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플루티스트 김유빈의 샌프란시스코 2악장

2024.10.07

플루티스트 김유빈의 샌프란시스코 2악장

한국 관악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김유빈 플루티스트. 취미로 플루트를 배우던 어머니 곁에서 레슨을 구경하던 꼬마는 맑지만 따뜻한 소리의 악기에 매료돼 일찍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만 17세의 나이로 세계 최대 규모의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Concours de Genève)에서 1위 없는 2위, 청중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와 독일 에이아르디(ARD)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의 쾌거를 이루며 세계가 주목하는 플루티스트가 되었다. 2016년 만 19세의 나이로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수석, 이듬해 종신 수석으로 선임되며 유럽을 누비던 김유빈 플루티스트가 올해 샌프란시스코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명문 교향악단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수석 연주자로 임용되어 새로운 챕터를 마주했기 때문. 지난 1월 정식 입단해 단 6개월 만에 종신 단원으로 임명될 만큼 샌프란시스코에서 풍부한 음악적 영감과 끝없는 노력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이메일을 통해 근황을 물었다. 미국과 서울을 오가는 바쁜 일정에도 음악과 무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해 여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수석 연주자로 임용된 뒤, 이례적으로 입단 6개월 만에 종신 단원으로 임명되었어요. 올 한 해가 매우 바쁘게 흘러갔을 거라 짐작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시간은 어땠나요?

지난 1월부터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수석으로 공식적으로 입단했기에 아직 이곳에서 1년 열두 달을 꽉 채우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2024/25 새 시즌이 오픈되었고 6월 종신 단원직(Tenure)을 부여받은 제가 맞은 첫 시즌이기도 합니다. 대서양을 건너 독일에서 멀리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까지 이사하고 여러모로 적응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입단 후 가장 기억나는 무대를 꼽아본다면요.

1월 입단 후 두 번째 주간에 마이클 틸슨 토머스(Michael Tilson Thomas) 지휘로 함께한 말러 교향곡 5번 공연이 기억에 남습니다. 마이클 틸슨 토머스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정말 오랫동안 이끈 전 상임 지휘자입니다. 현재 암 투병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지만 여전히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죠.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는 특별한 관계로 지휘자와 단원들의 정서적인 유대감,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음악적인 호흡을 경험하는 감동적인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주간의 연주를 통해 악단 분위기를 직접 체감하면서 이렇게 따뜻하고 음악적으로 다 함께 호흡하는, 뛰어난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뜻깊은 순간이었어요.

지난 8월에는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을 담은 첫 정식 음반 <포엠(Poème)>을 발매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김도현 피아니스트와 함께 작업했죠. 앨범에 꼭 녹여내고자 한 부분이 있다면요?

플루트라는 악기의 매력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프렌치 레퍼토리로 음반을 구성했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플루트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을 주제이자 목표로 삼은 앨범이에요.

그와 함께 추석을 앞두고 한국을 찾아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는데, 어땠나요?

먼저 김도현 피아니스트와 첫 정식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 6회 투어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또 9월 13에는 서울시향 정기 연주회에서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서울시향과는 2017년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첫 협연을 해본 경험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두 번째 협연이었지만 서울시향 정기 연주회에서의 데뷔 무대인 만큼 제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한 공연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쳄발로 연주를 들으며 큰 팬이 된 리처드 이가(Richard Egarr) 선생님이 지휘를 맡았다는 게 의미 깊었죠. 일반적인 모차르트와는 다른 고음악(Early Music) 스페셜리스트의 해석이 가미돼 음악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무대였습니다.

음악적 전통성을 지닌 유럽을 떠나 미국행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과 독일에서의 실전 오케스트라 생활을 발판으로 더 큰 음악 시장인 미국에서 자유롭게 음악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 미국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도 있었고요.(웃음)

프랑스에서는 “플루트라는 악기로 어떻게 하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가”에 집중했다면, 독일에서는 “동료 프로 연주자들과 소통하며 음악적 표현을 하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들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음악적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더 여유 있게 동료 단원들과 소통하고 영감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유럽에서의 시간이 음악으로 완전한 몰입의 순간을 보냈다면, 이제 많은 경험을 기반으로 더 넓은 시야를 가지며 음악가의 삶뿐 아니라 음악 외적인 삶도 보살필 여유를 샌프란시스코의 풍경과 분위기가 더해준 것 같습니다. 삶의 균형을 좀 더 염두에 두면서 음악적인 영감과 도전의 동기부여를 받고 있어요.

긴 시간 생활했던 유럽을 떠나 마주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샌프란시스코는 유럽을 닮은 구석도 많다고 느꼈습니다. 미국적인 면모와 유럽 스타일이 공존하는 특별한 도시라고 여깁니다. 특히 하이킹을 하며 아름다운 절경을 바라볼 때 힐링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마다 참 매력적인 곳이라 느꼈어요.

샌프란시스코는 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 자산이 풍부한 도시예요. 도시가 주는 음악적 영감이 있었을까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날씨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았습니다. 신비로운 안개, 화창한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이 쏟아지는 날씨 등에서 아름다운 도시의 매력이 많이 느껴집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휴일을 어떻게 보내나요?

주로 다가오는 주간의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를 공부해요. 가끔은 오롯이 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을 가지며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의 절경을 구경하러 다닙니다. 조금만 차를 타고 가면 아름다운 금문교를 바로 볼 수 있고 바다와 산이 공존하는 도시인 만큼 어디서나 자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도시 곳곳의 언덕에 오르면 샌프란시스코의 전체 뷰를 감상할 수 있어 좋습니다.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꼽아본다면요.

바다와 언덕을 비롯해 자연미 가득한 곳은 물론이고요, 맛집과 좋은 미술관도 많아요. 그중에서도 한식당 대호갈비찜과 드 영 미술관(de Young Museum)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추천하고 싶은가요?

아름다운 뷰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꼭 방문해보길 권합니다. 또한 문화, 미식, 시티 라이프를 동시에 즐기고 싶은 사람도요.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플루티스트로서 자신을 단련해왔어요.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목표가 있다면요.

항상 플루트라는 악기의 한계를 넘어서는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플루트를 통해 다양한 매력을 음악으로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어요.

    피처 디렉터
    김나랑
    유승현(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샌프란시스코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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