이 없었고 전부 흑백영화였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채 20년도 지나지 않아 태어난 박찬욱의 집에는 1980년대 이전까지 컬러 TV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서부 영화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전부 흑백으로 감상하며 마음속으로 찬란한 빛깔을 채워나갔다. 시릴 만큼 차가운 푸른 하늘과 짙은 녹색이 펼쳐진 초원, 제임스 본드의 검은색 양복 라펠에 꽂힌 다홍색 꽃까지 모두 말이다. 자막이 없었으므로 영어를 배우기 전까지 오직 표정, 카메라 앵글, 몸짓 등 시각적 요소로만 영화 내용을 유추해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건축학과 교수였고 어머니는 영화광이었다. (박찬욱의 동생 박찬경은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였던 가족의 영향으로 신성한 폭력, 피와 화살, 가시 돋친 바퀴 같은 가톨릭적 도상이 특히 박찬욱의 뇌리에 강하게 새겨졌다. 고등학교 시절 한 신부님이 그의 부모에게 그를 신학대학에 진학시킬 것을 권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때 이후로 박 감독은 성당에 발길을 끊었고, 스스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션 스쿨인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그는 스스로 영화 동아리를 만들고 부원을 모았다. 어느 날 히치콕의 <현기증>(1958)을 보던 중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가 킴 노박(Kim Novak) 뒤쪽으로 천천히 차를 몰아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차 두 대가 샌프란시스코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모습에서 영상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히치콕이 꾼 꿈을 이어받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기 시작했다.
박찬욱의 동창생인 영화 평론가 김영진은 학부생 시절 박 감독을 장 뤽 고다르의 ‘반부르주아적 카메라 스타일’ 같은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덥수룩한 외모의 골초로 기억한다. 당시 한국에서는 정치적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1961년부터 정권을 장악해온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암살당했고, 주도권을 잡은 전두환이 군부 정치를 이어갔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주 시위를 벌인 수많은 학생이 정부의 낙하산 부대원들에게 구타를 당했고, 이로 인해 시민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이마저도 폭력으로 진압되고 말았다. 수백, 수천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매일같이 교내에 최루탄이 터졌어요. 건물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잃은 친구들의 소식을 듣거나 경찰에 끌려가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일상이었죠.” 박찬욱의 말이다.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대의는 믿었지만 수류탄이 터지는 길에 직접 뛰어들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전 약했고 겁쟁이였기에 앞장서서 싸우지 못했어요. 용감한 사람들만 잔인한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죠. 그때부터 죄책감, 복수, 구원과 같은 주제가 제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제작 조수 겸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외화를 수입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독재 정권 아래서 당시에는 오직 25개 영화사만 한국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1987년 6월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가 시작되었고, 검열이 완화되며 독립 영화 제작도 가능해졌다. 전자 제품 제조업체도 하나둘 영화 제작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영화계에도 새바람이 불었다.
박찬욱은 1990년대 초 드림박스라는 회사의 투자를 받아 첫 영화를 제작했다. 한국의 스타 이승철이 주연을 맡은 액션 스릴러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이었다. 흥행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심지어 언론에 실린 유일한 평론은 박 감독이 대필해 보낸 것이었다. “대단한 신인 감독이 나타났다.” 그는 그런 문장을 썼다고 기억한다. 그로부터 두 번째 영화를 만들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코미디물이었던 차기작 <3인조>(1997)는 자살을 원하는 색소폰 연주자, 폭력적인 고아, 야망 가득한 수녀로 이루어진 범죄 패거리를 다룬 이야기다. 이 작품은 박찬욱의 뼈아픈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그의 진중한 필모그래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이후 영화 평론을 쓰기 시작한 박찬욱은 가리지 않고 일했다. 진지한 영화는 물론 B급 영화에 애정을 내비치며 <토마토 공격대>와 <에이리언 3>에 대해 찬사에 가까운 평론을 쓰기도 했다. 대본도 썼지만 제작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성공한 상업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끝에 탄생한 영화가 바로 박상연의 소설 <DMZ>를 각색한 <공동경비구역 JSA>(2000)다. DMZ에서 펼쳐진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으나 어떤 면에서는 교훈적인 이 영화는 남자들의 코믹한 우격다짐까지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박찬욱에게 두둑한 수입을 안겨준 영화로 주연배우 송강호는 스타 배우의 반열에 올랐고, 이를 계기로 박찬욱과 송강호는 절친한 친구가 됐다. 나이도 비슷한 데다 촬영이 끝나면 항상 함께 술을 마시러 가곤 했기 때문이다. 이후 송강호는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도 주연으로 활약했다. 영화는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루브 골드버그 장치 같은 플롯을 앞세웠다. 청각장애인인 공장 노동자가 죽어가는 누나의 신장이식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납치까지 시도하지만 이를 알게 된 누나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납치한 아이까지 물에 빠져 죽어버리고, 분노에 사로잡힌 죽은 아이의 아버지가 공장 노동자를 살해하지만 결국 그 역시 누군가의 손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복수는 나의 것>은 뒤이어 나온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2005)와 함께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을 이루는 작품으로 다소 불편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남자 넷이서 몸을 밀착한 채 옆방에서 들려오는 누나의 앓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자위를 한다든가, 강물 속에서 죽어가는 공장 노동자의 잘린 아킬레스건에서 피가 솟구쳐 흐르는 장면 등이 그렇다.
