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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선택한 40개의 컬러 펜슬

2024.09.30

에르메스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선택한 40개의 컬러 펜슬

가장 정교하고, 자유로우며, 기분 좋은 위트마저 느껴지는 메이크업. 에르메스 뷰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레고리스 피르필리스가 선택한 도구는 40개의 펜슬이다.

트레 데르메스 컬렉션.

수학적으로는 두 점 사이를 잇는 거리이자 밑그림의 기초, 가장 일차원적 요소인 ‘선’은 우리가 보고 사용하는 모든 것의 근본과도 같다. 뷰티 월드에서 선을 이야기할 때 누구나 머릿속에 바로 연상되는 것은 ‘아이라인’이다. 또렷한 눈매를 위한 트릭이자 반항적인 사춘기 소녀들의 상징, 메이크업을 놀이처럼 여기는 ‘젠지’의 과감한 연출까지. 눈 점막에 머물렀던 아이라인은 고정 핀을 벗어나 자유자재로 눈가의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올가을, 에르메스 뷰티가 이 ‘라인’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다. 컬렉션의 이름은 ‘트레 데르메스(Trait d’Hermès)’. 섬세하고, 독창적이며, 오롯이 메이크업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40가지 색의 컬러 펜슬을 공개했다.

“작업실 창문에선 에펠탑이 바로 보이죠. 지금 도시는 어느 때보다 활기가 가득해요.” 파리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있던 지난 7월 중순, <보그>는 에르메스 뷰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레고리스 피르필리스(Gregoris Pyrpylis)와 줌으로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팀원들과 컬렉션의 시작점을 논의했을 때 결과물이 어린아이의 필통 또는 아티스트의 팔레트처럼 보이길 원했습니다.” 실로 각진 오렌지색 케이스 안에 든 색색의 펜슬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린다. 이번 컬렉션은 메종을 상징하는 오렌지와 그린, 블루, 옐로 등 색연필처럼 쨍한 컬러를 포함한 24가지의 아이라이너, 그리고 기존 립스틱 컬렉션의 아름다운 색감을 이어받은 16가지의 립 펜슬로 구성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컬러 펜슬은 피부에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텍스처와 물과 땀에 거의 지워지지 않는 절대적인 고정력까지 겸비했다. 그뿐 아니라 하우스 로고를 새긴 원형 디자인의 ‘펜슬 샤프너’, 블렌딩을 위한 브러시와 펜 타입 아이라이너도 함께 선보인다. 그레고리스는 점잖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말솜씨로 자신의 메이크업 세계를 설명했다.

지난해 출시된 아이섀도 컬렉션 ‘르 르가르 에르메스’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죠. 직접 선보인 아름다운 색감의 아이 메이크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에르메스 뷰티의 새로운 아이 메이크업 챕터가 펼쳐진 시작점이었습니다. 인상주의 시대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빛, 그에 따라 변모하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목표로 6가지의 4구 아이섀도 팔레트와 컬러 마스카라를 창조했죠. 그 후 우리는 에르메스가 가진 정수에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한다고 여겼어요. 그게 바로 ‘디자인’이었어요. 때로는 강렬하고, 때로는 우아하고, 또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창의적인 방식으로 메이크업을 디자인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심했죠. 아주 단순하고 쉬운 방법으로 액세서리를 착용하듯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 컬러 펜슬이라고 여겼습니다. 간편한 대신 갖고 놀듯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도록 다채로운 40가지 색으로 구성했고요.

색감, 뛰어난 기능만큼 화장품에 중요한 건 실용성입니다.

곧 제품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기도 하죠. 관건은 예쁜 컬러와 누구나 용이하게 활용할 수 있는 텍스처입니다. 에르메스의 스카프, 가방은 훌륭한 미감만큼 언제 어디서 착용해도 편안하며 스스로를 아름답게 여기게 해주죠. ‘트레 데르메스’의 컬러 펜슬은 너무 단단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르지도 않은 질감으로 제품의 반대편에는 블렌딩을 돕는 팁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아이라인의 두께와 모양을 원하는 대로 조율하는 거죠.

그래픽적인 아이라인의 몇 가지 튜토리얼 비주얼을 공개했죠.

총 7가지 메이크업 룩을 창조했어요. 목표는 이 펜슬을 갖고 있는 누구나 “초록색 아이라인? 시도해본 적 없지만 해보고 싶군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내면의 에너지를 깨우는 것이었어요. 제가 심취한 미술 운동인 표현주의에서는 예술가들이 자신이 느끼는 방식, 순수한 기쁨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후부터 어떤 규제도 따르고 싶지 않았고, 정해진 방법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표현주의 화가들처럼 자유롭고 싶었죠. 그리다 만 듯 뚝 끊긴 아이라인, 눈썹 위로 뻗어나간 모양 등 대담하되 쉬운 방식으로 메이크업을 연출해볼 수 있는 ‘초대장’을 여러분에게 건넸다고 얘기할 수 있겠군요. 눈매가 강렬한 만큼 피부, 입술 색은 눈에 띄지 않게 해 조화와 균형을 고려한 것도 핵심이고요.

