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들이 진짜 휴식이 필요할 때 가는 곳
늘 새로운 영감을 갈망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은 진짜 휴식이 필요할 때 어떤 곳을 떠올릴까? 디자이너 5인이 생각만으로도 홀가분해지는 도피처를 〈보그 리빙〉에 공개했다.
Michael Kors
따뜻한 자연과 여유로운 패셔니스타로 가득한 환상의 섬, 마이클 코어스는 2024 봄/여름 컬렉션에 카프리섬을 가져다놓았다.
카프리의 첫인상은?
1994년 친구들과 처음 방문했다.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에 단숨에 매료됐다. 아주 작은 배에서 선장이 바다로 뛰어들어 신선한 성게를 잡아 올리는, 싱그러움과 활력으로 가득한 섬이다.
주로 머무는 곳은?
그랜드 호텔 퀴시사나(Grand Hotel Quisisana). 1845년 요양원으로 지은 후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장 폴 사르트르 등이 다녀가면서 부유층이 즐겨 찾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금칠한 거울, 대리석 바닥, 샹들리에, 19세기 미술품으로 꾸민 이곳은 전망도 환상적이고 마을 중심가인 비아 카메렐레(Via Camerelle)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게다가 직원들도 무척 친절하다.
즐겨 찾는 식당은?
달레시오(D’Alessio) 가족이 대대로 운영하는 오로라(Aurora)는 섬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판다. 물론 그 때문에 항상 붐빈다. 차선책은 동쪽 해안에 자리한 레 그로텔레(Le Grottelle). 맛있는 파스타와 신선한 생선 요리를 먹으며 멋진 경관을 감상하기 좋다.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레몬 과수원 다 파올리노(Da Paolino)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이곳에 가면 현지 스낵이 가득 쌓인 디저트 룸에 꼭 들른다.
카프리에서 꼭 먹어야 하는 것은?
카판니나(La Capannina)에서 먹는 홈메이드 라비올리 카프레제와 감자 크러스트를 올린 신선한 도미 요리는 절대 포기 못한다. 그리고 카프리 타운에 있는 젤라테리아 부오노코레(Gelateria Buonocore)의 수제 젤라토,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긴 후 그란 카페 르 부오토(Gran Caffe R. Vuotto)에서 테이크아웃해 즐기는 레몬 올린 아이스티도 생략하긴 아쉽다.
저녁에 한잔하러 가는 곳은?
호텔 라 팔마(Hotel La Palma)의 루프톱 바는 점점 더 인기가 많아지는 듯하다. 칠리와 망고 시럽을 넣은 메스칼이나 패션플라워와 케이퍼를 가미한 진 등 기발한 조합의 칵테일을 맛볼 수 있는 곳. 호텔 루나(Hotel Luna)의 루프톱 바를 방문하는 날엔 주로 산딸기가 들어간 샴페인, 프린치페사(Principessa)를 고른다.
아웃도어 활동도 즐기나?
남편 랜스(Lance)와 나는 새로운 길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보트를 빌려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한다. 카프리섬 남쪽 끝에 자리한 비치 클럽 라 폰텔리나(La Fontelina)는 햇살 아래에서 봉골레 파스타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 줄무늬 파라솔은 카프리의 가장 아이코닉한 풍경이다.
쇼핑하기 좋은 곳은?
샌들 가게는 잊지 않고 방문한다. 카프리 타운에 있는 다 콘스탄초(Da Costanzo)는 보석을 장식한 화려한 샌들을 팔고, 스타일리시한 현지인이 결집하는 퀴시사나 호텔 뒤쪽에 있는 칸포라(Canfora)에서는 더 심플한 디자인을 판매한다. 재키 케네디도 이곳에서 자주 샌들을 구입했다. 이 외에도 카르투시아(Carthusia)에서는 레몬 비누를, 피오레(Fiore)에서는 보르살리노(Borsalino) 모자를, 카바나(Cabana)에서는 아름다운 리빙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카프리섬이 2024 봄/여름 컬렉션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누구나 현실도피를 꿈꾸지 않나? 그럴 때 떠올리는 곳이 카프리다. 카프리 타운을 맨발로 거니는 재키 케네디, 이탈리아의 따뜻한 미풍, 휴가 중인 브리짓 바르도, 레이스 크롭트 톱을 입은 제인 버킨 등을 떠올리며 ‘베어풋 글래머(Barefoot Glamour)’ 컬렉션을 완성했다. 패션쇼는 브루클린에서 열었지만 카프리를 뉴욕에 옮겨놓기 위해 쨍한 핑크색 부겐빌레아를 풍성하게 수놓았다.
