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언제까지 슬픔에 매여 살 것인가? 애니 모리스

2024.10.31

언제까지 슬픔에 매여 살 것인가? 애니 모리스

지금 미술·건축·클래식·영화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뜨거운 장면을 〈보그〉가 정조준했다. 태피스트리와 조각이 부흥 중인 현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애니 모리스의 한국 첫 개인전을 비롯해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가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연결한 더 헨더슨에 안착한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의 새 본부,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이 세계를 흔드는 지금, 한국 클래식계의 숨은 공로자인 미숙 두리틀, 영화 산업에서 여성의 위상을 높이고자 제정된 까멜리아상의 첫 수상자인 류성희 미술감독까지, 문화계는 추수와 동시에 씨를 뿌리는 중이다.

애니 모리스는 사산과 부모의 이혼을 작품으로 승화해 스스로를 치유한다. 우리도 그녀의 작품에서 위안을 받고 내일을 새롭게 시작할 것을 기원한다.

한국 첫 개인전이 열린 더페이지갤러리에서 만난 애니 모리스.

영국 미술가 애니 모리스(Annie Morris)의 형형색색 작품에서 상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작가는 비극적 트라우마를 회피하기 위해 조각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색의 시간을 에너지로 활용해 종이나 캔버스에 담는다. 컬러풀한 구를 쌓아 올리는 조각 ‘Stack’ 연작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색깔이 중요한 요소라고 여기곤 한다. 하지만 기존 작품에서 색은 동떨어져 있었다. 어떤 작품은 한쪽 구석에만 있는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블랙 & 화이트지만 약간의 색을 가미해 희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즉 이런 이미지에서 컬러 조각은 더 강렬하게 발현되어 희망을 보여준다.

애니 모리스는 첫아이가 뱃속에서 죽었지만 작품으로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한다. 만삭의 둥근 배 형태와 기억을 작품으로 살려놓고 싶어서 만든 조각이 ‘Stack’이다. 아이가 작품으로 태어나 계속 마주할 수 있게 말이다. 언제까지 과거의 슬픈 경험에 매여 불행하게 살 것인가? 그녀는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많은 이가 힘든 일을 겪으면 무너지거나 부정적인 감성으로 살아가는데, 애니 모리스는 세상을 보는 시선과 태도를 긍정적으로 이끌기를 제안한다.

구를 쌓아 올리는 ‘Stack’ 시리즈를 2014년부터 선보였다. 지난 10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아주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술가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평면 작품에 그치지 않고 뭘 더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다. 만삭일 때 첫아이를 사산하고 조각과 회화 사이 어딘가에 관심을 갖게 됐다. 기본적으로 내 작품 세계는 평면과 입체 사이에 있다. 처음 조각을 만들었을 때는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질감을 고민하다가 생동감을 불어넣으면서 원시적 색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같은 형태를 쌓아 올리는 ‘Stack’ 시리즈가 탄생했다. 이를 균형감 있게 높이 쌓아 올리면서도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었고, 질감을 살리기 위해 표면에 바르는 모래의 두께도 달리했다. 작업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

최근 개막한 더페이지갤러리와 상하이 포선 파운데이션 전시의 주제는 각각 무엇이었나?

상하이 전시는 개인전 중 가장 큰 규모다. 그래서 기념비적인 대형 작품을 가족적인 모습으로 구성했다. 염료로 색을 입힌 5.5m 높이의 조각 작품이 엄마처럼 나머지 조각을 내려다보는 형태다. 이번 한국 전시는 규모는 작지만 한국에서 개최하는 첫 개인전이기 때문에 최대한 여러 유형의 작품을 갖고 왔다. 태피스트리, 철제 조형물 ‘Flower Woman’ 등이다. 내가 겪은 슬픔의 모티브에서 나온 작품을 새로운 창작의 동력으로 만든다. 전시에서 슬픔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나의 동력은 트라우마다. ‘Flower Woman’ 연작은 이혼하고 나서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오늘날에는 내 자화상이기도 하다. 태피스트리에서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Flower Woman’과 태피스트리 연작도 ‘Stack’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나?

그 전부터 작업을 해왔다. 보통 스튜디오에 가면 먼저 그림을 그리고, 그다음에 바느질로 직조 작업을 한다. 평면의 선이 활기차게 애니메이션처럼 살아나기 때문에 태피스트리 작업을 좋아한다. 스티치와 패브릭의 조화로 다양한 스티칭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작업은 공고하게 영구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고, 즉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조각 작품을 만들기 전부터 스티치를 많이 했다. 여러 요소를 콜라주 하고 입체적인 회화를 만들면서 조각을 시작했다.

아픔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작품은 보는 이에게도 그 감정이 전달된다. 작품을 만들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중인가?

따뜻한 질문을 해주어 감사하다. 작품은 나에게 기쁨을 준다. 그림을 그리며 평안해지고, 내가 만든 조각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내 작업실의 조각 작품 사이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편안해지면서 보호받는 느낌이 드니까. 그렇다고 힘든 마음이 사라지진 않고, 계속 왔다 갔다 한다.

