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역사에 길이 남을 ‘쇼핑 해프닝’이 일어났다. H&M과 발맹이라는 이름을 조선 팔도에서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알게 된 바로 그 사건 말이다. 그건 샤넬이 DDP에서 패션쇼를 연 뒤보다 더 강력한 한 방이었다. 뉴욕에서 열린 H&M과 발맹 협업 론칭 쇼엔 한국 패션 기자 몇몇이 초대됐다. 서울에서도 이를 기념한 파티가 열렸다. 그러나 서울 패션 관계자들에게 인사차 미리 기획된 ‘프리 쇼핑’은 돌연 취소됐다. 지나친 인기로 인한 안전사고 염려 때문이다(명동 눈스퀘어 H&M 매장 앞의 안전상 이유로 행사를 취소한다는 공식 사과문이 패션 관계자들에게 배달됐다).
그런 뒤 대국민 상대로 공식 론칭이 있은 뒤 다시 이메일이 H&M 측으로부터 도착됐다. 보도 자료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컬렉션 제품을 사기 위해 최대 6일간 대기하신 고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1월 5일 오전 8시 기준, 명동 눈스퀘어점에는 350여 명의 고객, 압구정점 400여 명, 잠실 롯데월드점 250여 명, 부산 센텀시티점 150여 명 등 1,150여 명이 구매를 위해 밤샘을 마다하지 않았고, 여성복만 판매한 잠실과 부산에서는 11시 이전에 극히 일부 아이템을 제외한 모든 아이템이 매진됐습니다. 남성복을 함께 출시한 명동 눈스퀘어점 및 압구정점에는 남성 고객들의 대기 줄 비율이 훨씬 높았고 남성복은 긴소매 티셔츠와 후드티를 제외한 모든 아이템이 11시쯤 매진됐으며 여성복 일부만 남았습니다. 420명의 팔찌 착용 고객의 쇼핑은 예상보다 20여 분 늦은 11시 45분에 종료됐고, 이후에는 대기 중이던 고객들이 순서대로 숍인숍에서 구매했습니다. 특히 사흘 이상 기다려온 첫 그룹의 일부 고객은 한정 수량의 아이템을 서로 갖기 위해 경쟁했고, 안전상의 이유로 제품을 리필하지 못해 고객 항의가 일부 있었습니다. 세 번째 그룹 이후로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쇼핑이 이뤄졌습니다.” 지긋지긋한 불경기에 이토록 흥미진진한 쇼핑 무용담을 들어본 적 있나?
그로부터 며칠 전, 압구정동 H&M 옆 유니클로에서 카린 로이펠트 협업이 공개되던 날. 점심시간 매장은 멋쟁이 여자들로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옷은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에서도 보기 힘들 만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유니클로의 평온한 이미지와 카린 로이펠트의 세련된 이미지? 온데간데 없고 선반과 행어 곳곳에 옷이 널브러져 있었다. 소박맞은 아내를 보따리와 함께 마당에 내팽개치듯 대체 왜 옷이 이런 험한 꼴을 당해야 할까? ‘협업’이라는 민주적 방식의 남발이 초래한 결과가 이거였나? H&M과 발맹 협업 옷은 어쩌자고 다시 몇 배 비싸게 팔리고 있을까?
사실 패션이 9시 뉴스를 통해 전 국민의 입방아에 오른 건, 이를테면 희대의 스캔들이 일어났을 때 그 ‘주역’의 몸과 하나가 된 옷과 소품이었다. 혹은 옷 로비 사건처럼 뇌물 수단으로 쓰일 때 패션의 몇몇 이름이 거론됐다. 왜 패션은 늘 자극적인 소재로 대국민 앞에 서야 할까? 옷은 사람이 입는 물건인데, 왜 옷에 사람이 질질 끌려다녀야 할까? 그 옷을 두고 왜들 그 난리일까? 비싼 옷을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이 함께 누리자는 취지의 하이패션과 SPA 브랜드 간의 협업은 알다시피 ‘리셀러’라는 신흥 패션 집단을 양산했다. 그로 인해 협업 제품은 더는 합리적이지 않다. 패션 민주화를 부르짖은 결과다. 이제 발맹은 그냥 원래 그대로 발맹을 사 입던 사람들이나 입게 그냥 놔두면 좋겠다. SPA 브랜드? 이 역시 평소 그만한 브랜드를 수월하게 사서 입는 사람들이 제집처럼 편하게 드나들었으면! 굳이 하이패션과 SPA 브랜드 간의 어깨동무가 필요하다면? 이를테면 하이패션 브랜드 소속의 디자이너가 적절한 경계와 범위 내에서 SPA 브랜드의 디자인 일부를 감수하고 조언하는 정도면 어떨지. 어떤 방식이 됐든, 지금 패션에 필요한 건 어느 정도의 신비주의일지 모른다.
- 에디터
- 신광호
- 일러스트레이션
- SNOW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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