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친구아들’ 엄마 친구들은 왜 그럴까?
<엄마친구아들>은 소꿉친구가 성인이 되어 투덕대면서 연애하는 얘기다. 딱히 새로운 설정은 아니다. 그런데 드라마 초반 ‘엄마’, ‘친구’, ‘엄마 친구’ 등 제목의 여러 군데로 방점을 옮겨가며 풍성한 결을 만들어낸 게 인상적이다.
<엄마친구아들>은 중년 여성들이 등산을 핑계로 모여서 자식 자랑 배틀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혜숙(장영남)의 아들 승효(정해인)는 촉망받는 건축가, 미숙(박지영)의 딸 석류는 미국 대기업 직원이다. 재숙(김금순)을 위시한 친구들은 둘의 경쟁이 익숙한 듯 “오늘은 누가 이길까?”, “승효가 상을 받는다니 혜숙이 이길 것”, “석류의 청첩장을 가져온 미숙이 승리”라며 심상하게 관전을 한다. 혜숙은 우아한 말투와 해박한 지식, 세련된 패션으로 미루어 사회생활 경험이 많은 인사로 보이고, 미숙은 그에 비해 거친 면이 있다. 후에 이들의 캐릭터가 설명되면서 이 장면의 연기가 얼마나 섬세하게 조율된 앙상블인지 드러난다.
서울에 도착한 석류는 우연히 마주친 승효를 이용해 몸을 숨기면서 가족과의 만남을 미룬다. 알고 보니 그는 결혼을 파투 내고 다니던 회사에서도 해고당했다. 미숙은 석류를 두드려 팬 다음 진상을 추궁하지만 석류는 어째서인지 못 믿을 소리만 하면서 답변을 회피한다. 미국에서 꽤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충격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너스레를 떠는 듯하다. 승효는 어릴 때부터 얌전한 자신을 막무가내로 휘두르던 왈가닥 석류에게 진저리를 치지만 석류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마음을 쓴다.
2회에서는 혜숙과 미숙의 미묘한 관계가 밝혀진다. 석류의 결혼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은 여고 동창들은 미숙을 비웃는다. 미숙이 공부는 혜숙보다 잘했지만 가난해서 대학을 못 가는 바람에 혜숙에게 경쟁심이 있고, 딸의 성공으로 대리 만족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엄친아’가 등장할 때 배경으로 흘려보내기 쉬운 어머니 세대의 네트워킹을 한층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이들과 자식들의 지극히 한국적이고 민감한 관계에도 설득력이 더해졌다. 석류의 성공이 미숙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석류가 미숙에게 가진 부담과 애틋함의 양가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충분히 공감이 가고, 그것이 드라마의 정서적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어준다. 이후 석류는 미숙에게 “나는 왜 항상 엄마의 자랑이어야 하는데?”라고 항변하고, 미숙은 창고로 쓰던 석류의 방을 단장해준다.
승효와 혜숙의 모자 관계도 차차 설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혜숙은 외교부 직원이라 해외 발령이 잦았다. 그가 집을 비울 때면 놀이방을 운영하던 미숙이 승효를 돌봤다. 그렇기 때문에 승효는 미숙을 ‘이모’라 부르며 가족처럼 살갑게 군다. 정작 혜숙은 자식인 승효를 어려워한다. 승효의 회사 개업식에서 동업자가 미숙을 승효의 어머니로 착각한 순간 불거지는 긴장감이 이들 관계의 많은 것을 암시한다.
장영남과 박지영은 자식이 어머니 인생의 훈장 혹은 약점이 되는 현실, 양육자의 직업 환경에 따른 피양육자와의 애착 유형,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갖는 기대, 애정, 죄책감 등 작품의 서브 주제에 묵직한 울림을 부여한다. 이들을 위시한 어머니 세대의 교우 관계에는 젊은 캐릭터들의 우정보다 다양한 역학이 담겨 있다. 석류의 파혼 소식을 듣고 고소해하는 지인들과, 대놓고 자랑 배틀을 벌이고 서로 면박도 주지만 감싸줄 땐 감싸주는 코어 서클의 차이는 ‘친구’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엄친딸’ 석류의 성장 드라마기도 하다. 혼자 장학금 받아서 유학을 가더니 미국 대기업에 취직까지 해서 엄마를 자랑스럽게 했던 석류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동료들은 그를 “협업이 안 된다,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경쟁하려고 한다, 여유가 없다, 전형적인 한국인이다”라고 평가했다. ‘엄친아’, ‘엄친딸’은 비교, 경쟁, 과시가 일상이고 타이틀에 집착하고 ‘스펙’이 성공의 잣대인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단어다. 드라마는 ‘엄친딸’ 레이스에서 탈락해버린 석류의 난처함을 통해 이 현실의 한계를 에둘러 지적한다.
<엄마친구아들>의 공식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다. 그 부분도 착실히 전개되고 있다. 이 작품의 역동성은 주로 정소민의 활약에서 나온다. 빠른 호흡으로 말을 툭툭 내뱉으며 승효를 졸병처럼 부리고 남동생 머리채를 휘어잡는 석류는 그의 전작인 영화 <30일>을 연상시킨다. 정소민의 넘치는 에너지와 사랑스러움, 정해인의 섬세한 리액션이 좋은 합을 이룬다. 또 하나의 ‘외향형 여자-내향형 남자’ 조합인 모음(김지은)과 단호(윤지온)도 매력 있다. 의협심 넘치지만 체력이 부실한 단호는 석류의 단짝이자 응급구조사 모음이 취객을 발 차기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버린다. 로맨스에서 건강하고 단단한 여성 캐릭터를 발견하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엄마친구아들>은 총 16부작으로, 8월 17일부터 토·일요일 오후 9시 20분 tvN에서 방송된다. 티빙, 시리즈온, U+모바일tv,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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