카프리에 얽힌 또 다른 추억은?
카프리에서는 언제나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환갑을 맞은 어머니와 함께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어머니는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마이클의 어머니 조안 코어스는 2024 봄/여름 컬렉션 쇼가 열리기 한 달 전 세상을 떠났다) 함께 했던 여행이 더 자주 떠오른다.
Paiksuk Chung
정백석은 모든 부담과 압박감을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발리로 향한다.
렉토 디자이너 정백석의 첫 발리 여행은 친구와 함께였다. 그리고 지난 3월,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초봄의 서울을 떠나 또다시 발리로 향했다. 발리의 3월은 11월에 시작된 우기가 끝나는 시기다. 그리고 1년 중 가장 더울 때다. “길고 지루한 겨울이 끝날 때쯤 좋아하는 계절 여름을 먼저 맞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에게 서울에서 보내는 일상은 차가운 겨울 같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질 좋은 코트로 몸을 감싸도 어디선가 늘 찬 바람이 스며들고, 두툼한 옷 무게에 목과 어깨가 뻐근하고,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늘 긴장한 상태 말이다. 그가 휴식을 즐기는 방법은 더위에 늘어질 수밖에 없는 발리의 여름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것. “가능한 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루를 보내요. 다 내려놓고 즐기는 게 여행이니까요. 아무 생각 없이 쉬고, 걷고, 구경하는 게 전부죠. 내가 아닌 다른 자아로 여행을 즐긴다고 할까요.”
알릴라 스미냑(Alila Seminyak) 리조트를 편애하는 이유도 여행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알릴라 스미냑은 발리의 스미냑 비치에 있는 열대지방 스타일 리조트로, 스위트룸에서 내다보면 창밖으로 아름다운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광객이 붐비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기에 한층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파도 소리가 들리죠. 바다 풍경을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는 멋진 카바나도 마음에 들어요. 저물녘엔 석양에 오렌지 컬러로 물드는 바다가 아름다운 근사한 호텔입니다.” 원하는 것을 충분히 갖춘 숙소라면 굳이 밖에서 모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백석은 투어를 하거나 유적지를 방문하고, 액티비티를 즐기는 것보다는 볕이 잘 드는 곳에서의 태닝을 택한다. “해가 잘 드는 스폿을 찾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리조트 시설을 충분히 즐긴 뒤 거리로 나선다. 호텔 근처 스미냑 거리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겸 카페 킴수(Kim Soo)는 지역색이 잘 드러나는 소품과 패브릭, 레진 소재의 예쁜 플레이트와 오브제가 가득하다. 이 매장을 운영하는 모녀는 세련된 안목으로 인도네시아 군도와 지역 장인의 수공예품을 선별해 판매한다. 특산품인 라탄 공예품, 오래된 나무의 질감과 색감으로 완성한 실내장식과 오브제 등 발리 특유의 인테리어 요소는 얼마 전 오픈한 렉토의 새 플래그십 스토어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매장을 다 둘러보고 시간이 남는다면 야외 테라스에서 간단한 브런치나 티타임을 가지는 것도 좋다. 그다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하바이아나스(Havaianas) 매장으로 향한다. “플립플롭을 사서 신고, 실버 주얼리 숍을 탐방하죠.” 은세공 기술로 유명한 지역답게 에스닉하면서도 세련된 실버 주얼리를 취급하는 곳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백석은 뻔하거나 익숙한 디자인이 아니라, 발리의 장인이 전통 수공예로 제작한 주얼리를 창구(Canggu)의 어느 숍에서 ‘득템’한 적이 있기에 발리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주얼리 숍을 둘러본다. 스미냑에 있는 빈티지 숍 ‘쿠노 빈티지(Kuno Vintage)’도 재미있는 곳. 쾌활한 직원들은 구매한 아이템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한다. 육류를 먹지 않는 페스코테리언 정백석에게 어딜 가나 맛있는 비건 메뉴를 즐길 수 있다는 것 또한 발리의 가장 큰 매력이다. 외식할 때도 특별한 미식 경험을 찾아다니기보다 다양한 비건 메뉴와 로컬 타이 푸드를 즐기는 편. 한가로이 거리를 구경할 땐 달콤한 젤라토와 전통 디저트를 잊지 않는다. 발리 길거리에는 유독 젤라토 가게가 많은데, 이탈리아 못지않게 그 맛이 훌륭하다. 정백석이 추천하는 길거리 음식은 바나나잎에 담아주는 코코넛 떡 클레폰(Klepon)이다.
