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여성의 삶이 예술이 되어 무대에 올랐다

2024.09.09

여성의 삶이 예술이 되어 무대에 올랐다

퍼포먼스, 펑크, 페미니즘, 무구한 아카이브를 접목한 최초의 시도. 밀라노를 점령한 전시 〈New Society〉를 통해 행위 예술가이자 영화감독, 작가인 미란다 줄라이가 여성의 삶을 기반으로 초현실 퍼포먼스에 도전했다.

“제 창작열의 비결은 매일매일 스스로도 놀라운 일을 벌이는 거예요.” 오세르바토리오 폰다치오네 프라다에서 10월 28일까지 펼져지는 기획전 〈New Society〉의 복제된 의상 앞에 선 미란다 줄라이.

미란다 줄라이(Miranda July)는 방대한 현대 예술 아카이브로 거듭난 프라다 재단의 오세르바토리오(Osservatorio) 갤러리와 고다르 시네마를 오가며 자신의 예술 이력을 재정비하는 희열을 만끽하는 중이다. 그가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관람객의 참여에 힘입어 밀라노의 예술 애호가들은 줄라이의 예술 세계의 일부가 되고 있다. 현대미술 큐레이터 미아 록스(Mia Locks)가 기획한 줄라이의 개인전 〈New Society〉는 오세르바토리오에서 오는 10월 28일까지 대중에게 공개된다.

영화감독과 작가, 행위 예술가로 활동하는 미란다 줄라이는 사실 30년에 걸친 다채로운 경력을 보유한 예술계의 젊은 거장이다. 그리고 록스는 전시에 필요한 연구를 위해 줄라이의 아카이브 세계에 진입한 최초의 여성 큐레이터가 됐다. 두 여성의 협력으로 선보이게 된 미란다 줄라이의 첫 개인전의 이름 ‘New Society(새로운 사회)’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줄라이가 무대에서 상연한 네 번째 퍼포먼스 타이틀이기도 하다. 줄라이가 집필하고, 직접 무대에 올라 선보였으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영화가 탄생할 때마다 새로운 사회가 창조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성의 삶을 깊숙이 파고드는 줄라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다름 아닌 타인을 이해하고 환영하는 것이다.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삶에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린 태도와 관습에서 자유의 영역을 발굴하는 노력에서 새로운 영토를 찾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Miranda July, @craigmontyjames (C.M. James), and @thongria (Zoë Ligon) in F.A.M.I.L.Y. Ceiling, 2024, Still from video, Courtesy of Miranda July Studio

1974년생인 줄라이는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났지만 버클리의 비범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현재는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실제로 마주한 그녀는 초롱초롱 빛나는 큰 눈망울과 약간의 잔망스러운 매력을 지닌 단정한 여성이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정확히는 1992년 5월 3일 고등학교 졸업반에서 60분 분량의 연극 <The Lifters>의 각본과 연출을 맡으며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고백한다. 2009년에는 일 자르디노 델레 베르지니(Il Giardino delle Vergini) 정원에 설치한 11개의 유리섬유 조각품 ‘Eleven Heavy Things’로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해당 작품은 관람객이 머리와 팔다리를 넣을 수 있도록 조각한 작품으로 대중과의 신체적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작품과 함께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이 줄라이의 지침에 따라 보내온 영상으로 완성되는 비디오 시리즈이자 줄라이의 최신작 ‘F.A.M.I.L.Y.(Falling Apart Meanwhile I Love You)’는 〈New Society〉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이처럼 그의 첫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2005) 이후 줄줄이 탄생한 영화를 포함한 그녀의 퍼포먼스적 담론은 언제나 서로 얽혀 있으며 그 결과 줄라이의 작품에는 다양한 언어가 혼재한다. 줄라이가 세트장에서 체득한 영화계 용어를 퍼포먼스에서 재연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줄라이는 자신의 예술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 없고, 자신이 쓴 이야기 없이는 예술을 할 수 없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밝힌다. 전시와 병행해 시네마 고다르에서는 줄라이의 연출작이 독점적으로 소개된다. 코미디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부터 <미래는 고양이처럼>, <카조니어>, (초)단편영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만날 수 있다.

