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S/S 파리 패션 위크 DAY 1
마침내 긴 여정의 대단원에 당도했습니다. 파리 패션 위크 1일 차는 베테랑 디자이너와 신인 디자이너의 뜨거운 열정으로 뒤얽혀 있었죠. 디올과 생 로랑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우스 스타일과 여성상을 재해석했습니다. 브랜드 인수 15년 만에 파리에 입성한 가니는 코펜하겐의 활기차고 로맨틱한 아름다움을 펼쳐 보였고요. 방식은 전형적이라기보다는 초심자의 순수함에 더 가까웠습니다. LVMH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 호다코바는 이제 막 그 마음을 지나고 있는 듯했고요. 스크롤을 내려, 그 열기를 느껴보세요.
디올(@dior)
푸른빛으로 뒤덮인 쇼장, 모델들이 런웨이를 누비는 내내 이탈리아 아티스트이자 궁수인 사그 나폴리(Sagg Napoli)는 원 숄더 보디수트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과녁을 향해 활을 쏘았습니다.
“신화에서는 강해지려면 여성성을 포기해야 한다고 하죠. 하지만 사그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쇼를 앞두고 말했습니다. 2017 S/S 컬렉션으로 디올에 데뷔한 순간부터 언제나 강인하고 우아한 여성을 이야기해온 그녀, 이번 쇼에서는 고대 신화 속 여전사를 뮤즈로 삼았습니다. 활을 쏘는 나폴리의 모습에서 이미 직감했던 사실이죠. 의상은 일종의 ‘운동성’을 품고 있었습니다. 시스루 드레스 아래 받쳐 입은 보디수트, 트랙 팬츠와 매치한 블레이저, 낙하산 스트랩이 달린 재킷, 무릎 높이의 글래디에이터 부츠 등 몸을 활짝 움직이고픈 피스로 가득했죠. 그 근간에는 키우리가 자주 참고하는 고대 그리스 의복 페플로스(Peplos)를 연상케 하는 디테일뿐 아니라 크리스챤 디올과 하우스의 발자취도 있었습니다. 크리스챤 디올이 1951 F/W 시즌 선보인 아마존 드레스, 1970년경의 그래픽 로고와 스포티 무드 등이 하우스 고유의 색을 야무지게 잡아주었죠. 강렬한 동시에 아름다운 룩은 나폴리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했습니다. 힘을 위해 여성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니(@ganni)
가니가 모든 디자이너의 꿈, 파리에서 마침내 데뷔했습니다. 브랜드 인수 15년 만입니다. 유쾌하고, 친근하고, 다채로운 옷으로 패션 피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가니의 정신은 파리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쇼장 중앙에 설치된 은색 가마솥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할로윈이나 판타지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마녀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가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테 레프스트루프(Ditte Reffstrup)의 출발점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녀는 마녀를 ‘여성의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용도로 활용했어요. 뒤이어 정말 마법 같은 옷이 등장했습니다. 올리브 오일 생산 폐기물에서 추출한 바이오텍스 기반 소재의 파티 드레스, 섬유 폐기물로 만든 폴리에스테르 소재인 사이코라(Cycora)의 스포츠 저지로 만든 드레스 등 연금술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죠(각 룩은 크리에이티브 컨설팅에 참여한 코펜하겐 디자이너 니클라스 스코우고르(Nicklas Skovgaard)와 뉴욕 디자이너 클레어 설리반(Claire Sullivan)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테일러링이 특히 돋보이는 컬렉션이기도 했습니다. 오프닝 룩의 크림빛 쇼츠 수트부터 눈치챌 수 있었죠. 주름 잡힌 스카프, 피터 팬 칼라 등 아기자기한 디테일에서 가니만의 달콤한 상상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요. 레프스트루프는 “우리는 누군가가 되려고 하지 않아요. 럭셔리 게임을 하려고 하지도 않고요”라고 말했습니다. 럭셔리의 수도, 프랑스 파리에 펼쳐진 가니의 2025 S/S 쇼는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제대로 증명해냈습니다.
생 로랑(@ysl)
2000년경 이브 생 로랑은 한 인터뷰에서 생 로랑의 여자는 누구냐는 질문에 자기 자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안토니 바카렐로의 생 로랑 2025 S/S 쇼의 출발점이었죠.
안토니 바카렐로가 8년 전 생 로랑 데뷔 쇼를 치렀던 벨샤스 거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공중에 설치된 황금빛 타원형 구조물과 새파란 바닥이 전부인 쇼장,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수트 차림의 모델들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걸어 나왔습니다. 수트는 바카렐로의 테일러링 솜씨만큼 엄격했습니다. 언더웨어나 맨몸으로 재킷을 걸치기도 했던 지난날과 달리, 셔츠와 넥타이, 외투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은 모습이었죠. 볼드한 주얼리는 실루엣에 묵직한 힘을 더했습니다. 이후 등장한 이브닝 웨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짙고 화려한 톤, 호화로운 자카드 블레이저, 하늘하늘한 치마와 타이트한 드레스 룩은 퇴근 후 수트를 벗어 던진 채 저녁 외출을 나서는 ‘생 로랑 우먼’의 복잡하고도 매혹적인 삶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생 로랑 쇼를 처음 열었던 공간에서 이브 생 로랑에 대한 경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한 안토니 바카렐로. 그가 재현한 ‘생 로랑 우먼’을 감상해보세요.
호다코바(@hoda_kova)
모두가 고대한 쇼였습니다. LVMH 프라이즈 최종 우승자이자 레드 카펫을 통해 수많은 셀럽의 선택을 받은 호다코바와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였죠.
짚고 넘어가야 할 건, 그녀가 버려진 물건을 재료로 삼는다고 해서 빈티지하거나 레트로한 감성을 추구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호다코바의 디자인은 언제나 현재에 있습니다. 시간의 때가 묻은 물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죠. 기발하지만 젠체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소박하고 솔직하죠. 얼굴까지 솟아오른 칼럼 드레스가 쇼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번 시즌 그녀가 물질성뿐 아니라 실루엣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죠.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아가일 패턴 역시 매력적이었습니다. 어깨에 스웨터 소매가 달린 재킷과 스웨터에서는 위트가 느껴졌죠. 드레스로 변모한 풍경화는 오래오래 감상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고, 모피 모자로 짜인 미니드레스는 요염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도 강조해 무감각해질 지경인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 호다코바. “편안하다는 건 정해진 길이나 시스템을 따른다는 거예요. 저는 우리만의 길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라는 그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도는 쇼였습니다.
#2025 S/S PARIS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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