다른 자아를 소환하는 발리의 매력은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부른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때쯤 비치 클럽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며 빈땅 맥주를 마시는 것 또한 발리 여행의 작지만 중요한 일정이다. “여행은 쉼을 통해 나를 더 비워내는 시간이라고 여겨요. 그리고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과 여유,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그 빈 공간을 다시 충전합니다.”
Lauren Santo Domingo
티파니 홈의 아티스틱 디렉터 로렌 산토 도밍고에게 뉴욕은 가장 화려하면서도 과소평가된 도시다.
뉴욕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열네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혼자 기차를 타고 도시로 가서 모델의 꿈을 펼치도록 허락하셨다. 딸아이 혼자 스타벅스에 보내는 것도 불안해하는 나로서는 부모님의 결단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코네티컷주에 살던 우리 가족은 브로드웨이에서 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뉴욕에 자주 방문했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언제나 <호두까기 인형>을 봤다. 그래서인지 스물한 살에 뉴욕에 정착했을 때도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자란 어떤 친구보다 뉴욕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족과 함께 티파니 매장도 방문했나?
뉴욕에서 우리 가족이 유일하게 들르던 매장이 티파니다. 결혼이나 출산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티파니는 미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뉴요커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나 다름없다. 티파니가 뉴욕에 첫 매장을 연 지 벌써 187년이 됐고, 어느덧 리테일 숍 이상의 의미를 지닌 유서 깊은 장소가 됐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일면일 뿐이다.
상쾌한 하루를 위해 방문하는 곳은?
웨스트 33번가에 있는 작고 세련된 카페 데일리 프로비전스(Daily Provisions)에서 정말 맛있는 페이스트리를 판다. 파란 창을 통해 뉴요커들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카푸치노와 베이컨 에그 치즈 샌드위치를 음미하는 것을 좋아한다.
쇼핑하기 좋은 곳은?
첼시의 쇼플레이스(Showplace)는 3개 층에 걸쳐 빈티지와 앤티크 제품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어릴 적 뉴욕에 올 때마다 방문하곤 했던 플리 마켓은 이제 럭셔리 리조트로 바뀌었지만 다행히 쇼플레이스는 남아 있어 언제든 빈티지 마호가니 테이블 같은 보물을 만날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기프트 숍은 선물을 사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이고, 리빙 아이템이 필요할 땐 차이나타운의 베벌리스(Beverly’s)나 일본 브랜드가 많은 그린 포인트의 시보네(Cibone), 유럽 테이블웨어를 소개하는 애틀랜틱 애비뉴의 포타(Porta)를 자주 방문한다.
즐겨 먹는 점심 메뉴는?
캐비아 카스피아(Caviar Kaspia)를 제외하면 인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나와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바쁠 때는 플랫아이언 빌딩 옆의 S&P 샌드위치 가게에서 참치 샌드위치 또는 땅콩 버터 샌드위치를 먹거나 혼밥 하기 좋은 이치란(Ichiran)을 방문한다.
