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레스토랑은 영 앤 리치가 지배한다?_2024 미식 트렌드
음식이 경험이자 놀이, 이동의 목적인 시대다. 서울의 식당은 점차 젊어지고, 야식보다 조식이 떠오르며 푸드 홀 3세대가 시작됐다. 뉴욕 레스토랑은 예약 각축전을 벌이며, 버려지는 음식으로 마련하는 디너는 주요 옵션이다. 서울과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의 식탁 뉴스.
식당이 젊어졌다. 주인이나 손님 연령대만 뜻하진 않는다. 중요한 특징은 역동성이다. 코로나 위기에도 살아남는 회복 탄력성, 전통에 갇히지 않고 경계를 허무는 자유분방함, 레퍼런스를 적극 차용하는 유연함까지, 다이내믹 코리아다.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2024년 여름과 가을을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흑백요리사)>과 함께 보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어느 모임에서든 이 프로그램이 화제에 올랐고, 안성재 셰프의 말투는 밈이 되어 곧잘 웃음의 소재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셰프들의 식당 리스트는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고, 치열한 예약 전쟁은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여기저기서 프로그램에 출연한 요리사들을 초청해 팝업 행사를 열고 있고, 1인분에 70만원인 안성재 셰프의 디너 코스는 1분 만에 매진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 현재 한국 다이닝 신의 한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길). <흑백요리사> 최종 톱 8명 중 3명이 1990년대생, 2명이 1980년대생이었기 때문이다. 최종 결승전의 승자도 20대 젊은 요리사였다. 참가자뿐 아니라 심사 위원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생 백종원 셰프 옆에 1980년대생 안성재 셰프가 대등하게 앉아서 함께 심사를 진행했다. 맛과 성취의 관점에서 보면 나이나 업력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했다.
실제로 서울의 레스토랑은 점점 젊어지고 있다. 다양한 업장이 생겨나고 젊은 사람들이 레스토랑 비즈니스에 과감하게 뛰어들고 있다. 은퇴한 사람들이 개성 없는 프랜차이즈 식당을 통해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유학하거나 해외 유명 레스토랑의 경험을 살려 미쉐린을 목표로 하는 야심 찬 젊은 셰프부터, 빠르게 외연을 확장해 엑시트에 성공하는 F&B 사업가, 애호가의 관점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깊이 파고드는 사람들까지 점점 다양한 형태의 레스토랑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도 이런 변화에 반응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주목받은 레스토랑 또는 조금이라도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식당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웨이팅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곳에서 먼저 ‘0차’를 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 인기가 많은 곳을 예약하는 일은 유명 가수의 콘서트 또는 학점 잘 주는 과목의 수강 신청을 하는 것 이상으로 난도가 높았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이런 정보의 유통을 원활하게 만들었다. 만약 당신이 서울을 1년에 한두 번 정도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매년 변모하는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해도 꾸준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 빠른 흐름을 따르기 버겁다.
사실 이런 변화는 꽤 최근의 일이다. 서울은 전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너무나 역동적인 도시다. 특히 미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 그렇다. 끊임없이 새로운 식당이 등장하고,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단적인 예로 2024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을 받은 33개 레스토랑 가운데 라미띠에와 정식당 두 곳을 제외하고 모두 2010년 이후 문을 연 곳이다. 그중에서도 절반은 2020년 이후에 오픈했다. 미쉐린 가이드가 서울을 리뷰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처음 3스타에 이름을 올린 식당 중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2스타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다. 첫해 3군데로 시작해 이제 9개의 2스타 레스토랑이 있지만 권숙수를 제외하면 모두 새롭게 등재된 곳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양과 질이 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오마카세 스시도 좋은 예다. 스시 초희나 스시 효같이 2010년 전후로 오마카세 개념을 보편적으로 정착시킨 곳은 이미 다 문을 닫았다. 팔레 드 고몽, 시즌스, 라미띠에, 라쿠치나 같은 1세대 프렌치·이탤리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중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은 손에 꼽힌다.