“퍼포먼스를 회고(전)식으로 선보이는 일은 아주아주 복잡한 일이에요. 줄라이는 원작과 많이 다른 작품이 전시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향을 일으키고 감각을 깨우는 전시가 되기를 바랐죠. 이는 갤러리들 사이에서 오늘날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는 화두이고, 다행히 우리는 좋은 예와 모델들을 갖고 있었어요. 저는 이미 고인이 된 작가뿐 아니라 공동 사업체와도 작업해본 적 있고, 예술가들의 아카이브를 이용한 작업도 한 적 있기 때문에 다행히 그런 맥락의 연구에 익숙했죠. 저는 큐레이터이기 전에 연구자이기도 해요. 예술가와 접촉할 때 항상 그 예술가의 모든 것을 자세히 들추어 보고, 작가가 관심 갖는 분야의 모든 것을 읽어내야 하니까요. 모든 세부 사항이 그 예술가의 작업이 지닌 의미를 기반으로 한 큐레이터의 비전을 구현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현재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록스는 과거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PS1, 휘트니 미술관 등 여러 기관에서 근무하며 실력을 쌓았다. 그녀는 또한 현재 ‘Museums Moving Forward’라는 박물관을 지원하는 단체의 공동 창립자로도 활약 중이다. 록스의 귀띔을 바탕으로 나는 프라다 재단 사무실에서 미란다 줄라이를 마주했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가장 우울했던 그날, 줄라이의 입을 통해 전해진 말이 내게 뭉근한 영감을 불어넣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Miranda July (‘Sofie’) in The Future, 2011, Courtesy of Roadside Attractions

이탈리아에서 뜨거운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미국 작가입니다. 높은 관람률은 물론 전시와 병행해 열린 마스터 클래스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는 소식이 이를 뒷받침하죠.

정말요? 제 작업에 관심을 갖고, SNS를 팔로우하는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요? 그들이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전시장을 직접 방문해주었다니 정말 기쁘군요! 제가 세상에 뭔가를 내놓길 원할 때 어떤 사람이 얼마나 호응할지 저는 전혀 알 수 없어요. 이를테면 임의의 사람 8,000여 명의 참여로 진행했던 ‘Learning to Love You More’ 프로젝트를 자신만의 버전으로 창조해 이번 전시를 채운 이탈리아 작가 미리암 고이(Miriam Goi)가 아니었다면 설치 작업 ‘Learning to Love You More: Assignment #43’은 탄생할 수 없었을 거예요.

1990년대 미국에서 생겨난 페미니즘 펑크 록 장르인 라이엇 걸(Riot Grrrl)과 그로부터 파생한 DIY 뮤직과 관련해 포틀랜드 펑크 하위문화 속에서 전기(Biographies)를 바탕으로 탄생한 당신의 데뷔 작품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요?

정확히 말하면, 펑크는 당연히 음악 장르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사실 저는 뮤지션인 적은 없어요(밴드를 아주 잠깐 해봤을 뿐이죠). 그 시절 제가 음악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깨달은 것은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이었고, 기타 치는 법보다는 영화 제작하는 법이나 스토리텔링 창작법을 즐겁게 터득하던 시기였어요. 그 후 학교를 중퇴하고 포틀랜드로 이사를 갔죠. 예술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동네였어요. 게다가 그곳에서 아주 멋진 페미니스트 그룹도 만나게 됐고요. 저는 바쁘게 일하느라 정신없이 살아가는 여성들 속에서 살고 싶은 개인적 바람이 있었어요.

지금 이 순간,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여전히 우리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어요. 가끔은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도요. 혼자 있을 때 우리가 페미니즘에 대해 떠올리진 않잖아요. 그러다 갑자기 어떤 일이 생기면, 예를 들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여전히 잘못된 구조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식이죠. 여기 이탈리아는 어떤가요?

다들 의식은 하고 있고, 변화하려는 시도가 느리게나마 나타나고 있어요.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어요. 항상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작업을 해왔고, 언제나 제가 좋아하고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왔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느끼는 그런 낙관적인 기운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감이 당신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다고 느꼈죠. 제 해석이 맞나요?