재충전이 필요할 때 찾는 곳은?
아이스크림은 카페 파나(Caffè Panna)로 가야 한다. 손님 중 인플루언서가 많지만 그만큼 신선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이탤리언 푸드 코트 이탈리(Eataly)는 다양한 메뉴를 조금씩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그만인 곳이고, 단것이 당길 땐 소호에 있는 플리퍼스(Flipper’s)에서 수플레 팬케이크를 찾는다.
또 다른 맛집은?
그랜드센트럴역에 있는 오이스터 바(Oyster Bar)의 클램 차우더는 뉴잉글랜드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최고의 클램 차우더다. 바스타 파스타(Basta Pasta)도 좋아하는데, 임신했을 때 유일하게 먹고 싶은 것이 이곳 파스타(알라 루오타)였다. 이제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잠 못 드는 밤 향하는 곳은?
그레이트 존스 거리에 있는, 우아한 벨벳으로 꾸민 피아노 라운지 더 나인스(The Nines)에서는 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저녁에 가볍게 한잔하거나 2차로 방문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멤버십 타운하우스, 카사 크루스(Casa Cruz)도 자주 찾는다.
자연이 그리울 때는 어디로 가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뉴요커들이 센트럴 파크를 더 소중히 여기는 듯하다. 나 역시 센트럴 파크에서 새로운 곳을 재발견하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도 그곳에서 방과 후 체육 수업과 풋볼 경기를 즐기며 추억을 쌓고 있다.
모임을 계획할 때 잊지 않는 것은?
촛불은 필수다. 특히 은이나 도자기가 빛을 아름답게 반사하는 광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티파니의 발스 블루(Valse Bleue) 컬렉션을 특히 애정하는 이유다. 우아함, 고상함, 약간의 위트까지, 모든 요소가 녹아 있다. 티파니 말고는, 금빛이 돋보이는 테이블 리넨과 소용돌이무늬의 무라노 유리잔이 테이블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좋다.
뉴욕은 어떤 영감을 주는 도시인가?
어떤 사람은 명상이나 디톡스, 사운드 배스(Sound Bath, 명상의 일종으로 다양한 소리의 진동에 몰입해 정신적 안정을 얻는다)를 통해 내면의 평화를 얻는다. 그러나 나는 아름답거나 흥미로운 것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과 미술관, 공원과 흥미로운 빈티지 숍으로 가득한 뉴욕은 최고의 안식처다.
Juntae Kim
다양한 인종과 국적, 취향과 미식이 뒤섞인 런던의 카오스에서 자유와 아름다움을 발견한 김준태.
처음 런던에 매료된 순간은?
2018년 런던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 6개월 정도 런던과 외곽 도시를 탐방했다. 다양한 인종, 국적을 지닌 사람들의 다채로운 옷차림과 삶의 방식, 문화에 새로운 매력을 느껴 곧 런던이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누군가는 런던(혹은 영국)에서 내세울 만한 음식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곳이 많다. 먹는 즐거움을 중시하는 나에겐 천국 같은 곳이다.
가장 머물기 좋은 곳은?
이스트 런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쇼어디치에 자리한 쇼어디치 하우스(Shoreditch House)를 좋아한다. 가끔 흥미로운 이벤트와 파티가 열리며, 브리티시 전통과 모던한 디자인이 공존하는 카페, 루프톱, 스파 공간도 멋지다. 아늑한 분위기의 실내에서 쇼어디치 하이스트리트역을 요란스럽게 지나는 지하철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추억이 깃든 곳은?
유학 시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터키 레스토랑 ‘우무트 2000(Umut 2000)’을 방문했다. 오픈 키친 형태로 숯불에 구운 터키식 양갈비와 레바논식 샐러드를 자주 먹었다. 흔한 메뉴지만 아직까지 다른 어떤 할랄 음식점에서도 그 맛을 느껴본 적이 없다.
쇼핑하러 자주 가는 곳은?
