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시어링 코트는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 자수 레이스를 더한 드레스는 씨뉴욕(Sea New York), 메탈 귀고리는 페라가모(Ferragamo), 가죽 소재 싸이하이 부츠는 끌로에(Chloé). (오른쪽) 드레스는 라반(Rabanne), 벨트는 끌로에.
(왼쪽) 앤티크한 자수 장식 양털 조끼는 에르마노 설비노(Ermanno Scervino), 하늘거리는 실크 소재 블라우스와 쇼츠는 안토니오 마라스(Antonio Marras), 베이지색 가죽 부츠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오른쪽) 러플 헴라인이 돋보이는 맥시 드레스와 이너로 착용한 니트 쇼츠, 싸이하이 부츠는 끌로에(Chloé), 메탈 귀고리는 페라가모(Ferragamo), 말 모양 펜던트 목걸이는 마르니(Marni).
(왼쪽) 모던한 실루엣의 양털 재킷과 로고 귀고리는 샤넬(Chanel), 홀터넥 형식의 티어드 드레스는 톰 포드(Tom Ford), 모자는 로로피아나(Loro Piana), 검정 가죽 부츠는 펜디(Fendi). (오른쪽) 얇은 슬립 드레스와 청바지, 코인 펜던트 장식 목걸이는 샤넬, 뱅글은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왼쪽)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프린트한 스카프는 지방시(Givenchy), 네이비 케이프는 끌로에(Chloé), 작은 시퀸 장식이 달린 니트 상의는 구찌(Gucci), 메탈 목걸이는 샤넬(Chanel). (오른쪽) 양털처럼 표현한 프린지 코트와 드레스, 머플러와 부츠는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
(왼쪽) 민소매 상의와 니트 소재 탱크 톱 보디수트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탐스러운 모피 머플러는 시니 뉴욕(Sini New York), 메탈 체인 벨트는 샤넬(Chanel),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가죽 부츠는 버버리(Burberry). (오른쪽) 검정 케이프는 에르마노 설비노(Ermanno Scervino), 꽃무늬 레이스 드레스와 언더웨어, 메탈 귀고리와 가죽 벨트는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동그란 메탈 장식이 달린 싸이하이 부츠는 끌로에(Chloé).
(왼쪽) 섬세하게 짜인 민트색 레이스 블라우스는 에르마노 피렌체(Ermanno Firenze), 부드러운 스웨이드 소재 바지는 로에베(Loewe), 메탈 체인 벨트는 샤넬(Chanel). (오른쪽) 러플과 시퀸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한 보우 블라우스는 발렌티노(Valentino), 청바지와 메탈 귀고리, 벨트처럼 연출한 목걸이 두 개는 샤넬, 실크 스카프는 지방시(Givenchy), 송치 가죽 부츠는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
(왼쪽) 몸에 꼭 맞는 꽃무늬 레이스 드레스는 라반(Rabanne), 체인 벨트는 끌로에(Chloé), 볼드한 메탈 커프와 투톤 스웨이드 부츠는 샤넬(Chanel). (오른쪽) 시퀸 꽃 장식이 로맨틱한 레이스 드레스와 연두색 실크 스카프는 구찌(Gucci), 풍성한 인조 모피 코트는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 가죽 싸이하이 부츠는 끌로에.
