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트렌드, 건너뛰거나 투자하거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의 핑거 페인팅에 감탄하는 부모를 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이 말이 사실임을 압니다. 그런데 패션계에서 오래 일할수록 이 격언은 패션 트렌드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스타일에도 ‘만능’은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옷을 가장 잘 입는 사람들 중 일부는 런웨이를 자세히 보고, 자신의 스타일에 가장 잘 어울리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시각적 레퍼런스와 실루엣을 직접 선택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소셜 미디어의 엄청난 방해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최근 몇 달 동안 ‘디인플루언싱(Deinfluencing, 과잉 소비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해시태그가 틱톡에서 10억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얻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그 물건을 얻는 데 달린 것이 아니니까요.
물론 패션을 취미이자 창작의 출구로 사랑하는 제게는 큰 도전입니다. 빈티지 재킷을 냉장고 자석처럼 수집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2024 F/W 컬렉션을 살펴보고 올해 투자하지 않을 트렌드와 시도해보고 싶은 트렌드의 확실한 라인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진정으로 사랑했던 패션 아이템, 즉 항상 저를 최고로 만들어주는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주는’ 구매를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늘 1970년대 카우보이 분위기를 사랑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시즌 2000년대 스타일의 낡은 디스트로이드 데님이 유행하고 있지만, 언더커버와 스텔라 맥카트니에서 볼 수 있는 디테일이 주렁주렁 달린 수프트 업 청바지에 베팅할까 합니다. 아가일 니트부터 몸에 꼭 맞는 스카프까지, 아래로 스크롤해 건너뛸 트렌드와 투자할 트렌드를 확인하세요.
Skip: 디스트로이드 데님 / Invest: 수프트 업 청바지
언더커버의 2024 F/W 쇼는 진정한 하이라이트였지만, 컬렉션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틴셀 프린지 청바지였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슈퍼 디스트로이드 데님 트렌드와 달리 제 옷장 속에 오래오래 있을 만한 아이템이었고요. 저는 레이스와 깅엄 체크 등 어울리지 않는 패브릭이 패치워크된 형태의 크리스토퍼 케인 청바지를 찾는 데 집착합니다. 눈에 띄는 아이템을 원한다면, 꼼데가르송과 준야 와타나베의 아카이브 콜라보레이션도 가치가 있습니다.
Skip: 베이커 보이 햇 / Invest: 스키니 스카프
샤넬이 아무리 예쁘게 만들어도 저는 베이커 모자의 귀환에는 동참할 수 없습니다. 미안해요. 저를 미워하지 마세요. 실용적인 목적이 없는 불필요한 모자는 제게 알 없는 안경을 끼거나 아주 작은 마이크로 백을 들고, 헤드피스를 쓰는 것처럼 자의식이 강해 보일 뿐이죠. 대신, 저는 인디 슬리즈의 모든 영광을 담은 Y2K 스키니 스카프의 귀환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헤드피스와 스키니 스카프의 차이를 따져 물을 수도 있지만, “내 뚜껑에 기댄 이 무생물을 한번 볼래?” 쪽보다는 “나는 2005년경 노팅힐에 장 보러 나온 숙취에 찌든 케이트 모스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좋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요?
Skip: 퍼지 텍스처 코트 / Invest: 아가일 니트웨어
엄마가 하는 말처럼 들릴 위험을 무릅쓰고 말씀드리자면, 때로는 실용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아우터를 선택할 때 더 그렇습니다. 2024년 F/W 런웨이에는 테디 베어의 솜털부터 중력을 거스르는 깃털 무리에 이르기까지 손가락을 유혹하는 질감 좋은 아이템으로 뒤덮였지만, 저는 뜨끈뜨끈한 옷을 입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익사한 사람처럼 보일 거라는 걸 압니다. 그래서 이상한 파티용 재킷을 양보하는 대신 당분간은 튼튼한 겨울용 모직을 고수할 생각입니다. 디올과 레이브 리뷰 같은 곳에서 발견할 겸손한 아가일 점퍼가 될 테죠. 겸손해 보이지 않나요? 아늑한 느낌의 멋스러운 점퍼는 중고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할아버지가 동네 골프 클럽에서 티샷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죠. 저도 그만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Skip: 마리골드-옐로 / Invest: 카키-그린
컬러 트렌드는 매번 저를 사로잡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전에는 특정 컬러는 아예 손대지도 않았는데, 런웨이와 인스타그램 피드에 과도하게 노출된 뒤에는 <세서미 스트리트>의 빅 버드처럼 화려한 컬러의 새 코트가 행복을 줄 거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이 생각을 과감히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페라가모와 생 로랑 F/W 쇼에서 영감을 받은 카키 그린 컬러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 퍼스널 컬러에도 무척 잘 어울리죠. 최근 아르켓에서 진한 파란색이 아닌 카키색 청바지를 한 벌 샀으며, 가을에 겹쳐 입기 완벽한 코스의 줄무늬 상의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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