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산지직송’ 올여름 최고의 밥 친구
<언니네 산지직송>(tvN)은 <삼시세끼 산촌편>(tvN, 2019)을 연상시킨다. <삼시세끼 산촌편>에서 ‘큰손’ 캐릭터를 각인시킨 염정아가 중심을 잡고 윤세아, 박소담 대신 박준면, 안은진, 덱스가 고정으로 참여해 시골에서 합숙하며 밥을 해 먹는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여기에 지역사회와의 소통, 노동, 유희라는 키워드를 가미해 시청층을 다양화하고 한껏 입맛을 끌어올린다.
<삼시세끼 산촌편>은 여성 커뮤니티의 보살핌에 기반한 상호 협력을 아늑하게 그려냄으로써 TV에서 멀어지고 있던 젊은 여성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다만 <삼시세끼 어촌편>이 유해진의 해산물 채집 활동, 차승원의 창의적인 요리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들의 확실한 역할 분담으로 연극적 재미를 더한 것과 비교하면 오락 요소가 다채롭지 않았다. 특히 <삼시세끼 어촌편>의 낚시는 중장년 남성들의 관심사와도 맞아떨어져서 시청층 확대에 기여했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출연진이 지역 특산물 생산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 부분을 보완했다.
초반 방송 중 출연진은 남해에서 멸치털이와 단호박 수확을, 영덕에서 복숭아 수확과 가자미잡이를 하고 일당을 받았다. 그야말로 본격적인 ‘노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니네 산지직송>에서는 장수 프로그램 <6시 내고향>(KBS1), 추억의 예능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KBS2, 1993~2012) 같은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체력은 부족하지만 부지런하고 근성 있는 염정아, 지역민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안은진의 모습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덱스와 박준면도 각각 힘 잘 쓰는 막내, 든든한 보조 요리사로 캐릭터를 잡아가고 있다.
연예인들이 여행 다니면서 일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흔하다. 같은 tvN만 해도 <서진이네> <어쩌다 사장> <백패커> 시리즈가 있다. 하지만 <서진이네>는 아예 외국에서 장사하는 게 기본 포맷이고 <어쩌다 사장>도 최근 시즌을 미국에서 촬영했다. 비슷한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서민 경제도 나빠지면서 연예인들의 해외 촬영에 비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평가받는 프로그램이 중진국 콤플렉스에서 비롯한 인정 욕구처럼 보여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백패커> 시리즈는 고정 출연자가 남성뿐이라 <언니네 산지직송>과는 핵심 타깃 자체가 다르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국내 지방이 배경이고, 서비스 산업이 아니라 1차 산업을 주목하고, 여성이 주축이라는 점에서 익숙해 보이지만 각별하고 시의적절하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힐링’에서 한발 나아간 ‘건강한 삶’을 제시한다. 출연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 국민 체조로 몸을 푼다. 그 모습이 엉뚱해 보이지만 준비된 몸으로 하루를 맞이하자는 영감과 동기를 제공한다. 뙤약볕에서 땀 흘리다가 먹는 새참, 선물 받은 특산물로 마련한 푸짐한 한 끼는 절로 식욕을 자극한다. 정직한 노동의 가치와 삶의 다양성을 환기하는 풍경이다. 외국에 가서 영업을 하거나 온종일 밥 해 먹고 쉬는 예능 프로그램에 비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이 풍경은 뜻깊다.
나 자신을 위한 ‘힐링’에서 한발 나아가 주변으로 관심을 확장한다는 점도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남해 편에서 염정아는 <유 퀴즈 온 더 블럭>(tvN)에 나온 ‘행복 베이커리’를 찾아가 선행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염정아의 제안 때문에 출연진은 밤잠을 설치며 식혜를 만든다. 일행은 이웃에게 김치를 받으면 푸짐한 요리로 보답한다. 게스트로 출연한 황정민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전할까 궁리하다가 특산물을 보내자고 뜻을 모으기도 한다. 사회와의 소통이나 나눔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어떤 방식이 되었건,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 자체가 내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고,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길임을 프로그램은 자주 상기시킨다. 이 역시 ‘건강한 삶’이라는 주제와 맞닿는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물론 훌륭한 ‘힐링’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고즈넉한 바다 마을 풍경, 먹음직스러운 요리, 여름 여행의 낭만을 모두 담았다. 영덕 편에서 출연자들은 안은진의 제안으로 바다 수영을 즐긴다. 그런 활기차고 여유로운 모습이 해방감을 안겨준다.
산지에서 일하고 받아온 식재료를 쓰는 만큼 식탁은 어느 때보다 신선하고 풍성하다. 여느 요리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비건들에게는 잔혹하게 느껴질 장면이 많아서 시청에 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재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살아 있는 동물을 만지고 먹거리로 전환되는 이들을 조망하는 것도 한국 식도락 문화에서는 윤리적 의미가 있겠다.
여러모로, <언니네 산지직송>은 새로운 세대 여성 시청자를 위한 <6시 내고향>이 되기에 충분하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tvN에서 목요일 오후 8시 40분 방송된다. 티빙, 시리즈온, U⁺모바일tv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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