리넨에 바느질하는 태피스트리 작품도 인상적이다. 이런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나? ‘Stack’ 시리즈도 석고, 모래, 청동을 사용했지만 멀리서 보면 실뭉치처럼 보인다. 여성 작가와 제3세계 작가들이 이런 소재를 즐겨 사용하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엄마가 바느질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내게 선(Line)은 매우 중요하다. 항상 새로운 기법이나 활용법을 연구하고 실험하는데, 그래서 바느질을 시작했다. 선은 나의 상징이다. 선 하나로 사랑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 ‘Flower Woman’도 단순해 보이지만 수백, 수천 개의 드로잉을 거쳐 독특한 라인을 구현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남편 이드리스 칸(Idris Khan)도 미술가다. 2019년 인도 전시를 시작으로 남편과 듀오로 여러 번 협업 전시를 했는데,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가?

몇 년째 런던 동부의 장난감 공장을 개조한 스튜디오를 공유하고 있다. 물론 한 공간이지만 작업실은 각각 독립되어 있다. 남편은 원래 모노크롬 작업을 하면서 사진 매체를 사용했는데, 요즘은 다채롭게 조각과 회화 작업도 한다. 코로나19 시기에 런던에서 시골로 같이 내려가 살면서 계절의 변화를 지켜봤다. 도심에서 벗어난 적은 처음이라 각자의 작업에 다양한 색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원래 남편은 파란색을 즐겨 사용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음악적 요소를 표현한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때 내가 참여하면서 다채로운 색이 가미됐다. 나도 당시 아이를 사산한 상태라서 너무 힘들어 조각을 했고, 남편도 어머니를 잃고 그녀가 행복하게 피아노 치던 순간을 회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 후부터 서로의 작품이 어딘가 잘 어울리게 보여 함께 전시하게 됐다. 지금은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는데, 당시 경험이 좋아 외곽에 작은 별장을 구입했다. 내년 3월에 인도에서 남편과 함께 전시를 연다.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공부할 때부터 직접 만든 안료를 사용했다.

주변 화방에서 다양한 안료를 판매했지만, 학생이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어 원하는 색을 얻지 못했다. 카드뮴 계열 색은 사지 못하고 황토색 위주로 구입했다. 흑백 느낌을 내면서 오일리한 한쪽에만 칠을 하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미술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시 새 형상에 집착했는데, 기존에 없던 색을 만들고 싶어 수천 가지 안료를 실험하며 원하는 질감과 색을 만들었다. 대부분 안료에 물을 넣어 쓰는데, 나는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어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동안 이 방식을 사용하지 않다가 ‘Stack’ 시리즈에서 구체 겉면에 유약한 느낌을 주기 위해 다시 나만의 방법으로 질감을 구현하고 있다.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스승인 주세페 페노네(Giuseppe Penone)에게 배운 교훈은 무엇인가?

항상 예술은 신비로워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시적인 스승이다. 사실 그는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하고, 나는 영국인이라 완벽하게 의사소통하기가 어려웠다. 그와 같이 간 인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여행길에 사색에 잠기거나 현지 안료를 수집하는 것도 그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한지를 보고 반했다. 과실로 즙을 낸 다음 붓에 묻혀 한지에 칠하는 것이 멋져 보여 호텔에서 이미 해봤다. 한지를 활용한 병풍과 서예 작품을 보고 먹물과 벼루, 도장도 구매했다. 미술 학도로서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파리에서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볼 기회가 많았다. 예술가에게 재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석고, 모래 등을 이용해 새롭게 창작할 것들을 고민할 수 있었고, 그의 스튜디오에서 공부할 때 조각 몰딩과 캐스팅을 보고 많은 것을 터득했다.

태피스트리와 조각이 드로잉에서 비롯된다고 했는데, 당신이 매일 한다는 드로잉은 일기와 같은 걸까?

그렇다. 스케치북보다는 카펫처럼 종이를 길게 펼쳐놓고 작업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큰 태피스트리처럼 오래 걸리는 작업도 한다. 스토리를 자유롭게 구상하고, 실제로 내가 무엇을 담고 싶은지 계획이 없어도 모아둔 드로잉을 꺼내 콜라주로 작품을 만든다. 모든 작품의 출발은 종이 드로잉이다. 그리고 늘 드로잉을 할 때 나만의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풍경이나 사물을 나만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나의 불안과 아픔을 각자의 경험과 연관시켜 위로받길 바란다. 코로나19 때 잠시 시골에 있으면서 꽃이 피고 지는 순간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보았다. 그런 감정을 ‘Flower Woman’에 담아 승화했다.

여성 조각가로 사는 삶은 어떤가? 또 조각가와 예술가는 다르다고 보는가?

최근 10년간 조각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스스로 조각가라고 여기기도 한다. 드로잉도 조각이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 조각을 사용하는 예술가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내 작품은 항상 페인팅과 조각을 같이 한다. 조각 표면에 색을 입히고 있고, 앞으로 청동으로 사이즈가 큰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다. 여성 조각가에 대한 편견은 이미 사라졌고, 나도 영국 조각가 바바라 헵워스(Barbara Hepworth)의 ‘숲의 나무’처럼 거대한 청동 조각을 멋지게 설치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각각의 조각이 서로 소통하는 작품을 기대해줬으면 좋겠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의 이탈리아 타로 정원 작품도 규모가 엄청나다. 나도 조만간 그런 대규모 작업을 하고 싶다. 물론 작은 작품도 충분히 아름답고 큰 힘을 지녔지만 말이다. 이소영 미술 저널리스트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이소영(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이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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