그럼요, 물론이죠. 설령 제가 밑바닥까지 내려가더라도, 그 과정에서 극도의 슬픔과 화를 느끼게 되더라도 다시 스스로를 표면으로 끌어낼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생각으로, 특히 유머를 통해 부정적인 상황을 돌파하려 하죠. 실제로 기분을 ‘업’시키기 위해 많이 놀아요.(웃음) 정말이지 저는 놀 때 가장 진심인 사람이에요.

당신 말을 통해 작품에서 보이는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호기심과 개방성이랄까요.

정확하게 보셨군요. 제 마음은 항상 열려 있어요. 향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 기꺼이 놀랄 준비가 되어 있죠.

공연이나 책, 영화에 자전적인 내용을 많이 담는 편인가요?

아니요. 사실상 자전적인 성격을 띤 작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해요. 실제 삶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작품을 꼽는다면 아마도 지난 6월, 이탈리아 펠트리넬리 출판사에서 <A Quattro Zampe>라는 이름으로도 출간된 <All Fours>일 거예요. 책 속에 실제 제 모습이 얼마나 녹아들었는지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군요. 제 초연작 <Love Diamond>(1998)에도 눈과 관련된 평생의 고충이 담겨 있어요. 저는 평생 안질환을 앓아왔는데 그 작품을 만들 때는 증세가 훨씬 심각했거든요. 실제 삶과의 그런 유사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토리 구성 과정에서 엉뚱하게 전개되면서 초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어요.(웃음) 초기 집필작 중 하나인 <Something That Needs Nothing>도 저와 처음으로 진지하게 교류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을 모델로 등장시키긴 했지만 딱히 그렇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Miranda July in Love Diamond, 1998, Portland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Portland, Oregon, Courtesy of Miranda July Studio

춤 레슨을 받아본 적 있어요? 최근 선보인 퍼포먼스에서 역동적인 몸의 움직임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요. 퍼포먼스를 시도하는 행위 예술가 중에서 댄스 아카데미와 스튜디오 출신이 많기도 하죠.

춤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어요. 어릴 때 레슨 몇 번을 받았을 뿐이어서 훌륭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카메라가 장착된 최초의 휴대폰부터 SNS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기술을 접목한 낯선 도구에 수월하게 적응하는 것 같아요. 그런 관점에서 당신이 바라보는 미래는 어떤가요?

비록 수년 동안 휴대폰과 인터넷 없이 살았던 적도 있지만 저 역시 이런 기술이 몰고 온 위대하고 초현실적인 변화를 더러 목격한 인물로서 다른 사람들과 엇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식으로든 신기술의 개입이 필요한 순간에 많은 사람이 그것에 열광하고 그것을 사용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저는 신기술이 없던 시대의 시선, 즉 그런 환경에 아직 노출되지 않은 사람의 시선으로 그것을 관찰하고 이용하는 방식을 즐겨요. 열한 살인 아들과 저는 신기술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더군요.

신디 셔먼과 AI를 주제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죠. 그 대화의 요약본이 전시와 시네마 프로젝트, 공간 작업 등을 총망라하는 프라다 재단의 출판 시리즈 <콰데르니(Quaderni)>에 실렸고요.

AI는 단지 도구일 뿐이지만 명확한 목적을 갖고 인류에게 다가왔어요. 이 신기술에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상적으로 자문하고 싶었죠. 그런 질문을 통해 그 기술을 제가 오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논리를 반대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는지, 예상과 다르게 접근하는 면은 없는지, 깊이 살펴보게 되었어요.

Miranda July and @nitegallery (Amanda Medina) in F.A.M.I.L.Y. Kiss, 2024, Still from video, Courtesy of Miranda July Studio

존경하는 예술가가 있습니까? 스스로는 어떤 아티스트가 되길 바라나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아주 확실한 답이 있어요! 예술을 통해 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개념 예술가 소피 칼과 마찬가지로 사회참여적인 작가 피에르 위그를 선망합니다.

당신의 작업에서 적극적인 참여로 퍼포먼스의 일부를 이루는 관람객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나요?

이번 개인전을 통해 그 부분이 아주 명확해졌어요. 누군가는 제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주인공 크리스틴(미란다 줄라이)을 직접 보기 위해 제 공연을 찾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아니라고 봐요. 예술가로서 저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지고, 그 문제를 창조적인 에너지로 전환해서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제 퍼포먼스를 보러 오는 관람객은 감각을 활성화시키는 자극을 받아들일 준비가 잘되어 있기에 극을 잘 받아들여요. 그 사실을 통해 저는 퍼포먼스의 백미는 바로 참여형 관람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요.

