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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소녀단’ 보기만 해도 근력이 생길 것 같은 예능 프로그램

2024.09.20

‘무쇠소녀단’ 보기만 해도 근력이 생길 것 같은 예능 프로그램

<무쇠소녀단>은 여성 연예인 4명이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종목이 종목인 만큼 체력 좋은 스타들을 모았다. 수영 선수 출신 유이의 지구력이 워낙 압도적이라 다른 출연진이 상대적으로 고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따져보면 모두 보통은 아니다. 1회에서는 테스트 삼아 해본 5km 달리기를 모두 40분 안에 완주했다. 2회에서는 123층 계단을 오르는 ‘수직 마라톤’에 모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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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의 두 가지 메인 키워드는 ‘운동’과 ‘여성’이다. 제작진은 방송 초반 18~34세 여성 시청자의 호응을 확인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무쇠소녀단>의 구심점이 유이라는 건 상징적이다.

유이는 2009년 걸 그룹 애프터스쿨로 데뷔하면서 ‘꿀벅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체중의 나뭇가지 같은 몸, 섹시한 글래머형 정도로 양분되던 한국 여성 신체미의 기준이 그로 인해 한 뼘 확장되었다. 남성들이 그의 허벅지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건 간에, 여자들에게 그의 등장은 ‘아름다운 몸’ 대신 ‘멋진 몸’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였다. 근육 있는 건강한 몸은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이제 예뻐지기 위해 무작정 굶기만 해선 안 되고 운동까지 해야 된다는, 여자들에게는 더 가혹한 사회적 압박이 시작된 셈이기도 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가 여성의 ‘근육’을 재평가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건 변함없다. 그 무렵 시작된 피트니스, 요가, 필라테스 붐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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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후반부터는 여성 신체를 아름다움이 아닌 기능의 관점에서 논해야 한다는 시각이 대두되었다. 유산소 및 생활체육 전반에 관심이 높아졌다. 2021년 첫 시즌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은 팀워크, 사회성, 리더십, 성취감, 해방감 등 여성 생활체육의 정서적 측면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했다.

최근에는 여기에 소셜 미디어와 ‘갓생’ 열풍, 스트리트 패션 유행이 맞물리면서 러닝 붐이 일기도 했다. 혼자 집 앞을 달리는 게 아니라 ‘크루’를 형성하고, 대회 완주 같은 집단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정서적 효과를 강화하는 것이 이번 러닝 붐의 특징이다.

<무쇠소녀단>은 이런 시대의 변화를 영리하게 감지한 기획이다. 개인 맞춤형 러닝 앱 ‘런데이’와 협력해 ‘무쇠크루’를 모집하는 이벤트, 러닝 붐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호카와의 협업 등은 이들이 핵심 타깃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모처럼 ‘선출(선수 출신)’의 능력을 마음껏 활용하며 스포츠에 임하는 유이를 보고 있으면 여성 신체에 관한 지난 15년간의 논의, 사회 변화가 단박에 인식되어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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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떠나 프로그램 자체의 재미도 크다. 예쁘고 날씬하고 운동까지 잘하는 만능 셀럽들이 방송국의 지원으로 최고 강사들에게 훈련받으며 뭔가에 도전한다는 게 거리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신체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트라이애슬론이 테마인 만큼 여기에는 꾸며낼 수 없는 자기 극복의 순간이 있고, 그것이 감동과 영감을 제공한다.

김동현이 단장 역할을 맡고는 있으나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순박한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출연진의 유대감을 돋보이게 한 점도 여성 시청자에게는 사려 깊게 느껴질 것이다. 21년 동안 한국 여자 마라톤 기록을 유지한 권은주, 수영 선수 정유인 등을 코치로 기용한 점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카리스마와 각기 다른 형태로 진화한 신체를 보는 것이 즐겁다. 그들의 레슨이 생활체육인에게는 좋은 정보가 되기도 할 것이다.

굳이 다이어트나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해당 활동을 정교하게 상상함으로써 일정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른바 ‘기능적 상상 훈련(Functional Imagery Training=FIT)’ 이론은 지난 20여 년간 여러 분야 과학자들이 교차 검증해온 것이다. <무쇠소녀단>은 ‘나도 달리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넘어 FIT에도 도움을 줄 법한 프로그램이다. 달리기 장면에서는 출연진의 동작을 비교하며 ‘미드풋’과 ‘힐풋’ 착지법을 설명해주고, 수영 장면에서는 출연진의 레벨에 따른 주의점을 알려준다. 보고 있으면 절로 해당 신체 부위에 신경이 쓰인다.

1회부터 빠르게 출연진의 캐릭터를 잡아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박주현은 1회에서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고 밝혔다. 출연자들이 통영 월드 트라이애슬론 컵을 관람하는 장면에서 그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보면 엄살이 아니지 싶다. 그럼 왜 굳이 야외 종목인 트라이애슬론을 하려는가 의문이 든다. 하지만 5km 달리기, 수직 마라톤 등에서 그가 탈진을 하고도 지독한 근성으로 완주를 해내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에게는 무언가를 극복해내는 일 자체가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프로그램의 취지와 가장 잘 맞는 출연자일지 모른다.

설인아는 초반 체력 테스트에서 고른 평가를 받아 ‘운동 천재’라는 캐릭터를 얻었다. 수영, 자전거, 달리기 중 못하는 종목도 없다. 하지만 전문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동작이 정교하지 않고 페이스 조절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가 훈련으로 어디까지 성장할지도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다.

진서연은 가장 열정이 넘치고 근력도 뛰어나지만 지구력은 동생들에 비해 달리고 수영을 못한다. 유이는 지구력 레이스에서 매번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지만 자전거를 못 탄다. 이들이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도 이후 비중 있게 다뤄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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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이 ‘크루’로서 서로를 독려하는 모습은 자주 감동을 자아낸다. 5km 달리기에서 출연진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힘들어도 완주를 해낸다. 수직 마라톤에서 유이는 먼저 레이스를 끝내고도 뒤처진 팀원을 데리러 간다. 이 장면에서 유이의 리더십은 그의 정확한 러닝 및 버피 테스트 동작 클립과 더불어 방송 초반 바이럴에 기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출연진은 빠르게 동료애를 다지고, 여성주의와 스포츠맨십의 이상을 보여준다.

진서연은 결말이 불확실한 리얼리티 ‘예능’이 아니라 캐릭터들이 완주하도록 정해진 ‘영화’를 찍는 기분으로 프로그램에 임한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무쇠소녀단>은 완주 여부를 떠나 그 정서와 캐릭터, 드라마틱한 전개로도 감동 스포츠 ‘영화’에 가까운 무언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무쇠소년단>은 tvN에서 토요일 오후 5시 50분 방송된다. 티빙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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