나는 쾌청하지만 다소 쌀쌀해, 10도를 웃도는 기온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딩 재킷을 걸치고 오가는 어느 날 아침 <동조자>의 로스앤젤레스 촬영장을 찾았다. ‘대위’는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후 자신의 상관인 ‘대장’으로부터 소령이라 불리는 사람이 첩자로 의심되니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실은 ‘대위’ 자신이 첩자지만). 이날 촬영한 신은 베트남에서 감독으로 활약하다가 <동조자>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판 자 낫 린(Phan Gia Nhat Linh)이 연기하는 소령이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알지 못한 채 태평하게 ‘대위’에게 독립기념일을 맞아 너무 신난다는 속 편한 이야기를 터놓는 장면이었다. 박찬욱은 의자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신의 모든 디테일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후 다음 신을 촬영하기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된 그는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며 자비로운 군주처럼 촬영장을 부드럽게 거닐었다.
박찬욱은 세계적인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기도 한다. 비판으로는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이라거나 깊이보다는 감각적인 묘사에 의존한다는 것,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 등이 주된 이야기다. 그럼에도 그의 평판은 한국 영화 최초로 2004년에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후로 어느 정도는 안전한 입지에 머물러 있는데, 여기에는 그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적극적인 지지 발언이 미친 영향이 크다. 이후 <올드보이>는 B급 감성의 아시아 호러 무비 애호가를 주요 관객으로 삼는 타탄 아시아 익스트림이라는 회사를 통해 DVD로 미국에 유통되었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박찬욱은 대학 시절 만난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그는 아내를 ‘평범한 가정주부’면서 동시에 가장 신뢰하는 대본 독자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올드보이> 이후 “여성을 자꾸 주변부로 내모는 이야기만 써온 걸 후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1년 박찬욱은 어느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아 이제 영혼의 단짝이 된 정서경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호명했다. “아주 상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찬욱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정서경의 증언이다. 처음부터 익숙하게 자신에게 존칭을 쓰지 않던 대범한 성격의 정서경에게 박찬욱은 <친절한 금자씨>를 위해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친절한 금자씨>는 억울한 옥살이와 폭력적인 복수를 다룬 영화로, 한 무리의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고문하다 죽인 남자를 살육하는 그랑기뇰(살인, 강간, 유령 등을 통해 관객에게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풍 시퀀스로 대미를 장식한다.
박찬욱은 촬영감독, 편집자, 음악감독 등을 포함해 한번 인연을 맺은 작업자들과 오랜 관계를 이어가기로도 유명하다. 정서경 작가와도 이후 거의 모든 영화 대본을 공동 집필했다. 한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두 개의 키보드를 연결한 컴퓨터 한 대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대본을 완성한다는 둘의 작업 방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의견이 가장 대립하는 부분은 남성 캐릭터에 대한 묘사예요.” 정서경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강경하게 맞받아치다가도 결국 대부분은 감독님 뜻대로 가게 돼요. 완성된 영화를 보면 감독님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깨달을 때가 많거든요.”
‘복수 3부작’ 이후 영화에서는 ‘성’이 핵심 주제로 등장했다. <박쥐>에서 송강호가 연기하는 사제는 임상 시험에 참여해 흡혈귀로 변해버린 후 인간의 피와 살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느끼며 두려움에 시달린다. 이 영화는 종종 에로틱 호러 무비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박찬욱의 영화 중 궁극의 코미디 영화로도 꼽힌다. (송강호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학교 수업용 리코더를 불면서 귀와 입으로 피를 뿜어내는 장면이 떠오른다.) <스토커>에서 니콜 키드먼은 차가우면서도 성적 매력이 물씬 흐르는 과부 역을 맡아 딸(미아 와시코브스카)과 함께 매튜 구드가 연기한 젠틀한 사이코에게 유혹당하는 연기를 시도한다. 구드와 와시코브스카가 피아노로 필립 글래스의 곡을 듀엣으로 연주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엄청나다. 이처럼 <스토커>의 전반에는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감각이 깔려 있다. 와시코브스카가 키드먼의 머리를 빗겨주는 장면에서 흐르는 머리칼이 자연스럽게 물결치는 초원의 풀밭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보여주는 무언의 아름다움은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의 입에 쩍쩍 달라붙던 산낙지만큼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남긴다.