오래된 레스토랑의 음식 맛이 떨어진 건 아닐 것이다. 여전히 오랫동안 같은 맛을 유지하며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는 ‘노포(老鋪)’들이 남아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다이내믹한 한국 레스토랑 신에서 꾸준히 맛을 유지한 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자리에서 버티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그래서 그 업력과 세월 자체가 많은 것을 설명하기도 한다. 오래된 식당에 굳이 ‘나이 들었다’는 의미의 한자 ‘노(老)‘를 붙인 것은 축적된 시간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강조하고 싶은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은 언젠가부터 새로운 음식이 발굴되고, 새로운 레스토랑이 계속 등장하고, 많은 사람이 이에 열광하는 도시가 되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평양냉면은 먹는 사람만 먹는 마이너한 장르였다. 2000년대만 해도 서울 시내에서 평양냉면을 먹고 싶을 때 선택지는 우래옥, 필동면옥, 을지면옥, 평양면옥 등 이른바 4대 평양냉면집이었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을밀대나 서북면옥, 남포면옥, 평래옥, 봉피양이 추가되는 정도였다. 여기 언급된 모든 식당이 다 수십 년 역사를 가진 곳이다. 새로 문을 연 신생 평양냉면집이 이 노포들과 리스트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이 언젠가부터 누구나 한번쯤은 먹어볼 만한 메인스트림 장르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수요가 급격하게 늘면서 이 수요에 맞춰 새로운 평양 냉면집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0년을 전후해 광명시의 정인면옥, 분당·판교의 능라도 같은 곳이 입소문이 나고 서울에 진출했다. 의정부 평양면옥 계보에서 새롭게 뻗어나온 진미평양냉면이 생긴 것도 이즈음이다. 새로운 세대 평양냉면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평양냉면을 표방하는 곳이 서울에만 50개가 훨씬 넘는다. 서관면옥, 서령 같은 곳은 몇십 년 된 노포 못지않은 맛을 낸다.
선택의 깊이만 더해진 것이 아니라 폭도 넓어졌다. 이제 진구정처럼 1960년 AR(Acoustic Research) 빈티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샴페인 또는 내추럴 와인과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는 곳까지 생겼다. 피양옥에서는 어복쟁반에 화려하게 송이버섯을 올려 먹을 수도 있다. 이런 질적·양적 확대를 이끌어낸 사람들은 도제식으로 평양냉면을 배워서 독립한 요리사들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평양냉면을 오랫동안 좋아했고 많이 먹었고 그래서 자기 스타일로 냉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이렇게 자신이 쌓은 경험을 실제로 구현하고 싶어 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새로운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미식 경험을 F&B 사업 아이템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누군가는 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에스닉 음식을 만들고, 맛집 블로거를 하면서 방문한 맛집을 자신의 식당에서 재현하기도 한다. 이런 곳은 레퍼런스를 차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은박지 위에 냉동 삼겹살을 올려 굽고 메뉴판에 청국장을 올려놓은 잠수교집, 대삼식당은 나리의 집을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몽탄과 산청에서 재현된 짚불 구이와 흑돼지구이도 전남 무안군 몽탄면과 경남 산청군 산청읍이라는 지역적 레퍼런스가 분명히 존재한다.
레퍼런스는 단순히 차용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세대가 재해석하기도 한다. 투박한 경상도식 돼지국밥은 옥동식에서 맑은 돼지곰탕으로 변모했다. 육수를 내는 돼지 품종도 세심하게 고르고 안암이나 백랑 같은 곳은 고수나 화자오, 유자 청양고추 오일 같은 향신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돼지국밥의 외연을 넓혔다. 이제 옥동식의 돼지곰탕은 뉴욕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보편성을 인정받았다. 새로운 세대의 레스토랑은 과거 유산에서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우 오마카세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본앤브레드 뒤에는 한우 유통 사업의 역사가 축적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맛있는 돼지고기를 내는 남영돈은 원래 정재범 대표가 어머니와 운영하던 예쁜돼지라는 프랜차이즈 다음에 만든 식당이다. 오랜 리노베이션 끝에 다시 오픈한 압구정의 가든형 고깃집 삼원가든은 이제 한국식 고기구이의 현대적 모델을 보여준다.
언젠가 냉동 삼겹살이 먹고 싶어 종로에 있는 오래된 냉동 삼겹살집에 간 적 있다. 30년이 넘었다면 ‘노포’로 분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막상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실망했다. 냉동 삼겹살에 대한 요즘 기준을 적용해보면 원육의 질, 밑반찬, 위생, 서비스까지 모든 면에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었다. 이제 더 이상 세월만으로는 맛을 담보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빠르게 달라지는 세상에서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결국 뒤처진다. 더 많은 고민을 하고 고객 경험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설계한 식당이 아무 고민 없는 오래된 식당보다 훨씬 더 나은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식당이 젊어졌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새로 생긴 곳이 많아졌다는 의미일까, 식당을 더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게 됐다는 걸까, 아니면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젊어졌다는 뜻일까? 아마도 젊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역동성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회복 탄력성, 손님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한 유동성 시대의 끝에서도 버텨내는 생존력, 전통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고 경계를 허물어내는 자유분방함, 적극적으로 레퍼런스를 차용하면서 동시에 재해석할 수 있는 유연함. 이 모든 것이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요소라면 서울은 전 세계 주요 도시 중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다이닝 신이 있는 도시일 것이다. 다가오는 10년 역시 기대한다. (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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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아티스트
- Subodh Gupta
- 글
- 신현호(미식 칼럼니스트)
- 사진
- Courtesy of the Artist, Subodh Gupta Studio and Arario Gallery, ©Subodh Gup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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