가장 선호하는 아이라인 컬러를 알려줄래요?

어려운 질문이군요.(웃음) 아무래도 24는 적지 않은 숫자니까요. 그럼에도 꼽아보자면 쨍한 하늘빛 ‘#27 블루에’와 초록색의 ‘#57 말라카이트’ 컬러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제가 경험한 자연과 가장 가까운 색상이니까요. 나고 자란 그리스의 푸른 하늘, 싱그러운 녹색의 숲을 연상시키는 컬러로 스스로 어린 시절을 그려볼 수 있게 합니다.

당신의 메이크업 세계에서 ‘선’이 가진 의미를 되짚어본다면?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소녀들은 검은 아이라인을 통해 자신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죠.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거예요. ‘라인’은 제게 스토리텔링 도구와 같습니다. 색상이 낭만적이라면 라인은 좀 더 권위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까요? 컬러가 감정, 분위기, 정서를 나타내는 수단이라면 라인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야기해줍니다.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성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죠.

에르메스 뷰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레고리스 피르필리스.

16가지의 립 펜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연출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립 펜슬은 단독으로 사용하기도 좋지만, 주된 목적은 립스틱을 바른 뒤 입술을 보완하고 메이크업 완성도를 높이는 도구의 기능입니다. 화보처럼 완벽하고 무결한 입술을 연출할 수도, 볼륨 있는 더 풍성한 입술 모양으로 새롭게 디자인할 수도 있죠. 베이지 계열의 ‘#00 베쥬 트롱프뢰유’, ‘#10 페르마브라스’로 입술 윤곽을 정돈한 뒤 오렌지색 ‘#33 오랑쥬 브와뜨’를 입술 가득 채워 바르고, 그 위에 립 오일을 얹으면 화사한 입술을 뽐낼 수 있습니다. 장밋빛 ‘#로즈 브루이어’는 눈 밑 다크서클을 밝히는 데 효과적이죠.

당신만의 뷰티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 에르메스의 핵심 가치는 어떻게 작용하나요?

하나의 프로젝트에는 무수한 장인들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약 200년의 풍부한 유산이 존재합니다. 제한된 이들만 출입 가능한 에르메스의 박물관은 거대한 색채 도서관 같아요. 7만5,000여 컬러,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가 수집해온 오브제를 보면 그 영향력에 압도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 역사의 일부를 작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그 유산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의무는 없으나 직접 경험해보면 깊이 파고들고 싶은 욕구와 예술 정신이 절로 생겨납니다. 그럼에도 창작과 창의의 자유를 무한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아티스트가 일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환경이죠.

에르메스 뷰티를 당신만의 언어로 정의해본다면?

‘모자이크’. 수많은 요소가 모여서 강력하고 아름다운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시대를 초월하며 때로는 대담하고, 편안하고,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하나의 창의적인 그림을 완성하죠.

메이크업 세계에 처음 심취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약사였기에 어린 시절 약국은 제 놀이터였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화장품 코너를 담당하셨는데, 사람들이 같은 크림 또는 같은 클렌저를 몇 번이고 사러 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하나의 제품에 이토록 충성도가 높을 수 있는지, 열 살 남짓이던 저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죠. 시간이 지나며 뷰티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한 영향을 미치는지 점차 깨닫게 됐습니다. 문학 선생님이 되고자 떠난 아테네에서 제 인생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고, 그녀의 메이크업을 처음 해주던 순간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어요. 메이크업을 받은 친구는 아름다워진 자신의 모습에서 자신감과 행복을 느꼈고, 전 더없이 큰 기쁨을 얻었죠. 그리고 거주지를 파리로 옮겨 전설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페슈(Tom Pecheux)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뷰티와 패션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요. 파리의 수많은 박물관을 찾고, 마크 로스코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보며 빛과 색에 대한 무한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때 친구에게 해준 메이크업을 기억하나요?

물론이죠. 학창 시절이었기에 대부분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저렴한 화장품이었는데, 2006년 당시 유행했던 베이지 립스틱을 활용하던 순간이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립스틱 하나로 입술은 물론 눈가와 두 뺨에도 터치한 다음 투명한 글로스를 눈두덩과 광대뼈 부위에 한 번 더 얹었죠. 지금 돌아봐도 멋지고 세련된 룩이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쇼핑한 물건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온갖 종류의 시트 마스크만 족히 100장 이상 구매했을 겁니다. 파리에 돌아와서 친구와 동료에게 선물했고요. 모두들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죠.

휴식은 어떻게 취하나요?

당신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에요. 접이식 캠핑 의자를 커다란 백팩에 넣고 다니곤 합니다. 아주 작은 도시에서 자랐기에 평온함을 누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때때로 필요하죠. 파리를 벗어날 때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한적한 강가나 공원에 가서 의자를 펴고 앉아 조용히 혼자만의 휴식을 취합니다. 책이나 스케치북과 함께할 때도 있고요. 자연과 소통하며 재충전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기에 완벽한 방법입니다. (VK)

    에디터
    송가혜
    사진
    COURTESY OF HERMÈS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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