뽀얗고 흰 어깨, 새틴 리본, 검은색 잉크, 무르익은 복숭아, 검붉은 빛깔의 막대 사탕 등 박찬욱의 수작 <아가씨>에서 ‘성’은 영화의 모든 요소에 뚝뚝 묻어난다. <아가씨>는 영화 중반부에서 찾아오는 반전, 생생한 녹색, 외부와 단절된 폭력이 존재하는 방, 문어 등 박찬욱의 트레이드마크를 가득 실은 작품으로 그의 강렬함과 절제미를 완벽하게 결합한 첫 영화라 할 수 있다. 정서경은 그와 함께 이 영화의 각본을 쓸 당시 극 중 아가씨(김민희)와 숙희(김태리)처럼 둘의 의견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든 나머지 어느 시점에서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한 몸처럼 이야기를 써 내려갔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원작에는 성관계 장면이 딱 한 번 등장하고, 두 번 묘사된다. 반면 <아가씨>에는 성적인 장면이 그보다 훨씬 자주 나온다. 자위 기구와 이른바 ‘가위치기’로 알려진 성관계 자세,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있는 질의 시점에서 여성의 얼굴을 바라보는 샷 등이 그러하다. 박찬욱은 이 영화가 남성적 시선이 지닌 폭력성, 그리고 주변 남성과 음란물에 구속받던 여성들이 서로를 의지해 그로부터 독립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라 설명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와, 섹스 신이 엄청 많네’라고 여겼어요.” 원작을 쓴 워터스가 증언했다.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걱정은 대부분의 음란물이 그렇듯 두 여성이 성관계를 갖는 동안 남자가 거기에 끼어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런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어요. 제가 소설에 담은 플롯처럼 남성의 손에 놀아나던 여성들이 상황을 전복한 거죠. 오히려 여성을 착취하던 남성들은 서로를 파괴하고요.”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한 <아가씨>는 박찬욱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은 평을 받은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또다시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2022년 <헤어질 결심>이 등장했다. 박찬욱의 초기작이 보여준 폭력성과 후기작에서 눈에 띈 선정성을 모두 절제한 이 영화는 <현기증>에 보내는 오마주 같은 느낌으로 소설적인 느낌이 짙게 풍기는 인물들을 그려냈다. 한 형사가 중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뒤 새로운 국면을 맞아 다시 나타나는 팜므 파탈을 뒤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층계참과 옥상에서 벌어지는 추격 신, 까마득한 높이에서 추락하는 장면 등이 엇비슷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박찬욱은 두 영화의 유사성은 우연에 따른 것이라고 대답했다. “살면서 봐온 수많은 영화가 무의식 속에서 전부 뒤엉켜 있나 봐요.”
내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오스카상 후보가 발표됐다. 결과적으로 <헤어질 결심>은 후보에서 제외됐다. 후에 박찬욱 감독에게 혹시 그 일로 마음이 쓰였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오직 예술만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수상으로 인해 다음 작품에서 더 많은 영향력, 더 큰 창작의 자유를 부여받을 수도 있잖아요. 더 큰 예산을 확보할 수도 있고요.” 그러나 정서경 작가의 귀띔에 의하면 박찬욱은 그녀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서 타인의 평가에 가장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는 이야기했다. “감독님은 시상식에 참석하는 번잡스러운 수고를 극도로 싫어하는 분이기도 해요.”
<동조자> 촬영이 끝난 것은 지난해 5월이지만 미국작가조합은 스트리밍 시대의 도래로 인한 저임금과 AI 문제에 반발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뒤이어 미국배우조합까지 파업에 동참하며 할리우드는 5개월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상황이 빠듯해지면서 당연히 제작사들은 안전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퀄리티보다 접근성이 좋은 이야기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HBO는 <동조자>의 예산을 공개하길 꺼렸지만, 맥켈러는 주어진 예산 안에서 <동조자>를 제작하기 위해 굉장히 애를 써야만 했다고 터놓았다. “그게 제가 해야 하는 여러 일 중 하나였어요. 예산을 쪼개고 최대한 줄이고 절약하는 거죠. 여전히 그러고 있지만요.” 우리가 이 이야기를 나눈 때는 지난해 2월 중순으로, <동조자> 방영일까지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첫 에피소드 두 편의 가편집조차 끝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상황을 고려해 HBO 경영진은 에피소드의 러프 버전을 검토했고, 방송국 측의 수정 사항이 맥켈러에게 전해졌다. 방송국 측 수정 요청은 이랬다. “더 많은 시청자가 볼 수 있도록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 순 없을까요?”