위에서 언급한 <콰데르니>에서 당신이 말하기를, 예술가가 되고 나서 초창기에 본인의 삶이 얼마나 격동적인지, 얼마나 정신없이 돌아가는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고 했는데요. 요즘은 어떤가요?

더 거칠고 격동적이며 난리법석인 삶을 살고 있어요! 이번 전시와 새 책 <All Fours> 마무리 작업에 이사까지 겹치면서 정말이지 제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극도로 피곤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하루하루가 아주 만족스러워요.

Miranda July, @craigmontyjames (C.M. James), @donaldklee (Donald Lee), and @goatzfoot (Lisa Ziegenfuss) in F.A.M.I.L.Y. Boombox, 2024, Still from video, Courtesy of Miranda July Studio

패션에 대해서는 어떤 ‘주의(ism)’를 갖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외부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 항상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게 스타일링한 모습인데요. 당신의 퍼포먼스에 쓰인 의상이 현재 아주 견고한 조각 작품이 되어 오세르바토리오 프라다에 진열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여기나요?

흥미롭게도 패션에 관한 질문을 꽤 많이 받아요. 예전에는 단지 개인적인 취향이 그렇다고만 답할 뿐 많은 말을 하지 않았죠. 옷을 좋아하긴 하지만 저의 예술과 그다지 깊이 관련짓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이번 전시장에 걸린 의상을 보고 있자면 제가 그 옷을 선택하고 착용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되고,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그려보게 돼요. 한번이라도 제 몸에 입혀져서 조각품이 된 옷의 모양과 색깔이 이제까지의 퍼포먼스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고요. 이번 전시는 제가 여성으로서 일상적으로 내리는 모든 선택이 저의 예술과 비전으로 연결되는 교두보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리기도 해요.

전시 기반이 된 당신의 방대한 아카이브 작업에 대해 마지막으로 이야기해볼게요. 이 모든 자료를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으로 보관해온 것인지, 혹은 당신의 예술을 위해 의도적으로 잠시 보관해둔 것인지에 대해서요. 이 자료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뭔가요? 펑크족 소녀로 살았던 어린 시절에 내린 결정이었다면 선견지명이 있었군요.

하하하. 저도 알아요. 조금 유별나죠. 아카이브적 관점으로 볼 때 모든 자료를 최상의 상태로 보관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냥 커다란 ‘아카이브 박스’에 넣어둔 채 시간을 많이 흘려보냈을 뿐이니까요. 아카이브 작업은 제가 1990년대 후반 <Love Diamond>를 상연할 때 시작했어요. 당시 뉴욕에서 뮤지션 친구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마침 그 친구가 뉴욕 대학교 팰리스 도서관에서 아카이브 일을 맡고 있었죠. 그 친구와 함께 도서관을 찾은 어느 날, 저는 모든 것이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우리가 기억하는 전부가 곧 역사가 되고, 그 역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현실을 구현한다는 것도요. 그 누구도 펑크족 소녀에게 자신의 작업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것은 작지만 명백한 정치적 행위였어요.

그 모든 기록은 큐레이터 미아 록스가 자신의 창의적인 작업을 완성하는 데도 아주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느낀 록스와의 케미스트리는 어땠나요?

큐레이터와의 교류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미아를 알게 된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었군요. 그녀는 정말 훌륭한 큐레이터예요. 그녀가 일하는 방식을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고, 아주 정열적으로 일하는 동시에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의 협업이 어느 정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을 때 제가 아카이브 자료를 내놓았고, 그것이 전시의 중요한 기틀을 이루기는 했죠. 하지만 미아는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고, 그 밖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전시 이후에는 어떤 작업에 몰두합니까? 계획 중인 일이 있나요?

이번에 선보인 ‘F.A.M.I.L.Y’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작품을 구성하는 비디오 설치물에 부착된 QR 코드를 통해 프로젝트 참여 지침이 포함된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으니 주의 깊게 보기 바랍니다. 행운을 빌어요! (VK)

IRENE CARAVITA
사진
VALENTINA SOMMAR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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