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천국 항저우에서 열린 샤넬 공방 컬렉션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이다. 중국의 두 도시 항저우와 상하이에서 행사가 열린 순간만큼은 패션 역사에 최고의 시절로 기록될 것이다.
HANGZHOU
하이패션이 다시 중국에 집결하고 있다. 샤넬은 2009년 12월과 2010년 상하이 황푸강에 이어 2024년 12월에는 항저우 서호에서 공방 컬렉션의 경이로움을 보여주었다.
캉봉가 31번지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에는 한때 그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코로만델(Coromandel) 병풍이 있다. 옻칠한 표면에 자개를 새겨 넣은 이 병풍은 마드모아젤 샤넬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접이식 병풍 23피스 중 하나로, 그녀가 생전에 가본 적 없는 도시 항저우 시가 구역 서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호수 서호의 풍경을 담고 있다. 구불구불한 언덕, 조각 같은 소나무와 탑, 호수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을 묘사한 이 코로만델 병풍은 2025년 공방 컬렉션의 출발점이며 마드모아젤 샤넬이 예술적인 옻칠과 자개 장식을 바라보며 상상했을 항저우 여행에 대한 상념을 발전시켰다.
아티스틱 디렉터의 부재로 인해 디자인 스튜디오가 이번 시즌 하우스의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임무를 맡았고, 샤넬은 400명이 넘는 게스트를 항저우로 초대했다. 호수 기슭에는 유리로 된 찻주전자와 튤립 모양 스파클링 와인 잔을 든 웨이터들이 작은 함대 규모의 목선 여러 척 앞에 서 있었다. 유리창이 달리고 옆면에 금색 연꽃을 장식한 배는 루비타 뇽오, 빔 벤더스를 비롯한 게스트를 싣고 호수를 건넜다. 배에서 내린 게스트들이 나무 통로를 지나는 동안 원형 플랫폼에는 한 피아니스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 등을 연주했다. 나무 통로는 쇼가 열리는 검정 반원형 구조물로 이어졌고 관객을 위한 좌석이 여섯 줄로 마련돼 있었다. 호수에 피어오른 안개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참석자들을 꿈같은 순간으로 이끌었다.
해가 넘어가고 전통 북 리듬에 맞춰 첫 번째 그룹의 모델 리우웬이 등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 룩으로 차려입은 모습은 꿈에서 본 호수의 미스터리한 생명체를 연상케 했다. 어깨선을 강조한 롱 코트는 트위드와 새틴, 벨벳 소재로 아름답게 재단되었으며 컬렉션의 첫 번째 주요 테마인 레이어링을 제시했다. 언제 어디서나 잘 차려입어야 하는 멋쟁이 수집광을 위한 레이어링은 수많은 백으로도 등장했는데, 모델들은 백 두세 개를 겹쳐 들기도 했다. 미니 플랩 백은 퀼티드 토트와 더플 백에 달랑거렸고 크리스털 클러치는 별처럼 반짝였다. 연한 피스타치오와 카나리아 옐로 컬러로 물든 새틴 실크 소재 ‘필로우’ 백은 플레어 팬츠와 슬립 드레스, 니트 스커트와 스웨터, 무릎 위까지 덮는 웨지 부츠 등 실용적인 아이템과 함께 ‘과거와 현재, 매혹과 꿈 그리고 여행’이라는 주제를 드러냈다.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레퍼런스는 우아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샤넬의 장인 기술을 빛냈다. 세련된 블랙 페이턴트 가죽이 옻칠의 광택을 상징했다면, Le19M의 플리츠 공방 로뇽(Lognon)이 제작한 플리츠는 스커트와 드레스에서 접이식 부채의 주름을 연상케 했으며, 손바닥만 한 클러치의 조개껍데기 패턴과도 잘 어울렸다. 르사주(Lesage)에서 제작한 4포켓 트위드 재킷에는 벨벳 소재로 매듭지은 중국 전통 의상 청삼의 개구리 단추가 달려 있었다. 클래식 트위드 스커트 수트와 레이어드한 니트 보디수트에 직조된 패턴은 샤넬의 코로만델 병풍 속 장면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아주 작은 새들 모양 클러치는 언뜻 포춘 쿠키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르사주의 솜씨로 중국 전통 회화에 등장할 법한 구름을 비즈와 자수로 표현한 블랙 부츠도 있었다.
쇼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들 사이에서 만족스러움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웅성거림이 들렸다. 멋지고 고급스러웠으며, 일관되고 놀랍도록 아름답게 표현된 장인 장신이 돋보였다. 누구의 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멋진 꿈이었다. 버지니 비아르에 이어 샤넬이라는 아름다운 환상의 다음 장을 보여준 공방 컬렉션은 이 팀을 이끌 인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VK)
- 패션 에디터
- 김다혜
- 글
- MONICA KIM
- 사진
- COURTESY OF CHANEL
- SPONSORED BY
-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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