박찬욱의 작품은 선정성, 폭력성, 세트 피스 측면에서 결코 부족함이 없지만, 다소 복잡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독자의 이해를 위해 설명을 더하는 식으로 절대 속도를 늦추지도 않는다. “감독님은 절대로 같은 설명을 반복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애원한다 해도요.” 맥켈러가 동조했다. 방송국으로부터 수정 사항을 전달받은 박찬욱은 각각에 대한 이유를 요구했다. 그는 맥켈러에게 “방송국 측에서 왜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맥켈러는 일이 많아지긴 하지만 박찬욱의 이런 측면을 존경한다고 얘기했다. 어떨 때는 박찬욱 감독의 입장을 가늠해 경영진과 프로듀서에게 “감독님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을 내뱉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어쨌거나 후반 편집 과정에서는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박찬욱은 여분의 신을 많이 찍지 않는 감독이기도 했다.
<동조자> 공개를 겨우 7주 앞두고 나는 마침내 첫 에피소드 네 편의 가편집본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끔찍하고 어마어마한 대피 장면에 이르기 전까지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숨 가쁜 속도로 풀어놓고 있었다. 시트로엥이 우당탕거리며 다리 위를 달려가고 담뱃재는 새카만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미사일로 변한다. 멀미 날 정도로 위태롭게 달리는 버스가 피란민을 가득 싣고 전쟁을 피해 미국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비행기를 향해 돌진한다. 피란민들은 활주로를 미친 듯이 질주하다가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폭탄에 사방으로 나동그라지고 사지가 절단된다. ‘대위’는 쓰러진 누군가의 몸 위에 웅크려 있다 고개를 들어 비행기를 본다. 카메라가 그의 시선을 따라 흔들리며 비행기를 줌인 한다. 피란민들이 대위를 향해 서두르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고, 그들 뒤로 펼쳐진 하늘은 지옥처럼 붉게 이글거린다. ‘대위’가 가까스로 비행기에 올라타고 난 뒤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한 어둠 속에서 빨간 비상등이 깜빡이며 한 아기의 축 늘어진 맨발을 비춘다. 영화 평론가 김영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찬욱은 확실히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는 영화의 ‘파괴적인 장관’을 보여주기 위해 언제 힘을 모으고 빼야 할지를 정확히 아는 감독이다.
네 편의 가편집본을 다 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줌을 통해 박찬욱 감독과 다시 한번 독대했다. 서울 시간으로 오전 9시였고, 그는 제작사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다. 검은 블레이저를 갖춰 입은 그의 앞에는 세 잔의 각기 다른 음료가 놓여 있었다. 나는 통역사를 통해 가장 먼저 박찬욱의 첫 TV 쇼에 대한 칭찬을 건넸다. “아직 작업 중인 상황인데 그걸 보셨다고 하니 오히려 부끄럽군요.” 그가 대답했다. HBO가 특히 후반부에 이 이야기를 단순화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를 본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뉴욕 광고 회사 직원이 정보 요원으로 오해를 받으며 시작하는 이 이야기를 박찬욱은 별문제 없이 이해했으나 그의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매우 존경하는 아버지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굉장히 크게 와닿는 것이 있었어요. 저는 관객이 창의력을 발휘해서 능동적으로 작품을 경험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여겨요. 영상을 보면서 지금 보는 내용에 대해 주의 깊게 고려해보길 바라는 거죠. 하지만 결국엔 영화의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돼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문자를 보낸다거나 다른 일을 해도 좋을 정도로 관객 편의에 맞출 거라는 말은 안 할게요. 하지만 관객이 제 아버지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보면서 느낀 답답함을 느끼게 하고 싶진 않아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런 딜레마를 항상 마주하게 돼요.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조금 나중에 이해하게 하는 게 좋을까?”