(왼쪽) 반투명 실크 블라우스와 니트 쇼츠, 메탈 벨트는 끌로에(Chloé), 모자는 로로피아나(Loro Piana). (오른쪽) 분리 가능한 케이프가 달린 트렌치 코트는 끌로에, 드레스는 페라가모(Ferragamo), 메탈 목걸이는 구찌(Gucci), 속옷은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부츠는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
때는 2004년, 시에나 밀러는 프릴이 나풀거리는 흰색 드레스에 슬라우치 부츠를 신고 노팅힐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녀가 입은 드레스는 1960년대 빈티지일 수도, 피비 파일로가 디자인한 끌로에 2004 봄 컬렉션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 서쪽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백스테이지에는 케이트 모스가 등장했다. 손바닥만 한 마이크로 쇼츠에 조끼, 스터드 장식이 박힌 빈티지 벨트를 매치한 그녀의 쿨한 스타일에는 곧바로 ‘뉴 보헤미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시에나 밀러도 로베르토 카발리의 행커치프 드레스, 오시 클락 상의와 코인 장식 벨트로 이 유행을 함께 이끌었다). 미국에서는 메리 케이트와 애슐리 올슨 자매가 러플 드레스 위로 티셔츠나 후디를 겹쳐 입고 납작한 샌들 차림으로 맨해튼 도심을 누볐고, 캘리포니아에서는 제시카 알바가 시폰 드레스 아래로 청바지를 매치한 채 레드 카펫을 걸었으며, 파파라치들은 바람에 나풀거리는 화이트 시폰 드레스에 프린지가 달린 스웨이드 가방을 어깨에 멘 케이트 허드슨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보호 시크(Boho Chic)’라고 알려진 이 현상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느긋하고 풀어 헤친 느낌의 쿨함으로, 어떤 이들은 패션계에서 이런 무드가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이자벨 마랑, 울라 존슨, 짐머만 등 수년째 이 같은 분위기를 반복하는 여성 디자이너 휘하의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시에나와 케이트를 비롯한 전 세계 모두를 사로잡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선두에는 끌로에 디자이너 셰미나 카말리(Chemena Kamali)가 있다.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셰미나 카말리의 끌로에 데뷔 컬렉션은 좀 더 편안하고, 가볍고, 자유분방한 영혼이 담긴 옷을 향한 동경을 표현하는 듯 보였다. 카말리는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을 정립하던 5년의 시간을 끌로에에서 보냈다. 피비 파일로 아래에서 인턴으로, 그리고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디자이너로 말이다. 그런 그녀가 선보인 1970년대풍의 풍성한 헴라인, 주름 잡힌 네크라인, 뱀 모티브 목걸이, 그리고 프런트 로에 앉은 시에나 밀러, 리야 케베데, 키에넌 시프카, 조지아 메이 재거, 팻 클리브랜드 등이 신고 있던 나무 굽 클로그는 2000년대 룩을 정의하는 데 일조했던 끌로에의 과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쇼를 보는 동안 마음이 너무 편했어요. 한 벌 한 벌 전부 다 갖고 싶었죠.” 쇼가 끝난 후 밀러가 고백했다. “꿈에 그리던 의상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답니다.”
오리지널 보헤미안 스타일의 부활이 빈티지와 오시 클락으로 가득한 밀러의 옷장에서 영감을 받은 결과라면, 2024 가을/겨울 시즌 런웨이를 뒤덮은 그런지 무드는 올슨 자매에게서 비롯되었다. 기다란 목걸이, 발가락 링, 맥시스커트가 2000년대 뉴욕 다운타운을 장악했던 일명 ‘보보 시크(Bobo Chic,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만 보헤미안풍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을 일컫는 프랑스 단어 Bourgeois Bohème에서 유래한 표현)’를 응용한 것이다. 왜 지금일까?
“스물한 살 때 이걸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밀러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같은 부드러움과 여성성은 역사적으로 정치적 압박감이 심하고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에 등장하곤 했습니다. 특유의 방식으로 벗어나기 위해서요. 어떤 면에서는 시대정신을 따른다고 할 수 있죠.” 2000년대 초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있었다. 현재는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 수단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진행 중인 내전과 인도주의적 위기, 그리고 미국에서 곧 있을 중요한 선거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반발할 만한 일은 차고 넘친다. “이렇게 옷을 입는 방식은 제가 영감을 받고 공감하는 과거의 한 시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19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처럼 의식적이면서도 스타일을 중시한 세대를 정의한 히피와 반전 운동을 떠올려보자.
