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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스페이스

2016.03.15

넷플릭스 스페이스

넷플릭스가 한국에 온다. 요즘 미국과 유럽을 뒤흔들고 있다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다. 근데 그게 올레TV, 혹은 케이블TV와 뭐가 다르냐고? 지금 미디어 콘텐츠 업계에 새로운 TV 우주가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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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가 정선을 다녀와 다시 어촌(<삼시세끼 어촌편 2>)에 가기까지 나영석 PD는 웹상에 있었다. 그는 예전 <1박 2일>의 멤버들을 다시 모아 네이버 TV캐스트에서 <신서유기>를 만들었다. 10분 안팎의 오락 프로그램이었고, 인터넷과 모바일로 볼 수 있는 포맷이었다. 그리고 영화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의 홍보차 한국을 찾았던 이기홍은 바쁜 홍보 일정 속에 인터넷 나들이도 했다. 자신의 영화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을 패러디한 웹드라마 <서울 러너>의 촬영이었고, 이 영상은 현재 비퍼니 스튜디오와 네이버 TV캐스트에서 공개 중이다. 영화가 웹드라마로 이어지고, TV의 스타 PD가 넷상에서 오락을 펼친다. 장르도, 매체도 구분의 의미가 없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한국 론칭 소식은 이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하나의 부표처럼 등장했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방송영상견본시 자리에서 넷플릭스의 그레그 피터스 글로벌 사업 책임자는 2016년 내에 넷플릭스 서비스를 한국에 론칭한다고 밝혔다. 그간 소문만 무성하던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는 발표였다. 일부에선 미디어 환경 전체가 뒤바뀔 거라 전망했고, 또 일부에선 국내 현실상 별다른 파급 효과가 없을 거라 내다봤다. 전 세계 유료 가입자만 6,000만 명에 이르는 초거대 서비스의 한국 론칭. 어쨌든 미국 발 또 다른 TV 우주가 국내에 상륙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사실 별게 아니다. 한 달에 일정액을 내고 원하는 영화와 TV 콘텐츠를 무제한 제공하는 서비스는 올레TV나 LG유플러스TV 등 국내 IPTV와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1997년 비디오와DVD를 우편으로 배달하며 시작했다. 이후 배달망을 오프라인이 아닌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확장했고, 현재 26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전국 동영상 택배 업체랄까. 다만 넷플릭스가 OTT(Over The Top) 방식이라는 점은 이후 콘텐츠의 시청 패턴을 고려할 때 주목할 만하다. OTT는 별도의 셋톱 박스 없이 인터넷을 통해 영상을 송출하는 시스템으로, 이로 인해 시청자는 시간, 장소에 구애 없이 원하는 영상을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한도전>의 다시 보기를 위해, 영화 <명량>을 관람하기 위해 굳이 셋톱 박스가 연결된 TV 앞에 앉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이제는 그저 인터넷이 가능한 모든 곳에 바로 TV가 있다.

넷플릭스의 미래가 밝기만 한 건 아니다. 우선 콘텐츠의 수급 문제다. 국내 IPTV의 경우 보유 콘텐츠가 10만을 훌쩍 넘어서는데 넷플릭스는 고작 1만도 되지 않는다. <하우스 오브 카드>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또는 <마르코 폴로> 등 근래 대대적인 인기를 누린 넷플릭스 자체 제작 콘텐츠가 있지만 이 역시 국내의 최근 미국 드라마 인기를 감안하면 그리 큰 강점은 되지 못한다. 특히 국내 IPTV 시청 비율은 최신 영화와 TV 다시 보기가 반반씩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수급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넷플릭스 입장에선 한국 시장이 결코 좋은 환경은 아닌 거다. KT의 문지형 마케팅 과장 역시 “브랜드 파워가 있으니 동향을 살펴보겠지만 넷플릭스 자체가 그리 큰 변화를 가지고 오진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또한 매달 1만원 정도 월 정액제인 넷플릭스의 요금 체제도 정액제보다 건별 결제를 선호하는 국내 시청자의 구미에는 맞지 않는다. 모 콘텐츠 제작 업체의 관계자는 “미국에서 넷플릭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미국 사람들이 클래식한 할리우드 영화를 꾸준히 자주 보기 때문이다. 주요 배급사는 최신작을 당연히 넷플렉스에 유통하지 않고, 그러니 넷플릭스는 올드 무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건데 미국은 그게 먹히는 시장이다”라고도 설명했다. 게다가 현재 넷플릭스는 자체 서비스망을 확보하는 대신 통신사와의 제휴 형태로 서비스 론칭을 준비 중인데, 그럼 결과적으로 올레TV의 한 채널, 혹은 SK B TV의 한 카테고리로 보일 위험도 있다. 신세계의 국내 상륙이 그리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 이유다.

분명 넷플릭스가 그 자체로 TV의 신세계를 열어젖히진 않을 거다. 하지만 장소와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 콘텐츠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이 채널은 매체와 장르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근래 콘텐츠 제작과 소비 방식에 대한 하나의 지표가된다. 가령 TV를 보는 시청자의 행동 패턴이 무한의 변수로 다양해졌다. 넷플릭스의 사용자는 버스 출근길에서 스마트폰으로 보다 남긴 <왕좌의 게임>을 거실 소파에 앉아 TV로 이어 볼 수 있고, 도중에 잠이 들었다면 그 뒷이야기를 다음 날 태블릿 PC로 확인할 수도 있다. 셋톱 박스를 필요로 하는 올레TV에선 현재 “10%만 가능한 서비스”다. 그러니까 넷플릭스를 비롯, 근래의 미디어 환경 변화는 콘텐츠의 소비, TV의 시청 패턴 자체를 뒤집어놓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네이버 TV캐스트, 케이블 채널 tvN이 모바일 영상 제작소란 이름으로 새로 오픈한 tvNgo 등의 제작물은 이제 기존 방송사의 드라마, 쇼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게 소비되고, 피키캐스트, 메이크어스, 버즈피드 등을 통해 업로드되는 각종 웹드라마, 코믹 영상 역시 시청자에게 별 구분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제는 모든 게 TV고, 또 모든 게 TV가 아니다.

지난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팀 쿡은 애플TV의 새로운 버전을 설명하며 “미래의 TV는 앱”이라 선언했다. 방송사 편성표에 맞춰 시청하는 기존 TV가 아니라 시청자가 자신의 일과에 맞춰 골라 보는 TV의 시대가 왔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이날 애플이 공개한 애플TV는 시리를 통해 말만 하면 원하는 영화를 찾아주고, 배우의 이름으로 관람 리스트를 만들어주며, 시청 도중 그날의 날씨, 스포츠 게임 결과 등도 알려준다. 콘텐츠 바다를 헤엄치던 시리가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 알맞은 콘텐츠를 물어다 주는 식이다. 아직 국내엔 출시되지 않아 다소 실감이 안 나지만 정말 TV는 이제 고작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일지도 모른다. TV 수상기 없이도 거의 웬만한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TV 고유의 미디어를 고집할 의미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이러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예시일 것이다. 콘텐츠 제작 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정확히 명칭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아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라고 했다. TV의 옷을 벗고, 혹은 TV와 상관없이 제작되고 공유되는 콘텐츠의 무한한 바다. 기존 TV가 해체되고 지금 새로운 TV 세상이 열린다.

    에디터
    정재혁
    포토그래퍼
    HWANG 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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