제작자의 의도와 열정이 담긴 수많은 TV 쇼가 계속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수많은 쇼가 시청자들이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문자를 주고받거나 SNS를 하면서 작품을 볼 거라는 걸 충분히 알고, 심지어 이를 감안해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지금 할리우드 시장에서 박찬욱의 질문은 내게 큰 파동을 일으켰다. 이제 경영진은 빌보드만큼 크고 적나라한 표시판을 원한다. 드라마를 시작한 지 5분 안에 주인공의 트라우마, 그에 얽힌 과거, 앞으로 펼쳐질 플롯에 대해 명확하게 보여주길 바라는 것이다. 박찬욱의 작품이 물론 아주 소수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유의 예술 영화는 아니지만, 이런 세상에서는 그가 관객에게 갖는 신뢰와 기대를 과도하게 요구할 수 없다. 박찬욱은 이런 흐름 속에서 스토리텔링 방식에 관한 성찰을 다각도에서 시도하고 있다. “관객이 어떤 상황이 벌어짐과 동시에 그 상황을 즉시 이해한다면 극 중 인물에 이입해서 감정을 충실히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그로부터 조금 뒤에 그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분명한 장점이 있어요. 바로 우리 인생이 그렇기 때문이죠. 누군가를 만나자마자 다 이해할 수 없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그 일의 본질과 인과관계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가 덧붙였다.
박찬욱은 어떤 이야기를 던진 뒤 즉시 그 반대 상황을 고려하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었다. <동조자>의 ‘대위’처럼. 그는 TV 쇼와 영화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진 않지만 매체별로 각기 다른 한계와 기회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했다. 영화는 효율성을 위해 풍부함과 복잡성을 놓칠 위험이 있고, TV 시리즈물은 ‘넘치는 돈을 펑펑 써대는 백만장자처럼’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동조자>를 제작하며 그는 ‘단 1초, 단 1분, 단 한 프레임이라도’ 낭비하지 않고, 영화에 준하는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말을 마친 뒤 그가 또다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말이죠. <모비딕>을 보면 고래를 잡는 기술이라든가 수많은 고래 종류, 고래 해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아주 길게 나오잖아요. 그걸 과연 낭비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발자크도 자신의 소설에서 19세기 연금제도에 대해 아주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그게 과연 낭비일까요?”
그는 촬영을 하지 않을 때면 사진을 찍는다. 박찬욱의 사진은 대부분 피사체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위트 있는 순간을 담고 있다. 대본을 쓰는 일 역시 그에겐 휴식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는 건 저에게는 쉼과 같아요. 작가들이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제 입장에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촌각을 다투며 일해야 하는 영화 촬영에 비하면 고요하게 글 쓰는 일이 훨씬 스트레스가 덜해요.”
그러나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박찬욱의 머릿속은 차기작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다. 벌써부터 많은 일이 그의 마음을 붙잡고 있다. 다음으로 제작할 작품은 맥켈러와 공동으로 집필한 실업자 연쇄 살인마를 다룬 영화 <액스>다. (박 감독은 이야기의 배경을 한국으로 옮겼다.) 제작 중인 또 한 편의 작품은 폭풍이 몰아치는 작은 마을을 초토화시킨 노상강도들, 이에 복수에 나선 의사와 보안관에 대한 서부 영화다. 그 와중에 그는 내전을 이끄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 <학살기관>이라는 일본 SF 소설을 영화화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도 터놓았다. “결국 자본가의 손에 달려 있죠. 다시 말해 이다음에 어떤 작품을 만들지는 현실적인 조건과 상황에 기반해서 결정한다는 거예요.”
박찬욱의 마음속엔 오랫동안 품어온 이미지가 많다. 가끔 그 이미지를 마침내 구현해낸다는 즐거움에 휩싸여 제작에 임하기도 한다. 아직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20대 시절, 그는 땅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흙과 풀로 자신의 몸을 뒤덮고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한 남자의 이미지를 상상했다. 그로부터 30년 후, 그 찰나의 이미지는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으로 빚어졌다. 서래(탕웨이)가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간 뒤 다가오는 밀물에 잠겨 익사하기를 기다리고, 바닷물이 오색으로 반짝이며 밀려왔다 쓸려가기를 반복하는 동안, 형사는 날카롭게 솟아 있는 해변의 바위 사이를 정신없이 헤매며 필사적으로 여자를 찾는다. 그러는 사이 파스텔 컬러로 물든 노을이 점점 어둑해진다. 박찬욱은 해가 저무는 동안 만조가 되는 정확한 날을 귀신처럼 찾아 오랫동안 상상해온 장면을 영상으로 훌륭하게 담아냈다. 그때를 놓쳤다면 한 달을 기다려 재촬영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찬욱은 언제나 그렇듯,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VK)
- 사진
- 강혜원
- 글
- JIA TOLEN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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