브릭 레인의 레코드 숍 ‘러프 트레이드(Rough Trade)’는 1976년 문을 연 후 레코드 레이블을 운영한 적도 있는 곳으로, 브리티시 록 밴드의 역사가 담긴 유서 깊은 공간이다. 나만의 패션 브랜드를 준비하던 시기에는 브릭 레인 빈티지 마켓에서 오리지널 빈티지 의류도 자주 구입했다. 주말마다 열리는 마켓을 비롯해 음식, 쇼핑, 공연 등 즐길 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문화생활을 위해 찾는 곳은?
타워 브리지 근처의 화이트 큐브 갤러리 덕분에 영국 신인 작가부터 명망 높은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을 알게 됐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와 레온 위다(Léon Wuidar)의 작품을 직접 본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런던에서 최고의 하루를 보내는 법?
사이클링을 추천한다. 주말에 쇼어디치에서 런던 브리지를 거쳐 하이드 파크로 향하는 루트가 좋다. 런던의 랜드마크와 템스강, 도심 속 공원까지 하루 만에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저녁에 한잔하러 가는 곳은?
코번트가든역에서 가까운 ‘고든스 와인 바(Gordon’s Wine Bar)’. 19세기 말부터 영업을 시작한 곳으로 가족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유럽 각지의 희귀한 와인을 동굴 형태 저장고에서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 가장 즐겨 마신 술은 ‘팻 배스터드(Fat Bastard)’라는 과일 향이 통통 튀는 프랑스 와인이다.
런던에서의 삶이 패션 브랜드 준태킴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준태킴이 추구하는 자유로움, 팝하고 키치한 면은 모두 런던에서 직접 경험한 문화와 젠더, 인종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삼는다. 모든 장르가 융합된 런던의 매력을 동양인 시각에서 현대적으로 풀어낸 결과가 준태킴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런던스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서울스럽지도 않은 어떤 것 말이다.
런던에 관한 잊지 못할 기억은?
런던에 6년 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다. 노팅힐의 작은 카페에서 혼자 스케치를 하다가 80대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런던에 왔다는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됐고, 인생에 대한 소중한 조언까지 듣게 됐다. 어떤 말이었냐고? “Be bold hear(여기서는 대담해져라).”
Phillip Lim
필립 림이 스리랑카로 향한 이유는 오랫동안 동경해온 건축가 제프리 바와 때문이다.
필립 림(Phillip Lim)은 50대가 된 후 친구들에게 “이제 어느덧 미드 센추리 모던 나이가 됐다”는 농담을 자주 했다. “좋은 가구처럼 나이 들수록 더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2005년 자신의 레이블 3.1 필립 림을 선보인 후 전 세계에 자신만의 미니멀한 스타일을 알리고 있는 그는 50세 생일을 중요한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 “어디서 들었는데, 쉰 살이 되면 두 번째 삶이 시작된대요. 누구보다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거죠.” 이후 그는 16년간 살았던 맨해튼 아파트를 처분하고 롱아일랜드 노스 포크에 있는 1940년대 방갈로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새 안식처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필요했고, 이는 그가 오랫동안 꿈꾸던 스리랑카 여행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 “도시의 개성과 색채, 사람들의 에너지까지, 늘 동남아시아에서 창의적인 영감을 얻는다”고 말하는 필립 림이 긴 시간 스리랑카를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은 이유는 위대한 건축가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의 존재 때문이다.
제프리 바와는 라틴아메리카, 서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고온 다습한 기후에 맞는 현지 자재와 건축양식에 20세기 중반의 디자인 미학을 적용한 열대 모더니즘을 이끈 주인공이다. “오랫동안 바와의 디자인을 동경해왔어요.” 림의 말이다. “그러나 저만의 방갈로를 짓기 위해 건축가 역할을 도맡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작업을 두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죠.” 주택 수십 채와 콜롬보 의회 같은 공공 건물, 스리랑카 지역의 여러 호텔을 디자인한 제프리 바와는 자연에 대한 애정으로 실내외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는 디자인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바와의 사유지 ‘루누강가(Lunuganga)’에서 투숙객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림은 스리랑카를 방문할 절호의 기회라고 직감했다.
