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비-사이드’,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은 강남의 비사(祕事)
약 6년 전, 강남의 어느 클럽에서 마약, 탈세, 성 접대, 불법 촬영 등의 사건이 고구마 줄기처럼 뽑혀 나왔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의 범죄물은 더 적극적으로 강남을 배경 삼았다. 물론 이전에 나온 한국의 범죄물 또한 서울에서 5대 범죄 발생 건수가 가장 많다는 ‘강남’을 자양분 삼고 있었다. 마약, 연쇄살인, 조직 폭력 등의 실질적인 범죄만이 아니라 연예계와 정치계 등의 인물들이 벌이는 흑막까지 다룰 수 있는 공간이 강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핵심적인 피의자였던 그 사건은 그보다 더 실재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때 이 사건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를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해당 작품이 화제에 오르는 때도 있었다.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인 <강남 비-사이드>는 또 그때의 강남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대놓고 ‘화려한 강남의 이면’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이 드러난다. 그런데 강남의 이면은 지금도 흥미로울까?
강남에서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강남 비-사이드>는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는 클럽 종업원 재희(김형서)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목숨을 위협받은 그녀가 자취를 감추자 여러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형사, 사건을 이용해 출세해보려는 검사, 사건을 은폐하려는 빌런, 빌런의 사주를 받은 또 다른 경찰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사건을 파헤치는 쪽에서 움직이는 포주. <강남 비-사이드>는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이 얽히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다. 조우진과 지창욱 등의 배우들은 호연을 보여주고 제작진은 박진감 있는 액션을 연출해냈다. 그런데 이들을 둘러싼 강남은 하나도 흥미롭지 않다.
디즈니+ 이용자라면 <최악의 악>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역시 강남을 배경으로 마약 카르텔과 관련된 범죄를 그린 작품이다. 게다가 지창욱, 김형서 등의 배우까지 겹친다. 하지만 두 작품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가를 놓고 갈라진다. 비록 ‘언더커버’라는 뻔한 소재를 활용했지만 <최악의 악>은 마약 조직에 잠입한 경찰이 자신의 처지 때문에 겪는 무력감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에 비해 <강남 비-사이드>에는 야심이 없어 보인다. ‘화려한 강남의 이면’을 보여주겠다는 명분 아래 익숙한 장르적 쾌감을 연출하려고 애쓸 뿐이다. 그래서 <강남 비-사이드>가 묘사하는 강남의 풍경과 갈등 구도 또한 익숙하다. 갈등의 시작은 역시 ‘마약’이다. 신종 마약까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고, 그래서 그것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작품 속 사건의 진짜 빌런은 유명 아이돌이다. 실체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그럴듯하지만, 그를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는 캐릭터로 그려놓은 건 게으른 설정이다. 그와 그의 속칭 ‘VIP’ 친구들이 모여 여성들을 끔찍하게 착취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기본 설정이 이렇다 보니 속옷 차림의 여성들이 춤을 추는 강남 클럽의 풍경 또한 화려하거나 사실적이라기보다 의례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현실을 소재로 삼은 범죄물을 이제 와서 또 봐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이런 작품이 제작되어 거대 OTT를 통해 공개되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건 ‘안일함’이다. 끔찍한 범죄, 이를 은폐하려는 세력과 드러내려는 인물들의 대결, 대결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추격전과 거친 액션. 이렇게 기획해서 만들면 작품의 규모가 커지니 대중의 관심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얄팍한 기대. 그리고 그런 익숙한 기획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플랫폼의 자본. <강남 비-사이드>는 그처럼 안일한 태도와 판단이 모여 탄생시킨 작품이다. 대중은 정말 화려한 강남의 이면을 궁금해할까? 툭 하면 ‘강남 바닥이 어쩌고’ 운운하는 대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 이제는 강남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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