1970년대 초 패션에서는 ‘소프트 룩(Soft Look)’이 탄생했다. 끌로에의 칼 라거펠트를 비롯한 디자이너들은 안감과 충전재를 없애고, 주름지고 풍성한 실루엣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섬세한 원단은 풍성한 비율로 재단되어 런웨이와 스티비 닉스(Stevie Nicks)의 공연 무대를 거쳐 마침내 거리까지 점령했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환생한 보호 시크와 마찬가지로 자유분방하면서 다소 건방진 모습으로 말이다.
2000년대 보호 시크가 부활하게 된 데는 온라인 빈티지 거래 플랫폼 쉬림튼 꾸뛰르(Shrimpton Couture)의 딜러 셰리 바크(Cherie Balch)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헤미안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진 않은 상태다. “일단 소셜 미디어에 보이기 시작하면 요청하는 이들이 생길 겁니다.” 바크는 1970년대 빈티지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런웨이에서 무엇이 유행하든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거리에서 유행하면 정점을 찍지 않을까요?” 그녀는 최근 런웨이 피스의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빈티지가 호황을 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보호 시크는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사회운동이라기보단 스타일이자 분위기에 대한 것이다. 물론 주위 환경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새로 발견하고 부활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해석 과정에서 원래 맥락의 일부는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이 의상이 1970년대에는 히피나 제2물결 페미니즘의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면, 21세기에는 그런 성격이 덜하다. 그렇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패셔너블한 여자들은 무심한 보헤미안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들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것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땐 흑인 아이콘이 많지 않았어요.” 케베데는 에리카 바두(Erykah Badu)와 리사 보넷(Lisa Bonet)을 간과된 보헤미안 여왕으로 꼽았다. “다행히 지금은 훨씬 열려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말이죠.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시도하고 있고요.” 케베데는 패셔너블함에 대한 정의가 더 확장되었음을 지적했다. 이는 보호 시크 같은 미학에도 적용된다. 만약 20세기 보헤미안 스타일의 부활이 당시 삶의 방식과 감정을 따르는 것이라면, 최근 패션계에 일어난 재평가는 단순히 보호 시크가 역사적으로 대변해온 편안함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것일 수 있다.
“흐트러짐과 자유, 부드러움과 움직임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사람들이 관습, 전통적인 삶의 방식, 성 개념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것에서 기원한 거죠.” 올해 초 카말리는 미국 <보그>의 패션 뉴스 디렉터 마크 홀게이트(Mark Holgate)와의 인터뷰에서 패션에서 흔히 발생하는 전개에 대해 언급했다. “어느 시점부터 보헤미안 무드가 지나치게 과해지고, 결국 사라져버렸어요.” 보호 시크의 유행이 걷잡을 수 없어지면서, 모두가 청바지 위에 치마를 입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언제나 특유의 무례함이 있었어요. 그게 그리워요.” 밀러가 말했다. “당시엔 요즘 사람들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기가 더 쉬웠죠.”
오늘날의 보호 시크는 틱톡이 아니라 런웨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잇 걸 무리는 ‘콰이어트 럭셔리’ 같은 다른 유행을 따른다. 이는 보호 시크가 주류보다는 틈새시장처럼 존재함을 뜻한다. 지금의 보헤미안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수 FKA 트위그스나 플러스 사이즈 모델 팔로마 엘세서처럼 이 야심 찬 편안함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스타일은 훨씬 폭넓어 단순히 보호 룩이라고 하기는 미묘하기 때문이다. 2024년 버전의 ‘보호 걸’은 저 밖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질 좋은 실크 러플과 프릴로 완성된 헴라인의 여유로움과 따뜻함을 만끽하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으며 한껏 흐트러질 자유를 누리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카말리가 끌로에에서 제안하는 부활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다시 한번 그 정신을 느끼길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살기를 원하고, 자신을 위한 삶을 정의하고 싶어 하니까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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