스리랑카에서 일주일간 휴가를 만끽하게 된 림은 바와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인 두 곳을 방문하는 일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첫 번째는 벤토타 해변 마을 근처에 자리한 루누강가, 두 번째는 호텔 헤리턴스 칸달라마(Heritance Kandalama)였다.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48년 바와가 15에이커(약 1만8,360평)에 달하는 부지를 구입하기 전, 이곳은 계피나무와 고무나무를 재배하는 곳이었다. 바와는 이 식민 시대 구조물을 자신의 주택으로 바꾸고, 수 세기 동안 단일 경작해온 땅의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토종 작물을 윤작하며 수십 년을 기다렸다.
“루누강가에서는 바와가 자던 곳에서 잠을 자고, 그가 일하던 책상에 앉아볼 수 있어요.” 림이 회상했다. 또한 부지에는 바와가 친구 에나 데 실바(Ena de Silva)를 위해 1962년 콜롬보에 지은 주택 ‘넘버 5’도 있다. 건축 유산 보호 조치가 내려진 2009년에는 원래 있던 주택의 벽돌을 하나하나 해체한 후 루누강가에 재조립했다. 바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건축물을 바와가 서구적인 건축법에서 현지 재료를 적극 활용하는 건축 기법으로 옮겨가는 변곡점에 놓인 작업으로 이해한다. “넘버 5는 식민주의를 완전히 전복시켰어요.” 림이 설명했다. “스리랑카 고유의 것을 살려 전 세계가 수긍하도록 현대적 맥락에 맞춰 배치한 거죠.”
오늘날 방문객은 루누강가에서 제공하는 투어를 즐기고, 야외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으며, 10개 게스트 룸에서 림처럼 투숙할 수도 있다. 림은 이곳에서 독서, 스케치, 일광욕으로 꽉 찬 4일을 보내며 창의력을 회복했다고 고백했다. “어딜 가든 ‘볼만한’ 것이 있었어요. 겉보기에 평범한 복도나 계단, 창으로 보이는 전망이 소중한 레퍼런스가 됐죠. 오래된 모든 것이 아직까지도 지극히 현대적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루누강가를 떠난 림은 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4시간가량 이동했다. (후룰루 에코 파크(Hurulu Eco Park)에서 야생 코끼리를 보고, 5세기에 지은 요새 시기리야(Sigiriya)를 방문하느라 빙빙 돌아가긴 했다.) 가장 잘 알려진 바와의 또 다른 건축물 헤리턴스 칸달라마 호텔을 보기 위해서였다. 절벽 옆에 자리한 이 호텔은 7층짜리 건물로 총 152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1994년 문을 연 후 세계 최초로 LEED 녹색 건물 인증을 받은 호텔이 되었으며, 오픈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울창한 나무와 덩굴식물이 캐노피처럼 호텔을 에워싸고 있었다. 림은 호텔 건물과 자연의 유기적인 화합에서 바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림은 모든 여행이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늘 하는 일이 있어요. 바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디자인하거나 구상 중이던 일의 방향을 창의적 관점에서 대대적으로 재조정하는 거죠.” 하지만 그가 스리랑카 여행에서 얻은 영감은 개인적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속도를 늦추고 자연 가까이 지낸 경험 덕분에 노스 포크로 이사할 결심이 확고해졌어요. 모든 면에서 바와의 손길이 느껴지도록 리모델링할 겁니다.”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사진
- GERMAN LARKIN, 이예지, SHARIF HAMZA, 박배, CARMEN CHAN, GETTYIMAGESKOREA, UNSPLASH
- 글
- CHARLOTTE DAVEY, 송보라, REBECCA MISNER
- COURTESY OF
- AURORA, HOTEL LA PALMA, ALILA SEMINYAK, CASA CRUZ, CIBONE, THE NINES, TIFFANY&CO., SHOREDITCH HOUSE, WHITE CUBE, GEOFFREY BAWA & LUNUGANGA TRUST, TOM ROE
- ART
- Immersive Moving Fresco by Oyoram Visual Comp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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